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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양승훈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오월의봄 2019
오래된 습관 복잡해진 세계
김정아 金正雅
소설가 padosoridul@gmail.com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 이 거칠고 무례한 질문이 지니는 동시대적 의미를 한국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말을 유행시킨 영화는 기억에서 희미해졌어도 이 질문은 여전히 살아 움직인다. 양승훈의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산업도시 거제, 빛과 그림자』는 한국의 무수한 아버지들을 겨냥하는 이 질문에 대한 충실한 답변이다. 사회학자인 저자는 5년간 조선소 노동자로 일하면서 이 거대한 집단에 대한 세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국가와 국내 대자본이 조성한 도시에서 ‘하면 된다’는 믿음만으로 세계 1위의 산업을 만들어낸 수만의 아버지들과 그다음 세대의 이야기가 사회학적 분석과 인류학적 기록으로 펼쳐진다. 이미 박수받았듯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는 소금꽃 핀 현장의 땀 냄새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동시에 조선산업의 빛과 그림자 역시 실증적 차원에서 분석해내고 있다.
거제 조선산업은 최근 몇년 미디어에 자주 등장했다. 한때 국가를 대표한 산업이 가망 없이 쓰러져가고 있다는 뉴스가 대부분이었다. 스웨덴 말뫼에서 1달러에 사왔다고 알려진 크레인이 울산 현대중공업에서도 멈췄다는 뉴스는 조선업의 미래뿐 아니라 한국사회에 몰려온 먹구름을 암시한다며 세간은 한숨을 쉬었다. 부실기업이라는 불명예를 쓰고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으며 엄청난 액수의 공적자금 지원에 대한 걱정과 반감이 여론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조선산업이 흥할 때 그로 인해 뿌듯했고 위기에 처한 지금 그 때문에 우울해하고 있는가? “기본적으로 경제학이 제조업 내부의 생산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은 ‘블랙박스’에 가깝다. 다시 말해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조선산업이 선전했던 내생적 원인들에 주목해보려는 것은 오롯이 외적인 변수(유가, 선가 등)에만 좌우되지 않는 반례들이 조선업계에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180면)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라고 생각한다. ‘희망버스’에 오른 ‘민주시민’이라 할지라도 조선소가 어마어마하게 거대하다는 것 외에 무엇을 알고 있었겠는가.
거제는 오로지 조선산업을 위한 도시였다. 국가와 국내 대자본의 힘으로 조성된 도시. 출퇴근길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의 작업복을 입은 남성들이 거대한 물결처럼 쏟아지는 섬. 엔지니어, 직영정규직, 하청과 협력업체 직원, 급할 때 불러다 쓰는 ‘물량팀’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하청업체에 자신의 숙련도나 특수한 기술을 내세우며 임금 조건 등을 협상할 수 있는 베테랑 노동자(저자는 이런 노동자들을 야구의 저니맨과 같다고 묘사한다), 그리고 납품업체와 종사자들까지 거제와 인근 지역 인구의 3분의 2가량이 조선산업을 통해 먹고산다. 단일 업종 산업도시에서는 외부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이를테면 작업복. 노동자들은 작업할 때 입는 작업복 말고 별도의 작업복이 따로 있다. 말끔하게 손질된 작업복은 결혼식이나 돌잔치를 갈 때도 입고 심지어 소개팅을 나갈 때도 입는다. 마주 앉은 여성은 남자에게 “직영이세요?”(95면)라고 서슴없이 묻는다. 동일한 야드에서 일하며 같은 작업복을 입어도 조선소 남자들은 다 다르다. 남자들이 다르니 그에 딸린 가족들도 다를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이를 “조선소의 카스트”로 설명한다. “비슷비슷한 벌이로 소비 생활을 이어가던 중산층 노동계급 가족은 수적으로 그 두 배 이상으로 추정되는 하청 노동자들과 한편으로는 현장에서의 위세로, 다른 한편으로는 중소 도시 내부의 좁은 사회에서 은연중에 발생하는 차별을 통해 구성되”(101면)고 있으니 결혼을 앞둔 거제 여성들이 이런 잔인한 심사를 하는 것이다. 힘들고 긴급한 일은 주로 하청노동자들이 맡는다. 도크 마지막 공정이 3일 이상 지연되어 내일 아침까지 공정을 마쳐야 한다. 저녁이 있는 삶을 원하는 직영 정규직을 야근으로 붙들어둘 방법이 없는 관리자는 하청 소장에게 연락한다. 밴드와 카카오톡을 통해 섭외된 물량팀 수백명으로 저녁 7시 조선소는 다시 현장의 열기로 달아오른다. 베테랑들과 하청 소장은 생산도면을 보고 집중적으로 처리할 업무를 나누고 노동자들은 다음 날 아침까지 3일치 공정을 해낸다. 이른바 돌관(돌파해 관철) 작업. 이런 노동자들일지라도 “직영이세요?”라고 묻는 여성의 마음을 ‘돌관’할 재간은 없을 것이다. 카스트는 이토록 무섭다.
‘말뫼의 눈물’이 거제의 눈물이 되고 있다. 더 싼 가격으로 같은 품질의 배를 만들어내는 동남아 기업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배만 만들던 시대에서 (바다 위에 만드는 생산시설이라고 이해되는) 해양플랜트 산업으로 조선산업이 복잡해지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은 해양플랜트 분야에서도 세계적 성과를 내고 있다고 자랑하지만 저자의 분석과 전망에 의하면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를 지속시킬 만한 성과는 아니다. 배를 만들던 ‘오래된 습관’으로 해양플랜트라는 ‘복잡한 세계’에 대응하기 어려운 것이다. 지속가능한 조선산업을 위해 책은 몇가지 선택지를 제시한다. 내재적 혁신과 함께 일본과 유럽의 경험을 타산지석 삼은 것들이다. 이즈음에서 거친 질문이 하나 생긴다.
“중공업 도시는 왜 계속되어야 하는가?”
문득 『토성의 고리』(Die Ringe des Saturn, 한국어 개정판 창비 2019)에서 제발트가 헤매던 황량하기 그지없는 던위치(Dunwich)가 떠오른 것을 용서해주기를. 중세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로 꼽히던 도시가 마지막으로 남겨놓은 잔해는 갈대밭과 회색빛 모래밭뿐. 수세기 동안 바다에 갉아먹힌 이 도시는 한때 “쉰곳이 넘는 교회와 수도원, 병원이 있었고, 조선소와 방비시설, 여든척이 넘는 어함과 상선을 거느린 선단, 열두개가 넘는 풍차가”(184면) 돌아가며 상업과 조선업으로 엄청난 이윤을 구가한 곳이었다. 사라진 도시는 제발트의 기록으로 어제의 일인 양 살아나지만 그것 역시 ‘기억 속에서 또렷할’ 뿐이다. 과거의 영화를 떠올릴수록 그가 경험하는 것은 “공허의 엄청난 흡인력”(189면)이었다.
거대한 공장들이 폐허로 변하고 기계를 돌리던 사람들이 먼지처럼 흩어지는 몰락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산업도시 거제의 미래 가능성에 대한 성찰은 이 거친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시작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