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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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연 鄭多娟

1993년 서울 출생. 201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simjung0409@naver.com

 

 

 

지금은 상영할 수 없습니다

 

 

밥을 먹습니다. 숟가락으로 밥과 국만 뜹니다. 가슴을 두드리거나 눈물을 담지 않습니다.

 

촛농처럼 젓가락을 녹이지 않습니다. 두 손 사이로 끈적이며 흐르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양손을 뗍니다. 지금은 땀 흘리는 사람만 연기합니다. 흰 접시를 내려보다가 멍하니 함부로 이목구비를 쏟지 않습니다. 차분하게 검은 포도알을 씹어 먹습니다. 포도의 껍질은 검은빛일수록 당도가 우수합니다. 이빨로 톡 터뜨리면 잘 터집니다. 한쪽 접시에 쌓여가는 무수한 껍질들. 검을수록 당도가 우수하다. 곡해하지 않습니다.

 

티브이를 켜면 눈동자가 꺼집니다. 자막이 흘러갑니다. 빠르게 빠르게 자막을 따라 읽다보면 분명 소리를 냈는데 자막은 교체되고, 삭제되고, 없어지고 더 빨리 외쳐야 할 것 같은데 전부 다 휩쓸려가버려.

 

꺼진 화면의 정지. 기포처럼 다시 떠오르는 얼굴.

 

열개의 손가락. 온몸의 물을 토해내지 않고 다 잠가버렸는데, 또다시 흰 접시 앞입니다. 접시에는 음식이라 불리는 것이 담깁니다. 유리잔 안의 물은 파도가 아닙니다. 침묵과 비명은 다릅니다. 비명과 침묵을 혼동하지 않습니다.

 

파손주의

 

방은 집에 담깁니다. 집과 집은 한꺼번에 무너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같이 무너졌습니까. 목소리에 쩍쩍 금이 갔습니까. 식탁이 산산조각 났습니까. 따뜻한 김 속에 얼굴을 넣고,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면서 내가 먹은 포도알의 개수를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 오늘의 자막을 모르는 사람. 찬물만 벌컥벌컥 마시고 쿵쿵 가슴을 치고, 유리창을 봤는데 새들이 다 피해 갔어. 어떻게 피했을까. 이젠 정말 다 분간이 돼.

 

검게 물든 이빨로 바닥에 엎어져볼까. 멀쩡하게 세수를 하고,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과 어깨를 치며 걸어볼까. 문질러도 흐릿해지지 않는 얼굴을 하고서

 

울 마음이 없어서 웃는 사람.

 

 

 

가정

 

 

소파는 크림색이 어때? 때가 덜 타는 검정이 나을까. 티브이는 몇 인치를 사는 것이 좋을까.

너와 나 단둘만 볼 것이라면 가장 작은 것이어도 상관없지만.

 

더 넓고 깨끗한 세계가 보고 싶어질 수 있으니까. 바탕화면 같은 초원, 자글자글 잠수하는 은빛꼬리 물고기, 소금 사막. 지금은 없는, 어쩌면 생길 수도 있는 아이에게 그런 것을 보여주고 싶진 않을까. 선명하게

 

확신할 수 있니. 너는 잠귀가 어두워서, 네가 잠잘 때 내는 소리가 얼마나 큰지 모르지. 나는 뒤척이니까. 서걱이는 이불, 스며드는 가습기 연기에도 잘 깨니까. 말한 적 있나. 윗집 사람은 새벽 두시만 되면 변기물을 계속 내려. 그 소리가 끝도 없이 내 입속으로 빨려와. 생각해본 적 있어? 머리 위에 있는 것이 터질 듯 부풀어오른 배수관이라는 거. 폭식한 사람의 위처럼, 쏟아질 것 같은데. 나는 있지. 가끔 네 숨소리도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어.

 

그러니까 아주 커다란 침대를 사자. 서로의 윤곽이 마음껏 흘러갈 수 있도록. 빛이 새어들지 않는 암막 커튼을 치고 너와 나의 손으로 두꺼운 벽을 만들자. 새하얀 페인트칠, 다 덮어도 될까. 그래도 될까? 얼룩 한점 없는 벽지, 속을 파고드는 곰팡이, 명료하게 구분되는 네 옷과 내 옷. 한번도 헷갈린 적 없다.

 

집이 자랄 수 있을까. 너는 나의 배에서 한 아이를 발견하고, 그 아이는 너와 내가 낳은 아이여야만 하고, 네 성을 가져야만 하는데. 나는 자꾸 너의 어깨 너머로 열린 문을 보지. 내가 낳지도 않은 아이를 상상하고, 무수히 사라진 너와 내가 될 수도 있었던 사람들을 생각해. 들어오는 사람이 없다. 창 너머 투명이 많다.

 

셀 수 없는데, 내 손을 잡고 있는 건 너뿐이지. 식탁은 4인용이 좋겠어. 각 방에는 각자가 좋아하는 그림을 걸자. 의자에 올라가 못을 박는데 도무지 벽에 심어지지 않는다. 탕, 탕 균형을 잃었다가 회복한다.

 

그림이었다.

 

사람이 심은 건물이 건물을 뚫고 자라는,

 

벽이 줄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