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시
신해욱 申骸燠
1974년 강원 춘천 출생. 199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간결한 배치』 『생물성』 『syzygy』 『무족영원』 등이 있음.
행잉 게임
우리는 하나씩 고리를 만들어
목에 걸어보기로 했다.
저 봐. 우리는 가까스로
우리는 푹신한 풀밭에 주저앉아
가만히 있다.
끈이 있다. 가만히 있다.
가만히 우리는. 어떤 볕을 쬐고. 어떤 바람을 쐬고. 평일이 있다. 평일이 있다. 뱀은 없지. 아무도 모를 거야. 우리는 끈을 주워. 나들이를 나온 듯이. 나른한 사색에 잠긴 듯이. 다 있다. 나무가 있다. 풀이 있다. 썸씽이 있다.
썸씽이 있다. 감쪽같이. 우리는 하나씩 고리를 만들어
저 봐. 저 나무야.
괜찮다. 목이 졸리는 건 아니야. 그런 건 아니다. 우리는 갱생을 다짐하고. 생김새를 더듬으며. 생김생김을 뒤섞으며. 환한 낯으로. 이렇게 환한 낯으로. 매달림을 모의하는 듯이. 서로의 목을 내맡기려는 듯이
고리를 만들면서. 볕을 쬐었을 거야. 평일이 있다. 평일이 있다. 식목일이 있다. 우리는 눈을 뜨고. 가지가 휜다. 저 나무야. 저 봐. 한눈을 팔면 마가 낀대. 해가 진다. 차츰차츰 거리를 좁혀오는 나무. 나무로서 저 나무가 아닌 나무. 살아 있는 나무. 저 봐.
높다. 아주 높이
걸린 것이 없는 갈고리가 반짝반짝 흔들리고
모르는 슬로건이 휘날리고
우리는 모르는 풀밭에 모여 앉아. 어떤 볕을 쬐고. 어떤 바람을 쐬고. 우리가 모르는 또한 어떤 세계를 굽어살피듯이. 저 봐. 나무는 사람과 어울린다. 사물은 그림자와 어울린다. 우리는 하나씩
하나씩 고리를 만들면서
저 봐. 우리는 그르친 것일까. 탄로가 난 것일까.
끄덕끄덕 수긍을 하는 것일까. 환희에 찬 것일까.
저 나무야. 저 나무를 좀 봐.
귀부인과 할머니
“형님!” 올케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서오릉이었다.
서오릉은 멀었는데. 올케가 있었다. 건널목 건너에서. 올케는 손을 들고
형님. 입장료는 천원이야.
형님. 장희빈이 묻혀 있어. 사약을 받았대. 사약은 쓰대. 봉분의 잔디는 축축하다.
건널목 건너에서. 올케는 원피스를 입고. 치맛자락이 펄럭였다. 올케의 짝은 무엇일까. “올케!” 나는 손을 흔들었다.
장갑을 낀 줄 알았는데. 할머니의 손이었다. 저요. 나는 할머니의 손을 들고. 풀독이 오른 할머니의 손을 들고
말이 아니었다. 서오릉이었다.
서오릉은 멀다. 전국은 맑고
어디는 비. 때때로 비. 북북서로 가면 된다. 올케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