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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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金龍澤

1948년 전북 임실 출생. 1982년 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로』(공저)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섬진강』 『맑은 날』 『누이야 날이 저문다』 『꽃산 가는 길』 『강 같은 세월』 『그 여자네 집』 『나무』 『그래서 당신』 『수양버들』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 『울고 들어온 너에게』 등이 있음. yt1948@hanmail.net

 

 

 

서정시

 

 

열네살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하얀 나무기둥을 세우고 올려다보았다.

나는 강에 있었다.

우리 집이 되었다.

어머니 아버지, 여섯 남매가 살았다.

마루 밑에 들여놓은 고무신에도 눈이 쌓였다.

아버지는 큰방 아랫목에서

숨을 거두어가셨다 큰아버지께서 규팔이가 가네,

규팔이가 가네, 크게 우셨다.

시집온 아내가 이웃집 샘물을 길어다가 연기 나는 부엌에서 밥을 지었다.

두 아이가 마루를 쿵쿵 울리며 뛰어다녔다.

일흔두살 때 순서에 따라 차례차례 집이 헐렸다.

목재들이 차에 실려 고향을 떠나갔다.

빈 집터에 바람이 불고 나서 달빛이 가득하였다.

어느날 목재들이 차에 실려 귀향했다.

지게에 주춧돌을 짊어지고 강가에서 집으로 오는 아버지를 보았다.

기둥이 세워졌다.

내가 바짝 서서 기둥을 올려다보았다.

밑동이 썩은 기둥과 추녀, 서까래와 중방들이

수리되고 다듬어져 순서와 차례를 지켜 차근차근 맞추어졌다.

그때에,

튕긴 까만 먹줄을 따라 모든 선(線)들이 이어져 집이 옛날로 섰다.

흙을 얹고 기와가 이어졌다.

어머님께 기와가 이어진 집 사진을 보여드렸다.

나도 저 속에서 죽고 싶다고 하셨다.

첫서리 지나 처마 끝 기왓장 난간 주름에 싸락눈들이 굴러 모여 희다.

오늘은 큰 구름이 달을 두고

지붕 위를 지나갔다.

 

 

 

꽃밭

 

 

해 뜨기 직전에 앞산 머리에 층층으로 구름 네덩이가 검게 떠 있다가 가네요.

무엇이 탔는지, 구름이 덤벙덤벙 떠가면서 까만 부스러기가 떨어졌습니다.

새들이 부스러기들이 땅에 닿기 전에 낚아채 가려고

나무 꼭대기에서 돌멩이들처럼 날개를 접고 땅을 향해 떨어집니다.

줍고 보니, 마른 비 가루들이었습니다.

문득, 직전이라는 말이 앞산에서 해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날거나 타거나 죽거나 헤어지거나 떠나가거나

무엇이든 결과가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게 직전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직후라는 말을 어디다가 쓸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출타하면서 남쪽 마당이 있는 큰집에 널어놓은 이불 빨래를

한번 뒤집어 널라고 했습니다.

봄 빨래는, 겨울 빨래입니다. 사흘째 부는 봄바람 속입니다.

바람도 불고 엉뚱하게도 날씨가 냉랭해서 새 이파리들이 냉해로 샛노랗게 질렸습니다.

타임을 잘못 골라, 어제 그제 사다 심은 풀꽃들에게 물도 줘야 합니다.

어린 꽃들이 죽을 것처럼 시든 어깨를 축 늘어뜨리거나, 저런 젠장 나 죽것다고 고개를 꺾었습니다.

물에 목이 차서 죽거나, 아니면 목이 말라서 죽을 꽃이 생길 것 같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물을 준다고는 하지만,

물이 비가 아닌 바에야 골고루 간다는 약속은 안 합니다.

앞산에서 먼저, 바람이 일어납니다.

그렇잖아도 서로서로 거리가 먼 사람들이 사회적인 거리를 두고 있으니,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두 손가락 끝 간격보다 간격이 서로 안 보일 때까지

더 멀어질까 그게 나는 크게 두렵습니다. 외면은 동물의 근성이니까요.

인류의 새 ‘교정자’로 등장했다는 바이러스에게

눈부신 인류의 문명이 이렇게 손 못 쓰고 허둥대다니, 그러나 웃지는 못하겠어요.

어제가 너무 멀리 가버렸지요.

철학은 넘치는데, 수학이 모자란 탓이지요.

나는 바람 부는 나무에게 내 마음을 주어버리기도 합니다.

나무들은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도 바람을 타고 그 자리를 찾아 돌아와 옷을 털고 서니까요.

그 나무 위 까치집도 그걸 알아서

이 바람에도 쇠 없이 집 지은 나뭇가지 하나 엇나가지 않습니다.

참새들만이 집 지을 새 풀잎 물고 날다가 놓칩니다.

작은 새들일수록 생각과 판단과 결행이 동시에 일어나다보니,

나도, 몰래 말이 나와 입에 문 것들을 놓칩니다.

새들도 사람들처럼 아직 입의 진화가 덜 되었습니다.

어쩔 때, 직전과 달리 직후는 계속된다는 것을 잊지요.

그래도 바람을 이용할 줄 알아서, 재빠르게 바람결 사이 빈 데를 찾아 지나갑니다.

그런데, 그거 아시지요. 참새들은 새로 돋은 푸른 나뭇잎을 집 지을 자재로 쓰고

폐비닐 조각을 쓰기도 합니다.

다 계획이 있지요.

집을 지으면서 죽기 살기로 심하다 싶게 다투기도 합니다.

죽을 때까지 오손도손 같이 살려고 집을 짓다가

딴 방 차릴 수도 있는 것이 집짓기잖아요.

처마 밑을 나온 참새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전쟁 게임 속의 신형 스텔스 전투기들처럼 자유자재로 공중전을 벌이거든요.

그래도 화기가 애애해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노동에는 상의가 필요하거든요.

벌써 해가 강가까지 갔네요.

나에게는 저 하루가 늘 벌써지요.

어제가 이렇게 소용없어지면, 내일까지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이불솜으로 냉기와 습기가 찾아들기 전에 빨래를 걷어

내년 봄까지 올봄 햇살을 고이 접어 개서 쌓아두어야 합니다.

강가에 느티나무가 새잎을 가득 피워내며 나더러 아버지 어디 가셨냐고 묻습니다.

1984년에 돌아가셨으니까, 일제 36년하고 그 햇수가 같은데, 지금도 해마다

잊지 않고 어디 가셨냐고 묻습니다.

내년에는 나도 아버지가 어디 가셨는지, 대답을 공부해둘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