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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엘리자베스 키스 외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올드 코리아』, 책과함께 2020

공감의 시선, 서구 여성이 바라본 오리엔탈리즘?

 

 

안현정 安炫貞

미술평론가, 성균관대박물관 학예사 artstory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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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 1887~1956)와 엘스펫 로버트슨 스콧(Elspet K. Robertson Scott) 자매의 저서 『올드 코리아』(Old Korea, 1946)가 원서와 더불어 완전한 복원판으로 2020년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실제 이 책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소장하고 싶은 욕구’를 갖게 만든다. 4만 8천원(합본)이 아깝지 않은 소장본으로서의 가치는 책의 외면과 새롭게 발굴한 키스 작품의 추가 구성, 추정이긴 하지만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이순신 장군 초상화가 실렸다는 점에서 복원판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그럼에도 이 책은 토대연구로서의 해석 가능성을 남겨두기 위해 특별한 논평이나 미학적·미술사학적 평가를 달지 않았다. 본 서평에서는 복원판이 지닌 가치와 키스 작품에 담긴 서구적 오리엔탈리즘을 오늘의 시선 속에서 재음미해보고자 한다.

먼저 엘리자베스 키스를 발굴한 역자 송영달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출판사 ‘책과함께’는 그의 열정이 없었다면 우리가 키스 자매의 존재도, 서구인이 바라본 우리의 과거도 접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책 후면에 담긴 ‘Editor’s Letter’에는 세계적인 명성에 비해 한국에서 알려지지 않은 그림을 발굴하고 알린 이가 바로 송영달 선생이라며, 미국에서 대학교수로 살던 그가 고서점에서 키스의 작품을 발견한 뒤 완전히 바뀐 삶을 살았다고 고백해왔음을 전한다. 도대체 무엇이 고국을 떠나 있던 역자로 하여금 잊혀진 조국의 이미지에 열광하게 했을까. 행정학 박사인 역자는 미국 내 디아스포라로서의 정체성 속에서 거꾸로 ‘선조들의 타자적 기록’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 그는 책과함께 류종필 대표와 함께 2006년 이 책의 첫 판본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을, 2012년 『키스, 동양의 창을 열다』(Eastern Windows, 1928)를 펴냈다. 그는 『키스, 동양의 창을 열다』의 해제 「엘리자베스 키스의 삶과 그림: 한국을 중심으로」에서 일반에 알려지지 않은 키스의 행적을 기록함으로써 작품 해석의 토대를 마련하는데, 이 안에는 역사적·미술사적 평가보다 키스 자매를 향한 애정 어린 시선이 듬뿍 담겨 있다.

작가에 관한 전문가의 해제는 이듬해 정영목 교수가 낸 『조선을 찾은 서양의 세 여인』(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3)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교수는 간호선교사, 부유한 콜렉터, 화가로 활동하던 세 여인을 기독교, 서구 자본주의, 예술가의 관점에서 분석함으로써 이들을 서구의 스테레오타입과 기독교 정신으로 무장한 오리엔탈리즘 안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키스가 서양인 최초로 한국에서 개인전을 개최(1921년과 1934년)한 화가라는 점, 1915년부터 다양한 아시아 국가를 탐험하면서도 1919년부터 1939년까지 한국을 수차례 방문하여 이 땅의 사람들을 꾸밈없이 형상화했다는 점은 변치 않는 사실이다. 애정을 담든 학문을 담든 키스 자매를 둘러싼 제국주의 시대의 사회적·역사적 현실은 일제강점기를 살아낸 우리 조상들을 바라보는 ‘응시(gaze)의 창’으로 기능하기에 가치판단 여부를 떠나 ‘기록 발굴 그 자체’만으로도 큰 수확이라 할 수 있다.

키스의 작품들은 기법적인 면을 보면 초창기엔 주로 수채화로 그렸지만, 대부분은 출판계의 대부 와따나베 쇼오자부로오(渡邊莊三郎)의 권유를 받아 일본식 우끼요에(다색 목판화)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책의 완역판 첫 그림으로 등장하는 「엘리자베스 키스의 초상화」(이또오 신스이, 1922) 역시 일본식 목판화로 기록된 와따나베 출판사의 보관본이다. 이는 키스의 언니인 엘스펫이 남편과 1915년 일본으로 이주하면서 출판사를 운영한 잡지 편집인이라는 점과 연계돼 있을 것이다. 실제 이 책에서 그림은 키스가 그리고 본문 글은 엘스펫이 썼다. 키스는 서양과는 다른 동양의 독특하고 신비로운 색채와 미감에 매료됐고, 1919년 반년가량을 한국에 머무른 엘스펫도 식민지로 핍박받고 있지만 작고 아름다운 국토에 감긴 수려한 자연과 한국인의 생활상에 담긴 정신적·문화적 가치에 감화되었다. 특히 키스는 자신의 이름을 ‘기덕(奇德)’이라고 지을 만큼 한국에 애정이 많았는데, 그가 그린 인물 이미지들은 일상의 분주함을 그린 풍속화류와 결혼식 등의 전통 풍속 그리고 어린이들의 일상에 관한 것 등이었다. 이는 계몽기 이후 서구에 의해 그려진 타자화되고 은폐된 은둔의 여성상 혹은 신체를 노출한 전근대적 야만을 그린 관음증적 오리엔탈리즘과는 거리를 둔 인간주의적 공감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키스의 작품에는 마치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와 같은 측은함의 정서가 배어 있다. 키스가 활동한 1920~30년대는 이미 서구화된 일상이 전통 요소 이상으로 확산된 때였다. 그러나 그가 그린 아름다운 전통 한국의 이미지는 이국적이되 비참하지 않은 ‘고귀한 야만’(noble savage) 같은 서구 제국주의의 인류학적 키워드로도 해석 가능하다. 역자가 키스를 ‘인류학자 같은 화가’(2012년 판)라고 평한 것처럼, 키스는 한국 여성을 자신과 구분되는 낯선 타자로 바라보고 “(그들을) 따뜻하고 공감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해하고자 한다”(원서 서문, 1946)라고 서술한다. 당신이 바라보는 키스의 그림은 어떠한가. 아름다움으로 점철된 우리의 과거인가, 아니면 서구인의 측은함이 빚어낸 타자적 오리엔탈리즘인가. 평가는 책을 접한 독자들의 몫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