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올해 창비신인평론상에는 24편이 투고됐다. 예년에 비해 응모작 수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텍스트를 치밀하게 읽고 자신만의 생각을 펼쳐 보이는 열기는 뜨거웠고 문장 하나하나에 힘을 실을 줄 아는 글은 많았다. 그럼에도 두 심사자가 본심작을 합의하는 과정은 수월했는데 두가지 기준 때문에 그러하였다. 우선 비평도 일종의 글쓰기이므로 정확하고 깔끔한 글을 쓰는 노력이 부족한 글은 배제했다. 생각의 단초들은 매력적이나 이를 잘 옮겨내지 못한 글이 적지 않았다. 둘째로 자기주장은 상당히 강하나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가 허술한 경우도 많았다. 이 경우가 인상적이게도 다수의 응모작에서 발견되는 특징 중 하나였다. 자신의 관점이라는 것이 기존의 관점 내지 표준화된 것들과 어떻게 다르고 또 어떤 문제의식을 깊이 천착하고 있는지 명료하게 서술하려는 시도가 적은 것이 아쉬웠다.
본심에 오른 응모작은 여섯편이었다. 「소년은 다정한 곳으로 추락한다」는 서효인의 첫 시집부터 근작까지의 시세계를 힘 있게 그려냈다. 서효인 시에서 발견되는 전투성과 역사성을 어떤 가치들을 수호하려는 시적 투쟁의 기록으로 읽어내는 과정이 시원시원했다. 하지만 시인의 시세계를 나열하면서 한편으로 거기에서 일종의 ‘사랑’으로 귀결되는 서사를 발견하려는 시도는 글의 장점을 누그러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재현과 상상의 맹점지대, 편혜영의 인물들이 살아가는 법」은 편혜영 소설의 형식적 특징을 섬세하게 포착한 글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무언가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듯한 서사의 아이러니를 읽어내며, 그러한 형식적 특징을 바탕으로 편혜영의 소설세계에서 발생하고 있던 변화지점을 드러내는 작업은 흥미로웠지만 아쉽게도 딱 거기에 멈춰 있었다. 또한 분석하고 있는 작품이 거의 십여년 전 발표작에 그친 점도 문제적이었다. 「분열자의 산책 혹은 일의적 시세계」는 최근 여성시의 몇몇 새로움과 가능성에 대한 글이었다. 응모자는 시의 문자로부터 목소리를 길어 올려 경청하는 능력이 빼어났다. 작은 이미지에 응축된 무언가를 말로 전환하여 펼쳐 보이는 작업을 잘 수행했다. 하지만 개별적 목소리들을 그러모아 그것들이 상대하는 세계가 무엇이었는가를 해명하는 부분이 미흡해 다소 아쉬웠다. 「호러 인피니티를 대면하는 이야기들의 자세」는 ‘다중우주’라는 개념을 통해 손보미의 소설세계를 분석하는 글이었다. 패기 있게 자신만의 해석을 가하는 가운데 그 해석을 따라가게 하는 힘 또한 지녔지만, 자신이 기댄 이론과 개념에 대해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는 부분이 걸렸다.
「다시 쓰는 성장 소설, 그 부정의 힘」은 은희경 최은영 박민정의 소설을 ‘성장소설’의 관점에서 읽어냈다. 별다른 수사 없이 정공법으로 쓰인 비평문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주장이 강하기보다는 분석과 논증이 꼼꼼했고 작품의 실감을 드러내기 위해 애쓴 흔적도 역력했다. 하지만 무난하게 질문하고 답을 구한 글이라는 인상 역시 적지 않았는데 처음부터 자신이 하려는 말을 정해놓고 그것을 위한 길만 안전하게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박상영의 소설을 다룬 「이차원의 사랑법」은 상당히 도전적이었다. 박상영 소설 속 냉소와 농담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읽어내며 저 ‘냉소와 농담’을 비평적 활기로 전유하는 듯한 글쓰기가 꽤 매력적이었다. 자신의 생각을 속도감 있고 강렬하게 표현하는 능력 또한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이 글의 몇몇 해석과 주장, 가령 ‘권위와 무게’라는 것을 일순간 소거하는 ‘수직적 우회’의 전략에는 충분히 공감하기 힘들었다.
고심 끝에 심사위원들은 올해 창비신인평론상의 수상작을 내지 않기로 합의했다. 좋은 글을 보내주신 응모자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송종원 한기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