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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정우신 鄭佑信
1984년 인천 출생. 201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비금속 소년』 등이 있음.
bigssin@hanmail.net
일용직 토끼
아지랑이가 귀를 쫑긋 세우곤 태양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을린 털을 보여주거나 검은 발바닥을 보여줘도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때때로 발생하는 산불이 나의 바뀐 눈동자를 테스트하는 중이란 걸 왜 모를까.
*
사랑하는 사람의 눈동자에서 정말 셀로판지 구겨지는 소리*를 들었어?
사랑을 해보긴 한 거고?
걸레를 삶는 일보단 아무래도 양털을 밀어주는 편이 낫겠어.
샤워를 해도 톱밥은 어딘가 남아 있고.
나무의 기본이 뭔지 몰라서 여기까지 왔어요. 그렇다고 나무의 기분을 알고 싶은 건 아니고.
이러나저러나 구원은 오지 않으니까. 아니 이미 낡은 것이니까.
전통은 어디까지?
섞어찌개 먹으며 토끼털 떠다니는 소주 마신다.
질문을 던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간단합니다.
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미래가 된 미래처럼 나는 하기 싫어요.
하지만 그게 편해요.
반항해요? 진지해요? 왜 돈 없어도 돈 없는 일 해요?
뭔가 있어 보이잖아요. Show me the money.
나는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 애쓰는 편.
같이 좀 씁시다.
sket. sket. 힙합은 되고 시는 안 돼요.
아니. 시는 다 할 수 있어요. marijuana.
박하사탕 같은 안개를 물고 우리 키스해요.
marijuana. 내가 판 돌반지가 왜 저 젊은이의 목걸이에서 빛나는가.
세상이 그런 거지 뭐. 아무것도 아닌 거.
아무것도 아니었던 일이 제일 커다란 일이 되는 거.
여러분을 막는 법은 무엇인가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아요?
늴리리맘보가 당신의 건강한 삶을 응원합니다!
나는 LNG 충전소에서 담배를 물고.
늴리리야 늴리리야.
불상처럼.
자신의 내부에는 에너지가 돌지 않도록 해요.
기분을 미루세요. 사랑은 나중에 챙기시고.
*
여러분, 흰빛을 본 적 있나요?
보이지 않는 곳까지. 이끌려간 적 있을까요.
그 흰빛에 누워. 겨울 동안 내리는 눈발을 바라보면서.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과 부딪쳐 녹아내리는 것들을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모닥불 주변으로 모여드는 사람들.
죽은 토끼의 소리가 들려오는 겨울이 있습니다.
—
* 최승자 시인의 구절.
장미의 이름
미도는 명랑하다. 알약을 수집했다. 언제라도 끝낼 수 있도록 가방에 약을 항상 지니고 다녔다. 미도는 태양을 삼킨 나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수도원의 규율을 알려주려고 하면 끝을 보고 온 사람의 눈빛을 했다. 지난 계절을 붙들고 있는 거미처럼 미도는 자주 방을 비웠다. 텅 빈 거미줄을 차지해보는 나비를 지켜보곤 한없이 웃었다. 미도는 어느 문으로 들어갔을까. 꽃잎 태우는 냄새가 나무 바닥으로 물들고 있었다. 미도는 아무도 없는 저수지를 좋아했다. 물속으로 스며든 태양이 장미가 되어 걸어 나와도, 피다 만 장미를 사 들고 오랫동안 들판에 누워 있어도, 미도는 오지 않았다. 물결과 그림자가 섞이면 알 수 없는 시간이 왔다. 언덕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것이 장미의 형상인지 미도의 장난인지 모른다. 주머니에 조약돌을 가득 담은 채 대기를 감싸고 있는 미도, 아무도 미도의 피가 수도원의 울타리에서 피어나고 있는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