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조시현 曺始玄

1992년 서울 출생.

2018년 『실천문학』 신인상 소설 부문, 2019년 『현대시』 신인상으로 등단.

melong4421@naver.com

 

 

 

 

 

박사는 어딜 가나 배양접시를 지참한다 접시 안에는 새로운 차원의 문을 열 수 있는 곰팡이가 자라고 있다 일정 이상의 크기가 되면 현실에 구멍을 낼 수 있는 것으로 박사의 마음에서 발견된 것이다 군집이 충분히 커질 때까지 박사는 기다린다 아직 멀었다 천장이 낮으면 모든 것이 옆으로만 자라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자꾸 뚱뚱해지는군 고개를 젖힌 박사가 도넛을 씹으며 생각한다 아직 어렸을 때 박사의 어머니는 천장이 높은 집에서 자라야 마음이 넓은 사람이 된다고 말한 적 있다 박사는 키가 크지 않고 마음에서는 곰팡이가 자란다

 

어둡고 축축한 곳에서 자라는 곰팡이를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성기가 떠오르고 성기가 떠오를 때마다 문이 연상되는 것을 멈출 수 없다 그럴 때마다 박사는 거기를 누군가가 열고 나올 것 같은 공포심에 사로잡힌다 어릴 적 어머니는 머리맡에 앉아 밤마다 벽장문을 열고 나오는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주었다 문이 조금이라도 열려 있으면 안심할 수 없었다 박사는 다리 사이에 힘을 주느라 불면증에 걸렸다 페니실린은 곰팡이로 만든다 문은 문을 해결할 수 있다 먼저 열고 나갈 것이다

 

아직 십대였을 때의 어느 밤 박사는 이불을 덮어쓰고 엎드렸다 막 문이 열리려는 순간이었고 공포심을 극복하기 직전이었다 어머니가 갑자기 문을 열었고 천장을 향해 높이 들린 채 경련하는 박사의 궁둥이를 보았다 박사는 쫓겨났다 박사는 추위에 떨며 창문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가족은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아 과일을 먹으며 낄낄거렸다 얘야 이제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거지? 너는 착한 애잖니 천장이 낮아서 그랬니? 왜 그랬는지 말을 해봐라……

 

곰팡이가 자라고 있다

 

주치의는 건조하고 통풍이 잘되는 마음을 가지라고 조언했다 이대로 가면 당신이 먼저 문이 되고 말 거예요 하지만 눈물 나는 밤이 많은 걸요 말하고 나니 또다시 눈물이 났다 대책 없이 문이 돼버리기 전에 박사는 사람들에게 연구를 알리기로 결심했다 저명인사들이 박사의 집으로 모여들었다 이게 바로 차원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세상으로 갈 수 있어요! 박사는 배양접시를 높이 들어올려 자신의 곰팡이를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누군가가 외쳤다 저런 걸 보이느니 이 차원에서 죽겠어요! 수치도 없군요!

 

박사는 눈에 힘을 주며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로 향했다 문은 닫는 즉시 열렸다 닫았다 열렸다 막 울음을 터트리려는 붉은 얼굴이 틈새로 드러났다 다시 닫았다 다시 열렸다 당혹스러움이 섞인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박사는 더 세게 닫았다 문은 아까와 같은 속도와 방향으로 다시 열렸다 사람들은 더 크게 웃었고 웃다 못해 서로의 몸을 때렸고 때리다 못해 눈물을 흘렸다 이게 바로 멸망이군! 세상이 습기로 가득했다 박사는 다시 한번 문을 닫았다 제발…… 그러나 결국 문은 열렸다 곰팡내가 났다 사람들은 계속 웃었다 닫을 수 없는 사람…… 닫을 수 없는 사람…… 천장이 높아 소리가 크게 울렸다 쾅 끼익 쾅 끼익 쾅 끼익 하하하하

 

박사가 오줌을 쌌다 그러자

 

코노 방구미와 고란노 스폰-사노 데꼬데 오오꾸리시마스

 

몸이

흩어지고 있었다

 

벌써

시작되고 있었다

 

 

 

유령버스

 

 

양산 쓰고 지나가는 기분으로 그렇게 지나갈 수는 없잖아

다리 사이로 유령이 새어나와

가끔 그랬다

 

이가 맞지 않는 창이 덜컹거린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랑을 몰라서

멈추지 않는다

 

그런데

나무는 언제 다 자랐다고 해야 하는 거야?

 

다 자랄 때까지

뭔가를 키워본 기억이 없고

 

자란다는 말이 어려웠다

 

빈 그릇 빈 서랍 빈 실내화

 

상한 우유도 하얗다

 

도착해본 곳만 지도가 되어서

늘 길을 잃은 것 같아

 

잘 자라려면 가끔 잘라내줘야 해

 

잘한다는 말은 더 어려웠다

 

정류장이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가 귀에 물을 부어 넣은 것처럼

천천히 자신의 부유물이 되는 기분

 

나를 창과 나눠 갖는다

다리 사이가 덜컹거린다

 

내릴 때마다 표정이 하나씩 사라졌다

 

자주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