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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옙스끼 『까라마조프 형제들』(전3권), 창비 2021

수수께끼 인간을 닮은 운명적인 소설, 그리고 소설의 운명

 

 

조혜경 趙惠卿

대구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apriori3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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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전세계를 강타한 지금 우리는 확진자의 동선에 민감하여 그에 주목하곤 한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한 인간의 삶의 흔적을 추적해야 한다면 무엇을 근거로 그 인생을 소환할 수 있을까?

18세의 어린 나이에 ‘인간이고 싶어서 인간이라는 수수께끼를 푸는 것’을 평생의 과업으로 설정한 진지한, 너무도 진지한 소년이 있었다. 그는 바로 2021년 탄생 200주년을 맞이한 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옙스끼(Fyodor Mikhailovich Dostoevsky, 1821~81)다. 훗날 그는 자신이 그 수수께끼를 풀었다고 생각하고 눈을 감았을까? 이 질문에 대한 작가의 답을 찾을 수는 없지만 그는 평생 자신이 던진 수수께끼를 풀고자 인간을 탐구했고, 오늘날 문학은 물론 철학, 심리학, 윤리학, 법학, 의학 등에서 인간을 거론할 때면 중요하게 언급하는 작가 중 한명이 되었다. 도스또옙스끼가 정답을 찾았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수수께끼를 푸는 과정에서 인간의 본성이 과연 무엇인가를 깊이있게 탐색했다는 점이다. 작가의 깨달음은 죽기 3년 전부터 기획해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최후의 소설 『까라마조프 형제들』(1880)에 담겨 있다. 작가는 이 마지막 소설에 자신의 이전 작품들에 등장하는 인물을 집약하여 다채롭게 펼쳐놓는다. 이런 의미에서 『까라마조프 형제들』은 작가가 던진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소설이며 그가 경험한 모든 인간 군상들의 집합소다. 작가는 인간을 이중적인 존재라 보고 이로 인해 고통받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기쁨을 맛보는 존재라 말한다. 이쯤 되면 인간에 대한 수수께끼를 둘러싼 작가의 답변 자체가 독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수수께끼로 다가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까라마조프 형제들』은 비정상적인 가족의 연대기다. 탐욕적이고 방탕한 아버지 표도르 까라마조프와 그를 닮아 다혈질인 장남 드미뜨리, 지적이며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 둘째 아들 이반, 수도사의 길을 걷고 있는 신실한 막내 알렉세이와 이반의 이론(‘신이 없다면 모든 것은 허용된다’)을 서투르게 모방하여 실행하는 서자 스메르쟈꼬프가 중심인물로 등장한다. 나머지 인물들도 그들의 주요한 속성을 변주하는 역할을 한다. 표도르와 드미뜨리, 이반과 스메르쟈꼬프, 조시마와 알렉세이, 이반과 악마 등이 중요한 짝패의 예들이다. 도스또옙스끼는 인간 본성을 세밀하게 보여주기 위해 극적인 사건과 이슈들을 소설의 주요한 지점에 배치하고 그에 대한 인물의 반응을 극적으로 펼쳐놓는다. 부친 살해, 죄와 벌, 심판, 선악, 구원의 문제, 신과 인간, ‘빵과 자유’의 문제 등이 바로 그것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었던 독자라면 이러한 쟁점들이 작가의 이전 소설들, 예를 들어 『지하에서 쓴 수기』 『죄와 벌』 『미성년』 『백치』 『악령』 등에서 다루어졌던 내용들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성중심주의와 합리주의에 대한 비판, 초인사상에 대한 문제 제기, 돈과 권력, 자유, 우연한 가족의 문제, 아버지와 아들 세대의 갈등, 무신론과 니힐리즘, 러시아 메시아니즘 등은 작가가 평생 천착했던 주제들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자신이 평생 고민해온 문제들을 까라마조프가의 서사를 통해 전개한다. 아버지 표도르를 통해 돈과 성에 대한 끝없는 욕망과 도덕적 타락의 문제를 다루며 장남 드미뜨리를 통해서는 죄와 구원, 용서, 둘째 아들 이반을 통해서는 무신론, 빵과 자유, 권력, 셋째 아들 알렉세이를 통해서는 진정한 믿음과 형제애, 서자인 스메르쟈꼬프를 통해서는 무신론의 문제를 제기한다. 도스또옙스끼는 부친 살해라는 비극적 상황을 두고 결국 모두가 모두에게 죄인이며 모두가 모두에게 한 형제라는 조시마 장상의 메시지를 전한다. 형제의 죄에 대해 죄인의 형제들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드미뜨리는 표도르 살해의 진범이 아니지만 기꺼이 유형을 갔고 스메르쟈꼬프에게 사상적인 영향을 준 이반은 정신적인 충격을 받고 괴로워했으며 스메르쟈꼬프는 자살한다. 이처럼 『까라마조프 형제들』은 한 가정의 서사를 통해 작가의 주요 사상의 정수인 인간 본성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파헤친 작가의 대표작 중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홍대화의 『까라마조프 형제들』 번역은 몇가지 점에서 눈길을 끈다. 첫째, 풍부하고 친절한 주석이다. 러시아 사회, 문화, 역사, 종교에 대해 문외한인 독자여도 주석을 통해 기본적인 배경지식을 얻을 수 있으며 이는 소설 읽기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기존 번역에서 담아내지 못한 정밀함이다. 예를 들어 기존에 대부분의 역서에서 조시마 ‘장로’로 번역되었던 것을 역자는 ‘장상’이라 번역했는데, 이는 러시아 정교가 가톨릭의 직분을 사용하고 있음을 잘 담아내고 있다.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러시아 정교에서도 ‘стáрец’(superior, 한국어로는 장상)라는 직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역서의 작품해설에서 도스또옙스끼의 집필 의도를 잘 반영하여 등장인물들의 구도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예를 들어 드미뜨리와 그루셴까, 이반과 대심문관, 스메르쟈꼬프와 악마 등을 함께 비교하며 분석하는데, 이는 앞에서 언급한 작가의 수수께끼를 푸는 하나의 유의미한 접근법이 될 수 있다.

비평가인 바흐찐(M. Bakhtin)이 지적하였듯이 도스또옙스끼는 소설에서 완성된 인간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의 작품에서 인간은 ‘최종적인 말’을 하지 않는 미완의 존재다. 『까라마조프 형제들』도 원래는 총 2부로 기획되었으나 작가는 1부만 집필하고 1881년 폐공기증으로 사망하여 미완의 소설이 되고 말았다. 도스또옙스끼의 모든 것을 집대성해놓은 듯한 『까라마조프 형제들』은 미완의 존재인 인간의 운명을 닮았다. 스스로 던진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수수께끼의 답을 구하는 도스또옙스끼의 파란만장한 42년간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여정은 200년이 흐른 지금의 독자들이 이어받아 이제 새롭게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