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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김언희 金彦姬
1953년 경남 진주 출생. 198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트렁크』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 『뜻밖의 대답』 『요즘 우울하십니까?』 『보고 싶은 오빠』 『GG』 등이 있음.
pitchblood@hanmail.net
녹취 A-22
범성애자요 나는
자보지도 않고 누군가를 정말로 안다고 할 순 없잖소
알도 살도 모르면서
그것들을 제하고도 사람이
사람일 수
있소?
중성화된 개나 고양이라면 모를까
100% 사람이기만 한 사람은 없소 뭔가가 섞여 있소
언제나 사람일 수도 없고
항상 같은 사람일
수도 없소
내가 사람일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하루 두시간이오
그밖의 시간에 내가 뭣인지는 나도 잘 모르오
아마도 내가 한 모든 극단적인 선택의 퇴적물일 거요
그 퇴적물 위에서 왱왱거리는
쉬파리거나
순간의 경험에 온전히 몰두할 수 있는 건, 투신 직후뿐이라오!
세계를 구토로 체험하는 자가 있고 세계를 구타로
체험하는 자도 있소 댁은
어떻소, 구토요?
구타요?
습득 형질은 유전되는 거요…… 내 아버지는 나를
재떨이로 애용했었소
이만한 세척제가 달리 없어서
이만한 탈취제가
안면을 세척하고 양심을 세척하고 밑을 세척하는 데 시만 한 게 없소
쓴다는 건 소름 끼치게 파렴치하고
낯 뜨거운 구석이 있다오
빙글빙글 돌면서 서로의 항문에 코를 들이대는
행색이랄까…… 더더욱 지랄 맞은 건
낭독회라오 시를
입으로
읽다니…… 오럴은 섹스가 아니라고 천명하지 않았소, 빌이!
온 세상이 유리방 아니오, 이미?
우린 너나없이 유리방 속의 매춘부들이오
양다리 사이에 그 무엇이
달렸건 간에
누구나 뭔가를 팔고
누구나 뭔가를
속이오
모두가 모두의 모든 것을 알고 있어서
모든 것을 용서하면서1
거울 위에서 발바닥을 맞대고 기는 파리와도 같이
무기 계약직
숨길 데가 없어서 매일매일 다이아몬드를 삼키던 유대인이 있었죠
아침마다 자신의 똥 속에서 다이아몬드를 찾아내
다시 삼키던 여자가
나에게도 매일매일 삼켜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다이아몬드라도 된다는 듯이
똥 속에서 헤집어 다시
삼켜야만 하는
것이
나는
내면의 보석을 지닌 사람입니다
—
- 영화 「존 버거의 사계」(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