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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김재형 『질병, 낙인』, 돌베개 2021

‘완치’의 허상과 박멸의 폭력을 넘어 한센인을 마주보기

 

 

김현철 金賢哲

지리학자, 토론토대 지리학과 박사수료 hchul.kim@mail.utoronto.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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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곳이 아직도 있어?’ 박사 논문으로 한센인마을을 연구하고 있다는 말에 가장 많이 돌아오던 대답 중 하나다. 많은 이들은 발전한 한국사회에 ‘아직도’ ‘그런 곳’이 있다는 것에 충격받아하며, 한센인마을을, 더 나아가 소록도를 없어져야 할 야만적 역사의 흔적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런 반응을 접할 때마다 나는 존재하는 공간의 삭제를 한국사회의 발전과 연관시키는 간극에서 오는 이질감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망설였다. 그들은 이 공간들을 하나의 ‘셀’(cell, 감방 및 감옥시스템의 규율이 배태된 기억장치)로 보고 이 셀들이 지역에서 쓱쓱 지워지면 한센인에게 가해졌던 배제와 폭력의 기억은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나 『질병, 낙인: 무균사회와 한센인의 강제격리』는 이 셀들이 사라진다고 한센병에 얽힌 낙인과 격리의 역사가 소거되지 않음을 풍부한 자료와 함께 풀어나간다. 저자는 일제시기부터 남한 역사를 관통하며 이어져온 한센인에 대한 통치를 정당화하는 기제로 ‘완치’를 언급한다. 한센병에 대한 근대적 의료기술 및 치료제가 개발되는 과정에서 의료 전문가 및 국가는 한센병 ‘완치’의 기준을 일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아니라 몸에 내재한, 혹은 내재해 있을지도 모를 잔균, 내성균 등에 맞추며 ‘나환자’를 정의해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존 한센병 진단 기록이 있으면 당시의 양성 여부와 관계없이 모두 ‘새로운’ 나환자에 포함되었으며, 언제 재발할지 모른다는 인식 속에서 이들은 지속적으로 조사·관리의 대상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한센병은 완치되지 않는다는 편견이 강화되고, 이는 한센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을 가로막아왔다. 저자는 이처럼 근대의료가 집요하게 ‘무균’이라는 ‘환상’을 ‘완치’로 인식했던 과정 속에서 한센인들에 대한 폭력이 그들을 ‘낫게 하고자’ 하는 국가와 의료진의 ‘선의’로 연결되었음을 설명한다.

저자는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낙인의 과정 역시 통찰한다. 그중에서도 당시 전국적으로 적용된 통계와 ‘사회조사’와 같은 방법론이 어떻게 한센병을 ‘사회 문제’로 정의하고, 한센인에 대한 지속적 격리 및 관리를 정당화해주었는지 설명한다. 환자 추적이 지역사회에서 되풀이되는 동안 ‘우리 동네 어디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문둥이’라는 환상은 지역민들에게 실재하는 공포가 되었고, 이는 지역에서 살아가는 한센병을 겪었던/겪는 사람들에게 지속적인 낙인과 추방을 강제하는 요인이 되었다. 즉 한센인을 향한 낙인과 배제, 폭력의 역사는 ‘전근대적 야만’이 아닌 지극히 근대적인 합리성과 그에 기반한 의료 및 사회조사를 통해 구축되어온 것이다.

더불어 책은 사회의 차별과 낙인이 한센인들의 이동과 밀집 과정에서 어떻게 지속적으로 재생산되어왔는지 보여준다. 식민지시기 강제격리법이 지정되면서 한센인들이 기존의 공동체에서 벗어나 환자등록을 하러 도시에 몰리게 되자 이들은 도시 문제 및 ‘부랑’의 문제와 맞물리게 된다. 광복 이후 국가는 병원에서 ‘정착마을’이라는 공간으로 이들을 ‘재배치’하는데 이 또한 한센인의 이동과 밀집이 어떻게 낙인을 재생산해왔는지 보여준다. 이러한 과정은 이들을 기존의 지역공동체에서 탈각시킬 뿐 아니라 도시의 문제적인 ‘부랑민’이 되게 했고, 이는 거리를 떠도는 ‘문둥이떼’가 우리의 지역을 ‘오염’시킨다는 공포와 혐오, 낙인을 재/생산해왔다.

이 책의 미덕은 이처럼 일제시기부터 광복 후 한센병에 얽힌 역사의 층위들을 찬찬히 풀어내면서, 한센인에 대한 폭력과 배제의 역사는 소록도 내부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논의한다는 데 있다. 저자는 이 문제를 소록도 내외를 관통하며 전유되었던 국제적·근대적 의료지식 및 합리성, 그리고 이를 기반해 형성되었던 한센병에 대한 사회적 담론, 법, 제도, 기관의 연관성하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한센병이 남한에서 ‘종료’되었다는 1992년의 선언과는 별개로 한센병을 박멸하기 위해 형성되었던 통치구조는 현재도 여타 질병과 장애를 지닌 몸들을 지역에서 밀어내는 논리와 더불어 끈질기게 살아남아 있다.

저자는 한센인에 대한 낙인과 폭력의 역사를 ‘과거’로 기술하는 것에서 나아가 현재 우리 사회에서 한센인 문제 및 역사화의 과정을 어떻게 성찰해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특히 한센인의 ‘역사화’ 과정에서 자칫 발생할 수 있는 망각 및 왜곡의 가능성을 성찰할 것을 요청한다. 한센인 피해에 대한 재판에서 일제의 폭력만을 부각시키며 민족주의적 관점을 과도하게 견지하거나, 특정 사건에서 개인이 피해를 당했던 사실 자체에만 집중하는 것은 자칫 ‘사건’의 배후에 존재하는 구조적인 측면에 대한 논의를 무화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완치된 주체’ 혹은 ‘피해자’라는, 시대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한센인의 정체성의 단면들과 더불어 그들의 삶을 어떻게 입체적으로 숙고하고 이야기해나가야 할 것인가?

저자도 주지했듯 ‘완치’ 후에도 가족들에 의해 ‘조용히’ 살해당했던 많은 여성들이 존재했다. 한센인마을 내의 경제적 차이도 컸고, 소록도와 마을에서 지도자급 한센인과 마을주민의 관계는 평등하지 않았다. 단종과 낙태는 의료훈련을 받았던 한센인들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소록도에서 누군가는 자유를 외쳤고, 위안과 가족을 얻었다. 한센인마을은 한센인뿐 아니라 질병과 다양한 굴곡을 지닌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현재 소록도는 한센인마을 주민들이 여생을 보내고 싶어하는 공동체적인 공간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한센인 관련 역사의 기념과 의미화에는 이처럼 적대와 애정, 동의와 강제로 단순히 판가름할 수 없는 모순적인 관계와 감정, 기억과 애착들이 구체적으로 한센인들의 공동체와 삶을 형성해오는 데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가 더불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그럴 때에 우리는 ‘완치’의 허상과 ‘박멸’의 폭력을 넘어 한센인을 마주보고, 한센인, 한센병의 피해와 낙인 이후의 이야기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