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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나리타 지히로 『오키나와 반환과 동아시아 냉전체제』, 소명출판 2022

‘해방’ 이후 오끼나와를 둘러싼 차이와 어긋남의 기원

 

 

곽형덕

郭炯德/명지대 일어일문학과 교수 kwakhdmyongj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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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대상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사성만이 아니라 차이와 어긋남을 균형있게 보는 시야가 필요하다. 하지만 국내에서의 오끼나와 관련 논의는 차이와 어긋남보다는 유사성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한국과 오끼나와가 거쳐온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동아시아 연대’를 주장하는 언설에 잘 드러나 있다. 하지만 일본제국의 패전 전후, 한국과 오끼나와가 거쳐왔던 열전과 냉전의 양상에는 닮은 면보다 다른 면이 더 많았다. 이는 근대 이후 ‘우치난추’(오끼나와인)와 조선인/한국인의 관계가 같은 제국주의의 ‘피해자’라는 단순한 카테고리로만 묶일 수 없음을 말해준다. 두 민족이 시기와 역할에 따라 서로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였고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였다는 ‘차이와 어긋남’을 살피는 것은 객관적인 상호인식을 바탕으로 한 동아시아 연대의 선결 과제라 할 수 있다.

나리따 치히로(成田千尋)의 『오키나와 반환과 동아시아 냉전체제: 류큐/오키나와의 귀속과 기지 문제의 변용』(沖繩返還と東アジア冷戰體制: 琉球/沖繩の歸屬,基地問題の變容, 2020)은 유사성의 이면에 비가시화된 국제질서의 여러 파동과 다양한 역학관계의 실체를 생생하게 펼쳐낸다. 이 책을 읽고 놀란 점은 ‘오끼나와 반환’의 역사적 의의를 관련 지역 전체의 자료와 아카이브를 섭렵해 해석해낸 점이다. 일본에서 이뤄지는 오끼나와 연구는 일본-미국-오끼나와 사이의 정치, 경제, 외교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관련 자료 또한 일본어, 영어의 범위를 크게 넘어서지 않는다. 저자의 문제의식이 태평양을 넘어 동아시아 전체로 향해 있음은 ‘한국어판 서문’의 “오키나와 기지가 냉전구조 유지를 위해 수행해 온 역할, 특히 한반도 분단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21면)를 검증하고자 한다는 포부에서도 확인된다. 저자는 미국과 일본은 물론 오끼나와 현지와 한국, 대만, 중국 등에서 수집한 자료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오끼나와 반환’이 당사자인 오끼나와와 미일 간의 안보체제만의 문제가 아니라, 냉전체제하에서 분단된 현실의 한국과 공산주의 중국과 대치하고 있던 대만에도 절실한 안보 문제였음을 구체적으로 밝힌다. 이 책의 독창성은 그것을 각국 간의 일대일 구도 혹은 국지적 관계를 넘어서 파악하고, 미국-일본-오끼나와-한국-대만 사이의 복잡한 역학관계를 명확히 한 점이라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한국 독자들에게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올 사실은 역시 1960년대 이후 한국정부가 오끼나와 민중의 자립을 저해하는 형태로 오끼나와의 군사기지화에 기여했다는 점일 것이다. 저자는 한국정부가 대만과 마찬가지로 ‘오끼나와 반환’을 동아시아 협력과 탈식민의 문제가 아닌 자국의 안보위기로서만 인식했음을 당시 신문기사와 사료 등으로 명확히 밝혀낸다. 정확히 그로 인한 결과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이리하여 오키나와의 많은 주민이 요구해 온, ‘기지 없는 평화로운 오키나와’는 실현되지 못한 채, 오히려 냉전체제를 유지하는 기능으로서 오키나와 반환이 실현”(394면)됐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그도 그럴 것이 ‘식민지’ 상태를 겪은 역사적 유사성을 지닌 한국이 오끼나와의 군사적 예속과 군사적 갈등구조 창출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음은 역사의 아이러니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책의 역자 임경화는 이를 두고 “한국의 현대사가 전후 오키나와와 관련해서 배태한 모순 중에 가장 뼈아픈 것은, 일본제국으로부터의 탈식민이라는 과제를 미국이 짜 놓은 냉전구조의 틀 속에서 수행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이 스스로의 안보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의 군사식민지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오키나와 주민들의 열망을 왜곡”(426면)했다고 평가한다. ‘피점령’의 체험을 공유했으나 해방 이후 동아시아 냉전체제의 한 축으로서 오끼나와 미군기지 문제에 개입한 한국의 모순을 명확히 표현한 문장이라 하겠다. 이는 한국/한국인이 오끼나와와의 관계에서 일제 말기의 양상처럼 피해자만은 아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볼 때 이 책은 우리에게 가해자로서의 한국/한국인 상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피식민이라는 역사적 유사성에만 천착해 한국과 오끼나와의 연대를 외치는 것이 피상적인 이유이다. 1950년대 오끼나와 지식인들은 우치난추의 가해자성을 통렬히 비판하며 ‘전후’를 시작했다. 이는 이들이 피점령 상태에서도 “오키나와로부터 출격해 간 미군기가 초래할 참화를 매우 구체적으로 상상”(오세종 『오키나와와 조선의 틈새에서』, 손지연 옮김, 소명출판 2019, 159면)했던 것에서 잘 드러난다. 전후 오끼나와문학에서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서의 오키나와인이라는 거울 마주보기는 중요한 모티프였다. 오오시로 타쯔히로(大城立裕)는 일본제국의 일원으로 다른 아시아 민족을 억압했던 오끼나와의 가해자성을 직시하는 작품을 여러편 썼고, 그 후배 세대에 속하는 마따요시 에이끼(又吉榮喜)나 메도루마 슌(目取眞俊)은 조선인 ‘위안부’와 군부를 소설에 등장시켜서 오끼나와전 당시 이들을 핍박하거나 살해했던 가해자로서의 오끼나와인 상과 마주했다. 하지만 1960년대 한국정부의 방침이 오끼나와인에게 불러올 참화를 한국인들이 과연 구체적으로 상상/공감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회의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것이 비단 과거에 끝난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상황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오키나와를 ‘우리 문제’로 끌어안는 자기성찰의 계기”(백영서 ‘추천사’, 14면)는 과거의 행위에 대한 성찰도 중요하지만 지금 여기의 맥락에서 고찰될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한국이 신냉전을 탈구축해 동아시아 평화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신냉전의 공고한 한 축이 된다면, 오끼나와 내의 평화체제 구축은 더욱 험로로 들어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오끼나와 ‘반환’ 50주년을 맞이한 현재 오끼나와의 기지 문제를 둘러싼 동아시아 각국의 이해관계가 이미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현재도 계속되고 있음을 추찰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