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올해 창비신인평론상에는 36편의 작품이 응모되었다. 다양한 작품과 주제를 다룬 비평문들이 투고되었으며, 응모작들이 대체로 고르고 일정한 짜임새를 갖추고 있는 점이 우선 눈에 띄었다. 한국문학 작품들뿐 아니라 세계문학과 영화, 그림책 등 여러 장르로 분석 대상을 확장한 글들이 응모되어 비평적 관심사의 변화를 실감하게 했다. 최근 대중독자 중심의 문학강좌 및 비평모임들이 활성화되면서 독서 토론을 포함한 작품 감상활동과 글쓰기의 기회가 많아진 점도 이러한 비평적 글쓰기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되는 듯 보인다.
한국사회의 주요한 변화를 읽어내는 비평 담론들에 대한 논의보다는 개별적인 작가, 작품에 기반한 주관적 감상에 집중한 글들이 많은 점도 최근 비평의 추세인 듯하다. 상당수 글들이 평자가 선호하는 취향의 작품을 소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작품의 내용을 요약·정리하는 평면적인 리뷰에 머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소재적으로 다양한 영역의 작품들이 호명되는 데 비해, 작품의 가치를 지금 현실 속에서 묻고 따지는 비평적 시도나 작품 평가에 대한 입체적인 맥락화가 잘 보이지 않는 점은 무척 아쉽게 다가왔다. 성과가 어느정도 축적된 작가나 작품을 다룰 때 평자의 고유한 시각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선행 논의들에 대한 이해와 논평이 필수적인데, 이러한 지점이 생략되는 데서 기인한 한계라고도 할 수 있겠다. 비평이 작품을 둘러싼 대화와 토론의 산물임을 환기한다면, 특정 작품에 대한 동시대 비평과 선행 비평을 충분히 읽고 검토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독창적인 관점 역시 찾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본심에서 집중적으로 논의한 글은 다음과 같다. 「젊음이 그렇게 좋은 거라면: 서이제론」(김영은)은 서이제 소설에 나타난 문화적 코드와 발화 방식을 통해 한국사회의 달라진 청년 현실이 문학에서 재현되는 양상을 세심하게 읽어간다. 소설 속 인물들의 화법이나 청춘의 지표를 조명하는 과정에서 필자가 작가와 작품에 대해 갖는 애정이 잘 느껴지는 글이다. 그러나 도입부의 문제제기와 달리 본론은 개별 작품의 내용을 소개하고 나열하는 방식으로 분석이 진행되면서 그 주제의식이 효과적으로 드러나지 못했다. 같은 작품집 안에서라도 성취와 한계가 작품마다 어떻게 다른지 분별이 필요하며, 청년 현실의 문학적 형상화라는 전체적 주제를 살리려면 동시대 다른 작가들과의 비교 검토를 동반하는 대목이 보충될 필요가 있겠다.
「위로가 될 수 있을, 참 괜찮은 절망의 언어: 이현승의 시」(유현수)는 이현승의 시에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생활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시적 주체의 윤리감각과 균형 의지를 규명한 글이다. 특히 이현승 시에 나타난 ‘악인’과 ‘사물’의 형상화 방식에 주목하여 분석을 이끌어나가는 대목들은 그동안 이현승 시에서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던 면모를 포착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그러나 이현승 시의 윤리감각과 균형성을 전제하는 논의들이 필자의 입장에서 계속 강조되는 가운데 그 논거로서의 작품의 흥미로운 변모 과정은 잘 드러나지 않았으며 결론에서도 시사(詩史)적 의의를 충분히 규명하지 못한 아쉬움을 주었다. 단독적인 작가, 작품의 세계로만 의의를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적 흐름의 계보 속에서 이현승의 시세계를 입체적으로 살피는 감각이 보완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앓음에서 읊음으로, 곁의 존재론: 김경후론」(윤옥재)은 응모된 작품들 중에서 가장 안정된 서술 방식과 가독성을 지닌 평문이다. 김경후의 시세계를 통해 서정성과 실험성, 전통과 아방가르드, 서정과 그로테스크, 염세와 유머의 경계에 위치한 독특한 개성을 읽어내려는 도입부의 문제제기가 흥미로웠다. 이 글 역시 비평 대상에 대한 애정과 충실한 읽기 작업이 바탕이 된 정성스러운 글로 다가왔다. 전체적으로 무리없이 읽히지만, 작품을 비평하는 본론의 서술 방식에서 텍스트의 인용과 정리를 넘어서는 평자만의 고유한 해석과 시각이 잘 보이지 않았다. 김경후 시에서의 성취와 한계를 가리는 비평적 기준이 어떻게 마련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며, 시적 여정의 변화를 짚어주는 시사적 조명이 보완되었으면 한다.
응모작들을 읽고 긴 시간 논의를 진행한 끝에 올해 수상작을 뽑지 않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정성껏 쓴 글들을 보내주신 한분 한분께 깊이 감사드리며 진전된 글로 다음 기회에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백지연 송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