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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최병천 『좋은 불평등』, 메디치미디어 2022

학술과 정치 사이, 가교로서의 경제학

 

 

전병유 田炳裕

한신대학교 사회혁신경영대학원 교수(경제학) bycheon@h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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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의 『좋은 불평등』은 ‘좋은’ 책이다. 첫째, 저자의 풍부한 실천 경험과 학계 연구에 대한 꼼꼼한 섭렵이 결합되어 있다. 관점이 분명하고 메시지도 선명하다. 학계의 다양한 담론과 실증 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적절한 통계 제시에 그치지 않고, 쿠즈네츠 파동(불평등이 줄어들다가 초세계화 이후 다시 증가하는 현상), 스마일 곡선(제조업-서비스업 부가가치 곡선), 그레이트 더블링(세계노동력의 2배 증가), 하이퍼글로벌라이제이션(초세계화) 등 1990년대 이후 불평등 연구의 핵심 키워드들을 활용하여 메시지의 대중화에 성공했다.

‘정치’는 구미에 맞는 메시지만 따먹는 경향이 있다. 반면 ‘학술’은 자르고 쪼개고 작은 영역으로 숨어 들어가는 경향이 있다. 정치와 학술 양자를 매개하는 저술이 한국에서는 매우 취약했다. 저자 최병천은 풍부한 정책 경험을 통해 현실에 ‘무감한’ 학계에 많은 연구 가설과 주제를 던지고, 그가 시도하는 학술 연구의 대중화는 ‘무지한’ 정치권에 좋은 교과서를 제공한다. 그간 한국에서 크게 부족했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느낌이다.

둘째, 한국의 정치현실을 고려할 때, 실천적 관점에서도 시의적절한 책이다. 그간 한국의 정치권과 학계는 해외 정책 아이템을 ‘자기 입맛에 맞게’ 수입하는 경향이 짙었다. 그런 방식으로는 장기집권은커녕 정권교체도 쉽지 않다. 『좋은 불평등』은 수권(受權)을 추구하는 진보정당과 진보경제학이 글로벌한 시각과 국민경제 전반에 대한 통합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정치와 정책은 맥락, 환경, 조건에 크게 좌우되며, 경제구조의 고도화와 다음 단계 도약을 위해서는 국민경제에 대한 거시적 관점과 사회적 합의가 중요한 것이다.

『좋은 불평등』을 읽으면서, 스웨덴의 ‘렌마이드너 모델’(Rehn-Meidner Model)이 생각났다. 2차대전 후 스웨덴 사회민주당 장기집권의 이론적·정책적 모델은 렌마이드너의 연대임금(solidarity wage) 모델이었다. 연대임금은 단순히 재분배 정책이 아니라 전후(戰後) 새로운 나라만들기 전략이자 산업정책 전략이었다. 글로벌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여 대기업과 협력하는 수출주도성장전략을 채택했다. 이 전략의 부작용을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복지로 보완했다. 그리고 이에 반대하는 농민당을 설득하기 위해 사회적 교환, 타협, 합의를 이끌어내는 정치력을 발휘했다. 그 결과 ‘좋은 평등’과 수십년간의 장기집권이 가능했던 것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스웨덴 사민당의 장기집권은 ‘적폐의 경제학’이 아니라 ‘환경변화의 경제학’과 ‘통합의 경제학’으로 가능했다.

보수는 ‘바른’이라는 표현을 좋아하고, 진보는 ‘좋은’이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저자는 부가가치와 고용이 늘어나고, 상향 이동성이 촉진되는 것을 ‘좋은’으로 정의한다. 그는 한국이 중국의 거대한 시장 확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불평등’이 확대됐지만, 부가가치와 고용에서는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본다. 세대 간, 계층 간 이동성은 분배만으로 보장하기 어렵기 때문에, 진보가 경제성장이라는 키워드를 놓을 수 없다는 점에서 저자의 ‘좋은=성장’이라는 주장을 거부하기 어렵다.

나는 『좋은 불평등』에서 제시하는 통계에 기초한 사실과 주장에 대해 많은 부분 동의한다. 1980년대 이후 불평등 심화와 관련해서는 선진국 중심으로 엄청나게 많은 연구가 쏟아졌다. ‘구글 학술 검색’으로 ‘economic inequality’(경제불평등)를 검색해 나온 1980~2022년 연구논문 수는 208만건이다. 불평등 심화의 요인으로는 이른바 ‘TOP+α’를 많이 이야기한다. 기술(technology), 개방·세계화(openness), 정책·제도(policy)를 의미한다. 기술결정론을 강조하던 폴 크루그만(Paul Krugman)도 최근 세계화 결정론, 차이나 이팩트 쪽으로 입장을 바꾸고 있다. 중국과의 교역이 불평등을 유발했다는 『좋은 불평등』의 메시지는 이러한 흐름과 부합한다.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중요한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

그러나 담론과 이론의 타당성은 환경요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메시지가 단순할수록 파급력이 크지만, 저자의 주장에 대한 타당성은 더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현실은 매우 복잡한 요인들이 상호작용하며 역동적으로 변한다. 한국에서 수출과 불평등의 관계는 일률적이지 않다. 평자 역시 교역과 임금의 관계를 미시 데이터를 통해 분석해본 적이 있다. 그러나 중국과의 교역이 임금불평등에 미치는 효과가 잘 검증되지 않아 연구를 덮었다. 중국 진출의 효과가 삼성, 현대 등 기업 모델별로 달랐고, 시기에 따라서도 중국 교역의 불평등 효과가 달랐다. 예를 들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은 강력한 경기부양책을 폈다. 결과적으로 한국 제조업에서 부품소재 부문과 관련 고용이 크게 증가했다. 제조업 고용이 줄지 않으면서 불평등은 줄었다. 앞으로 이러한 세세한 분석과 연구는 학계의 몫이다.

현실은 외부요인과 내부요인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된다. 렌마이드너 연대임금 모델의 성공도 환경에 대응하여 내부 전략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능력 덕분에 가능했다. 중국이라는 거대시장이 급팽창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기업, 정부, 개인이 어떻게 대응했는지 추가 연구가 진행되면 좋겠다. 87년 민주화 이후, 1988~94년의 기간 동안 한국경제는 임금인상과 내수확대가 경제성장과 동시에 진행되는 소득주도성장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한국의 노사는 생산성과 임금의 선순환에 기초한 소득주도성장에 합의하지 못했고, 한국의 대기업들은 글로벌 경영으로 전략을 수정하게 된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앞으로 추가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한반도 주변 환경이 요동치고 세계화의 좋은 시절이 끝나가고 있다. 세계화의 최대 수혜자였던 대한민국은 다른 ‘운빨’을 찾는 전략이 요구된다. 이에 적극 대응하는 정치세력이 20년 수권 정당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의 후속작에서 이에 대한 논의를 만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국가나 기업, 정당의 연구비 지원 없이, 시간을 들이고 연금까지 헐면서 좋은 책을 출간한 저자의 노고에 감탄하고 감사하다. 이제 정치권과 학계가 이 문제작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