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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고명섭 『하이데거 극장』(전2권), 한길사 2022

한국 하이데거 철학 연구의 진일보

 

 

한충수 韓忠洙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 choong-su.han@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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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섭의 책 『하이데거 극장: 존재의 비밀과 진리의 심연』을 처음 보았을 때 평자가 받은 인상은 세가지였다. 첫번째는 하이데거(M. Heidegger, 1889~1976)의 생애와 사상을 이토록 풍부하게 담아낸 책이 세계 어디에도 없으리라는 것이었다. 평자가 알고 있는 독일어나 영어로 쓰인 전기들도 이렇게 두툼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이데거 철학을 연구하는 나 역시 배우는 마음으로 『하이데거 극장』을 읽고 서평을 쓰게 되었다.

두번째로는 하이데거가 니체의 철학에 관해 쓴 두꺼운 책(『니체』Nietzsche, Neske 1961)이 떠올랐다. 흥미롭게도 그 책은 표지만 보면 하이데거가 니체에 관해서 쓴 것인지, 니체가 하이데거에 관해서 쓴 것인지 모호하다. 그런데 이러한 모호함은 하이데거의 의도라고 한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해석과 니체의 사상을 구분할 필요를 못 느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의 생각에 대한 글을 1,000면 넘게 쓰다보면 그 사람처럼 생각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이데거 극장』의 저자 고명섭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 책은 두권으로 나뉘어 있으나 내용상으로는 하이데거의 생애와 사상을 연대기적으로 소개하는 한권의 책이다. 1,648면으로 된 두꺼운 책은 제작하기도 읽기도 힘들 것이기에, 보통 책의 분량인 300면 내외에 맞추어 대여섯권으로 분리하여 출판하는 것이 실용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두권으로만 나누어진 이유는 하이데거 철학이 전기와 후기로 구분되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하이데거 극장』의 첫번째 권은 전기 철학과 그 전회(轉回)를, 두번째 권은 후기 철학을 다룬다.

세번째로 강한 인상을 준 것은 책의 제목이다. 이 책의 제목은 영국의 ‘셰익스피어 극장’을 연상시켰다. 그 극장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상연되었던 것처럼, ‘하이데거 극장’에서는 하이데거의 작품들이 무대에 오른다. 이 방대한 책에서는 하이데거의 주요 작품을 거의 다 만날 수 있고, 2014년 출간되어 하이데거의 반(反)유대주의를 둘러싼 논쟁을 일으킨 『검은 노트』(Schwarze Hefte)에 대한 흥미진진한 예고편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을 펼칠 때는 마치 극장을 들어설 때처럼 마음이 설레게 된다.

책의 제목에서 ‘극장’은 원래 하이데거의 표현이라고 한다. 그는 1940년에 진행한 강의 ‘유럽의 허무주의’에서 신의 죽음이라는 니체의 선언과 함께 새로운 시대가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이데거는 그 상황을 극장의 비유를 들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세계라는 극장의 무대 배경이 한동안 오래전 그대로 남아 있더라도 상연되는 연극은 이미 다른 것이다.”(1권 71면) 여기서 ‘연극’이 가리키는 것은 어떠한 가치체계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다. 하이데거는 그 가치체계가 달라졌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저자 고명섭은 ‘극장’을 철학자의 삶과 사유의 세계로 이해하며, 하이데거의 세계라는 극장에서는 존재의 드라마가 공연되었다고 본다. 또 그의 일생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존재와 진리의 드라마를 쉼 없이 써내 무대에 올리는 드라마투르기의 역사였다.”(1권 73면) 따라서 하이데거는 평생 존재의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이었으며, 그의 존재론은 그의 인생과 분리되지 않는다. 『하이데거 극장』은 그 드라마를 비롯해 이를 기획하고 집필하는 자로서 그의 삶도 함께 보여준다.

하이데거의 생애와 사상을 함께 소개하는 전기들은 이미 많이 출간되었으나, 이 책은 그 내용의 풍부함으로 기존의 안내서들과 크게 다르다. 하이데거가 기존의 강단 철학 및 그 분위기에 대단히 비판적이었고, 강의실에 스키복 차림으로 와서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는 일화는 익히 알고 있었던 바다. 그런데 『하이데거 극장』은 그러한 파격적 태도와 그의 성장배경과의 긴밀함을 잘 설명해준다. 이는 하이데거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데, 왜냐하면 그 스스로 말했듯이 “유래는 늘 미래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가령 하이데거는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자랐고, 그 종교적 경험이 그의 후기 사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한가지 흥미로운 일화는 하이데거가 어릴 적 성당의 종탑에서 종을 친 경험에 대한 소개다. 그 경험은 그가 1954년에 쓴 짧은 글 「종탑의 비밀에 관하여」에 묘사되어 있다. 부끄럽게도 평자는 이 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가 『하이데거 극장』을 통해 그 종탑에서 하이데거가 존재의 품으로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경험은 오래된 성당과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아마 불교 사찰이나 도교 사원에서도 가능할 것이다.

저자가 잘 소개한 것처럼, 실제로 하이데거는 노자의 『도덕경』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2권 372면). 1945년 부인에게 쓴 편지에서는 장자의 무용(無用) 개념이 자신의 존재 개념과 다름없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고백까지는 『하이데거 극장』에서 찾아볼 수 없다. 아마도 그 이유는 하이데거와 장자의 관계에 관한 국외 연구가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연구는 하이데거 철학 연구자인 평자가 앞으로 수용해 안내할 것이다.

창비에서 평자에게 서평을 의뢰하면서 던진 물음 가운데 하나는 ‘이 책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특별한 화두가 어떤 것인가’였다. 이에 답하며 서평을 마무리해보겠다. 그런데 나의 답은 이 물음에 걸려 있는 기대에 부응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하이데거도 말하는 것처럼, 직접적으로 무용한 철학은 세계와 사회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고명섭의 이 책은 하이데거의 생애와 사상과 관련하여 현재까지 국내에서 수행된 연구성과를 거의 모두 망라하였다. 그럼으로써 앞으로 향후 하이데거 철학 연구의 출발점이 되었다. 하이데거는 철학이 진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철학은 근본적인 것에 대해 거듭해서 묻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자는 그러한 철학에 관한 연구는 진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수행된 연구를 반복하지 않고 아직 수행되지 않은 연구를 시작함으로써 말이다. 그 연구의 수행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해준 저자에게 심심한 사의(謝意)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