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목소리
독자와 함께, 독자 속으로
‘클럽 창작과비평’ 이야기
‘한 계절이 지나고, 당신의 문학이 더 깊어집니다. 당신의 관점이 더 넓어집니다.’ 계간 『창작과비평』을 소개할 때 자주 쓰는 이 표현은 『창작과비평』 읽기모임인 ‘클럽 창작과비평’ 참여자(클러버)들이 많은 공감을 전해오는 말이기도 하다. 완독의 뿌듯함은 물론 자신이 한뼘 성장했다고 느낀다는 점을 클럽 창작과비평 활동의 큰 장점으로 꼽는다. 클럽 창작과비평은 계간지를 처음 접하거나 낯설어하는 독자들을 위해 탄생한 모임이다. 목차에 적힌 단어들의 무게와 잡지 두께에 지레 겁먹지 말고 찬찬히 함께 읽으며 감상을 나눠보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클러버가 되면 다양한 읽기, 쓰기 미션을 수행하며 그 계절의 『창작과비평』을 읽는다. 독서 미션뿐 아니라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작은 실천을 하는 에코 미션, 서평 이벤트, 북토크, 합평회 등 다양한 활동을 경험할 수 있다. 2019년 겨울 ‘클럽 창작과비평 프롤로그’로 시작해 2020년 정식으로 ‘1장’을 열었으며 2023년 봄·여름호를 함께 읽는 ‘11장’까지, 어느덧 열다섯번째 계절을 지나고 있다. 모임당 평균 참여자 9백여명, 누적 참여자 1만 3천여명과 함께해왔다.
『창작과비평』은 새로운 문학과 창조적인 담론 생산의 장으로서 지난 57년간 청년, 지식인, 예술가, 시민사회 활동가 등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시대를 관통해왔다. 그간 클럽 창작과비평을 운영하며 만난 이들도 1만명이 넘는데, 57년이라는 시간 동안 『창작과비평』을 읽어온 독자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그들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해 지난 자료를 뒤적이다 『창작과비평』을 향한 쓴소리를 보내준 독자들도 적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가령 “창비는 나 같은 가정주부도 부식비를 조금 아껴서라도 기꺼이 사 보는 책이라는 걸 기억하고 배려해주기 바란다”라는 독자의 목소리(1997년 봄호)를 읽으면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특집이 실망스러웠으니 분발하라며 솔직한 의견을 보낸 독자와 그 쓴소리까지 있는 그대로 수용하여 책에 싣는 잡지. 『창작과비평』이 200호를 맞이하게 된 원동력은 바로 이렇게 애정 어린 조언과 성원을 보내온 독자들이라는 것을 새삼 다시 생각해본다.
클럽 창작과비평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온라인 독서모임이라는 기획의도는 좋으나 실질적으로 어느정도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라는 예상치 못한 혹평에 쓰린 마음으로 방향키를 다시 잡을 때도 있고, “혼자서는 끝까지 읽거나 리뷰를 써보기까지 할 수 없었을 것 같다. 완독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혼자 읽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한다”와 같이 더할 나위 없이 짜릿함을 주는 평을 만나기도 한다. 좋은 모임에 참여하게 해줘서 고맙다며 사무실로 간식을 보내고, 『창작과비평』 독서 경험이 취업활동에도 도움이 되었다는 인사를 전해오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따뜻한 마음을 보내준 클러버들 덕분에 클럽 창작과비평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200호를 맞으면서는 클럽 창작과비평 클러버들과 특별한 ‘독자의 목소리’ 좌담을 열었다(2023.4.18. 창비서교빌딩). 클러버 세명이 참여해 『창작과비평』을 읽게 된 계기, 가장 좋았던 글, 앞으로 바라는 점 등을 중심으로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주고받은 대화를 그대로 전하는 것도 좋지만, 기존 ‘독자의 목소리’ 지면에서처럼 한분 한분의 오롯한 목소리를 담고 싶어 그러한 방향으로 내용을 정리하여 소개한다.
우리 시대의 담론을 함께 읽고, 타자의 이야기를 고민하며, 우리에게 필요한 의제를 설정하고 실천하는 주체적인 사람들이 모인 만남의 광장. 앞으로도 많은 독자들이 클럽 창작과비평을 통해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다른 이들과도 가감없이 대화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즐거운 여정에 함께 동참하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 클럽 창작과비평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는 순간, 우리 또 만나요!
(주)창비 홍보부 클럽 창작과비평 운영진
클럽 창작과비평 switch.changbi.com
instagram.com/magazine.chang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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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라는 특별한 소속감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도 김포에 살고 있는 창비의 독자이자 초등학생 두 아이의 엄마인 서윤지입니다. 계간 『창작과비평』을 처음 만난 순간은 아주 어릴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버지가 소설가로 등단하신 적도 있고 책을 참 좋아하셔서,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벽 3면이 모두 책장일 정도로 책이 많은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 속에 한자로 제목이 쓰인 『創作과批評』이 있었지요.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있다가 작년 어느날 인스타그램에서 『창작과비평』 읽기모임을 발견하고는 ‘맞아, 우리 아빠가 예전에 읽으셨지’ 하는 반가운 마음에 클럽 창작과비평 활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창작과비평』에서 ‘돌봄’이라는 키워드를 지속적으로 다뤄주어 무척 잘 읽고 있습니다. 전업주부로서 가사노동이나 양육 등 돌봄노동이 쉽게 외면되거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현실을 절감하고 있는 터에 돌봄노동의 현주소를 속 시원히 짚어주어 좋았고, 이 문제를 사회구조 속에서 봐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는 데도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최근에는 『창작과비평』뿐 아니라 다른 여러 매체에서도 돌봄을 중요하게 다루는 것 같아 반가운 마음입니다. 작은 범위의 돌봄에서 나아가 우리가 서로의 돌봄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하고 노약자, 어린이,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안전망이 취약한 이들을 함께 책임지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봄호에서는 시란이 특히 좋았는데, 나희덕 「샌드위치」의 여운이 길었어요. SPC 제빵공장의 노동자 사망사고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 시의 마지막 문장 “자본주의의 소스가 되어버린 노동자의 죽음에도 불구하고”가 너무 아프게 다가오는 한편, “불구하고”라는 시어에서 절망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뭔가를 바꿔야 한다는 희망의 자세 같은 것도 읽을 수 있었거든요.
최근 AI가 사회 각 분야에서 활용되고 챗GPT 이후로 교육 패러다임도 크게 바뀌고 있습니다. 특히나 이런 시대적 변화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는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죠. 본질은 우리가 발전해가는 기술에 종속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느냐일 거라고 봅니다. 기술에 대한 새로운 방법론을 고민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거기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AI시대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하는 근본적인 질문과 답변을 고민하는 교육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창작과비평』이 여기에 관해서도 역할을 해줄 수 있다면 좋겠어요.
저는 전업주부이다보니 어딘가 소속되어 있다는 감각이 부족할 때가 있는데, 클럽 창작과비평 활동은 삶의 영감이 되는 글을 읽고 소통을 할 수 있어서 다른 집단보다 더 특별한 소속감을 주곤 해요. 오늘 좌담을 통해 다른 클러버들과 만나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니 그런 느낌이 더 커집니다. 앞으로도 클럽 창작과비평에서 이런 자리가 더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중요한 건 결국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서윤지 cometoyunji@naver.com
아이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
저는 유혜원이라고 합니다. 세종시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걸 열심히 읽는 편이고, 그래서 국어교사라는 직업도 즐겁게 잘 누리고 있습니다.(웃음) 클럽 창작과비평에는 2019년 프롤로그를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빠짐없이 참여하며 『창작과비평』을 꾸준히 읽어왔어요. 매호 읽을 때마다 ‘책머리에’에서 특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인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집을 통해 전하려는 고민과 문제의식이 ‘책머리에’부터 여실히 느껴지고, 잡지를 읽을 때도 무척 좋은 들머리가 됩니다. 지난호도 마찬가지였어요. 최근에 주변 사람들과 정치상황을 놓고 이야기하다보면 과연 앞으로 나아질 수 있을까, 굉장히 회의적으로 또 정치혐오적으로까지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요. 지난호 책머리에 「미래에 관해 알고 있는 것들」부터 백낙청 이태호 유해정의 특집 글을 죽 읽다보니 이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쨌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구나 싶었고, 또 이미 그러고 있다는 희망과 믿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실망하고 좌절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한발 내딛기 위한 마음가짐이구나 싶어서 특집 마지막 글인 「우리, 사라지지 말자」를 읽을 때는 뭉클하고 눈물도 약간 나더라고요.
제가 일하는 학교는 지역 중에서도 면 단위의 시골에 위치해 있어요. 학생들은 누구나 서울에 가고 싶어하는 한편 서울과의 격차 앞에서 무척 힘들어하기도 합니다. 2020년 봄호에 실린 박사랑 단편소설 「서울의 바깥」은 제가 보는 현실과 공명하는 부분이 있어 인상 깊었어요. 소설은 회사를 그만두고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며 어마어마한 부잣집 아이의 과외수업을 하는 인물의 이야기예요. 과외 학생의 엄마는 수업 도중 비빔밥을 옆에서 떠먹일 정도로 유난스러운데 그건 다 아이의 ‘인서울’을 위해서죠. 주인공은 학생 엄마의 까탈을 다 받아내며 과외를 하고, 과외비로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하는 한편 유행하는 구두나 명품을 사기도 해요. 방과 후 독서토론에서 학생들과 이 소설을 함께 읽은 적이 있는데요. 서울과 서울의 바깥은 무엇이며 그 경계는 뭐고, 중심부로 가는 게 과연 이 모든 희생을 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하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었어요. 중심부와 바깥으로 경계지어진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도 나눌 수 있었고요. 교과서 속 문학작품들은 아무리 현대의 것이라 해도 지금 학생들과 시차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잡지는 가장 최근에 발표된 작품인데다 특히 『창작과비평』에 실린 소설은 동시대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항상 아이들과 함께 읽고 싶어집니다.
최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슈는 혐오표현이에요. 남자 고등학생들이 무심코 하는 말에 담긴 여성혐오적 사고나 표현을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 고민이 많습니다.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덮어놓고 거부감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고, 여성을 향한 왜곡된 시선과 차별이 혐오표현과 연결되어 있는 문제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창작과비평』에서 페미니즘 주제와 관련된 여러 논의들을 앞으로 활발하게 다루어주었으면 하고, 이런 고민과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는 문학작품 역시 많이 소개해주면 좋겠습니다.
『창작과비평』이 아니면 몰랐을 것들이 너무 많다고 느껴요. 그렇게 제 세계가 조금 더 넓어진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른 클러버들의 리뷰를 읽으면서 저의 납작한 감상에 깊이가 더해지는 것도 같고요. 제가 넓어지고 깊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유혜원 sejongkoreanteacher@gmail.com
나도 모르던 나를 발견하게 해준 『창작과비평』
안녕하세요, 서성원이라고 합니다. 퇴직 뒤에 지역에서 라디오작가, 시민기자 등 글쓰기 관련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동화작가로 등단을 하기도 했는데, 『창작과비평』은 모든 작가들이 글을 싣고 싶어하는 잡지잖아요. 그래서 『창작과비평』에 대해선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주로는 시·소설 창작란에 관심을 두고 읽어왔습니다. 그러다가 2020년부터 클럽 창작과비평 활동을 시작하면서 독서의 전환점을 맞게 됐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을 하다보니 비문학과 비평 글이 제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는 거예요. 특히 2020년 봄호 특집인 ‘생태정치 확장과 체제전환’이 평소 기후위기에 관심을 두어온 제게 무척 뜻깊게 다가왔습니다. 기후위기를 체제전환과 연결지어 사고할 수 있다는 것을, 그 당시만 해도 저는 처음으로 깊이 알게 됐거든요. 그뒤로도 특집이나 논단 등을 놓치지 않고 읽게 됐고, 저도 모르던 ‘비문학파’로서의 취향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기획은 2021년 가을호 특별좌담 「다시 동학을 찾아 오늘의 길을 묻다」예요. 동학을 서구문명에 대한 반발로서 생긴 민족종교 정도로만 알고 그 사상적 깊이에 대해선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아왔어요. 그해 봄호에 백낙청 선생님이 「기후위기와 근대의 이중과제」라는 글을 통해 자본주의체제와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도로 동학의 ‘정신개벽’을 제시했을 때 다소 모호하게 다가왔던 것도 그 때문이었죠. 그런데 가을호 특별좌담은 ‘충격적’이었어요. 김용옥 박맹수 백낙청 세분이 더 자세하게 동학이 탄생한 배경과 그 전개과정, 동학이라는 사상의 실천적 가치와 현대적 의미까지 두루 짚어주어서 많이 배웠습니다. 동학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거두고 우리 고유의 사상에 대해 점검해볼 수 있었어요. 앞으로 우리가 어떤 세상으로 갈지, 어떻게 새로운 세상을 상상할지에 대해 여태까지 우리가 기대온 서구문명의 틀을 벗어날 필요가 있고, 동학이 신선한 사상적 자극을 줄 수 있다고 봐요.
무엇보다 『창작과비평』을 좀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꼭지 하나하나 허투루 쓰인 것 없이 알차고, 대중적으로 읽히면 좀더 큰 힘을 발휘할 것 같은 글도 많아요. 왜 사람들이 더 많이 읽지 않을까 하면 어렵다는 인식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문학파’였던 젊은 시절 창작란에 집중한 것도 다른 지면에서 언뜻 느껴지는 무게감에 지레 겁을 먹어서이기도 하거든요. 현 체제와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나 새로운 방향과 담론 제시 모두 좋지만, 실제로 책 바깥의 움직이는 사람에게 가닿을 때 유효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꼭지나 기획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작년 봄호부터 시작한 산문 기획 ‘내가 사는 곳’은 지역 현장을 생생하게 살피는 동시에 각 지역에서 직면한 사회적·환경적 문제까지 두루 읽을 수 있어서 고무적입니다. 특집에서도 가끔 무게감을 더는 주제를 다루는 게 좋을 듯해요. 아, 물론 『창작과비평』이 그동안 잘해왔던 것, 무게와 깊이를 계속 유지해가는 것도 필요합니다.
매 계절 『창작과비평』의 화두들을 통해 공부거리를 만나는 경험이 무척 소중합니다. 오늘 이 좌담에 신청한 것도 저한테 이런 소중한 경험을 준 클럽 창작과비평에 무엇이든 보답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어요. 앞으로도 『창작과비평』에 애정을 갖고 계속 열심히 읽어나갈 생각입니다. 또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알리고 싶고, 창비에서도 이렇게 좋은 잡지를 알리는 데 좀더 신경 써주시면 좋겠어요. 200호 축하드립니다.
서성원 itt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