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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인터뷰 | 새로운 25년을 향하여 | 언론

 

한국 언론, 어디에서 길을 찾을까

 

 

박주용 朴珠龍

창비 인문교양출판부 편집자.

munjibang@changbi.com

 

 

얼마 전 한 경제방송에서 이른바 ‘노(No) 재팬’이 이제는 자취를 감추었다며 제시한 통계 그래프가 소동을 일으켰다(한국경제TV 2022.12.2).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한 항의로 일본산 제품을 불매하는 ‘노 재팬’ 운동이 확산되며 일본산 맥주의 수입이 급감한 바 있다. 이후 수입액은 다시 늘고 있지만 2019년 이전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2022.10 기준)에 불과한데, 해당 방송의 그래프에서는 이전 수준을 거의 회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프의 세로축(수입액)이 수치 범위를 거의 무시하는 수준으로 조작됐기 때문이다. 몇달 지난 보도였으나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파격적인(?) 대일 외교 행보 이후 새삼 화제가 되었다. 해당 보도를 캡처한 한 커뮤니티 게시물의 댓글이 강렬했다. “기레기들 전부 화형시켜야 함.” 한국 언론에 대해선 맹렬한 반감밖에 남은 것이 없다는 이 말에서 나는 잠시 길을 잃었다. 언론이라는 소통수단이 또다른 소통공간에서는 증오의 대상이 되어버린 상황이 역설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저러나 일본 맥주의 부활은 지금 이 순간에도 국내 유력 언론들의 주요 관심사로 다뤄지고 있다.

이같은 언론의 위기 앞에서 정부의 역할을 기대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이전 정부에서도 ‘가짜뉴스’를 규제하자는 목소리가 높았고 정책과 입법 등이 추진되었지만, 지금 정부는 오히려 거짓과 진실의 의미를 뒤틀고 두들겨 자기식대로 말해버리는 가짜뉴스 생산자의 전형을 보여준다.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핵심 관계자들이 연일 ‘가짜뉴스 퇴치, 자유 수호’를 외치고 있지만 이 정부가 말하는 가짜뉴스의 정의가 무엇인지는 쉽게 찾아볼 수 없으며, 그들 스스로 정의 내릴 생각도 없어 보인다. 다만 그 의중을 추정해볼 근거 정도가 있는데, 바로 떠들썩했던 ‘바이든/날리면’ 논란에서 대통령실이 MBC의 최초 보도를 ‘악의적 가짜뉴스’로 규정한 사례다. 아마도 정부가 말하는 가짜뉴스는 대통령과 정부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모든 보도와 여론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현 정부의 언론 정책과 언론관으로 앞선 사례와 같은 왜곡된 보도를 방지할 수 있을까? 기대조차 어려울 것이다. 요컨대 언론과 정부를 포함한 사회의 공식적인 소통기구들은 현재 제 기능을 잃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는 ‘권력과 자본에 휘둘리지 않는, 99% 시민들의 독립언론’을 표방하며 지난 2012년 문을 연 이래 한국 독립언론을 상징해왔다. 이명박정부의 언론 장악 과정에서 탄압당한 언론인 몇명이 전국언론노동조합 사무실에 모여 ‘뭐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는 이 조직이 어느새 후원회원 4만명의 대안언론으로 성장했다. 존재감은 그 이상이다. 국내 주요 기업의 조세도피처 법인 설립, 삼성 이건희 성상납 스캔들, 세월호참사, 국정농단 등 굵직한 이슈를 최초 보도하거나 사건 추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보도를 선보이며 탐사언론의 가치를 증명해왔다. 최근에도 검찰 견제와 ‘대장동 50억 클럽’ 보도 등을 주도하면서 활약하고 있다. 기존의 레거시 언론들이 주춤한 사이에도 꾸준함이 돋보인다. 언론에 대한 불신과 냉소가 팽배한 가운데 ‘정통 저널리즘’을 표방하면서도 신뢰와 자원이 성장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 독립언론은 우리 언론의 오늘과 내일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뉴스타파 1기 신입기자로 입사하여 11년간 취재기자로 활동해온 홍여진 기자를 만났다. 그에게 먼저 뉴스타파가 가진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물었다.

 

제가 뉴스타파에 입사한 게 2013년인데,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강제진압 사건현장을 담은 영상보도를 보고 나서였어요. 경찰들이 밀고 들어오는 폭력진압 현장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다니, 이건 제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보도인 거예요. 거기에 감명을 받아서 당시 다른 매체에서 일하고 있다가 뉴스타파로 옮겨왔습니다. 여기가 언론사인지 단체인지, 월급은 받을 수 있을지 싶었지만, 그동안 카메라가 비추지 않았던 약자에게 초점을 맞추고 그들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보도를 하고 싶었어요.

시간이 흘러 제가 몸담은 뉴스타파가 어느덧 2022년에 10주년을 맞았는데요, 후원회원도 10년 전 2만명에서 이제 4만명이 되었어요. 저희가 이만큼 올 수 있었던 이유 중엔 초기부터 관심을 모았다는 것도 물론 있겠죠. KBS, MBC, YTN 등 레거시 언론에서 활발히 활동하다가 해직된 언론인들이 세운 곳이라 인지도에 힘입은 바가 있었어요. 그러나 무엇보다 좋은 탐사보도를 하지 못했다면 유지도 성장도 어려웠을 거라고 봐요. 뉴스타파는 삼성에 대한 비판 보도나 조세도피처 보도처럼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보도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마이크를 들이댈 수 있는 용감함, 광고주 없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어떤 기업도 비판할 수 있고 어떤 권력도 건드릴 수 있다는 용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는 믿음이 지난 10년에 걸쳐 생긴 것 같아요. 단순히 자극적인 폭로로 향하는 게 아니라 꼼꼼한 취재와 분석을 거치기 때문에 신뢰도 많이 쌓인 것 같고요. 이제는 어느 취재현장을 가더라도 저를 ‘구워삶으려는’ 취재대상은 거의 없어요. 뉴스타파가 어떤 매체인지를 잘 알기 때문이죠. 어떤 권력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기조를 한결같이 지켜온 게 뉴스타파의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왼쪽부터 박주용 홍여진

왼쪽부터 박주용 홍여진. 홍여진은 주로 사회적 약자, 노동, 교육 분야의 취재를 진행하고 있으며, 주요 보도로 「최순실 딸, 이화여대서 귀빈 대우…학점도 특혜 의혹」 「조용기 일가 30년 차명부동산」 「하청업체를 노예로 만든 대우조선해양의 ‘영업 비밀’」 등이 있다.

 

‘앰부시’(ambush)라는 말이 있다. ‘매복’을 뜻하는 이 말은 선약 없이 갑자기 등장해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대고 질문하는 취재방식으로, 탐사보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이기도 하다. 홍여진 기자의 발언에는 과연 갑갑한 우리 언론을 상대로 ‘앰부시’하는 것 같은 용기가 관통하고 있었다. 뉴스타파가 하고자 하는 일을 더 듣고 싶어졌다. 특히 뉴스타파를 지켜보며 인상적이었던 점은 별도의 데이터팀이었다. 매복하고 발품 팔며 의혹을 파헤치는 현장 취재가 아니라 사무실에서 데이터를 활용해 기사를 쓰는 탐사언론? 호기심을 품으며 뉴스타파에서 데이터팀의 역할은 무엇이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 물었다.

 

지금은 챗GPT가 등장한 시대잖아요. 탐사보도가 기본적으로는 현장에 가서 정보를 조사하는 일인데, 온라인상에 퍼져 있는 수많은 정보를 취합하고 그중 의미있는 것을 발굴해 사람들에게 잘 알리는 것도 탐사의 일환이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이슈가 없어 보이는 분야에서 새롭게 의제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고요. 대표적으로 저희가 매년 국회·정부·대법원 등 고위공직자들의 재산 공개를 하고 있어요. 고위공직자 재산 등록과 공개는 법에서 규정한 의무이고 그 자료에 접근하는 건 시민들의 권리이지만, 전자관보 자료는 너무 보기 힘들게 되어 있거든요. 데이터팀에서 그걸 알아보기 쉽게 정리해 알리면서 독자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었어요.

 

뉴스타파는 그밖에도 국제 공조, 독립언론 육성과 상호 교류, 새로운 플랫폼 구축 등 우리 언론에서 색다르게 여겨지는 사업들을 추진했거나 기획하고 있었다. 하나하나 한국 언론의 지형을 바꾸는 중요한 시도로 주목할 만했다. 이렇듯 기존 레거시 언론의 강력한 대안으로 활약하는 뉴스타파가 지금의 언론 지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조사에서 한국의 언론 신뢰도는 27%로, 조사 대상 28개국 중 가장 낮았다(「에델만 신뢰도 지표 글로벌 보고서」, 2023). 권력에 기대거나 혹은 엘리트 카르텔의 한 축으로서 그 자신이 권력화되어버린 언론에 대한 비판이 뜨겁다. 대표적인 보수매체뿐 아니라 진보적으로 분류돼왔던 언론도 비슷한 비판에 직면해 있다. 홍여진 기자는 한국 언론의 문제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을까.

 

우선 출입처에 편항적인 언론, 권력에 편향적인 언론이 되었다는 게 큰 문제입니다. 저도 기자 초년생 때 출입처를 통해 수많은 보도자료를 받아서 기사를 썼어요. 사명감 투철했던 초기에는 똑같은 보도자료라도 나는 좀 차별되게 써야지 했죠. 다른 데서는 어떻게 썼나 검색해보기도 하고요. 그런데 보도자료는 매일같이 쏟아지고, 써야 할 기사는 너무 많으니까 나중에는 그냥 기계적으로 보도하게 되더라고요. 남들과 똑같다고 안 쓸 수도 없는 게, 평소 출입처에서 전달하는 보도자료를 충실하게 기사로 내줘야 정말 중요한 정보에서 소외되지 않을 수 있거든요. 소위 ‘물먹는’ 일이 없으려면 출입처 요구에 맞춰줘야 하는 거예요. 그런 게 너무 싫어서 뉴스타파로 옮긴 면도 있어요.

언론의 권력 편향성 문제를 대표적으로 드러내는 건 ‘기사형 광고’예요. 특정 기업이나 단체에서 댓가를 받는 글이지만 얼핏 보기엔 객관적인 기사 같기 때문에 독자를 속이는 행태죠. 2021년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에 따르면, 이런 기사형 광고를 가장 많이 낸 언론사는 조선일보였고 매일경제, 한국경제 등 경제 매체들이 그 뒤를 이었는데요. 진보언론도 이 부분에선 완전히 자유롭지 않습니다. 대다수 언론사가 기사형 광고를 주요 수입원 중 하나로 삼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과연 없어질 수 있을지 부정적인 예상도 들어요.

 

2021년 연합뉴스가 포털에 한달여간 기사 노출을 금지당하는 중징계를 받은 바 있다. 기사형 광고를 ‘뉴스’ 항목으로 분류해 포털에 전송했음이 발각되어서다. 다른 언론 매체에 사진과 속보를 제공하는 국가기간뉴스통신사로서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는 연합뉴스 또한 기사형 광고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것이다. 홍여진 기자는 이러한 일이 국민의 세금으로도 집행되어 정부 정책을 홍보하는 데 쓰인다는 사실을 추가로 짚었다.

 

최근 취재 중인 사안인데요, 정부가 ‘주 69시간제’라는 비판을 받는 노동개혁안을 동아일보와 채널A에 기획기사 형태로 내보내서 홍보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문건을 입수했어요. 협찬이라는 고지만 하면 정부 정책에 대한 기사형 광고를 싣는 게 불법은 아니에요. 하지만 아무리 합법이라 해도 정책을 이렇게 홍보하는 게 합당한지, 더구나 국민의 세금으로 특정 언론사에 거액의 광고비 협찬을 하는 것이 타당한지 물어야 해요. 그리고 언론이 그같은 방식으로 ‘감시 대상’인 정부와 유착하는 게 옳은 일인지도 질문해야 하고요. 시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돈을 받아 정부 입맛에 맞는 기사를 쓰는 것도 일종의 ‘가짜뉴스’죠.

 

얼마 전 뉴스타파는 과거 삼성전자가 베트남 공장에서 수년간 유해물질을 무단 방출한 사실을 은폐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경향신문이 삼성의 베트남 협력업체 노동자 37명의 메탄올 중독사건을 보도했다. 비슷한 시기에 보도된 두 기사가 핵심적으로 드러내는 건 과거부터 현재까지 삼성의 베트남 공장 안전관리에는 분명 구멍이 뚫려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언론의 반응은 달랐다. ‘삼성도 협력업체에 속은 피해자’라는 보도가 쏟아졌다. 삼성이 해명한 것을 그대로 받아쓰기한 언론의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전하는 홍여진 기자에게, 좀 단순한 질문이지만 ‘삼성이 가장 큰 광고주라서 언론이 눈치를 보는 것인지’ 물었다.

 

물론 그런 면이 크죠. 일간지 중에 아마 삼성 광고 없는 신문은 없을 거예요. 일선 기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그들도 권력 눈치 안 보고 자기가 원하는 취재를 하고 싶어해요. 그런데 그게 잘 안 되는 레거시 언론의 구조적인 문제도 있는 거죠. 광고주를 겨냥하는 기사는 발제를 할 때부터 차단당하거나 데스크에서 걸러지는 일들이 생기고, 그런 경험이 쌓이다보면 기자 스스로 위축되고 지레 포기하게 되니까요. 레거시 언론 내부의 ‘윗분’들이 맺어온 인맥과 이해관계가 누적되고 복잡해지면서 일선 기자들한테 영향을 주게 되는 거예요. 실제로 조선일보 송희영 전 주필이 대우조선해양 측의 청탁을 받고 그들에게 불리한 기사를 빼거나 축소하라고 편집부에 지시한 사실을 뉴스타파가 보도하기도 했었죠. 동료 기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조선일보만의 문제도 아니에요. 엘리트 카르텔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구조입니다.

 

언론환경을 논할 때 포털의 영향력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홍여진 기자는 언론이 포털에 편승하고 굴복해서 기사를 양산하고 있고, 그러다보니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자극적인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고 짚었다. 대표적인 예가 이태원참사 당시 ‘토끼 머리띠를 한 사람이 밀었다’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수많은 언론이 반복적으로 보도한 것이다. 그는 특히 정보를 축소하거나 공개하지 않으려 하고 왜곡하는 정권이 들어섰을 때일수록 언론이 이런 가짜뉴스의 함정을 조심해야 하고, 진보언론은 더 바빠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는 진보언론 진영에도 그런 집요함이 떨어진 게 아닌지 반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꼭 기성언론에만 기대를 걸어야 할까? 우리가 잘 모르는, 뉴스타파와 같은 독립언론이 더 있을지 궁금했다. 독립언론과의 연대와 협업을 강조하는 뉴스타파에서 만든 독립언론 육성 프로그램 ‘뉴스타파저널리즘스쿨’에 대해서도 듣고 싶었다.

 

우리만 열심히 하고 잘한다고, 혹은 우리만 커진다고 해서 언론 지형이 바뀔 수는 없잖아요. 그런 점에서 뉴스타파가 쌓아온 노하우를 전수하고 그들이 새로운 매체를 만들 수 있게 육성하려는 포부에서 시작한 사업이 뉴스타파저널리즘스쿨이에요. 독립언론들이 늘어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확대하다보면 전체 언론 판도도 좀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주목하는 독립언론으로는 대구·경북 지역의 ‘뉴스민’(newsmin.co.kr)이 있어요. 2022년 지방선거 당시 홍준표 후보에게 비판적 질문을 던진 일이 있고, 대구지역 언론 중에선 거의 유일하게 홍준표 시장을 비판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것 때문에 최근 정부 광고가 끊기면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은 독자들이 뉴스민을 지키자며 후원운동을 시작한 상황이고요. 그렇게 후원운동이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뉴스민이 꾸준하게 생산해온 좋은 기사들 덕분이겠죠. 기자들이 생계를 위해 주말에는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서 지켜온 뉴스민의 가치를 독자들이 알아봐준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후원운동이 있다 해도 많이 어렵고 열악하죠. 뉴스타파도 독립언론 중 가장 잘 자리 잡은 경우라지만 구성원 수가 50여명밖에 되지 않아요. 수백명에서 천여명에 이르는 다른 기성언론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그러나 지역언론 뉴스민이나 노동 중심 보도매체인 매일노동뉴스 등 주목할 만한 독립언론은 늘어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똑똑한 독자들이 이런 뚝심있는 독립언론에 소액이나마 후원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기업이나 특정 집단의 광고 수익에 기반을 둔 언론사의 보도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우리는 분명히 확인하고 있으니까요.

 

홍여진 기자는 여성, 소수자 인권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뤄온 뉴미디어 방송 ‘닷페이스’가 해산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언급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쩌면 한국 언론은 갈수록 구조적으로 어둡게 ‘전망’되는데 미래를 애써 ‘희망’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전망보다는 희망이 필요한 상황인 걸까.

 

물론 지금은 기자들이 공격받는 시대죠. 유튜브도 생겼고, 챗GPT도 생겼고, 독자들도 똑똑한 판단을 내립니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공간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이대로는 기자의 생존 자체가 불투명할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럼에도 돌파구는 기본적으로 ‘현장’에 있다고 생각해요. 챗GPT가 할 수 없는 일을 기자가 해야 하죠. 원천자료를 생성하는 일, 권력이 감추려고 하는 정보를 캐내는 일은 AI가 할 수 없잖아요. 약자들이 투쟁하는 현장을 방문해서 그 목소리를 끝까지 듣는다거나 권력자에게 집요하게 질문하는,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기자 본연의 모습이 있고 그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독립언론 이야기를 했지만, 레거시 언론에서도 여전히 희망을 보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실제로 어떤 특종을 냈을 때 사회적 파급력을 강하게 가질 수 있는 것은 레거시 언론의 장점이잖아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때 한겨레가 보여준 것처럼요. 최근에는 경향신문 젠더기획 특별취재팀에서 보도한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기획 연재기사가 비가시화된 여성노동·돌봄노동을 드러내는 좋은 기획이었어요. 이 기사는 한국기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포털 조회수나 광고에만 의존했다면 나올 수 없는 보도였죠. 서울신문·한국일보·한겨레 등도 탐사보도팀을 두고 양질의 보도를 하고 있고요. 권력 편향적인 정치 뉴스라든지 기득권 재벌 중심의 경제 뉴스로 인해 많은 이들이 언론 하면 ‘기레기’라는 멸칭부터 떠올리게 되지만, 그럴수록 언론은 집요하고 꾸준하게 좋은 보도를 내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현장으로 돌아가 좋은 기사를 쓰기 위해 노력하는 것. 좀 교과서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물었더니 “네, 그런데 교과서적인 답이 맞는다고 생각합니다”라는 결연한 답이 돌아왔다. 갈수록 언론의 생존 자체가 문제가 되겠지만, 해결책은 돈도 혁신도 AI도 아닌 ‘원칙을 지키는 것’이라는 그는 분명 변화의 가능성을 내다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25년 후 우리 언론이 어떤 모습이었으면 하고 바라는지 물었다. 홍여진 기자는 지금 다섯살인 그의 자녀가 서른살이 됐을 때 우리 언론이 어떻게 변해 있었으면 하고 바랄까.

 

말씀드렸듯 지금도 여러 언론사에 탐사보도팀이 있어요. 그 역할이 확장되고 강화되어서 서로 탐사보도 경쟁을 하는 모습이면 좋겠어요. 매번 서로 기대하는 거죠. 이번달 어느 언론사에서는 뭘 취재하고 있다던데 기대된다, 하고요. 그렇게 생산된 기사가 사회적으로도 영향력을 더 끼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또 한가지 바람은, 여성 언론인이 지금보다 훨씬 늘어나는 거예요. 2021년 한국언론진흥재단 통계에 따르면 여성기자 비율이 32%예요. 10년 전에 비해 두배 이상 늘었지만, 보도 결정권을 쥔 간부급으로 올라가면 여성기자 비율은 10%대로 뚝 떨어지죠. 이 비율이 어느정도 균형을 맞추게 되면 성평등한 보도도 늘어날 거라고 봅니다. 일부 언론사에서 성평등 보도를 위해 젠더팀을 신설하는 등 노력하고 있지만, 정말 일부에 불과해요. 뉴스타파에도 관련 조직은 따로 없거든요. 여성 그리고 성소수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 문제가 권력 감시와 비판 보도 못지않게 주요하게 다루어졌으면 합니다. 물론 지금은 소수자 관련 뉴스가 사람들의 이목을 모으기 쉽지 않죠. 정치인은 대다수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지만 소수자는 그렇지 않고, 그러다보니 언론사도 취재인력을 많이 할당하지 못하고요. 그런데 일단 보도가 양적으로 많아져야 사회적으로도 관심을 받을 수 있게 되거든요. 언론인들이 의도적으로라도 사명감을 가지고, 당장은 사람들이 많이 보지 않는다 해도 꼭 필요한 뉴스들을 생산해야 한다고 봐요. 그게 우리 사회의 균형을 맞추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언론의 책임이라는 생각도 해야 하고요. 25년 후 제 아이는 그런 다양하고 수준 높은 보도를 균형감 있는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독자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는 좋은 기사에 독자들의 시선과 후원이 몰리는 사례가 많아져야 언론이 바뀔 거라고 전망했다. 그리고 이미 양질의 기사를 소비하려는 독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말도 전했다. 의미있는 독립언론에는 후원을 하고, 말도 안 되는 기사에는 시선을 주지 않으며 항의의견 개진도 하는 똑똑한 독자들이 언론을 구할 것이라는 희망.

인터뷰를 마치고 며칠 뒤, 그가 취재 중이라고 들려주었던 정부의 기사형 광고 문제가 보도된 것을 확인했다(「문체부, 동아일보·채널A에 4억대 ‘노동개혁’ 광고 기사 추진」, 뉴스타파 2023.4.6). 반대여론에 부딪혀 사실상 전면 재검토 수순에 들어간 노동개혁안을 수억의 광고비를 들여 홍보하겠다는 정부의 모순된 행동에 의문을 제기하는 보도였다. 합법이라는 얄팍한 기준만으로 판단했을 때는 결코 발견하지 못할 정부 논리의 허점을 파고든 것이다.

길지 않은 기사를 다 읽고 나니, 언론에 대해 분노와 실망을 내뱉는 데만 익숙해져 있던 내 모습이 문득 낯설게 느껴졌다. 좋은 기사를 만나는 경험에 대한 반응 같았다. 좋은 언론 생태계는 결국 이런 언론인들이 더 자연스럽게 자기 일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물론 쉽지 않은 길일 테다. 그러나 원칙을 지키는 좋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기쁨을 경험하는 일이 많아질 때 변화가 가능함을 조금이나마 더 믿게 된 것 같다. 이제는 무엇을 할 것인가. 우선 원고를 마칠 때까지 게으르게 미뤄두었던 뉴스타파 후원 페이지에 접속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