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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 다시 읽고 싶은 책

 

 

공선옥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창비 2000

꽃씨와 변소

 

 

전기화

田己和 / 문학평론가 octobervoic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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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섬진강 변으로 놀러 나온 작가는 자운영 꽃밭에 몸을 던진다. 쑥국새 소리를 들으며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도 모르는 체하고 파묻혀 있다가 눈물을 흘린다. 궁핍하던 어린 시절 어머니와 꼴을 베어 돌아오던 날을 떠올리면서, 아이들이 꽃밭에서 울던 엄마를 기억해줄까 생각하면서. 작가는 미래 기억에 대한 그리움을 지렛대 삼아 과거를 향한 복고주의적 향수로의 함몰로부터 자신을 들어 올리며 균형을 잡는다.

2000년 출간된 공선옥의 첫 산문집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긴밀하게 얽혀드는 장면이 자주 발견된다. 작가는 오랜 시간이 걸려 터전을 잡게 된 시골집에서 유년 시절의 집을 떠올리며 과꽃, 분꽃, 족두리, 맨드라미, 채송화 꽃씨들을 정성스레 심는다(「집에 대한 단상」). 아이들이 커서 삶에 지칠 때 꽃밭을 생각해주길 바라는 마음과 연결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이때의 심는 행위란 과거의 꿈을 현재에 재생시키려는 노력인 동시에 지금 이후를 상정하고 그것에 무언가를 걸어보는 행위라 할 수 있다. 무언가를 심는 일은 언제나 지금 이후를 상정하는 일일 수밖에 없지만, 그 미래란 꽃이 피는 근미래인 동시에 그 꽃피던 시절이 회상의 대상이 되는 조금 더 먼 미래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것은 꽃을 심은 ‘나’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다른 이들의 미래이다.

미래를 자꾸만 현재에 풀어놓으면서, 작가는 여러 존재들의 삶에 연루되는 방식으로 타인의 미래를 살아보려 한다. 가령 훔친 돈으로 초콜릿을 사서 변소에서 혼자 몰래 먹었다는 딸아이의 친구, 큰집에 얹혀사는 그 아홉살 아이가 슬픔을 거름 삼아 꽃처럼 피어날 수 있기를 바라며, 유년의 장면이 훗날 따뜻한 추억으로 다시 쓰일 수 있게끔 아이의 미래를 뻗어 기원한다(「바람 찬 생애에도 유년의 추억만은」). 그리고 떡 한조각, 부꾸미 한조각, 적 한조각을 비닐에 싸 대밭 건너 가지고 온 삼베 짜는 할머니에게서 자신의 미래를 재생시켜보며, 80년 광주 이후 한없이 헤매온 시간을 쓰다듬기도 한다(「세상의 따순 것」).

이렇듯 수많은 존재들의 시간이 동시 재생되기에 이 산문집은 소란하다. 다른 존재와의 얽힘이 언제나 기껍고 즐겁지만은 않으며 부대낌과 버거움까지 동반한다는 진실을 외면하지 않음으로써, 멈칫거림과 균열마저 고스란히 담아냄으로써 책에는 생기가 감돈다. 이를테면 작가는 곡성에서의 삶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시골살이에 관한 낭만 이면의 ‘고통’을 낱낱이 적는다. 그리고 그 불편한 시골살이 때문에 눈길을 행군했던 에피소드를 풀어놓다가도, 바로 그 덕분에 목격할 수 있었던 휘황한 달빛과 그것으로 가득 찬 산길의 정경, 자신이 목격한 그 압도적인 풍경으로 독자들을 데려간다(「시골살이의 참맛」). 낭만을 뒤집고 다시 뒤집어내면서, 아니 뒤집히고 다시 뒤집힘당하면서 생의 진실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한편 어미 된 자로서 지니는 ‘생명 살리는 마음’을 곡진하게 풀어놓던 작가가 “몸에서 아이를 떼어놓았다는 그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내 몸은 새털같이 가벼웠”(「빗속의 밤 외출」 125면)다는 어느 밤 외출에 대해 흐드러지게 늘어놓는 문장들도 각별하다. 작가는 벼르고 벼르던 외출을 하였으나 정작 약속장소로 향하지 못한 채 빗속에 출렁이는 한밤중의 벼들에 붙잡혀버린다. 비를 뚫고 향한 묘지에서 비석에 기대어 앉았다가, 울다가, 죽은 이들로부터 말할 수 없이 따뜻한 온기를 전해 받는 이 여정은 기이한 생기가 깃든 관능으로 독자들을 매혹시킨다. 이웃 여자에 관한 요동치는 감정을 서술한 산문도 흥미롭다. 푸른색 아이섀도우를 바른 그녀의 아름다움을 향한 질투와 경멸, 매혹의 감정을 통과해나가다가 “나를 화나게 하는 그 부분이 그녀의 아름다움임을 나는 안다”(「그 여자의 실루엣」 169면)고 고백하는 문장에 이르러서는, 작가의 소설 속에서 여성이 여성과 맺는 다채로운 관계의 양상을 떠올리게도 된다.

눈 밝은 몇몇 비평들에서 조명되었을 뿐 작가 연구에서조차 충분히 주목되지 못한 이 산문집은 『피어라 수선화』(창비 1994)와 『내 생의 알리바이』(창비 1998), 『수수밭으로 오세요』(여성신문사 2001) 등 작가의 작품들과 비스듬히 겹쳐 읽고 부딪혀 읽을 때 그 의미가 더욱 풍성해진다. 여성과 모성, 연약한 것을 향해 확장되는 돌봄, 가난과 생태적 사유, 역사의 소용돌이와 그 안의 인간, 공간과 지역의 의미, 부끄러움과 기억 등 공선옥의 작품세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 긴요하며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개념적 거멀못이 이 산문집이 발산하는 파동과 공명할 때 비로소 공선옥 작가론을, 1990년대와 2000년대의 한국문학을 더욱 풍부하게 구성해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작가가 산문집에 펼쳐 보이는 무수한 “밀고 당기기의 끝없는 길항작용”(121면)에, 한 인간 내면의 고유한 역동에 연루되어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도 있다. 텍스트가 발생시키는 시차(時差/視差)적 감각에 흔들리며 텍스트를 동시대적으로 읽어볼 수 있는 것이다. 그 차이를 무시하지 않고 거듭 굴려보며 그로부터 흘러나오는 차고 쓰고 달고, 불편하고 흥미로우며 익숙하고 낯선 것들을 끊임없이 감각해보는 것, 이를 통해 독자들은 정박되어 있다고 믿었던 자신의 자리로부터 조금 이동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작가는 다섯시 버스를 타고 석곡에 도착해 그곳에서 읍내 가는 일곱시 버스를 타고 일곱시 삼십분에 기차역에 내린 뒤 대합실 의자에서 장장 네시간을 더 기다려 기차를 타고 아들네 집으로 향하는 할아버지와의 만남을 기록하며, 그러한 여유와 너그러움, 푸근함이 사라져가는 도시생활에 흡사 절망과 가까운 감정을 표한다(「곡성역에서 만난 할아버지」).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망실에 대하여 독자로서 내가 느낀 감정은 좀더 복잡하다. 즉각적 그리움, 그러나 내가 본디 ‘그것’을 가지고 있던 것이 맞는가 하는 의문, 그리고 그것을 다시 되찾고 싶은지에 대한 확신 없음, 그리하여 그리움으로 완전히 밀착되지 못하는 서먹함, 그럼에도 피어오르는 이상한 그리움 사이를 오가는 경험이란, 텍스트를 밀고 당기며 관계 맺은 흔적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러한 역동적 연루에 기꺼이 동참해본다면, 산문집 속 더없이 아름다운 문장들도 새로이 감각될 수 있을지 모른다. 이 책은 ‘통통하고 반들반들하고 낭글낭글하게 잘 익은’ 자두들이 ‘좌락좌락’ 쏟아지듯 열린 자두나무, 별빛과 달빛과 밤이슬과 어두움이 그 자두나무 주변에 엉겨 만들어내는 시끄러움(「모든 꽃은 열매가 된다」), 매미 소리와 귀뚜라미 소리, “한 계절이 물러가고 한 계절이 다가오는 기미들, 그 계절의 소리들, 그토록 다정한 소리들”(「계절이 다가오는 기미들」 67면)에 대해 열띠게 서술한다. 자연의 그 모든 부산함에 난생처음인 듯 귀 기울이게 만드는, 쏟아져 내리는 문장들을 속수무책으로 맞는 경험은 귀하다. 한편 유과, 약과, 콩깨잘, 깨깨잘, 송화다식, 약밥, 쑥굴리떡, 증편, 백설기를 나열하는 문장들은 진득진득하게 늘어져 마음 한켠에 들러붙는다(「깨잘을 아는가」). 소리 내어 읽으면 더욱 제맛이 나는 문장들에 대해, 찰지게 담긴 한국어의 말맛에 대해, 하나하나 다정하게 매만지는 시선에 대해, 그 시선이 내게 남긴 흔적들에 대해 한참 더 이야기하고 싶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이 제시하는 ‘작가의 방’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다. 「영혼을 키우는 작가의 방」에서 작가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전유하여 창작론과 문학론을 펼치는 가운데, 자기만의 방을 “어쩔 수 없이 떠밀려서 맨 마지막으로 내게 돌아온 공간쯤이라고”(225면) 재정의한다. 그곳은 다른 공간을 사람들이 모두 차지해버려 오갈 데 없던 자가 기어든 후미지고 추운 공간이다. 그러나 퀴퀴하고 어두운 변소 안에 몸을 숨겨야 했던 이가 시렁에서 닭이 달걀을 낳는 장면을 목격하듯, 후미진 곳에 기어코 기어든 이는 바로 그로써 세계의 비밀스러운 경이를 목격하고 희망을 증언한다. 나는 여기에서 믿음을 읽는다. 어둡고 습한 방이야말로 빛나는 영혼을 키워낼 수 있으며 작가란 그 거칠고 불편한 공간을 마다하지 않는 존재라는, 존재여야 한다는 믿음. 문학이란 빛나는 영혼을 품어내는 바로 그 조그맣고 불편하고 후미진 공간에 다름 아니라는, 다름 아니어야 한다는 믿음. 이러한 믿음에 공감과 동조를 표하는 것보다 그 믿음의 시효성을 회의하며 지나간 한 시절에 가두는 접근이 오히려 수월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지금, 이 믿음을 밀고 당기며 도출한 각자의 믿음들을 꺼내어 ‘우리’ 사이에 굴려보며 대화하고 싶다. 밀고 당기며 굴려보기. 어쩌면 미래로 굴려보기, 이 산문집은 그런 것을 하고 싶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