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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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전지영 田志映

1983년 경북 포항 출생. 2023년 조선일보,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jjyoung314@naver.com

 

 

 

언캐니 밸리

 

 

당신의 목적지는 언제나 청한동 꼭대기였다. 저택이 줄줄이 이어진 언덕을 차로 오분 정도 올라가면 그 집이 보였다. 크기가 다른 자갈을 촘촘히 이어 붙인 외벽 덕분에 멀리서도 단번에 그 집을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매일 새벽 야간 운행을 마친 뒤 그 집 담벼락에 기대어 담배를 피웠다. 언덕에서 행인을 마주친 적은 없었다. 검은 세단이 지나가거나 담 너머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릴 때야 비로소 이 동네에 사람이 산다는 걸 실감하게 되었다.

차에서 내리면 이 도시 어디에서도 맡을 수 없는 청량한 공기가 코로 밀려들었다. 담벼락에 등을 붙이고 선 채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맞은편 산등성이를 따라 가로등이 켜진 스카이웨이가 보였다. 나는 턱 밑까지 점퍼 깃을 올렸다. 벽돌이 뿜어내는 차가운 기운이 잘 벼린 칼날처럼 등을 찔렀다. 압도적인 높이의 담에 잡아먹히는 기분이 들 때는 두렵기보다 무기력해졌다. 내가 당장 여기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과연 누가 알아챌 수 있을까.

작업실로 돌아오면 아침 일곱시였다. 내 작업실은 청한동에서 차로 사십분 떨어진 동네에 위치했다. 청한동은 도시의 북쪽, 작업실은 서남쪽 구석이었다. 내 작업실은 낡은 상가 건물 2층이었다. 아래층에는 영업한 지 이십년 된 통닭집이 자리했다. 가게는 보통 오후 네시에 문을 열지만, 새벽 공기에는 항상 기름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도시의 지대는 북쪽에서 서남쪽을 향해 미세하게 내려앉은 모양새였다. 청한동은 북쪽에서도 가장 지대가 높은 지역이었다. 도시 어느 곳에서든 멀지만 또렷하게 보였다. 한마디로 청한동은 달과 같았다. 어디에서나 보이지만,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곳이었다.

비가 내릴 때는 지대의 차이가 엄청난 결과를 만들곤 했다. 청한동 언덕에서 낮은 지대로 빗물이 흘러내릴 때, 통닭집에는 물이 무릎까지 차올랐다. 올여름에도 마찬가지였다. 사장과 나는 비를 맞으며 손으로 배수구를 팠다. 낙엽과 쓰레기가 끝도 없이 손에 잡혔다. 가게 안에 고인 물에는 묵은 기름이 둥둥 떠다녔다. 고무대야로 물을 퍼내는 동안 온몸에 오한이 들었다. 사정없이 몸이 떨리자 청한동에서 피운 담배 한모금이 더욱 간절해졌다.

작업실에 돌아오면 구석에 놓인 일인용 간이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조악한 스프링으로 만들어진 매트리스는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요란스럽게 삐거덕거렸다. 침대 옆에는 그간 그린 스케치와 팔리지 않은 캔버스 패널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쓰레기 더미처럼 쌓여갔다.

졸업 후 내가 판 그림은 딱 한점이었다. 그것은 당신을 그린 그림이었다. 그 작품은 최근 열린 개인전 마지막 날 팔렸다. 익명의 구매자. 나는 아직도 그 사람의 이름을 몰랐다. 큐레이터는 내 작품을 산 사람이 실소유자가 아닌 대리구매자 같다고 했다. 대리구매는 흔한 일이니 굳이 자세히 알 필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야간택시 운전은 나의 유일한 밥벌이였다. 누군가 직업을 물어보면 스케치 작가라고 답할 수 없었다. 그림을 판 돈으로 먹고산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나 심야배달도 해봤지만 석달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편의점에서는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흘렀고, 오토바이 위에서는 너무 빨리 흘렀다. 택시 안에서 시간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라디오를 듣거나 눈 붙일 겨를도 생겼다. 운이 좋을 땐 경치가 괜찮은 길을 달릴 수도 있었다. 사납금은 도시 근교로 나가는 손님을 네명 정도 태우면 절반쯤 메울 수 있었다. 앱 연동 콜택시 시스템 덕분이었다. 앱을 요령껏 이용하면 빈 차로 돌아다닐 필요가 없을뿐더러 장거리 손님을 태우는 일도 훨씬 수월했다.

나는 장애인고용공단에서 운수회사에 보급해준 택시를 몰았다. 내가 모는 택시는 왜소증을 가진 사람이 운전할 수 있도록 개조한 것이었다.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에 다리가 닿지 않기 때문에 페달 대신 핸드 컨트롤러가 장착되었다. 나는 장애인등록증이 없었지만 구인을 서두르던 사장이 눈감아줬다. 내게 있어서 배려란 주로 상대편 사정이 급할 때 베풀어지곤 했다.

스케치 주제는 택시에 탄 손님이었다. 나는 신호가 걸린 틈을 타서 룸미러에 비친 손님의 얼굴을 관찰했다. 그리고 손님이 없는 시각에 차를 세운 뒤 보조석 수납함에서 스케치북을 꺼냈다.

시간이 흐르면 기억은 휘발했다. 따라서 작업은 대부분 불완전한 기억에 의존했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기억의 왜곡 덕분에 가끔 예상치 못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룸미러로 손님과 눈이 마주치면 혹시 불편한 건 없느냐고 능청스럽게 물었다. 의미 없는 질문 하나만으로도 열명 중 아홉은 경계심을 낮추었다. 나머지 한명은 대꾸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 순간만큼은 시선을 받는 사람이 아닌, 주는 사람이 된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룸미러를 통해 볼 수 있는 부분은 승객의 하관과 어깨선 일부였다. 얼굴 전체를 볼 수 있기도 했다. 좌석에 몸을 푹 파묻은, 만취한 사람의 경우였다. 술에 취한 사람은 얼굴에 드러나는 사연이 모호했다. 얼굴만 봐서는 진심과 거짓을 구분할 수 없었다. 나는 술에 취하면 진심이 드러난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대개는 진심보다 야만성이 드러나곤 했다.

룸미러로 볼 수 없는 부분은 나중에 상상으로 그려넣었는데, 주로 강한 이미지를 가진 동물을 동원했다. 이를테면 부엉이의 눈, 말의 다리 같은 동물의 신체 일부를 차용했다. 동물 다리에서 배와 등으로 이어지는 단단한 근육, 뻣뻣한 털, 사막처럼 퍼석하게 갈라진 피부, 동공이 큰 눈동자, 주름진 눈꺼풀을 최대한 세밀하게 그려넣었다. 정밀하게 표현된 동물의 신체는 그림에 힘을 불어넣었다. 나는 강한 이미지와 약한 이미지의 조합에서 나오는 뒤틀린 균형이 마음에 들었다. 결핍은 강한 힘과 맞붙을 때 아름다움을 불러낸다고 믿었다.

역겹다. 그만해라. 졸업전시회에 온 동기가 문자를 보내왔다. 또다른 동기는 변태라는 두글자만 보냈다. 그나마 지도교수는 정중한 편이었다. 조금 더 가려보세요, 김군. 다 드러내는 건 결코 아름답지 않아.

동기들은 아무도 네 그림을 사지 않을 거라 했다. 전업작가로 살겠다는 내 의지를 비웃었다. 그 비웃음에서 악의를 압도하는 혐오감이 느껴졌다. 손님 없는 밤길을 달리다보면, 그들의 말이 환청처럼 들려왔다. 그럴 때는 헤어날 수 없을 만큼 쓸쓸한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

 

2월 말 즈음이었다. 누군가 작업실 철문을 정중하게 두드렸다. 그 사람은 자신을 청한경찰서에서 나왔다고 소개했다. 너는 살면서 경찰과 판사만 만나지 않아도 인생 성공한 거다. 엄마는 술에 취하면 내 좁고 굽은 어깨를 양손으로 움켜쥐고 그렇게 말했다. 엄마 말대로라면, 이제 나는 성공한 삶의 최소 조건조차 만족시키지 못하게 된 셈이었다.

작업실에 들어온 경찰은 뜸 들이지 않고 장신영이라는 사람을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모른다고 답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경찰은 휴대전화에 담긴 증명사진 한장을 내밀었다. 사진 속 여자는 분명 당신이었다. 한참 만에 당신의 이름이 장신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혼란스러웠다. 내가 아는 이름은 달랐다. 당신은 자신을 김승민이라고 소개했고, 모든 SNS 플랫폼에서 김승민이라는 이름을 썼다.

경찰은 1월 22일 그 사건이 일어났다고 했다. 들어서 아시지요? 그가 물었다. 청한동에서 그 정도의 사건이 일어났는데 모를 리가 없지 않냐는 투였다. 당연히 알았다. 묻지 마 염산 테러 사건.

이 도시에서는 하루에도 대여섯건씩 사건 사고가 일어났다. 라디오 정시 뉴스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오늘은 아버지를 때린 이십대 아들과 상습적으로 이웃집 앞을 서성이던 여자가 구류되었다. 내일 더 심한 뉴스가 들려와도 놀랄 일이 아니었다. 이 도시에서는 오늘의 사건이 어제의 사건을 덮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든 빠르게 잊었다.

그러나 염산 테러 사건은 조금 달랐다. 청한동의 물리적 위치와 인식 때문이었다. 청한동은 도시에서 완전히 분리된 동네였다. 사람들은 청한동 언덕에 사는 사람들의 안위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안전한 삶을 누릴 거라 여겼다.

“생각보다 보안이 허술한 곳이죠.”

경찰이 말했다. 담벼락 모서리나 쪽문 근처에는 CCTV 사각지대가 많을뿐더러 아예 방범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집도 있다고 했다. 마크만 붙여놓고 요금을 내지 않아서 서비스가 종료된 경우였다.

경찰은 사고 전 당신을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나라고 했다. 당신은 그날 밤 청한동 꼭대기 근처에서 괴한이 뿌린 염산을 뒤집어쓰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농도 35퍼센트, 2리터가량의 염산이었다. 당신의 비명소리에 잠자던 개들이 동시에 짖었다. 개 짖는 소리를 듣고 동네 주민 중 한 사람이 전화로 경찰에 신고했다. 목격자는 없다고 했다. 당신이 얼굴을 부여잡고 아스팔트를 뒹구는 동안, 아무도 밖을 내다보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당신은 어깨, 팔, 얼굴에 3도 화상을 입었다. 각막에 염산이 흘러들어가서 시력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의식이 돌아온 지 나흘째지만, 여전히 말을 하지 못했다. 입술과 턱 부근의 살이 녹아서 앞으로도 말을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수시로 업데이트되던 당신의 SNS가 일주일간 침묵했던 이유였다.

경찰이 확보한 사고 당일 CCTV 영상은 택시가 주차된 곳에서 찍혔다. 영상에는 택시에서 내린 나와 당신이 언덕 방향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키가 작으시군요. 화면에는 그렇게 안 보이는데.”

“그냥 언덕 입구까지만 데려다줬어요. 보시다시피, 전 오래 못 걷거든요. 언덕 꼭대기까지 차 없이 올라가는 건 불가능하다고요. 저 같은 사람들은 모두 그렇죠.”

“장애인등록은 되어 있지 않네요.”

“키가 작은 것도 장애가 됩니까?”

그가 미심쩍은 시선으로 내 몸을 위에서 아래로 훑었다. 나는 키가 140센티미터밖에 되지 않지만, 신체 기능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잔병치레는 손꼽았고, 호르몬 수치도 정상이었다. 독감 정도는 약 없이도 이틀이면 거뜬히 이겨냈다. 동기들처럼 수능과 실기시험을 치르고 미대에 입학했다. 특수 개조한 차이지만 운전도 하지 않는가. 병원에서는 내가 왜소증 범위에 분류되어도 신체 기능과 수명은 일반인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물론 내 외모가 눈에 띄는 건 부인할 수 없었다. 두꺼운 상체와 짧은 팔다리, 세개처럼 보이는 굵은 손가락. 그런 신체적 특징은 시선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그 시선이 아무렇지도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그저 익숙해졌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당신이 내 몸을 처음 본 순간, 잊었다고 믿었던 수치심이 순식간에 되살아났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자격지심이 과했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정작 당신은 나를 보고 놀라거나 겁먹지 않았으니까. 당신은 오히려 공허한 시선으로 눈 덮인 언덕 위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몇시간 동안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요. 몸과 정신이 완전히 분리되는 기분이에요. 그러니까 타인처럼 내 몸을 볼 수 있죠. 그 기분이 반복되면, 다른 사람을 볼 때도 몸이 아닌 영혼이 보여요.”

“나는 어떤가요?”

“당신은……”

당신은 한참 뜸을 들이다가 답했다.

“기괴해요.”

나는 일부러 소리 내어 웃었다. 당신은 웃는 나를 말없이 지켜보았다. 상처받았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그 마음조차 들킨 것 같았다.

 

경찰에게 걸어서 언덕을 오를 수 없다고 한 말은 거짓이었다. 1월 22일. 나는 당신과 함께 그 언덕을 올라갔다. 그날 이후, 당신을 다시 보지 못했다.

 

*

 

당신을 처음 택시에 태운 날에는 때 이른 첫눈이 내렸다. 11월 중순이었다. 나는 구도심 번화가 노변에 차를 세운 채 예약 표시등을 켜놓고 장거리 콜이 뜰 때까지 기다렸다. 라디오에서는 막 아홉시 지역뉴스가 시작되었다. 뉴스는 지하철 2호선 개통 소식으로 시작해 오늘 자정 3센티미터의 적설량을 기록할 거라는 기상예보로 끝맺었다.

뉴스가 끝날 무렵, 당신이 택시에 올라탔다. 예약 표시등이 켜져 있는데도 망설이는 기색이 없었다. 택시 잡기 힘드네. 당신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옷에 묻은 싸라기눈을 손으로 털었다. 시트와 유리창에 튄 눈은 금세 녹아 물이 되었다.

“청한동이요.”

당신은 무심한 표정으로 시트 위에 몸을 파묻고 눈을 감았다. 택시가 출발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것처럼 보였다. 예약 표시등을 못 볼 정도로 바쁜 사람치고는 기사를 재촉하지도, 초조하게 몸을 뒤척이지도 않았다. 나는 당신이 예약 표시등을 확인하지 않을 만큼 무심한 사람일 거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터널 안은 조용했다. 드물게 맞은편에서 차가 나타나면 윙, 바람소리만 내고 환영처럼 지나갔다. 당신은 눈을 감은 채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터널을 완전히 빠져나왔을 때도 당신은 눈을 뜨지 않았다. 뒷좌석에서 길고 불규칙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분명 잠들지 않았다. 나는 자는 척하는 사람을 누구보다 잘 구분했다.

깨어 있는 거지? 나는 자주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거실 소파에 기대 눈을 감곤 했다. 자느냐고 물어보면 언제나 힘없이 응, 하고 대답했다. 후꾸오까에 살던 시절, 엄마와 나는 번화가 한복판에 자리한 상가 2층에서 여러명의 이모와 함께 지냈다. 입학하기 전이었으니 아마도 예닐곱살쯤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이모들을 직장동료라고 칭했다. 이모들은 한국어와 일본어, 혹은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언어를 섞어 썼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는 후꾸오까 번화가에서 밤마다 ‘어떤 일’을 했다. 당시 나는 그 일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그러나 엄마가 이모들을 거느리고 찍은 사진이 ‘라라 클럽’이라는 자막과 함께 번화가 전광판에 번쩍이던 기억만큼은 또렷했다.

엄마가 일하지 않는 날에는 영문도 모른 채 엄마와 이모들 손에 끌려 나까스 유흥가로 나섰다. 그때 나는 중단발이었는데 이모들이 손으로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려서 꼭 자다 일어난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엄마는 내게 흰 버선과 높은 게다를 신기고 여성용 키모노 가운을 입혔다. 거리에는 흰색 와이셔츠와 검은 정장바지 차림으로 서류가방을 든 남자들이 무리 지어 오갔다. 주로 인근에서 일하는 회사원이었다. 엄마는 인도 한복판에 나를 세웠다. 나는 한 손에 빨간색 대나무 우산을 쓴 채 엄마를 올려다봤다. 엄마는 내 키모노 가운의 한쪽 어깨 부분을 확 끌어내렸다. 순식간에 가슴팍 맨살이 드러났다.

누군가 통이 긴 렌즈가 부착된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네온사인 때문에 플래시 불빛을 구분할 수 없었다. 나는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몰라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짧은 간격으로 반복되는 셔터 소리는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시끄러운 음악에 묻혔다. 엄마는 카메라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며 요란스레 손뼉을 쳤다. 이모들과 사진기사가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내가 예쁘다는 말을 들은 건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수치심을 참을 수 없었다.

그 사진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나는 엄마가 그 사진을 내다 팔았을 거라 짐작했다. 나까스 유흥가를 오가던 회사원 중 몇몇은 내 사진을 사서 자신이 아는 가장 비밀스러운 곳에 숨겨두었을지 몰랐다. 상상만으로도 역겨웠다. 그러나 나는 사진 찍는 일이 싫다고 말하지 않았다. 엄마를 돕고 싶었다. 당시 어린 내 눈에도 엄마는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린 것처럼 보였다. 일을 나가는 날보다 소파에 기대어 조는 날이 훨씬 많았다. 엄마는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다. 이제 여기서 볼일은 다 봤어. 엄마는 목단무늬 담요를 덮은 채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이 도시에 정착한 뒤부터 키가 자라지 않았다. 그 사실 자체는 견딜 만했다. 문제는 시선이었다. 노골적인 익명의 시선. 정수리부터 발아래로 움직이는 눈동자.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은밀한 혐오. 지난 십여년 동안 나는 견뎠다. 나까스 거리에 서 있던 순간을 떠올리면, 못 견딜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견디는 건 옳은가. 익숙해지는 건 필연적인가. 나는 아직 답을 몰랐다.

 

“창문 조금만 열어도 될까요?”

당신은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창문을 손바닥 너비만큼 열었다. 문틈으로 들이친 눈송이가 뒷덜미와 오른쪽 뺨에 들러붙었다. 타이어와 젖은 도로가 마찰하는 소리가 요란했다.

“눈이 계속 올까요?”

당신이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도 당신은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음 말을 이어갔다. 당신의 질문은 혼잣말이어서 굳이 내가 대답이 필요가 없었다.

“청한동은요. 눈이 쌓이면 차가 꼼짝할 수 없어요. 운전기사를 둔 사람들도 죄다 걸어야 하죠. 누가 그랬어요. 눈은 비랑 다르다고. 모두에게 공평하다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처음으로 당신이 청한동에 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 시간에 대체 당신은 청한동에 무얼 하러 가는 걸까. 나는 몹시 궁금해졌다. 눈이 와도 청한동 언덕을 올라가야 하는 당신, 계절에 맞지 않는 시스루 블라우스를 입은 당신, 지친 눈으로 창밖을 응시하는 당신, 그러나 청한동 언덕에 속하지 않은 당신.

나는 처음부터 당신이 좋았다. 당신은 분명 미인에 속했다. 그러나 모든 미인이 괜찮은 스케치 모델이 되는 건 아니었다. 스케치 모델에게는 부족함이 필요했다. 그런 결핍은 그림에 자연스러움을 더했다. 당신은 목이 굽고 양쪽 어깨 비대칭이 심했다. 지치고 피곤한 상태를 자세가 그대로 보여주었다. 물론 그런 모습 때문에 당신에게 매력을 느낀 건 아니었다. 내가 주목한 건 당신의 눈, 피곤을 견디려고 부릅뜬 두 눈이었다. 당신의 동공은 부엉이와 닮았다. 노랗고 투명했다. 스케치하는 동안, 나는 당신의 두 눈에 야만성을 담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당신이 배반하길 바랐다. 자신을 지치게 하는 일과 그 일에 품은 열망을.

 

*

 

내가 당신을 마지막으로 본 건 1월 22일, 27년 만에 도시의 최고 강설량을 경신한 날 밤이었다. 지금이 12월이니 벌써 열달이 흘렀다. 당신은 그날 앱으로 콜택시를 불렀다. 근처를 서성이던 내가 당신의 콜에 응했다. 당신은 내 택시를 몇번이나 거절했다. 그때마다 콜을 한 사람에게 오백원씩 벌금이 부과되었다.

나는 당신의 SNS를 지켜보면서 근처를 맴돌았다. 당신이 SNS에 현재 위치를 체크인하는 습관은 큰 도움이 되었다. 그 덕분에 당신이 있는 장소와 택시 부를 타이밍을 파악하기 쉬웠다. 처음 당신을 청한동에 데려다준 날, SNS에서 당신을 검색했다. 전화를 엿듣다가 알게 된 이름과 룸미러로 훔쳐본 얼굴을 어렴풋이 기억했다. 검색란에 김승민을 입력하면 끝도 없이 뜨는 리스트 중 서른일곱번째가 당신의 계정이었다.

내 작전을 당신이 몰랐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당신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그 시각, 눈 쌓인 청한동 언덕 꼭대기로 승객을 태우고 갈 기사는 없었다. 내키지 않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당신이 손님이라면 다른 이야기지만.

택시가 청한동 터널을 지났을 때는 눈이 너무 많이 쌓인 상태였다. 바퀴에 체인을 감아도 언덕을 오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언덕 입구에 택시를 세웠다.

“도저히 못 올라가겠습니다.”

당신은 한숨을 크게 내쉰 뒤, 말없이 차에서 내렸다. 그러고는 운전석 쪽으로 와서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 창문을 내리자 당신이 내 귀에 얼굴을 바싹 붙이고 말했다.

“혹시 저랑 언덕 중턱까지만 걸어가주실래요?”

당신은 내 몸을 본 적이 없었다. 작은 키를 들키기 싫었지만 당신의 부탁을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당신과 조금 가까워질 기회였다. 나는 차에서 점프하듯 내려 땅에 다리를 내디뎠다. 발이 미끄러지면서 하마터면 눈 위에 나뒹굴 뻔했지만 태연하게 차 문을 붙잡고 균형을 잡았다. 당신은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언덕 위를 올려다보는 중이었다.

“언덕에 가로등이 드물거든요. 혼자 올라가기 무섭네요.”

고개를 끄덕였지만 무시당하는 기분이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당신에게 묻고 싶어졌다. 나는 무섭지 않나요? 사람을 해칠 만큼 힘이 세어 보이지 않아요? 왜소한 몸과 짧은 팔다리로는 어떤 위협도 가할 수 없다고 생각하나요? 왜죠?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그저 요청대로 말없이 언덕을 오를 뿐이었다. 발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허벅지에 힘을 꽉 주고 평소보다 몇배 빠른 속도로 걸음을 옮겼다. 종아리와 발바닥이 금세 부어올랐다. 당신은 나보다 열걸음 정도 앞서 걸었다. 롱부츠를 신은 당신도 다리가 미끄러지는 건 마찬가지였다.

언덕은 무서우리만큼 조용했다. 언덕 밑에서 들리던 자동차 소음이 멀어지면서, 오로지 발아래에서 눈 으스러지는 소리만 들렸다. 저택 문을 지나갈 때마다 담벼락 안쪽에서 개가 낮고 사납게 짖었다. 이곳에서는 개 짖는 소리마저 크고 길게 울려 퍼졌다. 장딴지에 터질 듯 열이 올랐다. 얼굴에 흐른 땀과 차가운 공기가 만나면서 어지럼증이 몰려왔다. 당신이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섰다. 당신은 입에서 거칠게 흰 김을 뿜어냈다.

“조금만 더 가면 마을버스 정류장이 나와요. 거기서 잠깐 쉬었다 갈까요? 바빠요?”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숨이 차올라서 목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감각이 마비된 다리를 끌고 십분 정도 걸었을 때, 갈림길 한가운데 위치한 마을버스 정류장이 눈에 들어왔다. 짧고 좁은 벤치에는 한뼘 높이만큼 눈이 쌓여 있었다. 아무런 흔적이 없는 눈이었다. 벤치 옆에 녹슨 커피자판기 한대가 눈에 들어왔다. 먼저 도착한 당신이 가방에서 동전을 꺼내 자판기에 넣었다. 놀랍게도 버튼에 불빛이 들어왔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벤치 위에 쌓인 눈뭉치가 발아래로 후드득 떨어졌다. 당신은 김이 올라오는 종이컵을 내게 건넸다.

“미안해요. 몰랐어요.”

나는 계속해서 허벅지를 세게 주물렀다. 뭉친 근육이 자극되면서 신음이 새어나왔다. 당신은 그동안 내 허벅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렇게 힘들어할 줄 알았더라면 부탁하지 않았을 거라 했다.

“청한동 사람들은 모두 차를 가지고 다니던데요.”

“다 그런 건 아니에요. 저는 차를 몰 형편도 아니고요. 이 시간에는 마을버스가 안 다니거든요.”

청한동 언덕을 오르는 마을버스는 아침 아홉시부터 오후 여섯시까지 한시간에 한번 운행되었다. 주민들을 위한 노선이 아니었다. 가사도우미나 과외선생들이 주로 버스를 이용했다. 해가 진 뒤에야 청한동에 도착하는 당신은 마을버스를 이용할 수 없었다. 택시도 잡히지 않았다. 그럴 땐 택시비를 두배, 세배 더 부른다고 했다.

“콜 받아줘서 고마워요.”

“고맙다는 말은 좀 이상한데요? 당신은 오늘 내 콜 승낙을 여러번 거절했잖아요.”

“번번이 이 택시에만 연결되는 게 좀 이상해서요.”

“부근에 장거리 손님이 많거든요. 대기하다가 그쪽한테 콜이 들어온 거예요. 그게 다예요.”

나는 꿍꿍이가 없다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운전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요.”

당신이 조심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벤치에 앉을 때부터 내 다리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각오했다고 괜찮은 건 아니었다. 나는 커피를 한모금 들이켰다. 뜨거운 커피가 목을 지나 배 속으로 흘러들었다. 굳은 몸이 조금 이완되었다.

“사실 나는 크로키 화가예요.”

택시 운전은 생계유지 목적일 뿐이라고 말했을 때, 당신은 웃지 않았다. 오히려 누구나 두세개쯤 다른 일을 하며 살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이 언덕에 사는 사람들은 일 없이도 잘 살아요. 신기하죠? 그렇게 말하며 당신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작업 사진을 당신에게 보여주었다. 당신은 그림을 한장씩 유심히 보았다. 사타구니에 말의 하체를 붙인 그림을 보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나 싫다는 말은 하지 않고, 끝까지 참을성있게 사진을 넘겼다.

“이 그림들에는 문제가 있어요.”

당신이 휴대전화를 내게 다시 돌려주며 말했다.

“동물과 사람을 붙였잖아요. 근데 너무 매끈해요.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그래서요?”

“어딘가 좀…… 아녜요. 신경 쓰지 말아요.”

나는 실망한 기색을 감추고 휴대전화를 다시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당신이 내 그림에서 특별한 점을 발견해주길 바랐지만 헛된 희망이었다. 남은 커피를 입에 털어넣었다. 식은 커피는 쓰고 텁텁했다.

“그 집에도 그림이 엄청 많아요. 그림이나 조각품 모으는 게 이 동네 사람들 취미라고 하더라고요.”

익명의 구매자 대부분이 청한동에 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들의 손에서 작가의 가치와 미래가 결정되곤 한다는 사실도. 그러나 당신은 그런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었다. 미술사조, 작가의 생애나 창작배경 같은 건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당신은 청한동의 분위기, 상상 못할 만큼 부유한 삶, 필요한 건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 능력에 감탄할 뿐이었다.

“그 집에서 뭘 해요?”

내 물음에 당신이 종이컵을 두 손으로 쥐고 나를 향해 몸을 돌려 앉았다. 허리를 쫙 펴고, 다리를 가지런히 모은 뒤,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렇게. 앉아 있어요, 거실 소파에.”

“뭐라고요?”

“그냥 앉아 있다고요. 그 사람들이 원하는 거거든요.”

나이 든 부부라고 했다. 남편은 혼자서 거동도 못해 휠체어를 타고, 아내는 성인용 보행기에 의지해 겨우 집 안을 돌아다니는 부부. 일 도와주는 사람이 퇴근하고 나면 둘은 차려놓은 밥을 먹고 하염없이 당신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상한 요구는 안 해요. 몸을 만지지도 않고요. 나는 그런 일 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러면요?”

“거실 소파에 앉아 있다니까요. 말할 필요도 없어요. 같이 밥 먹을 의무도 없고요.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 돼요. 책 읽고, 영화 보고.”

그렇게만 하면 돈을 준다고 했다. 처음에는 의심스럽고 눈치도 보였지만, 이제는 편하게 쉬다 오는 기분이 든다고. 돈은 월급처럼 받는다고 했다. 매달 말일이 되면 당신은 오만원권 70장이 담긴 흰색 봉투를 받았다. 노부인은 그 돈을 작품 대여비라고 불렀다.

나는 불쾌한 기분 탓에 얼굴이 굳었다. 그 일이 편하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무방비 상태로 타인의 시선을 받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 쳐다보지 마요. 그쪽이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요.”

당신이 아랫입술을 살며시 깨물었다. 잠시 망설이더니 작정했다는 듯 코트 주머니에서 플라스틱 병 하나를 꺼냈다. 주먹보다 작은 크기의 약병이었다.

“비밀이 하나 있어요. 그쪽한테만 알려주는 거예요.”

당신은 뚜껑을 열어 손바닥에 내용물을 쏟아냈다. 흰색 알약이었다. 당신이 검지로 알약 더미를 흐트러뜨렸다. 서른개는 족히 넘어 보였다.

“훔친 거예요. 노부인은 몰라요.”

다량으로 구할 수 없는 수면제였다. 처방전이 없으면 마약 취급 받는 약이었다. 노부인은 거실 콘솔 서랍에 약병을 모아둔다고 했다. 당신은 노부인이 자리에 없으면 서랍을 열었다. 어떤 날은 한알, 또다른 날은 두알, 약병이 가득 채워진 날은 서너알씩 꺼내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이 향기.”

당신이 코트 깃을 내리고 고개를 한쪽으로 치켜든 뒤 목을 내 코 가까이 가져다 댔다. 아무 향도 나지 않는다고 했더니, 더 깊게 숨을 들이마시라고 재촉했다.

“노부인의 집에 다닌 뒤로 내 몸에서 그 집 향이 나요. 난 이 냄새가 너무 좋아요.”

당신은 상상만으로도 전율이 인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세상엔 돈으로도 구할 수 없는 게 참 많아요.”

당신 말이 맞았다. 나는 그제야 당신이 언덕을 오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도시 어디에도 없는, 그러나 청한동 언덕에는 존재하는 것들을 당신은 열망했다. 어쩌면 그 열망이 당신을 지치게 하는지도 몰랐다. 나는 상기된 당신의 얼굴을 외면했다. 종이컵을 손으로 꽉 쥐었더니, 남은 커피가 손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당신은 결코 제 발로 노부인의 집을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었다.

눈발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무릎에 쌓인 눈을 털고, 벤치에서 일어났다. 구겨진 종이컵을 버리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자판기에 가린 쓰레기통을 발견했다. 버려진 종이컵과 말라붙은 커피 자국 위로 눈이 한뼘 쌓여 있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언덕을 오르는 걸까. 나는 휴지통을 한참 바라보다가, 들고 있던 종이컵을 던져넣었다.

 

*

 

당신이 마지막으로 택시에 탄 그날 이후로도 나는 청한동 언덕 위로 올라가는 손님을 여럿 태웠다. 승차 위치는 죄다 언덕 초입이었다. 기본요금밖에 되지 않는 거리이기 때문에 마을버스를 놓친 사람들은 도박하는 심정으로 콜을 불렀다. 그들은 고맙다는 말을 연발하다가 운전석 시트 아래 복잡한 장치를 발견하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나 누구도 차를 세워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모두가 두려움을 견디면서도 기어이 언덕을 올랐다.

당신이 드나들던 집 앞에 차를 세운 사람도 있었다. 예순살 정도 되는 남자로 체크무늬 모직코트를 입었다. 유행은 지났지만 고급스러운 태가 나는 옷이었다. 그가 차에 타자마자 나프탈렌 냄새가 택시 안에 진동했다.

남자에게 목적지가 저 집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중후한 목소리에 피곤함과 짜증이 옅게 묻어났다. 조금 더 가까이 가주면 좋고. 남자가 반말을 툭 던졌다. 남자의 무릎 위에 올려진 플라스틱 연장통에서 연신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룸미러로 남자를 힐끗 쳐다보았다. 남자는 감기는 눈꺼풀을 억지로 치켜떴다. 언덕에 진입하자마자 남자는 한 손으로 연장통을 감싸 안고 다른 손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수화기 너머로 신호음이 들려왔다. 남자는 제 시각에 언덕에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업무 지시를 받는 데 꽤 익숙한 듯했다.

짧은 통화만 엿듣고도 남자가 반드시 그 집에 가야 한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꽤 절박한 일 같았다. 절박한 일은 대체로 위험과 두려움을 동반하는 법이었다. 전화를 끊은 남자는 플라스틱 통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경사가 높아질수록 통 속에서 연장이 흔들리는 소리가 격렬해졌다.

그를 집 앞에 내려준 뒤, 나는 평소처럼 담배를 피울 요량으로 담벼락 끝에 차를 세웠다. 인기척을 느낀 남자가 뒤돌아보았다. 남자가 악, 하고 짧고 굵은 괴성을 질렀다.

나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서 손에 쥐고 남자가 볼 수 있도록 흔들었다. 그러나 남자는 다시 악,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아예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플라스틱 통이 바닥에 떨어지며 입을 벌렸다. 통 안에서 작은 병과 알코올 솜, 비닐에 싸인 주삿바늘이 쏟아졌다. 남자는 쭈그려 앉아서 주름진 손으로 쏟아진 물건들을 주섬주섬 챙겼다. 코트 끝자락이 아스팔트에 이리저리 쓸렸다. 그사이 작은 병 서너개가 순식간에 내 발밑까지 굴러왔다. 남자는 주운 물건을 손에 잔뜩 거머쥐고 허겁지겁 기어왔다. 나는 남자가 겁을 먹을까봐 병을 바닥에 그대로 둔 채, 담벼락 쪽으로 뒷걸음질 쳤다.

마침내 남자가 내 앞에 떨어진 병을 손에 넣었다. 나는 그가 오해하지 않도록 담벼락에 등을 붙이고 서서 꼼짝하지 않았다. 몸을 일으킨 남자가 내게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말하면 안 됩니다.”

“네?”

내가 되묻자, 남자가 병을 든 손을 앞으로 뻗었다.

“이거요. 말하면 안 된다고요. 큰일 납니다.”

“누가요? 제가요?”

“아니, 저 말입니다. 제가 큰일 난다고요.”

나는 그 큰일이 무엇인지 묻지 못했다. 다만 플라스틱 통에서 쏟아진 의료용품이 적법한 물건이 아니리라는 것쯤은 눈치챘다. 내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자 남자는 안심했다는 듯 플라스틱 통을 들고 저택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초인종을 누른 뒤에도 내가 서 있는 쪽을 자꾸만 힐끗거렸다. 그는 낡은 모직코트 깃을 세워서 얼굴을 가렸다. 잠시 후 육중한 소리를 내며 대문이 열렸다. 남자는 재빨리 문틈 안으로 사라졌다.

반쯤 태운 담배꽁초를 담벼락에 문질렀다. 매끈하게 다듬어진 자갈 표면 위에서 담뱃불이 사그라졌다. 그사이 스카이웨이 너머로 해가 밝아왔다. 언덕을 비추는 가로등 조명이 일제히 꺼진 순간, 다시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노부인은 보행기에 몸을 지탱한 채 저택 문을 빠져나왔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꽁초를 황급히 바닥에 버리고 발로 비볐다. 노부인은 얼굴에 알 수 없는 미소를 띤 채, 내 눈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굽은 등 때문에 나와 눈높이가 비슷했다. 그러나 노부인이 멈춰 서서 꼿꼿이 등을 세우자 형언할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누굴 기다립니까?”

노부인은 턱을 덜덜 떨면서도 단어를 하나씩 꼭꼭 씹어 발음했다. 알아듣지 못할 말은 하나도 없었다.

“김승민씨는 집에 갔습니까?”

“누구요?”

“김승민이요.”

내가 김승민의 이름을 한글자씩 또박또박 발음했다. 노인이 피식 웃었다. 주름진 얼굴이 더욱 심하게 일그러졌다. 웃는 건지 찡그리는 건지 파악할 수 없었다. 표정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깊은 공포감에 휩싸였다.

“비슷한 사람이 워낙 많아서……”

“이 집에 드나든 걸로 아는데요.”

“이 나이엔 뭐든 기억이 잘 안 나. 내일이 되기 전에 당신을 만난 것도 잊을 거요.”

노부인은 아까보다 더 심하게 턱을 떨었다. 그녀는 보행기를 끌고 내게 다가오면서 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바퀴로 짓이겼다. 담배가 납작하게 도로에 달라붙었다.

“방금 우리 집에 들어온 사람이 택시비를 안 줬다기에.”

노부인은 어깨에 걸친 카디건 주머니에서 오만원권 한장을 꺼냈다. 분명 요금을 받은 것 같은데, 받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이거면 충분하지요?”

금액이 너무 컸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돈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기본요금 거린데요.”

“우리 집에 오는 사람은 다들 조금씩 더 챙겨가지. 약이든, 돈이든, 장물이든. 그게 내 계산법이야.”

노부인이 눈을 슬쩍 치켜뜨면서 두 손으로 공손히 지폐를 내밀었다. 돈을 받을 때까지 손을 거둘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쭈뼛거리며 돈을 받아들었다. 그제야 노부인 표정이 밝아졌다.

노부인은 왔던 방향으로 천천히 보행기 머리를 돌렸다. 내일부터는 자갈에 담배꽁초를 비비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대문 쪽으로 향했다. ‘내일부터’라는 말이 귀에 꽂혔다. 그건 일종의 협박이었다. 내 습관을 알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켜보겠다는 뜻이었다.

노부인은 한 손을 보행기에 지탱하고 나머지 손을 최대한 뻗어 초인종을 눌렀다. 저택 문이 열리자 노부인은 금세 자취를 감추었다. 나는 그녀가 집 안으로 들어간 후에도 한동안 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경찰은 당신이 청한동 꼭대기 집에서 매주 노부부에게 요가를 가르쳤다고 말했다. 그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 모두 그렇게 증언했다. 노부인은 여든아홉살이었다. 그 몸으로 요가를 배운다는 말을 경찰은 정말 믿는 것일까.

“거짓말이에요.”

“그 사람들이 뭐 하러 거짓말을 합니까?”

나는 경찰에게 김승민, 그러니까 장신영의 SNS를 보여주었다. 경찰은 피드를 하나씩 살펴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장신영씨 SNS라는 보장이 있습니까?”

“네?”

“얼굴도 안 보이고, 글 한줄 없고, 풍경사진만 있는데? 청한동 스카이웨이에서 사진 찍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아십니까? 이걸로 뭘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경찰의 말이 맞았다. SNS를 다시 확인해보니 거기에는 당신이 김승민, 아니 장신영이라고 확신할 만한 정보가 없었다. 저택이 보이는 사진을 찍었다고, 청한동 스카이웨이를 찍었다고 당신이라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거기다가 경찰의 말처럼 가짜 계정일 가능성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요즘은 계정을 훔친 뒤 똑같이 꾸미는 사람이 많아서 문제라고 경찰이 투덜거렸다.

그렇다면 내가 매일 밤 지켜본 SNS는 누구의 계정인가. 내 택시를 탔던 사람은 누구인가. 언덕 위에서 자판기 커피를 함께 마신 사람은? 김승민, 장신영 아니면 또다른 사람인가. 그들이 모두 동일인이기는 한 걸까.

다행히 경찰은 나를 용의선상에서 제외한 상태였다. 사고가 일어난 시각, 청한동 언덕 밑에서 도심으로 향하는 손님을 태운 사실이 콜택시 앱으로 확인되었다. 경찰이 나를 찾아온 건 당신이 내게 단서가 될 만한 정보를 흘렸나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여자는 그냥 앉아 있다고 했어요. 내가 아는 것도 그게 전부입니다.”

가끔 노부인이 당신에게 무엇을 원한 건지 궁금했다. 건강하고 젊은 사람 특유의 생기와 아름다움 같은 걸까. 그런 건 다른 사람도 제공할 수 있지 않은가. 나는 노부인이 당신의 이름을 기억할 거라고 생각지 않았다. 그녀는 수많은 김승민을 알았을 테니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소파에 앉아 있는 여자, 여자들, 혹은 사람들.

나는 노부인이 당신에게 염산을 부었다는 가정을 접었다. 경찰의 말처럼 거동이 불편할뿐더러 당신을 해칠 만한 동기가 없었다. 무엇보다 그들이 귀찮고 수고로운 일을 벌일 리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노부인이야말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짐작했다. 수면제를 수시로 약병에 채워넣고, 연장통 든 남자의 뒷배를 봐주며, 대리인을 통해 그림을 사 모았다. 어쩌면 노부인만이 당신의 아름다움을 살 수도, 해칠 수도, 끝내 간직할 수도 있는 사람 아닐까.

 

*

 

나는 여전히 야간택시를 몬다. 경찰이 다녀간 뒤에도 습관처럼 청한동 꼭대기에 올라가 담배를 피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날씨가 더워지면서 점점 청한동에 발길을 끊는다.

라디오에서 청한동 염산 테러 사건에 대한 새로운 뉴스를 듣는다. 청한동 일대 저택의 조경을 담당하는 기술자가 강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그는 장신영이라는 이름을 모른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일관성이 없고, 바로 그 점이 경찰의 의심을 증폭시킨다. 뉴스를 듣다가 웃음을 터뜨린다. 아직도 장신영이 누군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기가 막힌다.

올겨울에도 눈이 많이 내린다. 도시의 적설량은 수시로 경신된다. 구도심 거리에는 여전히 택시를 잡으려는 손님이 넘친다. 나는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장거리 콜이 들어오길 기다린다. 라디오에서 아홉시 정각 뉴스가 흘러나온다. 지하철 2호선 일부 구간에서 전기 공급 장애로 열차 운행이 지연되고, 구도심 인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불이 났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그때 누군가 택시 문을 연다. 시트가 푹 꺼지면서 공기 빠지는 소리를 낸다. 손님은 내게 청한동으로 가자고 말한다. 터널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라디오가 지직거리기 시작한다.

여자는 언덕 입구로 나를 안내한다. 나는 여자의 안내대로 언덕 앞 신호등에서 차를 세운다. 좌회전 신호에 초록불이 들어온다. 여자는 요금을 두배로 줄 테니,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집 앞까지 가달라고 부탁한다.

나는 여자의 말을 못 들은 척한다. 여자는 언덕으로 올라가자는 말을 못 들었느냐고 화를 낸다. 나는 신호가 바뀌어도 액셀을 밟지 않는다. 여자가 초조한 나머지 몸을 운전석 쪽으로 바싹 당긴다. 그제야 개조된 운전자 시트를 발견한다. 여자는 처음으로 내가 위험한 사람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여자의 우려와 달리 나는 얌전히 집 앞에 차를 세운다. 여자는 거스름돈은 필요 없다고 말하고 만원짜리 지폐 세장을 보조석에 던진다. 나는 그 돈을 집어서 요금함에 넣는다. 여자는 대문을 향해 종종걸음 치며 택시에서 멀어진다. 걷는 내내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는다. 마침내 대문이 열리고, 여자는 황급히 문 안으로 사라진다.

이번엔 내가 택시에서 내린다. 아무리 주머니 속을 헤집어도 담배가 없다. 담뱃갑을 어디에 흘렸는지 기억을 더듬는 동안, 어느새 나는 저택 문 앞에 서 있다. 문틈으로 푸른 잔디가 보인다. 그제야 한번도 그 집의 내부를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나는 있는 힘껏 손을 뻗어 초인종을 누른다. 문은 열릴 기미가 없다. 초인종 소리는 대답 없는 질문처럼 허공에서 사라진다.

고개를 들어 문을 감싼 담벼락을 살핀다. 자갈은 크기가 제각각이다. 담에 한쪽 뺨을 가져다 댄다. 살을 에듯 차가운 기운이 전해진다. 나는 조금 뒤로 물러서서 담을 올려보다가, 불룩 튀어나온 자갈 위에 왼발을 딛는다. 자갈은 시멘트에 단단히 박혀 있다. 그다음엔 두 손을 뻗어 어깨쯤 위치한 자갈을 하나씩 움켜쥔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손아귀에 더욱 힘을 준다. 담을 반쯤 올라갔는데도, 방범 경보음은 울리지 않는다. 담 너머에서 개가 낮고 사납게 으르렁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