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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이광호 『노회찬 평전』, 사회평론 2023

너는 그들에게 한번이라도 희망이 된 적 있느냐

 

 

윤영상 尹永商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연구조교수 yzerou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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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평전』(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노회찬재단 기획)이 나왔다. 600면에 이르는 두꺼운 책이다. 이 책을 위해 221명을 인터뷰했고, 준비한 시간만 4년이 넘는다. 저자 이광호는 나를 포함한 여덟명의 평전기획위원들과 문제적 인물 노회찬을 어떻게 기록하고 묘사할 것인가를 놓고 치열하게 토론했고 그렇게 평전이 완성되었다. 평전을 쓰는 일의 9할 이상은 철저히 저자의 몫이었다. 사실상 1800면이 넘는 분량의 원고를 만들어놓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그것을 덜어내고 줄일 수밖에 없었던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

『노회찬 평전』은 북에서 남으로 월남한 노회찬의 가족사부터 시작하여 그의 상징과도 같았던 첼로와 그가 직접 작곡한 노래 소연가, 선운사 참당암의 결의와 사회주의운동, 결혼과 투옥, 감옥에서 맞이한 사회주의권의 붕괴, 진보정당추진위원회 활동, 민주노동당 창당, 국회 입성과 분당, 진보신당 창당과 또 분당, 통합진보당 창당과 또 분당, 그리고 정의당,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 출범, 드루킹사건과 서거로 이어지는 그의 삶의 궤적을 다룬다.

누군가의 삶에는 수없이 다양한 사건과 궤적, 그리고 그 밑바탕에 흐르는 복잡한 고뇌와 감정과 의지가 녹아 있다. 그것을 제삼자가 얼마나 담아낼 수 있을까? 그렇기에 누군가를 설명하기 위해 특정한 사실과 사건들을 ‘선택’하는 그 자체부터 평자의 관점과 평가를 담을 수밖에 없다. 하물며 그런 사건과 삶에 대한 해석에서는 오죽하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삶을 쓰고 평하는 일은 항상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더구나 노회찬과 같은 논란의 인물인 경우에는 그런 선택과 해석이 또다른 논란을 낳을 걱정도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진보정치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노회찬이라면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했을까?’를 되물었다. 어쩌면 『노회찬 평전』을 읽는 사람들도 그런 물음을 머릿속에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것을 의식한 저자의 고민도 깊었을 것이고, 어깨도 무거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선택’하고, 자신의 생각을 담을 수밖에 없었다. 그 고민이 책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노회찬 평전』은 저자 이광호의 ‘작품’이다. “평전과 전기의 중간 지점 어딘가”(7면)에 이 책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라는 김창희 평전기획위원장의 발간사는 그런 고민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극단적 양당정치가 지배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노회찬과 같은 해학과 유머, 사교성과 유연함을 가진 사람을 발견하기는 정말 힘들다. 재벌과 부자들을 옹호하는 데 급급하거나 과거 민주화운동 경력을 훈장 정도로 생각하는 정치인들 사이에서 6411버스를 타고 힘든 하루를 시작하면서도 삶에 대한 긍정의 에너지를 잃지 않은 노동자와 서민들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그런 정치인을 발견하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다. 그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동지들과 함께 국가를 운영하고 세상을 바꾸기 위한 공부와 학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노회찬 평전』 곳곳에는 바로 그런 그의 삶이 담겨 있다. 그래서 그가 갑자기 생을 마감했을 때 그와 함께 오랜 세월을 함께해왔던 사람들만이 아니라 그런 정치인이 있었음을 자랑스러워했던 수많은 이들이 슬퍼했고, 안타까워했다.

“나는 노회찬이다. 그렇다. 미래 그 아무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할 노회찬인 것이다.”(57면) 그가 부산고등학교 입학시험에서 떨어진 뒤 눈물을 흘리며 일기장에 썼던 내용이다. 중학교 3학년이 썼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그 속에 담긴 결기가 단단하다. 그와 26년 3개월을 같이 부대껴왔던 내가 보기에도 그 말은 깊은 울림을 준다. 그렇다. 노회찬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중학생 시절 그의 일기는 그가 그리는 스스로의 모습을 머리에 새기면서 다짐하고 경계하고 행동하는 그의 삶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의 일기는 그의 삶을 해석하는 징표였다. 나는 그와 함께하는 매순간 그런 그의 모습을 보았고, 그의 결의를 느꼈다. 그도 사람이기에 실수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남에게 보이기 싫은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를 경계했다. 그리고 기록했다. 가끔은 그런 그의 모습이 낯설기도 했지만, 그는 그 속에서 그다웠다. 나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그의 그런 모습을 배웠으면 좋겠다.

“시인 안도현이 우리에게 물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오늘 나는 나에게 묻는다. 너를 거부한 사람들을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 너는 그들에게 한번이라도 희망이 된 적 있느냐.”(382면) 2008년 노원병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진 뒤 노회찬이 했던 말이다. 그의 패배를 아쉬워했던 사람들이 그를 위로하고 있을 때, 그는 자기 자신과 동지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남 탓하지 말고 스스로의 부족함을 반성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그렇게 그는 스스로를 채찍질했고, 그가 소속했던 ‘진보정당’도 그렇게 생각해주길 원했다.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는 그의 마지막 말도 그런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을까.

유달리 부끄러움이 많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면서도 자기 자신에게 엄격했던 그는 못다 이룬 꿈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났다. 그는 세상을 뜨는 그 순간까지 우리 모두를 정신 버쩍 들게 만드는 죽비였다. 그러나 시간은 잔인하다. 그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지고, 치열했던 그의 삶과 문제의식도 잊혀가기 시작했다. 마치 그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세상은 흘러가고 있는 듯하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삶을 특정한 방식으로만 불러내는 것이 불편하다. 그런 식으로 노회찬이 박제되고 있지 않은지 두렵다. 그의 삶은 하나의 시각으로만 해석하기에는 너무도 품이 넓고 다채로우며, 치열했기 때문이다. 그를 만났던 많은 이들은 저마다의 기억과 느낌으로 노회찬을 떠올릴 것이다. 『노회찬 평전』이 그런 사람들의 기억이나 감정을 되살리는 불쏘시개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마 그를 기억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노회찬 평전』조차도 수많은 노회찬 중의 하나일 수 있다. 이 책을 매개로 그 수많은 노회찬이 곳곳에서 숨 쉬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는 다시 우리 마음속에 살게 될 것이다. 나는 오늘도 나의 노회찬과 함께 토론하고 논쟁한다. 그러나 그 논쟁 이후의 삶은 어김없이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아쉽다. 노회찬 선배,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