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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박경희 朴卿喜
1974년 충남 보령 출생. 2001년 『시안』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벚꽃 문신』 『그늘을 걷어내던 사람』 등이 있음.
rud4151@naver.com
농부의 봄날
길가에 깔아 말리는 벼를 발로 툭, 차고 가는 학생을 불러
낱알 하나까지 주워 오게 하고
밥알 하나까지 박박 긁어 먹게 했던 아부지
살아생전 목돈 한번 쥔 적 없는 손에는 늘 쭉정이만 가득했다
농약 비료 안 뿌리고 똥거름으로 밭농사 지으면 월급을 주는
땅이 더 거름질수록 해 월급, 달 월급, 별 월급을 준다면
사람들은 농사를 지을까?
써레질 끝난 논바닥을 환하게 바라보는 농부의 눈동자 속
소금쟁이와 개구리 울음소리가 출렁이고
땅 한평에 먹고살 수 있을 정도의 상추, 가지, 고추, 쑥갓, 토마토, 오이를 심어 이웃과 나눠 먹을 수 있다면
서로를 귀하게 여긴 밥상 위에 살구 꽃잎이 먼저 든다면 사람들은 농사를 지을까?
오는 세상 귀퉁이를 반딧불로 비춘다면
반짝이는 숨죽임에 바람의 춤을 춘다면
사람들은 농사를 지을까?
영준이 할아버지 군청 앞에 쌀가마니 풀어놓고
입에 들어가는 밥이 중요하다고
우리 쌀은 논바닥에 남의 쌀은 밥상 위에
푸푸, 날아다니는 밥알 목구멍에 넘기는 건 아니라고
하소연하다가 쓰러져 돌아가셨다
소걸음으로 가도 저승길은 먼 길인데
무릎걸음 걷는 장애 아들 두고 어찌 가셨을까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 보기 싫다고 후다닥 놓은 생
뉴스를 보다가
먹던 숟가락 밥상 위에 던진 아부지
영준이 할아버지 돌아가셨다는 전화에
쪼그려 앉아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구부정한 논 한마지기 사라졌다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