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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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구 閔九

1983년 인천 출생.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배가 산으로 간다』 『당신이 오려면 여름이 필요해』 등이 있음.

azino@naver.com

 

 

 

행복

 

 

행복하니까 할 이야기가 없다

종일 밥을 굶어도 맛있다

 

오늘 뭐 먹었어?

뭐 하고 있어?

 

네가 물으면 떠오르는 게 없는데

이런 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다

 

꿈에서 은사님을 만났다

행복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내 따귀를 때렸다

 

(행복하시냐는 말로 들은 걸까)

 

살아 계실 때 선생님이 그랬다

시인은 불행하다고

그림자가 없다고

 

꿈에서 맞은 매는 아직 얼얼한데

사랑이나 마음 같은 단어들은

강화도 펜션에서 보이는 나라처럼 멀고

 

나는 불판의 연기가

그쪽으로 날아가는 게 미안해서

평소보다 허겁지겁 고기를 먹으며

 

북쪽의 조그만 마을을

안개가 가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작 시인이라는 작자가

 

끝났다

내려놓을 말이 없다

 

밀고 나가서 쓸 것인가

그만둘 것인가

 

불행은 내게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며

너는 과거에도 그랬다고

타이르는데

 

행복해서

너무 행복해서

 

남의 말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렸을 때 몸이 약해서

헛것을 많이 봤다

 

하루는 내 생일이었고

둥그런 상 주변에

 

처음 보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함께 노래를 불러줬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그때의 장면은 희미하고

 

그들이 누구였는지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달콤한 버터케이크와

사랑한다고 말해준

사람들의 목소리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