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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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지 張怡志

1976년 전남 고흥 출생. 2000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

시집 『안국동울음상점』 『연꽃의 입술』 『라플란드 우체국』 『레몬옐로』 『해저의 교실에서 소년은 흰 달을 본다』 등이 있음.

poem-k@hanmail.net

 

 

 

반복

 

 

연출 선생이 배역을 정하는 데 골몰한다 모두 폴이기를 바라지만 폴은 한명이다 나는 폴이다가 리나가 된다 리나는 미륵이 되고 미륵은 폴이 된다 아침에 쫓는 사람이다가 저녁에 쫓기는 사람이 된다 그러나 편지는 오고 있다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편지가 온다 나는 연출가가 된다 모두 폴이 되려 하니 큰일이다 극단 대표는 연극을 무대에 올리지 않는다고 통보한다 거울 안에서 스핑크스는 부은 발을 주무른다 나는 극단 대표가 되어 연극을 본다 무대 위에서 랭보가 말한다 나는 타자다! 중요한 것은 그뿐이다 나는 타자다, 이 말이 누구의 것인 줄도 모르고 나는 내뱉는다 소년에게 그 말을 해준 것이 바로 나일까 모든 배역을 거치려고 한없이 돌아오는 윤회 모든 사람이 되려고 한없이 돌아오는 나 kryptonite 아침에 일어나면 까닭 없이 슬프다 무엇을 잃었는지 잘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잃어버린 자는 되찾은 자가 되리라 편지가 오리라

 

 

 

책갈피

kryptonite

 

 

당신과 함께였을 때 저는 스무살이었고 어느날 깨어보니 서른살이 되어 있었어요 친구들이 편지를 읽어주러 왔어요 우리가 주고받은 편지를…… 시간이 저를 비눗방울 불듯 불어댔어요 손을 뻗어도 잡을 수 있는 것이 없었어요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바람,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한숨…… 우리는 항상 광주로 되돌아가지만 광주를 졸업할 수는 없어요 노란 우산을 쓴 인파 그리고 피 흘리는 소녀 피 흘리는 양곤 블루싸이공 꽃잎 꽃잎 사랑의 시간, 우리가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 있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