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김중일 金重一

1977년 서울 출생. 200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국경꽃집』 『아무튼 씨 미안해요』 『내가 살아갈 사람』 『가슴에서 사슴까지』 『유령시인』 『만약 우리의 시 속에 아침이 오지 않는다면』 등이 있음.

ppooeett@naver.com

 

 

 

미래의 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마중 왔던 아이들

 

 

*

 

미래에서도 빙수는 먹고 싶은 아이들을 위해 지구는 빙수기처럼 자전한다 사월의 눈이 내린다 잠시 흩날리던 빙수들이

공중에 스며든다 어린 공중들의 작은 입속으로 들어간다

미래의 아이들을 지금의 아이들이 따라간다

 

*

 

침대에 누워 창문에 맨발을 대본다

초여름의 바닥에 침전물처럼 남은 늦봄의 부스러기가 맨발에 밟힌다

발목까지 감기고 차올라, 발목이 지느러미처럼 흔들린다

 

아이가 남긴 눈물은 방 모서리에 헬륨 풍선처럼 떠 있다

풍선 속의 헬륨 한모금 삼키니 아이의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미래는 죽은 우리 강아지 이름이잖아

미래는 언제 태어났어? 얼마나 살고 얼마나 죽었어?

 

얼마나 살고 죽었나 고요히 손가락을 접고 있는데, 오랜만에

뒷산 산책 나와 신이 난 미래처럼 저녁이 나를 끌고, 나보다

먼저 저만치 달려간다, 불시에

멈추고 콧구멍을 무덤에 박으면서, 따라잡았다

싶으면 순식간에 멀어진다, 미래는 아이들을

아이들은 한결같이, 좋아한다 미래를

미래 주위에 늘 아이들이 모인다

그래서 불시에 덮치듯 제공되는 막차를 타고 망설임 없이 아이들이

아이들이 무수히 먼저 떠난, 미래가 있는 곳으로 떠났다

 

*

 

미래는 어메이징한 놀이동산일까 빙수로 만든 성에 모닥불을 피우고 캠핑해도 바이킹처럼 배가 뒤집어져도 괜찮은 컴컴한 귀신의 집 밀실에서 도망도 못 가게 의자에 결박되어 있는데 엄마의 탈을 쓴 도깨비가 몽둥이를 들고 쫓아와도 괜찮은

미래는

미래로

한번 돌아보지도 않고 미래로만 자석처럼 달라붙고

 

다 갔다 싶으면 자꾸 떠나고 없는 미래는, 영원히 이 ‘아이’의 몸으로는 갈 수 없다는 걸 아주 착한 아이만 볼 수 있고 알 수 있지

 

*

 

한 아이가 인도를 넘어온 취한 흰색 승용차를 잡아타고 미래로 출발한다

오빠가 다음달에 선물해줄 침대가 배송돼 있는 미래

바쁜 엄마가 또다시 태어나 당황해 죽을 듯 우는 미래

밀린 잠을 자는 미래

죽어도 곁에서 자는 미래

흰 털이 바람처럼 아름다운 미래와 닮은,

 

다음 미래 한마리 입양해 키우는 미래로

조종석에 앉아 호흡기를 쓰고 회차(廻車) 없는 조건으로 출발한다

다시는 미래 없는 여기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