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심사평

 

 

 

제26회 창비신인소설상에는 모두 1496편의 작품이 응모되었다. 심사를 진행하면서 응모자들의 기량이 고르고 안정적이라는 점이 무엇보다 눈에 띄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글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소설은 시대적 삶에 호응하는 일정한 형식적 완결성을 요구한다. 이야기의 소재가 아무리 참신해도 그 이야기의 전개를 뒷받침하는 탄탄한 서사와 적확한 묘사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성공적인 소설로 성립하기 어렵다. 이번에 응모된 작품들이 보여준 고른 완성도는 여전히 소설만이 지니는 고유한 형식의 힘을 깊이 고민하고 연마하는 사람들이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음을 기쁜 마음으로 확인하게 해주었다. 이와 같은 소설적 구성의 완성도와 더불어 더욱 중요한 것은 한편의 소설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작가적 개성과 주제의식의 밀도를 가늠하는 일이다. 많은 작품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안정적인 형식을 확보하고 있음에도 기존의 정형화된 소설 문법에 머무르는 점은 아쉬운 일이었다. 소설의 형식적 완성도를 탁마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과 시각을 지나치게 도정해버렸다고 한다면 성급한 판단일까. 독자는 언제나 굳어진 타성을 돌파하고 뻗어나가려는 박력에 갈급하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스무편의 작품은 나름의 작가적 개성을 또렷하게 드러내고자 분투한 흔적이 역력했다. 긴 논의 끝에 심사위원들은 「불난 집」과 「늑대를 보던 밤」, 「성북동, 집」을 최종 후보로 좁혀 집중적으로 토론했다. 이상준의 「불난 집」은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인물의 복잡한 심리적 반응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예기치 않은 가족의 방문과 회사에서 인사관리자로서 겪는 곤혹을 교차해 서술한 이 작품은 화자가 느끼는 내적 분노와 냉소, 체념 어린 피로감을 섬세하게 직조하고 있다. 함께 응모한 작품을 통해서도 인간관계의 미묘한 결절 지점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소설적 시선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불합리한 상황에서 비롯된 인물의 분노와 의구심이 입체적인 서사로 더이상 확장되지 못하고 상황의 수동적 추인과 체념에 머물면서 소설의 진폭이 급속하게 축소된다는 문제가 끝내 해소되지 않았다.

금지현의 「늑대를 보던 밤」은 차분하고 신중한 서술자의 시선을 통해 가족관계에 내재한 기억과 상처를 찬찬히 풀어가는 방식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얼핏 보면 밋밋해 보일 수 있는 사건들의 움직임을 차곡차곡 축조하는 소설의 흐름은 감정적 여운들을 섬세하게 만들어낸다. 그러나 관계의 갈등을 짐작하고 해석하는 인물의 반응들이 일정한 틀에서 반복되면서, 기존 가족서사의 관습화된 유형들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방식으로 마무리된 점은 아쉬움을 남겼다.

기명진의 「성북동, 집」은 중편 분량의 이야기를 단숨에 몰입해 읽게 만드는 강렬한 서사적 속도를 지닌 작품이다. 다채로운 사건을 솜씨있게 압축하여 매끈하게 제시하는 서술들이 주는 대중적 흡인력이 의미있게 다가왔다. 더불어 고딕적 공간을 효과적으로 구축하면서도 이를 음산하지 않고 따뜻하게 채색하는 작가의 시선 역시 작품의 매력을 더하는 요인이었다. 그렇지만 비인간과 유령, 퀴어와 역사를 종횡으로 조합하는 의욕적인 구성에 비해 작품이 펼쳐놓는 시대적 맥락이나 주제의 현재적 의미가 모호하다는 점이 아쉬웠다. 인물과 시대를 연결하는 작품 전반의 정조가 감상적인 회고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도 이 작품을 온전히 지지하기 어려운 이유로 거론되었다.

심사위원들은 긴 시간에 걸쳐 작품들의 장단점을 다각도로 논의하면서 여러차례 심도 깊고 치열한 토론을 나누었으나 당선작을 선정하는 데는 이르지 못하였다. 작품들에 담겨 있는 소중한 문제의식과 서사적 시도들에 일정 부분 공감하면서도 소설이라는 장르가 현실에 응답하는 고유한 방식이 무엇인가 하는 핵심적인 질문을 쉽게 내려놓을 수 없었다. 올해 응모자들이 보내온 소설적 질문과 열정적인 탐구를 거듭 새기며 진전된 논의의 장을 기약해보고자 한다. 하나의 이야기가 다른 무엇도 아닌 오직 한편의 소설로 구성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앞으로도 계속 치열하게 묻고 쓴다면, 우리는 어디서든 반갑게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공들여 집필한 귀중한 작품을 보내주신 모든 응모자들께 깊은 감사와 격려의 마음을 전한다.

김미정 김성중 백지연 천운영 최정화 한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