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목소리
‘한국적인 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 과거의 ‘한국적인 것’과 현재의 ‘한국적인 것’은 다르며 시대가 변함에 따라 정체성과 관련한 담론도 달라진다는 데 동의하지만, 개개인의 사고방식은 경계선 너머 서로 다른 지점에 있기에 출발점이든 접근하는 방식이든 그 모양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정헌목의 특집글 「변화하는 한국학」이 의미심장하게 읽혔다. “두 유 노우 ○○○?”이라는 질문이 많은 것을 시사했는데, 왜 우리는 매번 한국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는지 고찰해보게 되었다. ‘한국적인 것’은 가변적이며 본질적인 정의를 내리기 어려울 수 있다. 이는 시대변화에 따라 우리의 본질도 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리라. 특히 미소, 미중 경쟁이 심화되는 지금, 한국은 중간지대에 속해 있으며 언제나 애매하고 결정을 내리기 힘든 위치에 있다. 한 나라 안에서도 수많은 의견이 갈릴 수밖에 없고, 따라서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런 시점에 정치·외교 분야에서 더욱 노련하게 대응하고 실리를 얻기 위해서는 한국이라는 특수성을 강화해야 할 텐데, 이는 단순히 문화적 힘을 키우는 방식만으로는 어려울 것이다. 백지운의 특집글 「미중 패권경쟁 시대, 다시 돌아보는 동아시아론」은 변화된 시대가 요구하는 사상의 영역을 개척하는 실마리가 되어주었다. 2000년대 이후 동아시아론이 학문적, 실천적으로 번성하면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지양하는 대안문명을 모색했다는 점은 큰 공부가 되었다. 지금은 한반도의 운명을 세계사적 전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거시적인 시야가 다시 요구되는 듯하다. 오늘날 한국의 세계 속 위치는 어디쯤일까? “두 유 노우”에 집착한다고 조롱받는 어설픈 풋내기인지, 세계의 칭송을 받는 문화 강국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런 고민에 앞서 더욱 중요한 점은 과연 한국이 그만큼의 정치·외교·사상적 성숙함을 길러냈는가 하는 질문일 것이다.
해달 scribbler.sun@gmail.com
후꾸시마 오염수 방류, 앞으로의 대응은
▶ 가을호를 받자마자 읽은 꼭지가 대화(남상욱·송기호·오은정·이헌석 「후꾸시마 문제, 원전사고부터 오염수 방류까지」)였다. 일본정부가 후꾸시마 원전사고 이후 발생한 오염수를 지난 8월부터 해양에 방류하기 시작했다. 오염수 방류는 비단 지금 세대만의 문제가 아닌, 다음 세대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다. 이런 심각한 문제에 우리 정부의 대응방식은 하나부터 열까지 몹시 실망스러웠다. 오염수 방류와 관련된 모든 우려를 일축하며 그저 ‘안전하다’만 강조했으며,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를 ‘미신’이나 ‘거짓’이라고 폄하하고 있다. 원전사고는 언제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으며 그 피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임을 인류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탈원전을 포함한 넓은 의미의 비핵화는 다음 세대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이와 함께 지금까지 쌓인 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하는 방안 역시 신중하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특히 앞으로는 환경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환경 문제는 단순히 한 나라 안의 문제라고 보기 어렵고, 국경을 넘어서는 방안이 필요할 터이다. 이와 관련한 정치적인 대응 방향을 충분한 논의를 통해 수립하고 국민의 안전과 이익을 함께 추구하며 공공선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궁극적으로 고려할 것은 물론 살기 좋은 환경을 다음 세대에 남기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오염수 방류 결정이 과연 그러한 점들을 신중하게 고려했는지, 또한 우리 정부는 과연 최선을 다해 국민을 지키고 있는 것인지, 환경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정치적 이익마저 너무 쉽게 포기한 채 손해를 입은 것은 아닌지 함께 고민하고, 앞으로의 대응에 대해서 끊임없이 논의해나가야 한다.
최보윤 bboyun77@naver.com
멈추지 않고 전승되는 기억
▶ 현기영 장편소설 『제주도우다』를 다룬 작가조명(백영경 「애도의 공동체에 돌려주는 일상의 깊이」)을 읽고 나니 아직 읽어보지 못한 『제주도우다』를 꼭 읽어야겠다는 의지가 샘솟았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4·3사건의 비통함을 가까이에서 느꼈고, 그래서 4·3에 대해 누구보다 앞장서서 진상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 현기영 작가이기에 이번 소설이 더욱 독자들의 마음을 끄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 4·3은 여러 방식으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단지 슬픔이나 애통함만이 아니라 웃음과 유머를 함께 이야기하는 작가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이 사건이 반드시 비참함으로만 기억될 필요가 없다는 점이 새롭게 다가왔다. 꼭 소설이 아니더라도 에세이나 시, 혹은 다른 방식으로 많은 작가들이 계속해서 4·3을 전승하는 글을, 슬픔과 애도와 유머와 웃음을 담아 써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한편 『제주도우다』의 주요 주제는 4·3의 원인과 그에 관한 탐구이긴 하지만, 나를 포함해 4·3을 직접 체험하지 않은 세대로의 기억 전승이기도 하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 오랜 기간 정부나 정치권은 이 사건을 쉬쉬했으며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그저 무마시키려고만 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2003년 10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사과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도 없었다. 올해 4월 한 정치인이 4·3을 두고 역사 왜곡적인 발언을 해 도마에 올랐던 일이 떠오른다. 국가가 국민을 학살한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4·3은 다른 사건에 비해 덜 알려져 관심을 받지 못했던 건 아닌가 서글픈 마음도 든다. 지리적 이유도 있었겠고 그 기억이 제대로 전승되지 못했던 탓일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현기영 작가의 신작소설은 물론 작가조명 글 역시 4·3을 다시 기억하는 데 훌륭한 물꼬가 되어주었다. 이렇게 계속 제주를, 4·3을 이야기하며 많은 사람들이 사건의 진실을 알고 그 기억이 전승되기를 바란다.
임용원 fattoad@nate.com
마음에 오래 남는 문장들을 품으며
▶ 시와 소설을 읽다보면 마음이 머무르는 문장들이 있다. 특히 민구 시인의 「행복」이 인상적이었는데, “시인은 불행하다고/그림자가 없다고”라는 부분에 이르니 글을 쓴다는 건 애써 가려놓은 나를 발가벗겨 드러내놓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주로 마음이 정처없이 떠돌 때, 타인의 말 한마디에 상처를 입고 하려던 일을 망쳤을 때, 그리고 포털사이트가 마음 아픈 기사로 가득 찰 때 글을 쓰게 된다. 이은규 시인의 「구름 팝업스토어」도 크게 공감하며 읽었다. “세상에 사고팔 수 없는 게 없다고 학습했지만/그럼에도 구름만은 예외”라는 구절에서 자연의 풍경만큼은 차별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구름은 물론 붉은 노을빛, 매일 마주하는 하늘은 우리 모두가 누릴 수 있으니 자연은 나이도, 신분도, 주머니 사정도 따지지 않고 품을 내어주는 존재라고 느껴진다. 소설 역시 모두 즐겁게 읽었는데, 특히 주영하 소설 「아이오와」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누군가가 애써 내린 결정을 한때의 슬럼프라고 여기는 것만큼 멍청한 일이 있을까”라는 문장을 쉽게 지나치지 못했다. 나도 언젠가 구선생처럼 다른 이에게 무례를 범했고, 반대로 하은영처럼 오랜 시간 애정을 쏟던 일을 애써 내려놓고 담담해지기도 했다. 남들이 의미 없이 내뱉는 말에 상처받은 적도 물론 있었다. 소설을 읽고 나자 ‘미래를 보여주는 옥수수밭이 내 앞에 있다면, 나는 그 안으로 감히 들어설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남았다.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아마 나는 그 옥수수밭으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미래가 걱정된 적은 있어도 궁금한 적은 없었기에, 여전히 어른이 되기 싫어 현재에 열심히 머무르는 어른이기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계간지를 읽은 소감을 나누다보면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지점들을 발견하고 새로 배우게 된다. 혼자만의 독서도 물론 즐겁지만, 같은 작품을 읽은 다른 이들과 생각을 나누는 시간 역시 소중하다. 다른 독자들은 지난호 작품들을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해진다.
안소미 happyssom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