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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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일 朴志逸

1992년 경남 창원 출생. 202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립싱크 하이웨이』 등이 있음.

paziilpaziil@gmail.com

 

 

 

물보라

 

 

거울은 너를 상대하지 않는다

까닭에 계속하여 너는 산다

—모리나가 유우꼬

 

네가 쓴 글 또한 너를 유지하는 까닭으로 남을 수 있을까? 주위로 옹벽이 세워지고 사면에 문이 들어선다. 옹벽과 문이 너를 위해 들어선 것인지, 문과 옹벽을 위해 네가 세워진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만, 왠지 너는 문을 열게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문은 열리게 되지 않을까? 사실 옹벽이나 문은 일종의 장치 같은데, 글쎄… 유효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어. 들이나 대로 복판이어도 상관없지 않았을까? 너는 어디서도 보이지 않으니까. 아무에게도 상대당하지 못하니까. 문이 등장한 까닭은 대개 가리고 선 그 너머를 네게 보여주기 위함이고(아무것도 없음까지 포함하여) 열기 위해 씨름하는 과정에서 네가 느낀 탈력과 굴복의 강도에 비례하여 문은 희열을 얻는다고 하던데. 근데, 네가 너를 작동할 수 있던가? 열거나, 열지 않거나, 선택을 어찌하긴 해야 하는데… 너는 선택하지 못할 것 같고(선택하지 않는 선택까지 포함하여) 네게 너는 주도권이 없는 것 같아. 까닭에 바닥을 헤적이던 뱀들이 네게 모여들고, 뭐든 해. 뭐든 해보라고! 가청영역의 목소리들이 너울하며 너를 푹푹 찔러도, 너는 가만있는다. 서퍼구나, 너는 서퍼다 …(방 안에서 몇년째 뻗어 있는 서퍼까지 포함하여) 가만, 뭔가 자꾸 빠져나가는 손을 씁쓸해하는 너를 보니, 또 가만있던 것만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면, 옹벽이 너를 세워놓았다 치고, 어떡해야 하는 걸까? 문이 세워둔 너를 어떻게 써먹어야 하는 걸까? 대책 없어 뒤만 돌아보니 너만을 위해 네가 만든 세번의 까닭이 눈에 띈다. 다시 뒤돌아 앞을 들여다봐도 마찬가지. 그 까닭 탓에 옹벽과 문과 너를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쓸모를 여전히 질문하는 너. 짙어진다.

 

 

 

물보라

 

 

계속하여 너는 산다

까닭에 거울은 너를 상대하지 않는다

—모리나가 유우꼬

 

아침에 일어나니 날은 저물었고, 개골창에서 너는 너를 가르친다. 너는 언젠가 썼을 것이라고; 모든 것이 내장을 굴러다니는 자갈 탓이야. 누워도 누운 것 같지 않고, 걸어도 걷는 것 같지 않으며, 살지도 않는데 꼭 사는 것만 같다고. 이것은 네가 쓴 것이고, 이것도 네가 쓴 것이고, 이것이 네가 쓴 것이라고 너를 하는 너.

네 엄마의 실명은 춘숙이고, 이렇게도 너는 썼을 것이라고; 나는 흔한 돌을 갖고 싶다고. 특수한 돌은 정숙의(춘숙?) 내장을 굴러다니고, 엄마의 이름은 해숙이고, 물보라는 세어질 수 없다고. 물보라. 엄마는 물보라였을까?

아침에 일어나니 날은 저물었고, 차조기 잎만을 여전히 찧는 엄마, 못 떠다니는 금붕어만 여전히 구경하는 엄마, 여전히 뒷짐만으로 중얼거리는 엄마. 셀 수 없는 엄마. 너는 자갈을 굴리며 네 내장을 돌아다니고, 너는 너를 쓰면서, 너를 쓸 수 있는 것은 너밖에 없다고 착각하면서, 물보라.

물보라. 나는 흔할 수 없는 돌이고, 특수한 돌과는 다르다고. 쓰게 요시하루는 「무능한 사람無能の人」을 그렸고, 무능한 사람은 흔한 돌을 주워다 파는 사람. 이것은 족보를 파는 자와 사는 자는(양반, 중인, 상민, 천민) 알 수 없는/을 시장이고, 너는 너와 상관없이 살아질 거야, 물보라. 다 물보라였다고.

아침에 일어나니 날은 저물었고, 물보라. 여전히 마리냐, 여전히 마리모, 여전히 마리아, 자갈은 엄마를 굴리고, 사다꼬 이모, 피라냐, 난민, 물보라, 소쩍새, 도락산, 앵도나무, 예수는 진리요, 우렁쉥이, 아무리 지껄여도 우담화, 물보라. 몽돌. 혼자서는 사타구니를 씻을 수 없는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