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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기독교의 개벽적 전회

개벽사상과의 대화 속에서

 

 

이정배 李正培

감신대 은퇴교수, 조직신학·종교철학 전공. 현장아카데미 원장. 저서 『한국적 생명신학』 『생태학과 신학』 『개신교 전위 토착신학 연구』 『유영모의 귀일신학』 『개벽의 사상사』(공저) 등이 있음.

ljbae2016@naver.com

 

 

1

 

서구 지향적인 기독교가 개벽사상과 인연을 맺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19세기 말 서세동점 시기 조선은 서구를 따르는 개화파, 유불선(儒佛仙) 전통사상으로 서구와 맞섰던 척사파로 사상적 흐름이 양분되어 있었다. 물론 개화파라 해서 서구를 무작정 추종하지는 않았겠고 척사파라 하여 혁신을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개화를 원했지만 더러는 ‘서양지천즉동양지천(西洋之天即東洋之天)’의 입장1에서였고 과거를 중히 여겼지만 수많은 유신(維新) 시도가 있었듯이 자기 정체성을 달리 고민했던 까닭이다. 하지만 이들 사조는 개벽사상에 기초하여 나타났던 당대 민중 종교세력을 무시, 홀대, 배척하는 일에 가담했다. 서구 기독교는 이들을 주술적인 하층 종교라 여겼고 유교는 질서—중국 중심의 세계관—를 파괴하는 위험세력으로 간주했다. 동서양의 문명을 같은 천도(天道)로 여긴 탁사(濯斯) 최병헌(崔炳憲, 1858~1927)이 고종의 명을 받아 충청지역 내 동학교도를 회유하는 직무 수행자가 된 것도 이런 맥락 속에 있다. 갑오혁명과 기미독립운동에서 드러났듯이 개벽사상은 외세로부터의 독립과 계급철폐, 영적 주체성과 평등성을 강조했으나 바로 그 이유로 인해 지배체제와 외세로부터 거부, 배척되었다.

 

20세기 초엽 개신교, 특히 감리교를 배경으로 한 토착화 사조는 개화를 추구하되 유교와 기독교의 연속성을 도모했다. 예정론을 잉태한 대륙의 장로교와 달리 인간의 자유의지와 경험적 사유를 중시한 영국적 풍토에서 발현했던 까닭이다. 아펜젤러, 게일처럼 한국 종교문화에 관심이 컸던 선교사를 만난 것 역시 특별한 배경일 수 있겠다. 여하튼 당대 지배이념인 유교를 고집하거나 혹은 거부한 이들로 양분된 현실에서 양자를 아우르려는 시도가 생긴 것은 놀랍다. 이후 필자가 속한 감리교 신학은 토착화라는 범주하에 유교는 물론 샤머니즘, 불교와도 대화하며 해석학적 순환성을 모색해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최소한 두가지 한계를 드러냈다. 하나는 어디까지나 서구 기독교적 시각에서 이 땅의 종교문화를 조망하고 평가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소위 축(軸)의 종교들인 유교나 불교 외에 동학, 원불교와 같은 개벽(민중)종교들과의 대화에 소홀했다는 점이다. 물론 동학사상에 관한 연구가 없지 않았으나 민중운동으로서 갑오혁명, 범재신론(panentheism), 수행론 등 개별 주제에 한정되었다. 다석(多夕) 유영모(柳永模, 1890~1981)나 함석헌(咸錫憲, 1901~89)과 같은 종교사상가들마저 동학적 사유 및 종교성에 담긴 긍정성을 보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기독교 신학자로서 이 땅의 종교와 기독교를 주종(主從) 내지는 주객(主客) 도식 틀 밖에서 이해한 최초의 학자는 변선환(邊鮮煥, 1927~95)이었고 개벽사상을 잉태한 수운의 종교체험을 ‘역사유비’2의 시각에서 기독교의 모체인 묵시의식3과의 관계성을 중심으로 총체적으로 전진한 학자는 초현실주의(surrealism) 신학을 전개한 이신(李信, 1927~81)이었다.4 이 글에서는 전달자가 아닌 수용자의 시각에서 기독교를 살피고, 기독교의 배타성을 해체하여 동양사상의 틀 속에서 기독교를 수용하고 재구성한 개벽사상가들을 짚어봄으로써 기독교와 동학의 관계를 다시금 사유해보고자 한다.

 

 

2

 

개벽사상은 1860년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1824~64)의 종교체험에서 비롯했다. 그의 제자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 1827~98)은 물론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 1871~1909)을 거쳐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 1891~1943)에 이르기까지 서세동점 시기, 개화와 수구를 넘어 제3의 시각으로 이 땅에 두루 영향을 미쳐왔다. 보국안민을 기치로 삼아 새로운 민중종교들인 동학, 증산교, 원불교를 탄생시킨 원동력이었다. ‘내 마음이 곧 한울님 마음〔吾心卽汝心, 오심즉여심〕’이라는 것이 체험의 본질이었고 이를 토대로 개벽세상을 열어젖혔다. 이 체험은 유불선체계로 환원될 수 없고 서학과도 이질적인 것으로, 반상(班常)의 구별은 물론 신/인간의 차이도 무화시켰다. 계급해방, 민족해방을 넘어 종교해방에 이르는 정신개벽을 전망한 엄청난 종교체험이었다. 지금껏 개벽사상과 이에 근거한 민중종교들이 우리 역사 속에서 비주류로 인식되었지만 3·1운동 100주년(2019년)을 전후하여 기후붕괴와 천민자본주의의 대안적 가치로 부상했다.5 일리있는 조명이었기에 학계 및 종교계가 주목했으나 수운의 종교체험과 개벽사상의 독자성이 강조된 면이 있다. 기존 기독교가 그랬듯이 보편성 대신 체험 자체의 특수성을 절대화하려 했기 때문일 듯싶다.

 

기독교는 계시실증주의에 입각한 절대종교로서 이 땅에 유입, 토착화되었다. 그것이 성경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성서절대주의로 귀결되기까지 했기에 부작용이 컸다. 하지만 기독교 역시 본래 역사적 과정에서 생겼던 종교이다. 원시기독교(Urchristentum)를 종교 혼합주의적 현상으로 이해하는 성서학자도 있었다.6 구약성서, 유대교, 헬레니즘, 영지주의 그리고 스토아철학이 신약성서의 배경이라 한 것이다. 이들 영향 속에서 기독교가 탄생했기에 새롭긴 했으나 절대적일 수는 없다. 개벽사상과 동학을 탄생시킨 수운의 종교체험 역시 유불선을 수렴한 성리학을 배경으로—퇴계학 계보에서 수운을 이해할 만큼—탄생했다. 서학의 충격 또한 종교체험의 성격을 규정하는 일면이겠다. 여기서 동학 연구자들이 수운의 체험에 등장하는 을묘년의 천서(天書)를 굳이 『천주실의(天主實義)』가 아니라고 강변하는 점이 낯설다. 주문과 기도법은 기존 성리학을 통해 배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차를 두고 완결된 수운의 ‘다시개벽’론은 유불선은 물론 서학의 영향 속에서 솟은 종교체험의 산물이다. 역사적 맥락 없이 태어나는 종교체험은 없다. 동서를 막론하고 일체 종교체험은 끊임없이 더해지는 가종(加宗)의 결과일 뿐이다.7 수운의 종교체험을 보편주의적 시각에서 읽는 것은 그래서 옳다.

 

 

3

 

수운의 개벽사상은 시운(時運)에 따른 말세(종말)에 대한 적시가 아니었다. ‘오심즉여심’으로서의 시천주(侍天主)를 자각했기에 생각 틀 자체가 달라지는 사건이었다. 시천주란 천주이자 지극한 기운〔至氣〕을 ‘님〔主〕’으로 모신 인간, ‘내 마음이 그 마음이 된’ 개념이다. 따라서 수운의 하느님 체험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상제(上帝)로 불렸으나 나중에는 한울님, 천주(天主)라 언표되곤 했다. 천주는 한울님의 한문 번역으로서 청중의 근기에 따라 달리 언급되었다. 「용담유사」에는 앞의 말로, 「동경대전」에서는 주로 뒷말로 표현되었으나 ‘지기(至氣)’라는 말로 통칭되기도 했다. 기독교 신학자들은 인격과 비인격을 아우르는 이런 하느님 체험을 전통적 초월신관을 능가하는 범재신론으로 일컬었다. 신학의 생태학적 확장을 위한 것이었다. 수운의 ‘지기’가 말하듯 리(理)보다 기(氣) 개념을 선호한 것은 신분사회를 지탱하던 성리학을 비판할 목적에서다.8 이성에 따라 행동하고 욕구를 막는다는 ‘존천리 알인욕(存天理遏人慾)’의 성리학적 수행론 대신 마음을 보존하고 기를 바르게 하는 ‘수심정기(守心正氣)’를 강조했던바 이 역시 성리학과의 거리두기 차원에서였다. ‘지기’에 인격성이 내포된 까닭에 의미상으로 리(理)적 측면을 부정할 이유도 없겠으나, 당시 서학이 제각각 마음을 다르게 먹는 각자위심(各自爲心)의 종교로 여겨진 탓에 그 범주에 머물 수 없었다. 1860년 수운의 체험 속에 한울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자신의 수행을 통해 이뤘다는 고백이 담겼다. 받은 것은 무극대도(無極大道)지만 그것을 오랜 수행을 통해 스스로 깨쳤다는 사실이 강조된 것이다. 동학의 ‘학’이 서학(종교)과 달리 이론이 아니라 수행을 뜻하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여기서 수행이 성리학에서 말하는 ‘닦을 수(修)’가 아니라 ‘지킬 수(守)’인 것이 중요하다. 동학이 성리학을 넘어 도교와도 맥이 닿았다는 방증이겠다.

 

신령한 기운을 느끼며 상제를 대면했던 수운은 영부(靈符, 1860년 수운이 하늘에서 받은, 천신을 그림으로 표상한 부도)와 주문을 받았고 수심정기한 상태에서 한울님 마음과 자기 마음이 하나인 것을 깨쳤으며 말로써 언표할 수 없었지만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경험을 했다. 여기서 ‘오심즉여심’은 『천부경(天符經)』의 천인무간(天人無間)의 경지이자 사람 속에서 하늘과 땅이 하나로 존재한다는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익히 알듯 수운은 모실 시(侍) 자를 내유신령(內有神靈), 외유기화(外有氣化), 각지불이(各知不移)로 풀었다. 한울님 마음이 내 속에 있고(내유신령) 한울님의 우주 기운과 내가 연결되었기에(외유기화) 누구도 신령한 지기(한울)의 활동을 옮겨 바꿀 수 없음을 알라고 했다(각지불이). 세상만사가 관계 속에 있기에 누구도 우주 생명체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뜻이다.9

수운이 하늘에서 받은 영부가 바로 이를 적시한다. “영부〔弓弓乙乙, 궁궁을을〕란 나와 한울님이 일체를 이루어 내 안에서 한울님을 회복하는 것이요, 내 안에 모셔진 한울님의 무궁성을 깨닫는 일이다.”10 이처럼 영부는 다석이 종종 생각하듯 비합리적 실체나 의식이 결코 아니었다. 성리학은 인간 속의 신령(개체)을 보지 못했고 서학은 지기(전체)를 몰랐기에 전자는 백성을 억압했으며 후자에게 자연은 탐심의 대상이 되었다. 여기서 지기는 다석의 ‘허공(빔)’으로, 신령은 인간 속 ‘바탈’, 즉 하늘이 준 인간 본성으로 달리 표현할 수 있다.11 없이 있는 허공이 전체이고 그것이 통째로 개체 속 ‘바탈’로 들어온 까닭에 없이 있는 허공의 자리가 바로 개체 속 ‘바탈’이라는 말이다. 전일적 우주 생명체로부터의 분리를 피조물의 탄식으로 의인화한 성서 구절(「로마서」 8:18~25)과도 소통한다. 하지만 목하 서구 자본주의는 신/인간, 인간/자연 분리에 기초하여 작금의 문명을 일궜다. 개인(인격), 개체에 대한 종교, 철학적 확신에 근거한 공유지 약탈의 결과였다. 하느님 앞에 선 단독자로서의 개인과 사적소유 개념을 서구는 언제든 호환시켰다.12 개신교를 철저하게 근대적 종교라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4

 

종교체험에서 비롯한 ‘다시개벽’은 일상에서 사람을 한울님처럼 대하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13으로 이어진다. 사람뿐 아니라 사물 또한 그리 공경하라고 했다. 사물을 공경하고〔敬物, 경물〕, 사람을 높게 여기는 일〔敬人, 경인〕이 결국 하늘을 섬기는 일〔敬天, 경천〕인 까닭이다. 사근취원(捨近取遠), 즉 가까이 있는 것을 버린 채 먼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는 뜻이다. 일상을 버리고 하늘을 찾을 수 없으며 하학(下學) 없이 상달(上達)을 이룰 수 없는 법이다. 그렇기에 삼경(三敬) 중 일상에서의 경물과 경인이 경천보다 우선한다. 쓰고 버리는 일이 일상이자 미덕인 현실에서 경물은 시대를 앞선 소중한 발상이다.14 이는 다석이 말한 진물성(盡物性)과도 뜻이 같다. 진물성은 본디 사(事, 사람의 일)와 물(物, 자연)에 대한 성리학의 인식론인 격물(格物)의 다른 표현이다. 마주하는 대상(사와 물)과 자신이 하나가 되기 위해 마음이 작동〔已發, 이발〕하는 데 집중할 것을 요했다. 닭의 본성을 온 마음으로 생각하면 그에 대한 이해를 얻게 됨은 물론 인간 본성 또한 닭처럼 부지런하게 바뀐다는 것이다. 이런 경지를 퇴계는 말의 순서를 바꿔 물격(物格)이라 표현했다. 주객을 난파시켜 사물의 본성과 하나 되는 일을 경물로 이해했다. 최근 논의 중인 신유물론 철학도 논의 심화에 도움을 준다. 이 철학은 인간 중심적인 근대성 개념의 탈각을 위해 인간과 비인간은 물론 생물과 무생물 간의 종차마저 부정한다. 지금껏 관계 맺지 못했고 무시당한 이들 간의 연계성에서 비롯한 상호응답(소통)능력에 지구의 미래를 맡길 생각에서였다. 지구를 살아 있는 생명(유기)체로 본 가이아학설의 발전적 논의 결과라 하겠다.

 

경물처럼 경인 또한 해월 최시형에 이르러 더욱 강조되었다. 신분이나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모두가 시천주의 존재였다. ‘베 짜는 며느리’를 한울님으로 이름한 것이 구체적 방증이다. 천하고 고된 일을 하는 여인이 바로 일하는 한울님이었다.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 인간을 한울로 봤다. 세상일 모두를 한울님 일로 만드는 것이 동학의 존재 이유다. 한울의 행위를 사람의 행위를 통해 증명하라는 것이다.15 ‘동학하다’라는 말이 생겨난 배경이다. 자신 속 한울과의 대화, 즉 심고(心告)는 일상사를 한울의 일로 만드는 수행이자 한울을 예배하는 일이다. 그 절정에 해월이 설파한 새로운 제사법인 향아설위(向我設位)가 있다. 제사상을 벽이 아닌 자신을 향해 차리는 이 법식은 종교이념과 제도가 만든 일체 틈을 없앤 개벽적 발상이다. ‘사람이 안식일(종교)을 위해 있지 않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는 예수의 선포와 같은 의미다. 예배행위에서의 주객을 전도시켰고 대상을 폐한 까닭이다. 동학은 천인무간, 곧 내가 한울이라는 자각, 한울을 모시고 있다는 확신의 산물이다. 모심이 지극할 때 절로 되는 기도가 심고이고 이를 통해 사람의 일은 한울의 일〔養天主, 양천주〕이 된다.

거듭 말하나 개벽사상에서 말하는 한울은 일하는 하느님, 곧 사람이다. 인간이 만든 역사가 실패하면 한울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데〔勞而無功, 노이무공〕,16 이는 인습적 기독교로서는 수용키 어려운 발상이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위계뿐 아니라 예수만을 신의 실체적 존재(기독론)로서 인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일)이 자기 본질을 표현하고 공동체에 유익할 때 그리고 자연생태계를 지키는 일일 경우 인간의 일이 하느님 일이 된다는 여성신학적 이론도 있기에 사인여천과 소통할 여지는 있다. 계시신앙과의 논쟁, 기독론을 해체시킨 비(非)케리그마화(Entkerygmatizierung)17 작업도 일조했다. 다석의 경우 예수뿐 아니라 사람들 모두를 허공(빈 탕)의 자녀, 곧 독생자라 했고 예수 역시 마침표가 아닌바 몸 줄여 마음 늘려가면—이는 양천주와 뜻이 같다—누구든 하느님 일을 완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5

 

사인여천이 내유신령과 짝이라면 이어 논할 ‘이천식천(以天食天)’, 곧 ‘한울로서 한울을 먹는다’는 해월의 말은 외유기화와 어울린다.18 수운이 인간의 주체적 자각에 방점을 두었다면 해월의 이천식천은 우주적 차원에 무게를 실었다. 물건마다 일마다 하늘 아닌 것이 없기에〔物物天 事事天, 물물천 사사천〕 우주는 전체 생명, 곧 지극한 영적 기운인 지기와 더불어 유기적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우주 생명이 개체 생명과 관계 맺는 방식이 바로 이천식천이다. 수운의 ‘불연기연(不然其然)’은 이천식천을 설명하는 원리라 하겠다. 현상에서 볼 때 다른 듯하나 근원에서 우주는 같다는 것이다. 인식이 확장되어 근원에 이르면 몰랐던 한울(활동) 전체를 볼 수 있는 까닭이다. 개벽사상에 따르면 화석화된 불연(신비)은 없다.19 이원론을 부정하는 만큼 환원론적 사유도 경계한다. 종종 먹이사슬 구조로 설명되나 이는 영적 의미를 놓친 설명이다. 슈바이처(A. Schweitzer)의 생명외경론도 적합하지 않다. 남의 생명 먹는 일을 비관적으로 여긴 탓이다. 살려는 개체의 의지는 한순간도 전체와 분리될 수 없는 법이다. 먹고 먹히는 일은 낙관과 비관을 넘어선 한울, 곧 전체의 일인 까닭이다. 이질적인 어떤 것일지라도 한울이 한울을 먹는 과정에서 온 우주는 기화한다. 무위이화(無爲而化,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교화함)가 기화, 곧 이천식천의 실상이다. 주지하듯 원불교는 일원상(一圓相) 진리의 요체를 천지자연 ‘은(恩)’으로 대표되는 사은(四恩)으로 풀어냈다. 고통이나 갈등이 아닌 ‘은혜’를 전체와 개체를 아우르는 우주 생명의 존재·활동 방식으로 본 것이다. 원죄론에 익숙한 인습적 기독교와는 합류되기 어려운 사유 틀이다. 최근 원복론(Original Blessing)의 등장으로 소통 가능성이 생겼으니 다행이다. 적색은총(십자가 구원)만큼이나 녹색영성(자연)을 중히 여긴 결과다. 삶에서 얻을 수 있는 최상의 것, 녹색 가치를 은총이라 고백하게 된 것이다.

해월의 이천식천과 원불교 대종사의 사은은 불연의 세계에 대한 기연적 설명이었다. 이들을 한울의 활동이자 일원상 진리의 실상으로 본 것이다. 기독교는 이 점을 무시했거나 낯설게 여겼다. 신의 절대적 초월성, 그에 상응하는 창조성에 일방적으로 경도된 탓이다. 창조와 성령의 상관성을 연구한 신학자로 몰트만(J. Moltmann) 만큼 유명한 이가 없으나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없는 이천식천을 범허무주의로 평가절하했다.20 동학의 지기와 같은 창조의 영이 세상에 들어오더라도 기독론—그리스도 영—에 종속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봤다. 기독론 집중으로 야기된 폐해, 곧 타자 부정의 실상이 어처구니없다. 그럴수록 대속론(代贖論)을 획기적으로 재해석한 다석의 사유가 다시 중요하다.

「다석일지」를 쓰기 시작하던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반 무렵 다석은 민주화를 위해 피를 흘린 젊은 청년들을 대속적 존재라 칭했고 1970년대 전후해서는 남의 생명을 먹어야만 사는 일상사 속에서 대속을 봤다. 세상 짐을 지고 사는 약자들의 삶을 이해했고 나락 한알과 채소의 생명력을 긍정한 것이다. 서로 대속하는 것이 물질이기에 세상에 대속 아닌 것이 없다고 했다.21 대속하지 못하면 도대체 정신(힘)을 갖고 살 수 없는 까닭이다. 여기서 다석의 대속은 동학의 이천식천이나 원불교의 사은과 뜻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없이 있는 허공으로서 신을 이해한 배경 때문이다. 구체성에서 변별이 있겠지만 사은과 사요(四要)—자력양성, 지자본위, 타 자녀 교육, 공도자 숭배22—의 관계처럼 대속은 항시 자속(自贖)을 요구한다. ‘제 뜻 버려 하늘 뜻 구하는’ 삶, 허공과 하나 된 바탈—대효(大孝)—을 갖고서 세상(타자)을 향한 보은, 즉 대동세계를 이루라 한 것이다. 이처럼 다석은 대속을 기독교만의 전유물로 여기지 않았다. 일상을 대속으로 봤기에 다석의 기독교는 개벽의 우주생명론을 충족히 담을 그릇이 될 수 있었다.

 

 

6

 

개벽사상의 백미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원불교의 개교표어 속에 있다. 동양정신〔道〕으로 서구 물질세계를 홀대하는 척사의 변형, 즉 동도서기(東道西器)와는 차원 다른 개벽사상의 표현이다. 서구의 근대성을 인정하되 동시에 정신세계의 구축이라는 이중과제를 내포했다.23 정신개벽은 하느님 나라, 불국토 등의 종교언어보다 더 보편적이고 현실감이 있다. 소태산에 앞선 해월의 후천개벽론에도 이미 이런 뜻이 담겼다. 자료가 부재하여 논의가 없었으나 여러면에서 양자간 사상적 연계성이 눈에 띈다. 스승 수운보다 30년 이상을 더 생존했던 그는 20세기 문턱까지 살아오면서 물질문명의 도래를 경험했고 그에 맞는 마음공부나 도덕론을 강조했다. 소태산 대종사가 이를 개벽사상의 핵심요지로 삼고 불교원리를 수용하여 작금의 원불교를 창시했다. 주지하듯 정신개벽 없는 물질개벽은 미래사회에 독일 뿐이다. 작금의 AI 기술 활용을 둘러싼 논란에서 보듯 결과를 예상치 않고 전체 관계성을 고려치 않는 기술, 효율성을 앞세운 목적 지향적인 과학기술은 인간을 종속시키고 공동체를 파괴하며 자연을 망칠 수 있다. 물질(It의 영역)개벽과 정신(I의 영역)개벽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24 본디 기술(Techne)은 존재의 신비 자체와 연루된 까닭이다. 자연을 닦달의 대상으로 삼지 말라는 뜻이겠다. 그럴수록 리사이클링, 업사이클링 그리고 업그레이딩을 통해 폐기물을 창작물로 부활시킨 생태 공예(품)의 의미와 가치가 크다.25 일방적 세계화와 소비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정신개벽의 요체를 이 과정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물질/정신개벽론은 ‘시(侍)’의 마지막 설명인 각지불이와 내용상 연계된다. 신령과 기화가 하나인 까닭에 세상천지는 관계 아닌 것이 없게 되었다. 서로 연결된 세상에서는 어느 존재도 무가치할 수 없다. 심지어 한울은 물론 사람, 사물에도 ‘님’의 호칭을 붙일 정도였다. 어느 한 관계가 깨지면 전체가 망가질 것을 걱정한 탓이다. 따라서 ‘불이’는 한울이 인간을, 인간이 인간을, 인간이 자연(사물)을 소외(대상화)시키지 말라는 뜻이겠다.26 정신개벽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인간을 닦달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기술지상주의와 물질개벽의 현실에서 인간과 자연 나아가 한울을 구할 목적에서다. 국가, 계층, 성별, 세대간의 갈등과 차별 그리고 기후붕괴로 지구가 죽게 되었고 급기야 자본과 짝한 기독교는 신마저 종처럼 부리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지배하는 시장경제가 하느님이 된 탓이다.27

1961년에 발표된 원불교의 삼동윤리(三同倫理)—동원도리(同源道理), 동기연계(同氣連契), 동척사업(同拓事業)28—는 시(侍)를 유지, 존속시키고 이(移), 곧 소외를 치유키 위한 적실한 방책이다. 한마디로 종교마다 전일(全一)적 세계상을 힘써 가르치되 인간 및 자연(지구) 해방을 위해 협업하자는 것이다. 이 셋은 기독교적으로 보자면 각각 종교다원주의 사조, 생태신학, 보편윤리(Weltethos)에 해당한다. 서구 종교다원주의는 동원도리처럼 그렇게 현상(가치론)적 다양성과 함께 본질에서의 일치를 추구한다. 하지만 귀일처(歸一處)가 서로 같지 않았다. 다원주의가 말하는 궁극적 실재(God above God)와 일원상 진리가 상호 수렴될 수 없었다. 전자가 있음〔有〕의 틀을 벗지 못한 탓이다. 생태신학 역시 유기체적 사유를 존중하는 점에서 동기연계의 사상적 틀과 관련된다. 독아론(獨我論)에 기초한 기계론적 세계관과의 단절을 시도한 까닭이다. 하지만 앞선 언급대로 창조주와 피조물의 위계마저 부정할 수는 없었다. 이원론을 탈각시킨 신학의 과정사상 같은 경우도 신적 초월성을 자연 내 목적개념(미래성)으로 대치했을 뿐이다. 이로써 서구 생태주의는 개벽의 지기는 물론 일원상 진리와 공명키 어렵다. 종교간 입장과 방법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장단점을 보완하여 평화세상 함께 만들자는 동척사업의 경우 보편적 세계—지구윤리29—를 모색한 기독교 서구보다 한 세대 이상 앞섰다. 동척사업이 서구적 지구윤리와 다른 점은 이론과 주장을 넘어선 수행력, 그 자체로 종교적 실천이기 때문이다.30 이는 쉽지 않겠으나 정교동심(政敎同心), 즉 정치와 종교를 같은 마음에서 이해한 결과였다. 인간 중심적이며 정교 분리적이고 여전히 기독교적이라 평가받는 서구적 지구윤리보다 훨씬 보편적이다.

이런 몇몇 이유로 다석사상이 거듭 요청된다. 삼동윤리를 수용할 수 있는 틀을 지닌 까닭이다. 우선 그는 허공(빈 탕), 곧 없이 계신 하느님을 인간 본성(바탈)에서 봤고 이것을 모든 종교의 귀일처로 여겼다. 첫번째(BC 900~200)와 달리 두번째 축의 시대는 흩어진 종교들을 수렴시켜야 할 시점이다. 여기서 귀일처로서 인간 속의 바탈은 동원도리의 동원에 해당한다. 참된 공(빔)은 곧 사물 그 자체의 존재양상이라는 불교의 진공묘유(眞空妙有)가 적시하듯 허공 속에 만유가 있기에 그곳에서의 관계는 서로 대속적일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대속은 기화나 동기연계와 다르지 않다. 생명을 살리는 기운을 서로 공급하는 까닭이다. 바탈의 체득, 빈 탕과 하나 된 삶은 필연코 대동세계를 지향한다. 귀일과 대동이 바탈의 내외이자 안팎이며 없이 계신 이의 실상이기 때문이다. 신/인간, 인간/인간, 인간/자연이 서로를 소외시키지 않는 평화세상 만드는 것이 동척사업이자 대동사상의 요체다. 이렇듯 각지불이를 목적한 삼동윤리는 서구적 근대화(개화)의 패착들, 자본주의가 초래한 기후붕괴와 생태적 부정의와 맞서되 치유하는 힘을 지녔다. 공의회 차원에서 JPIC(Justice, Peace & Integrity of Creation) 대회를 발의한 바이츠제커(C. F. Weizsäcker)의 말을 떠올려본다. “분배문제의 불균형, 핵무기의 과다 보유를 해결하고 생태계를 복원하지 않고서는 기독교적 구원(정신)을 논할 수 없다.”31

 

 

7

 

이상에서 필자는 ‘시(侍)’의 풀이 셋을 각기 수운, 해월 그리고 원불교의 주요 개념—오심즉여심, 사인여천, 사은사요 및 삼동윤리—을 가지고 확대, 재해석했다. 이들 개념 속에서 근대성의 한계를 적시, 극복할 사상적 맹아를 본 까닭이다. 신의 해방과 인간의 해방 그리고 역사로부터의 해방이 주 골자였다. 아쉽게도 기독교는 개벽사상의 전체적 흐름과 깊게 접할 기회를 놓쳤던바, 동아시아적 대안체계로서의 ‘개벽’의 의미를 체화할 수 없었다. 이런 한계와 더불어 동학과 다석사유의 공통된 뿌리에 관한 관심도 요청된다. 누구도 인식하지 못했으나 이들 사유의 맥이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908)의 동인(東人)사상을 넘어 『천부경』에 이른 까닭이다.32 동학의 조직체인 포(包)와 접(接)이 「난랑비서(鸞郎碑序)」에 기록된 현묘지도(玄妙之道)의 두 특성—‘포’함삼교(包含三敎)와 ‘접’화군생(接化群生)—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주장도 일리있다. 이렇듯 동학은 성리학이나 서학의 영향을 훌쩍 넘는 기원을 지녔다. 시대적 판단과 정세적 요인들이 개벽 사유의 탄생을 도왔겠으나33 ‘오래된 미래’로서의 문화적 요인 역시 더 탐색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는 다석이 그랬듯 전달자로서만이 아니라 수용자의 시각을 지녀야 옳다. 이런 이유로 다석사상을 잇는 두 신학자를 짧게 언급하며 글을 마무리하겠다. 언급대로 신학자 이신은 1970년대 초 수운의 종교체험을 기독교의 모체인 전위(轉位) 묵시의식과 동일선상에서 봤다. 그에게 수운과 예수는 역사(시대)를 전환시키는 전위의식의 소유자로서 다르나 같은, 상호 수평적 존재였다. 이들 간의 관계를 이신은 ‘관계성 없는 관계성’ 또는 ‘역사적 일관성이 없는 유사성’ 등으로 언표했다. 이런 시각은 종래의 기독교, 즉 ‘존재유비’에 기초한 가톨릭 신학이나 이를 거부하고 등장한 ‘신앙유비’의 개신교 신학에서도 찾기 어려운 발상이었다. 전자가 자연 개념을 중시했다면 후자는 개인의 내면에 방점을 두었고 이신의 경우 역사적 의식을 중시했다. 포괄주의적인 가톨릭, 배타주의적인 개신교와 달리 이신의 경우 유사성을 내세운 것이다. 향후 ‘역사유비’라는 수평적 관계하에서 개벽사상과 기독교 간의 총체적 대화를 기대할 수 있겠다.

신학자 변선환은 초기 축의 종교들, 소위 선(禪)을 포함한 유교, 불교로부터 민중불교, 원불교로 관심을 이전시켰다. 아시아 종교신학자들과 의견을 공유하면서 서구 기독교에 이 땅의 요단강, 즉 민중성과 종교성의 세례를 받고 들어올 것을 요구하고 역설했다. 이곳의 종교성과 민중성을 본문(text)으로, 서구 신학을 각주(footnote)로 삼을 것을 주장한 것이다. 하여 그의 신학은 이웃 종교의 신학이 되었고 때론 ‘종교해방신학’이라 불렸다. 종교가 처한 현실을 변혁할 뿐만 아니라 개벽사상이 그랬듯 종교 자체를 해방시키려 한 것이다. 급기야 변선환은 ‘일원상의 진리’를 주제로 한 논문에서 ‘원(圓)기독교’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서구의 존재신비주의사상에 잇대어 설명한 한계는 있었으나 이 땅의 개벽사상, 민중종교들에서 기독교를 달리 해석한 것이다. 이로써 그는 토착화와 변별된 토발(土發) 신학자의 길을 내딛게 되었다. 아래 인용문에서 서구 신학과 변별된 개벽사상으로서 원(圓)기독교의 일면을 살필 수 있다. “신은 우리를 위해 존재하거나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거나 우리 밑에 계시는 분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34 바로 이 지점에서 이은선이 말한 대로 신학(神學)에서 신학(信學)으로의 개벽적 전회가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35

 

 

  1. ‘서양의 하늘이 곧 동양의 하늘’이라는 이 말은 정동 감리교회 초대 목사이자 토착화 신학의 선구자 탁사 최병헌의 대표적 언사이다. 이동원이 역주한 그의 대표작 『만종일련』(삼필문화사 2022)은 종교들 수는 많으나 하나의 맛을 지닌다는 뜻이다. 허남진 「탁사 최병헌의 문명론과 국가건설사상」, 강경석 외 『개벽의 사상사』, 창비 2022, 46, 53~54면.
  2. 유비(類比) 혹은 analogy란 사물 간 동일성을 유추해서 안다는 의미로, 가톨릭에서는 자연에 초자연적인 현상이 담겨 있다고 보며 하나님과 피조물을 ‘존재유비’로 보는 신학을 전개해왔다. 반면 개신교는 독일 신비주의의 영향 속에서 인간 내면의 신앙으로 신과 직접 연결될 수 있다는 ‘신앙유비’의 신학을 만들어왔다. 필자는 이 두 도식으로는 오늘의 세계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느끼며 ‘역사유비’라는 단어를 생각하게 되었다. 역사 속 실패한 경험에 어떤 의미를 부연하고 어떻게 우리 의식으로 다시 재현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K-기독교의 가능성 모색해온 선구자들의 성과와 한계 김재준 변선환 윤성범 박순경 이신」, 백낙청TV 2023.10.20.
  3. BC 6세기 유대인 지도자들의 바빌론 포로생활 이후 일어난 새로운 저항의 신학운동사상.
  4. 이신 「최제우의 사상」, 1972. 자필로 원고지에 썼던 글로 지금껏 활자화되지 못했다. 이신 『슐리얼리즘과 영의 신학』, 이은선·이경 엮음, 동연출판사 2011, 107면.
  5. 조성환 『한국 근대의 탄생: 개화에서 개벽으로』, 모시는사람들 2018 참조.
  6. 루돌프 불트만 『기독교 초대교회 형성사: 서양고대종교사상사』, 허혁 옮김,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93.
  7. 가종, adversion은 종교철학자 고 황필호 교수가 자주 사용한 개념으로, 종교경험이 시루떡처럼 층층이 쌓여 작동한다는 뜻이다.
  8. 이종란 『서양 문명의 도전과 기의 철학』, 학고방 2020, 200~201면.
  9. 김용옥 『동경대전』 2, 통나무 2021, 138~39면; 「논학문」, 『천도교 경전』.
  10. 윤석산 『일하는 한울님: 해월 최시형의 삶과 사상』, 모시는사람들 2014, 129~30면.
  11. 다석 관련 언급은 『다석강의』(현암사 2006)를 풀어 재해석한 졸저 『유영모의 귀일신학』(밀알북스 2020)에 근거한다.
  12. 마토바 아키히로 『위험한 자본주의』, 홍성민 옮김, 사람과나무사이 2015, 3장 내용 참조.
  13. 오심즉여심이 수운 종교체험의 핵심이라면 해월의 사인여천은 그것의 외면적 확장이다.
  14. ‘삼경’ 「해월신사법설」.
  15. 윤노빈 『신생철학』, 학민사 1989, 228~33면.
  16. ‘온갖 애를 썼지만 아무런 보람이 없다’는 뜻의 노이무공은 『장자』에 나오는 구절이자 동학의 경전 「용담유사」 속 한 구절이다.
  17. ‘비케리그마화’는 카를 바르트의 계시실증주의는 물론 루돌프 불트만의 비신화화론 또한 비판하며 넘어선 스위스의 신학자 프리츠 부리의 견해이다. 기독교의 절대성 주장을 무제약성으로 바꿔 이해하며 아시아의 경우 아시아적 방식의 케리그마가 있다는 논리를 폈다.
  18. ‘이천식천’, 「해월심사법설」.
  19. 김용옥 『동경대전』 2, 192~208면.
  20. J. Moltmann, Der Geist des Lebens: Eine ganzheitliche Pneumatologie, Chr. Kaiser Verlag 1991, 226~27면.
  21. 졸저 『유영모의 귀일신학』, 267면 이하 내용 참조.
  22. 방길튼 『사사삼팔 4438: 원불교 기본 교리』, 원불교출판사 2023, 284~328면.
  23. 백낙청 『문명의 대전환과 후천개벽: 백낙청의 원불교 공부』, 박윤철 엮음, 모시는사람들 2016, 247면.
  24. 통합심리학자 켄 윌버(Ken Wilber)의 ‘사상한’론을 참조하면 도움이 된다. ‘사상한’은 정신(I), 공동체(We)와 함께 물질(It)의 내외면적 측면을 일컫는다. 졸저 『켄 윌버와 신학: 홀아키적 우주론과 기독교의 만남』, 시와진실 2008 참조.
  25. 필자는 청주 공예 비엔날레 전시장에서 관련 글귀를 찾아 읽었다. 케이트 소퍼 『성장 이후의 삶』, 안종희 옮김, 한문화 2021, 182~83면 참조.
  26. 김용옥 『동경대전』 2, 138면.
  27. 하비 콕스 『신이 된 시장』, 유강은 옮김, 문예출판사 2018 참조.
  28. 이는 정산종사의 이론으로서 백낙청은 “삼동윤리 무서운 줄 알자”고 했다. 백낙청 외 『문명의 대전환을 공부하다』, 창비 2018, 243면.
  29. 한스 큉 『세계윤리구상』, 안명옥 옮김, 분도출판사 1992.
  30. 백낙청 『문명의 대전환과 후천개벽』, 231~37면.
  31. C. F. V. 바이젝커 『시간이 촉박하다』, 이정배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1987 참조. 그가 JPIC 발의 공로로 스위스 바젤대학교에서 명예 신학박사 학위를 받을 때 했던 말이다.
  32. 졸저 「천부경을 통해서 본 동학과 多夕의 기독교 이해」, 『없이 계신 하느님, 덜 없는 인간』, 모시는사람들 2009, 129~70면 참조.
  33. 백영서 『동아시아담론의 계보와 미래』, 나남출판 2022 참조.
  34. 변선환 「一圓相의 진리와 존재 신비주의」, 『불교와 기독교의 만남』, 한국신학연구소 1997, 332면.
  35. 이은선 『한국 페미니스트 신학자의 유교 읽기: 神學에서 信學으로』, 모시는사람들 2023, 서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