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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김진희 외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후마니타스 2023

여성 홈리스는 책이 될 수 있을까

 

 

조문영 趙文英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munyou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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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띄어쓰기를 무시한 제목이라니, 처음부터 예사롭지 않다. 표지는 어떤가. 굵은 매직펜으로 비뚤배뚤 쓴 글씨와 엉성한 그림들을 디자인으로 불러야 할지 난감하다. 형식은 또 어떤가. 이 책은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의 기획 아래 7인의 저자가 7인의 여성 홈리스와 만난 기록을 담았다. 이재임은 가혜를, 홍수경은 강경숙과 미희를, 박소영과 오규상은 서가숙을, 최현숙은 영주를, 홍혜은은 길순자를 만났다. 홈리스 당사자 김진희는 자기 자신과 마주했다. 여럿의 글이 일관성과 통일성을 갖도록 머리를 쥐어짜는 게 모름지기 편집자의 책무다. 그런데 이 책은 심상찮다. 편자도, 그가 채우기 마련인 ‘들어가는 말’도 없다. 이재임이 여성 홈리스 삶의 공통성을 에필로그로 간단히 짚었을 뿐이다. 저자와 구술자 사이의 관계도 제각각이다. 최현숙은 영주의 말을 묵묵히 듣는 대신 그와 다투고, 그를 통해 저를 본다. 글 제목이 ‘두 여자’인 이유다. 김진희는 자신이 거쳐온 홈리스로서의 삶을 딸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썼다. 그는 “차곡차곡 살아온”(191면) 삶의 이력을 글로 정리할 줄 알고, 서가숙은 제 경험을 토대로 홈리스 정책을 직접 제안하는 활동가의 면모를 보여준다. 하지만 구술자 대부분의 이야기는 저자의 ‘번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특히 가혜의 말은 자꾸 튕겨 나간다. 인터뷰 초고를 완성한 재임이 들뜬 마음에 그를 찾아가 제본한 책을 건넸다. 조심스레 책을 살피던 “그녀의 손에는 책이 거꾸로 들려 있었다.”(235면)

여성 홈리스를 다룬 이 책은 왜 이다지도 어수선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협화음은 저자들의 무책임 때문이 아니라 정직함 덕분이다. 홈리스행동과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홈리스야학 교사로 구성된 저자들은 누구보다 홈리스를 자주 만났을 테지만, 현장활동 중에 여성 홈리스와 마주치는 일은 드물었다고 고백한다. 여성 홈리스들은 광장에 있을 때도 몸을 숨겼고, 가방을 움켜쥔 채 언제라도 떠날 채비를 했으며, 공간이 비교적 넓은 장애인화장실에서 잠을 자고 몸을 씻었다(책 앞표지에 우산, 가방, 장애인화장실 표시판이 그려져 있다). 거리·시설·쪽방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정부의 실태조사는 이들의 동선을 가늠하지 못했고, “불평등·주거권·빈곤·폭력·젠더 등”(236면) 저자들이 내뱉은 단어는 이들에게 온전히 가닿지 않았다. 이동은 잦은데 그 흔한 휴대폰도 없는 여성들을 저자들은 계속 찾아다녀야 했다. “AI 녹취 프로그램으로는 도무지 해석할 수 없는 그녀들의 은어 속으로”(236면) 미끄러지고 허우적거리는 것 말고는 방도가 없었다.

취약한 삶, 떠도는 삶은 홈리스들의 공통적인 경험이다. 폭염과 혹한, 차별과 혐오, 무시와 착취는 홈리스의 몸에 켜켜이 쌓여 장애, 질병, 냄새, 욕설, 긴장으로 나이테를 두른 지 오래다. 이 책의 구술자들의 이야기가 (기록팀의 전작인)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후마니타스 2021) 속 인물들의 서사와 포개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미희가 직업보도 시설 협성원에서 노역하다 간신히 탈출한 일을 말했을 때, 나는 10년 동안 염전에 갇혀 살던 이석기를 떠올렸다. 홈리스들 사이의 갈등과 불화나, 상대를 통해 자신의 비참을 거듭 확인하는 과정도 두 책이 서로 닮았다. 쪽방촌 주민 김기철은 술 먹고 떠드는 게 싫다며 이웃과 거리를 두고, 서울역에서 생활하는 강경숙은 대합실에 모여 앉아 음식을 욱여넣는 다른 노숙자들을 징그럽게 바라본다. “이런 구역질 나는 냄새 맡으면서 먹을 게 입에 들어갈까 싶어. 근데 그 냄새가 내 몸에서도 나고 있지.”(50면)

하지만 여성 홈리스의 서사엔 확실히 홈리스의 공통적 경험으로 뭉뚱그릴 수 없는 내상(內傷)이 배어 있다. 남성 쪽방 주민들이 중심이 된 전작에서 두드러지지 않았던 불안이 전면화된다. 서울역은 모든 홈리스가 24시간 감시를 당하면서 살아가는 공간이나, 여성 홈리스들은 역무원의 통제뿐 아니라 남성 홈리스들의 (성)폭력에도 맞서야 한다. 남성 홈리스가 약해 보이지 않으려 남들과 ‘맞짱’을 뜬다면, 여성 홈리스들은 대개 이불과 우산으로 최대한 몸을 가리고 웅크리거나, 화장실로 도망가 변기에서 새우잠을 잔다. 남자들로 빽빽한 쉼터에서 여자들은 구경감이나 표적이 되기 일쑤고, 급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서면 식당 가서 일해라, 당신 때문에 늦어진다는 남성 홈리스의 야박에 시달린다.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 고스란히 노출된 채 살아가는 여성 홈리스들은 보호자를 자처하는 남성과의 만남, 섹스, 동거, 혼인으로 복잡하게 얽힌다. 길순자는 “남자가 있어여지 무시를 안”(219면) 당하기에 쪽방촌 ‘아저씨’한테 매일 저녁을 차려준다. 친밀성과 폭력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진 관계는, 피해와 가해의 구분을 폭력 해결의 출발점으로 여겨온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미희는 ‘삼촌들’과 어울린 덕분에 텐트 생활을 견뎠다 하고, 최현숙은 성폭력에 ‘길든’ 채 살아가는 영주와 가까워질수록 윤리적 미궁에 빠져든다.

안전이 일상 전반을 압도하는 목표가 되면서(이채윤 「여성 홈리스의 ‘집’ 만들기: 서울역 인근 여성 홈리스의 생존과 돌봄」,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석사논문 2023), 불안한 여성 홈리스들은 남성들보다 더 많이 숨는다. 거리 화장실 찜질방 텐트 쉼터 교회 병원 빈집 친척집 등으로 더 자주 움직인다. 그 사이 양손에 쥔 봉다리는 ‘그 여자 가방에 들어갈’ 만큼 불어난다. 역무원이 쓰레기라며 내다 버린 강경숙의 짐가방엔 폐품 팔아 모은 돈과 옷, 명란젓, 오징어젓, 배추김치가 가득 담겨 있었다. 서가숙은 어디서 음식을 받을지 모르니 늘 “비니루”를 줍고 다닌다. 여성 홈리스가 짐이 많은 건 “병”이라면서, 한곳에 머물 수 없는 여자들과 달리 남자들은 “반팔에 생수통 하나만 들고”(76~77면) 다닌다는 말을 덧붙인다. 책을 읽고 서울역 대합실 의자에 물끄러미 앉았다. 서성이는 말들, 타인에게 가닿지 못한 말들을 냄새로 맡았다. 강경숙이 징그러워했던 “구역질 나는” 그 냄새. ‘홈리스 당사자’가 야학 학생이 되고 집회 연단에 서는 시대가 됐다지만, 여성 홈리스의 존재를 포착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여성 홈리스는 책이 될 수 있을까? 청소를 해주는 댓가로 공원 화장실에 머무는 가혜는 곧 “육이오”가 터지는데 도망도 못 가고 “남의 손에 붙잡혀 사는” 현실을 한탄한다(15~16면). “50억씩”(30면) 내는 자릿세는 나중에 집에 가면 갚아야 한다며 강박에 시달린다. 지금도 저자들은 여성 홈리스를 찾아다니고, 그들의 말 조각을 성실히 줍고 있을 테다. 부서진 언어를 책으로 만드는 작업이란 ‘그 여자가 방에 들어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여성 홈리스의 삶이 어수선하게 읽힌다면,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우리가 사회의 지평을 넓히는 대신 제 담을 쌓는 데 몰두하고, 담 너머의 타자를 안타까워하면서도 담을 허물 상상조차 않는 한, 강경숙의 봉다리는 늘어나고, 가혜가 뱉은 말들은 비릿한 화장실 냄새에 묻힐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