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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김종철 『야만의 시간』, 진실의힘 2023

낙인과 추방, 그리고 긍지의 기록

 

 

조은애 曺恩愛

동국대 서사문화연구소 연구초빙교수 fromeuna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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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의 시간』은 저자 김종철이 한겨레 기자로 일할 때부터 2022년 정년을 마친 뒤 최근까지 취재해온 재일동포 사회단체 ‘한통련’(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에 대해 기록한 책이다. 1973년 8월 ‘한민통’(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 일본본부로 출발한 한통련은 1989년 지금의 명칭으로 변경하며 조직개편을 했고 올해 설립 50주년을 맞았다.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단체 가운데 반세기 이상 활동하는 곳은 우리 역사에서 한통련이 거의 유일하다”(340면)고 할 만큼 한국 민주화 역사의 숨은 주역이기도 하다. 최근 정전 70주년을 맞아 한미일 군사행동에 반대하는 촛불평화행동을 개최하고 윤석열정권 퇴진 총궐기를 지지하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반국가단체 만들기에 희생된 한통련의 50년’이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결코 한통련이 걸어온 영광의 역사에 대한 기록은 아니다.

대한민국을 지지하는 재일동포 단체인 민단(재일본대한민국민단) 내의 개혁파 인사들로 구성된 한민통은, 결성 당시 일본 토오꾜오에서 한국 정보기관에 납치된 채 행방불명 상태였던 김대중을 초대 의장으로 추대했다. 1972년 10월유신 이후 국내 민주화운동에 대한 독재정권의 탄압이 더욱 가혹해지던 시절, “해내외에서 활동하는 모든 한국민들의 민주단체들과 각계 애국인사들의 연합체”(「발기선언문」, 198면에서 재인용)를 표방하며 탄생한 한민통은 김대중 구출운동과 한국 민주화·통일운동에 앞장섰다. 그동안 한국 정치상황에 무관심했던 일본 시민사회는 김대중 구출운동을 시작으로 김지하와 전태일, 그리고 간첩사건 조작으로 한국에서 고초를 겪는 수많은 재일동포들을 보며 한국 독재정권과 이에 협력하는 일본정부를 규탄했고 한민통과 연대했다. 해외 한국인들의 연합 투쟁단체인 ‘한민련’(민주민족통일해외한국인연합) 활동까지 주도하며 한국 민주화운동을 국제화하고 세계 여론을 움직인 한민통의 영향력을 경계한 박정희정부는,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조작 사건에 한민통을 끼워넣어 반국가단체로 규정했다. 이후 신군부가 조작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서 같은 규정이 반복되며 한민통의 명예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손상됐다.

『야만의 시간』은 반국가단체라는 오명이 여전히 한통련 활동가들의 족쇄가 되어 조국 왕래와 기본적인 이동권 및 경제활동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처럼 장구한 차별과 박해의 계기를 제공한 것은 한국 정보기관과 검찰, 사법부의 합작으로 이뤄진 ‘한민통 반국가단체 만들기와 굳히기’였으며, 독재정권하의 언론은 거기에 동조하거나 앞장섰다. 권력자들에 의해 이처럼 빨간 줄이 그어지고 악마화되었지만 사실 한민통은 재일동포 사회운동에 개혁의 물결을 일으키고 조국 민주화를 향한 ‘찬란한 투쟁’을 펼친 장본인이기도 했다. 기자 시절부터 이 문제에 천착해온 저자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한통련 활동가와 재일동포 간첩사건 당사자, 정부 인사와 한통련대책위 관계자 등을 여러차례 인터뷰했다. 법원 판결문이나 영사증명서 등의 국가기록과 공간(公刊)된 구술·진술·회고 자료, 그리고 한민통/한통련 기관지인 『민족시보』 등을 아우르는 폭넓은 취재와 자료조사를 통해 한국현대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민주화운동 단체 중 하나인 한통련의 역사가 재구성됐다.

저자는 한국 민주화 이후 한통련의 명예회복을 위해 피해 당사자와 한국의 ‘행동하는 양심’들이 보인 노력을 정당하게 평가하는 한편, ‘잘못 끼워진 단추’를 바로잡을 기회를 놓친 진실화해위원회와 법원의 무책임을 지적한다. 저자가 강조하듯이 한민통/한통련은 단 한차례도 반국가단체라는 법원의 ‘판결’을 받지 않았지만 지금껏 그와 동일시되어왔다. 조작된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 중 하나인 ‘김정사 사건’의 공소장과 판결문 속에 명시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반국가단체로 기정사실화된 것이다. 한민통/한통련에 찍힌 불온이라는 낙인은 권력의 비겁함과 게으름, 그리고 반공이데올로기에 지배된 한국사회의 집단적인 외면과 망각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어떻게 단 한번의 본격적인 수사나 재판에 의한 ‘판결’도 없이 ‘판시’만으로 반국가단체가 될 수 있는 걸까. 이처럼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조차 그토록 오랫동안 허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해방과 분단 이래 재일동포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약한 고리”였고, 그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박 정권으로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157면) 그리고 “조국의 동료 시민에게서도 외면을 받거나 거리 두기를 당하는 처지가 됐다.”(127면) 조작된 간첩사건으로 고통을 겪은 재일동포들은 재심을 통해 속속 무죄판결을 받고 있다. ‘한민통=반국가단체’ 공식이 성립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1977년 ‘김정사 사건’의 당사자도 그중 한명이다. 김정사는 재심에서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는 한편으로 한통련에 대한 반국가단체 규정을 해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무죄가 선고된 뒤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한통련 반국가단체 규정이 안 풀려서 억울하다”고 했고, 김대중 대통령 묘소에서는 “당신이 1980년에 겪은 고통의 근원을 없애려고 했는데 그걸 못해서 죄송하다”(333면에서 재인용)고 말했다. 이는 한민통/한통련과의 관계 끊기나 거리두기의 방식으로는 함께 연루되었던 개인 단위의 명예회복 또한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음을, 다시 말해 개인의 ‘억울함’과 ‘고통’의 근원은 집단에 붙여진 불온이라는 레떼르가 지워지지 않는 한 결코 풀릴 수 없음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이 책에 적힌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과 그들 각각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오오사까 출신의 ‘한통련 삼형제’ 중 막내이자 현재 한통련 조직개혁위원회에서 일하는 김창오는 일본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우에노공원에서 판다를 보게 해준다는 형의 손에 이끌려 처음 한청(재일한국청년동맹) 집회를 찾았다. 우리말도 전혀 몰랐던 그에게 집회장의 분위기는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가난과 거친 육체노동, 술과 가정폭력의 이미지로만 내면화되었던 ‘조선사람’의 자긍심을 거기서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당당하게 자기 나라의 장래를 이야기하는”(209면)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권력에 희생당한 자들에 대한 낙인과 추방의 기록이자, 그처럼 ‘당당히 자기 나라의 장래를 이야기해온’ 사람들의 긍지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저자는 한통련이 반국가단체가 아니라 한국사회에 끊임없이 개입하고 독재정권에 저항했던 반정부 활동가들의 단체였음을 밝히며 한통련의 명예회복과 한국사회의 자기성찰을 촉구한다. ‘일본 안의 38선’이라는 말처럼 재일동포들은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가족이나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내야 했기에 그들에게 조국 통일의 의미란 남다른 것이었고, 이 지점에서 한국 민주화운동과 불협화음을 내기도 했다. 한통련의 역사를 희생과 긍지, 회복에의 머나먼 길로 서사화한 이 책을 출발점 삼아, 앞으로는 이들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더 다양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통련의 운동을 한국 민주화운동 및 통일운동의 역사에 정당하게 자리매김하기 위한 첫번째 조건은 그것에 대해 누구든지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