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촌평

 

 

레이나 립시츠 『미국이 불타오른다』, 롤러코스터 2023

미국의 신좌파, 급진화된 사회운동의 정치세력화

 

 

김선철 金善哲

기후정의운동가 jollary@gmail.com

 

 

202_423

2016년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무소속 정치인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는 극소수가 부를 독점하는 사이 다수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 미국 자본주의에 묵직한 돌직구를 던지며 정치판의 한가운데에 등장했다. 가진 자의 반대편에서 일관되게 자국의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그의 수수하면서도 단호한 이미지는 상대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의 엘리트적 이미지와 대비되었고, ‘좋았던 옛날’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국의 젊은 세대는 샌더스에 열광했다. ‘샌더스 돌풍’은 젊은 세대를 본격적인 정치의 장으로 끌어내는 분기점이 되었다.

『미국이 불타오른다: 세상을 바꾸고 정치를 뒤흔드는 미국의 젊은 진보』(The Rise of a New Left: How Young Radicals Are Shaping the Future of American Politics, 2022, 권채령 옮김)는 ‘샌더스 돌풍’ 이후 정치화되며 미국정치의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는 ‘신좌파’의 등장과 전략, 성과를 다룬다. 신좌파라는 표현은 유색인종 시민권, 도시빈곤 문제, 베트남전쟁, 반식민주의 등을 주된 의제로 내세우며 등장했던 1960년대 학생운동에서 유래한다. 당시 신좌파는 격렬한 사회운동을 전개하며 미국정치 담론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스스로 정치화하는 것과는 거리를 두었다. 그 신좌파가 ‘구좌파’가 되어버린 2010년대 후반 다시금 등장한 ‘신좌파’는 정치권력을 획득하겠다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 도그마에 갇히지 않는 실용적 급진주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새롭다’.

하지만 책은 21세기 초의 신좌파를 결코 단일한 집단으로 다루지 않는다. 그 안에는 사회주의를 가장 중요한 정치적 기준으로 삼는 그룹이 있는가 하면, 사회주의에 친화적이면서도 대외적으로는 사회주의를 내걸지 않는 그룹, 사회주의와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그룹들이 한데 뒤섞여 있다.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이들이 바이든(J. Biden)이 대표하는 주류 민주당의 신자유주의적 접근에 명확히 반대하면서도 민주당을 완전히 거부하는 대신 그 안에서 변화를 모색한다는 점이다.

신좌파의 내적 다양성은 이념 지향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건 아니다. 정치권력을 향한 투쟁은 지역적 맥락에 따라 서로 다른 양상을 띠기 마련이다. 뉴욕이나 캘리포니아같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주, 사우스캐롤라이나같이 보수정치가 압도적인 지역, 펜실베이니아처럼 선거 때마다 지지 양상이 다르게 나타나는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에서 젊은 신좌파 운동가들이 내거는 구호나 담론 전략, 조직화 방식은 각각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이렇게 서로 다른 정치적 맥락에 따라 전략과 전술이 다양하게 구사되는 가운데에도 신좌파가 정치적 공통분모를 지닐 수 있음을 성공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Alexandria Ocasio-Cortez, AOC)나 미국의 민주사회주의자들(DSA), 썬라이즈 운동(Sunrise Movement, 미국의 기후정치행동 단체)같이 잘 알려진 개인이나 단체들을 다루지만, 각각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이들을 더 큰 정치운동의 지형도 속에 위치시킨다. 이 중에서도 사회운동과 정치의 가교 역할을 하며 정치신인을 발굴해내는 ‘정의를 추구하는 민주당원들’(JD)이나 ‘브랜드 뉴 콩그레스’(BNC), 사회운동 활동가와 급진 정치인에 대한 트레이닝을 담당하는 ‘모멘텀’(Momentum, 미국 정치운동조직) 같은 단위의 역할은 각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야말로 신좌파가 미국정치의 ‘변수’로 등장하는 데 결정적인 ‘인프라’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미국의 신좌파가 미국정치의 중요한 변수로 등장했다는 점은 이들의 성과 혹은 한계를 다루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저자는 신좌파가 목표한 만큼의 ‘정치권력의 획득’을 거론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종종 극우 언론의 타깃이 되기도 하고 “언론매체와 민주당 안에서도 권력을 잡은 인물들이 좌파의 부상을 의식하고, 거기에 반응”(163면)하게 만드는데, 이는 이들이 무시할 수 없는 ‘정치세력’으로 부상했음을 보여준다. 행정부권력을 장악한 것은 아니지만, 부분적인 정치권력을 획득했다는 점만은 부정할 수 없다.

정치세력으로서 신좌파의 등장에 있어 사회운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책은 곳곳에서 경제적 불안, 주거 문제, 학자금 빚, 의료보험, 기후위기, 총기폭력, 성차별, 임신중지를 포함한 재생산권, 인종차별, 반이주(민) 정책, 경찰폭력과 같은 이슈들을 언급하는데, 이들 중 많은 것들은 오랜 역사가 있다. 그럼에도 유독 최근 10여년 사이 이런 의제들이 두드러지게 정치화되었던 것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사회를 강타한 월가 점령 운동(Occupy Wall Street),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운동(Black Lives Matter), 기후정의운동, 미투운동을 따른 ‘4세대’ 페미니즘 운동 등 급진적이고 대규모화된 사회운동의 물결 덕이었다.

어찌 보면 이런 사회운동은 서로 다른 이슈 혹은 정체성에 초점을 맞춘 것 같다. 그러나 2010년대 미국의 사회운동은 차이를 강조하기보다는 서로 달라 보이는 억압과 배제가 뿌리에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찾는 과정과 함께 전개되었고, 자본주의체제가 그 뿌리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오늘날 이해되는 방식과는 달리 ‘정체성정치’라는 개념이 애초 “흑인 해방 운동과 페미니즘 운동, 경제적 정의 운동이 서로 결이 다르고 모순된 싸움이 아니며, 그렇게 취급해서도 안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258면)는 지적은 오늘날 미국의 신좌파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미국정치나 사회운동에 식견이 있는 독자라면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는 내용이지만 맥락을 잘 모르는 한국 독자들에게는 낯설고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은 아쉽다. 미국 독자들을 염두에 둔 책이기에 미국정치의 역사와 맥락에 대한 정보가 생략되어 있는 점도 한계로 다가올 수 있다. 이런 한계는 책이 다루는 미국 신좌파의 전략을 통해 한국 독자들은 무엇을 얻을 것인가라는 질문과 연결된다. 제국의 중심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관심은 언제나 뜨거웠다. 하지만 이런 관심은 대체로 소수 지식인들의 호사로 소비되었을 뿐, 체계적 분석을 통해 한국사회의 대안적 전망이나 사회운동 전략을 위한 논의로 이어진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도 ‘체제전환’을 외치며 세력화를 추구하는 좌파운동과 진보정당은 있다. 기성정당과 진보정당을 막론하고 ‘청년정치’에 대한 관심도 점차 뜨거워지는 양상이다. 하지만 진보정치가 어떤 정치적 지향을 담아내야 하고 어떤 전략을 통해 정치적 대안으로 나설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공세적인 고민은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미국 신좌파의 등장과 그들의 전략이 우리에게도 대안이 될 거라 믿을 근거는 없다. 하지만 적극적인 논의를 위한 자양분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