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특집│2기 촛불정부, 어떻게 만들 것인가

 

미디어, 촛불에 찬물을 끼얹는가

 

 

전지윤 田智潤

‘다른세상을향한연대’ 실행위원, 시민언론 민들레 편집위원. 저서 『연속성과 교차성』, 공저서 『우리는 왜 시국선언을 하는가』 등이 있음.

misotolenin@gmail.com

 

 

“‘뉴욕 저널리즘 업계에 허스트가 나타나 격렬한 발행부수 경쟁을 벌이지만 않았더라면 미국-스페인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더욱 끔찍한 사실은 전쟁에 불이 붙게 된 계기가 부주의에 의한 우연 때문이 아니라 발행부수를 늘리려는 의식적인 노력 때문이었다는 점이다.”1

1890년대 미국의 대표적인 언론재벌인 월리엄 허스트(William Hearst)는 미해군 군함이 폭발해 250명이 사망한 사건을 근거도 없이 스페인의 소행으로 몰아갔다. 그것은 신문 판매부수를 늘리면서 전쟁 찬성 여론을 만들었고, 결국 실제 전쟁으로 이어졌다. 미디어는 이토록 힘이 세고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사회의 ‘레거시 미디어’(전통적 대중매체)는 과연 그러한 위력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주요 신문·통신사 11곳을 대상으로 네이버 뉴스 모바일 조회 수를 표본조사한 결과, 지난 4월 총선 때도 큰 증가는 없었다. 전통적으로 뉴스에 관한 관심과 소비가 가장 많이 증가하는 시기인데도 그랬다. 그 바탕에는 언론에 대한 극심한 대중적 불신이 있다. 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에서 7명은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다.2

이토록 불신당하고 욕을 먹고 영향력도 없는 레거시 미디어라면 무시하면 그만일까? 그렇지는 않다. 당장 지난 총선에서도 레거시 미디어들은 서울 강북을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수진 후보가 공천을 받은 지 단 며칠 만에 사퇴하게 만들었다. 언론보도를 통해서 조수진 후보는 ‘인권 변호사라더니 성폭력 가해자를 변호하면서 피해자를 2차 가해하고 괴롭힌 파렴치한’으로 낙인찍혔다. 이런 소식은 ‘KBS에 의하면, 조선일보에 의하면, 한겨레에 의하면’ 하면서 계속 번져갔고, 조수진 후보는 버티지 못했다. 하지만 총선이 끝나고 몇달이 지난 지금, 당시 조수진 후보에 대한 보도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동아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한겨레를 포함한 16개 언론사가 정정보도(일부는 반론보도)를 했다.

대표적으로 중앙일보는 2024년 6월 25일자로 “사실 확인 결과 조 변호사는 가해자로 피해 아동의 아버지를 언급한 적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 바로잡습니다. 또한 조 변호사는 ‘가해자에게 강간통념을 활용하라는 취지의 글을 올린 적이 없다’며 ‘성범죄 가해자로 몰려 억울한 상황이라면 국민참여재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국민참여재판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글의 내용이었다’고 알려왔습니다”라는 ‘정정 및 반론보도’를 했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면서 레거시 미디어의 힘과 영향력은 계속 줄어들고, 그 공백을 유튜브 등 뉴미디어 플랫폼들이 메우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레거시 미디어가 위기라지만 여전히 무시 못할 힘이 있고, 떠오르는 뉴미디어는 아직 완전히 그것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이러한 상황과 맥락에서 ‘2기 촛불정부’ 탄생을 위해 미디어는 어떤 구실을 할 것이고 해야 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우리는 ‘1기 촛불정부’(문재인정부)의 한계와 실패를 넘어서는 2기 촛불정부를 탄생시켜 촛불혁명을 완수해야 할 과제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3 미디어는 과연 2기 촛불정부 탄생을 위한 마중물 구실을 할까, 아니면 그것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까? 우리는 미디어가 의미있는 역할을 하도록 어떤 방식으로 요구하고 압박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 먼저 1기 촛불정부가 어떻게 탄생하고 퇴장했는지, 미디어는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돌아보자.

 

 

1기 촛불정부는 어떻게 탄생하고 퇴장했는가

 

박근혜정부의 몰락 과정에는 민심의 거대한 이반뿐 아니라 기득권세력 내부의 갈등과 권력 다툼도 작용했다. 그것은 2016년 총선에서 보수우파의 패배뿐 아니라 연말에 터져나온 촛불혁명의 불쏘시개가 됐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박근혜정부와 족벌언론의 균열, 진영을 넘어선 레거시 미디어들의 협력이다. 그 균열은 조선일보와 청와대 사이에서 처음 불거졌다. 하나의 계기는 조선일보가 당시 ‘왕수석’인 우병우 일가의 비위 의혹을 보도한 데 있었다. 그러자 박근혜는 조선일보를 ‘부패 기득권’이라고 직접 비난했고, 검찰은 당시 조선일보 주필이었던 송희영의 비리를 밝혀내며 조선일보 방상훈 회장의 숨통을 조였다.

보수우파-족벌언론-검찰이 서로를 불신하고 물어뜯던 이 장면은 기득권 카르텔의 균열과 권력 다툼을 상징했다. 일단 한발 뒤로 물러섰던 조선일보는, 촛불이 터져나오자 앞장서 박근혜를 향해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최순실 국정농단’을 취재하고 보도하는 과정에서 조선일보와 한겨레 등의 레거시 미디어가 진영을 넘어서 협력하는 광경이 펼쳐졌다.4

또 주목해야 할 점은 검찰과 레거시 미디어의 협력이다. 보수우파 정치세력의 ‘하수인’으로 여겨지던 검찰은 신속하게 입장을 바꿔 특검과 함께 박근혜와 측근들을 수사 기소했다. 즉 박근혜는 아래로부터 투쟁에 직면한 기득권 카르텔에게 ‘버리는 카드’가 됐고, 그 과정에서 진영을 넘어선 레거시 미디어들의 공조, 검찰과 언론의 협력이 있었다. 나중에 유출된 녹취록에서 당시 특별검사였던 윤석열은 이렇게 말했다. “뇌물로 좀 엮어가지고 하면 되는데 (…) 박근혜는 어차피 이렇게 됐으니까 저는 버리는 카드인데, 박근혜 조짐으로써 국민들을 조금씩 달래가면서 (…) 박근혜와 보수권력을 분리한 거지.”5 그러나 이것이 2016년 촛불혁명의 의의를 깎아내릴 수는 없다. 촛불혁명은 위대한 아래로부터 민중행동이며 시민혁명이었다.

촛불혁명은 모든 시민혁명이 그렇듯이 처음에는 상부구조에서 정치권력과 통치형태를 변화시킨 ‘정치혁명’으로 출발했다. 이것이 사회경제적 체제를 뒤바꾼 ‘사회혁명’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투쟁하고 있는 양 세력의 힘의 균형과 구체적 상황에서 어느 쪽이 더 적절한 전략과 전술을 채택하는지 등이 중요했다. 그래서 2016년 촛불혁명 속에서 등장한 ‘1기 촛불정부’인 문재인정부의 책임은 매우 무거웠다. 하지만 문재인정부는 임기 중반에 이미 기득권 카르텔의 ‘반혁명’(연성 쿠데타)에 직면했고 결국 권력 연장과 촛불혁명의 완수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문재인정부 5년을 평가하려면 네가지 공정함이 필요하다.

첫째, 문재인정부는 처음부터 급진좌파 정부가 아니라 중도진보적 개혁정부였다. 민주당보다 오른쪽에 있던 사람들도 포괄한 것이 촛불광장이었기 때문이다. 둘째, 이 정부는 국제적 과잉 유동성과 코로나19 팬데믹 등의 악조건 속에서 움직였고 그것이 각종 사회경제적 개혁과 부동산정책 등의 발목을 잡았다. 셋째, 그 속에서도 문재인정부 5년간 저임금 노동자 비중 축소, 소득분배율 개선, 노인빈곤율 하락, 코로나19에 대한 성공적 대처 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넷째, 이 정부를 계속 넘어뜨리려 했던 재벌, 족벌언론, (검찰과 기재부 등) 관료권력의 포위라는 벽에 거듭 부닥쳤다. 결정적 분기점은 2019년 소위 ‘조국 사태’였다. 그것은 단지 검찰개혁에 대한 저항을 넘어서 촛불혁명이 낳은 변화를 뒤집으려 한 ‘반혁명’의 시작이었다.

그 과정에서 다시 등장한 것이 진영을 넘어선 레거시 미디어들의 공조, 검찰과 언론의 협력이다. 물론 족벌언론들이 주도했지만 ‘진보언론’들까지 그 뒤를 쫓아가면서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 그 가족은 ‘파렴치한 가족사기단’으로 전락했다. 레거시 미디어들은 이 행태를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정의로운 견제’로 프레임화했다. 임은정 당시 울산지검 부장검사가 말했듯이 “사냥과 같은 수사”가 진행됐고, 조국과 그의 가족은 “죽을 때까지 찌르니, 죽을 수밖에” 없었다.6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검찰개혁에 맞선 검사들의 리더에서, 촛불이 낳은 변화를 뒤집으려는 모든 지배세력의 리더로 변신을 거듭했다. 촛불혁명에서 궤멸적 타격을 받으며 위기와 분열로 빠져들었던 한국의 기득권 카르텔은 이렇게 다시 힘을 회복했다.

2년 후에 윤석열은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올라섰다. 대선에서 기득권 카르텔의 전략은 첫째, ‘정권 연장이냐 정권 교체냐’라는 프레임으로 2016년 촛불의 기억을 지워버리는 것이었다. 둘째, 반(反) 586 엘리뜨 정서를 이용해 문재인정부를 ‘좌파 운동권 출신의 이권집단’이라고 낙인찍는 것이었다. 셋째, 온갖 가짜뉴스와 여론몰이로 민주당 대선후보인 이재명을 중도층이 차마 지지할 수 없는 ‘괴물’로 악마화하는 것이었다. 넷째, 60대 이상 세대와 영남 지지층, 청년 남성들의 협공으로 민주당 지지자들을 ‘포위’하는 것이었다. 윤석열 후보에게 유리한 뉴스를 부각하며 ‘넉넉히 앞서고 있다’(막상 대선 결과는 0.73% 차이의 초박빙이었다)고 바람몰이를 한 족벌언론들과 갤럽 등의 여론조사가 결국 승리를 만들어냈다. 수사권과 기소권이라는 쌍칼을 이용해 기득권 카르텔의 사냥개 구실을 하던 정치검사들은 이제 직접 그 지휘부마저 차지하게 됐다.

 

 

촛불정신의 부활, 그리고 레거시 미디어라는 걸림돌

 

그럼에도 대선을 거치며 민주당 권리당원은 2030 여성들을 중심으로 100만명이나 늘어나서 나중에는 250여만명에 달하게 됐다. 레거시 미디어들은 이들을 ‘개딸’이라고 낙인찍고 공격하며 ‘민주당은 개딸과 강성 지지층을 벗어나 중도층으로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개딸’을 중심으로 윤석열정권에 대한 분노가 모이기 시작했다. 윤석열 집권 반년 만에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다시 촛불의 기억을 되살리며 윤석열정부의 반대편으로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이 정권이 자신들의 삶과 2016년 촛불정신과 가치를 모조리 짓밟고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그때부터 30%대로 추락하여 한번도 큰 회복을 보이지 못했다. 4월 총선 이후에는 그마저도 더 하락했다.

따라서 총선 전부터 국민의힘의 참패는 예정돼 있었으며 김건희 명품백 문제 등은 민심을 폭발시키는 하나의 계기였을 뿐이었다. 2016년 촛불혁명의 흔적을 지우기에 급급했던 기득권 카르텔은 총선 기간에 극심하고 끝없는 불협화음과 분열상을 드러내며 패배했다. 패배한 것은 국민의힘만이 아니었다. 총선 결과는 레거시 미디어들의 패배, 갤럽 등 기성 여론조사기관들의 패배, 그런 것을 근거로 떠들던 지식인 전문가들의 패배이기도 했다.

레거시 미디어들은 총선을 앞둔 2월에 ‘비명횡사 공천으로 민주당이 망하고 국민의힘이 승리할 것’이라는 분석과 전망을 경쟁하듯이 내놓았다. 그러한 전망은 주관적 희망사항이기도 했다. 그들은 단지 예측할 뿐 아니라 그 예측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골적으로 민주당과 야당 후보들을 깎아내렸으며 국민의힘의 승리를 돕기 위한 보도와 방송, 여론조사 발표를 이어갔다. 그럼에도 그들은 강력한 정권심판 여론과 민심을 바꿀 수 없었다. 민주당의 ‘윤석열 정권심판’ 구호와 혜성같이 등장해 돌풍을 일으킨 조국혁신당의 ‘3년은 너무 길다’는 슬로건이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총선 결과는 촛불정신의 부활을 뜻했고, 그 힘이 다시 역사의 수레바퀴를 앞으로 굴리기 시작했다.

족벌가문과 사주들이 소유한 족벌언론은 한국사회에서 선출되지 않는 진정한 권력자로서 기득권 카르텔의 핵심에 있다. 건설자본과 금융자본들이 소유하거나 통제하는 대부분의 레거시 미디어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레거시 미디어의 구성원들은 대개 이 사회의 엘리뜨들로서 기존 지배질서를 유지하고 기득권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려고 한다. “한국의 신문 방송은 대부분 사회의 공론장이 아니라 기득권 집단의 이념을 전파하고 그들의 이익을 수호하는 정보유통 회사가 되었다. 정치적인 면에서는 보수 세력의 선전기관으로 간주할 수 있다.”7 이것은 레거시 미디어들이 이윤을 우선시하는 언론 장사꾼들이라는 점과도 관련있다.

클릭 수로 광고 수익을 배분하는 포털 사이트 안에서 언론사들 간의 극단적 클릭 경쟁이 벌어지면서 온갖 선정적, 자극적 기사들이 쏟아진다. 포털의 ‘많이 본 뉴스’ 상단에는 각종 낚시성 제목들이 넘쳐난다. ‘언론 윤리강령과 보도 준칙 위에 클릭 장사가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자연히 레거시 미디어의 구성원들은 갈수록 자본, 포털, 사주, 광고주에 종속된다. 특히 가장 중심에 있는 족벌언론들은 그 자체가 거대 자본이고, 재벌이나 정치권력과 유착하면서 기사와 보도를 부와 권력을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

정치검사들의 파트너가 된 족벌언론들은 기득권 우파들이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일으키는 여론재판과 마녀사냥에 앞장서며 허위·조작 보도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렇게 표적이 된 사람을 레거시 미디어들이 범죄자로 낙인찍고, 정치검찰이 나서서 범죄자로 기소하고, 보수적 사법부가 범죄자라고 판결하는 ‘삼인성호’의 덫이 만들어진다. 현재 기득권 카르텔이 이 덫으로 옭아매려 하는 것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다. 이재명 대표는 윤석열정부에서만 7번의 검찰 소환과 5번의 기소를 당했고 일주일 내내 4개의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0.73% 차이로 떨어졌고 다음 대선의 지지율 1위인 야당 정치인을 사법적으로 제거하려는 시도다.

이렇게 되면 선거와 투표는 별 의미가 없어질 수 있다. 이것은 특정 정치인과 정당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이 모든 시도는 2기 촛불정부 탄생을 막으려는 노림수다. 문제는 한겨레와 경향신문 같은 진보언론들도 다른 레거시 미디어들과 함께 이재명 대표에 대한 악마화, 검찰의 표적수사와 기소에 상당 부분 동조하며 따라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국회에서 발의된 이재명 체포동의안에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의 진보언론이 찬성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더구나 이것이 처음도 아니다.

 

 

‘진보’ 레거시 미디어의 한계와 뉴미디어의 도전

 

‘광우병 촛불시위’로 조기 레임덕에 처했던 이명박정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희생양 삼아 위기를 탈출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보인 태도도 문제였다. “검찰과 언론이 한통속이 돼 벌이는 여론재판과 마녀사냥은 견디기 힘든 수준이었다. (…) 무엇보다 아팠던 것은 진보라는 언론들이었다.”8 진보언론들의 이런 태도는 2013~14년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조작과 강제 해산 국면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2019년 조국몰이, 2020년 윤미향 마녀사냥, 2021년 ‘추-윤 갈등’ 프레임에서도 거의 그대로 반복됐다. 왜 족벌언론들에 맞서서 개혁과 진보의 편에 서서 함께 싸운다던 ‘진보’언론들이 중요한 쟁점과 국면마다 이런 태도를 보일까?

몇가지 서로 연결된 이유가 있는데 첫째, 한겨레와 경향신문도 ‘레거시 미디어’의 일부가 됐기 때문이다. 족벌언론만큼의 힘은 없지만 레거시 미디어의 일원이 되면서 상호 비판을 삼가거나 동조화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비슷한 대학과 언론고시를 통과한 사람들의 네트워크 효과도 있다. 같은 출입처를 드나들고 함께 ‘기자단’을 구성하면서 이러한 연대는 더욱 강화된다. 대표적으로 법원과 검찰청 출입기자들의 ‘법조기자단’은 구성원의 가입을 제한하고 선별하는 폐쇄적 이너서클이다. 이들은 정보를 독점하고 공유하면서 취재나 보도 내용까지 서로 비슷해진다.

둘째, ‘기계적 중립의 신화’가 낳는 문제다.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같은 ‘독립언론’은 국힘당 편도 민주당 편도 아니다. 하지만 시민언론 또한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기자들의 언론’이다. (…) 한겨레의 언론 엘리트들은 세상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일보다 스스로 균형을 지킴으로써 자기만족을 얻는 데 집착했다.”9 이것이 공허한 자기만족에 불과한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역사에 이미 힘의 불균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에게 더 큰 책임과 문제가 있는지, 무엇이 원인을 제공했고 무엇이 그 결과이고 반작용인지를 구분하지 않은 채 기계적인 ‘중립과 균형’을 지키는 것은 힘의 불균형을 방관하고 동조하는 일이다. 그래서 미국의 진보적 역사학자인 하워드 진(Howard Zinn)은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고 했다.

문학평론가 강경석도 이렇게 지적했다. “과오와 책임의 크기가 전혀 다른 양자를 한 저울에 올려 평형을 맞추는 것도 중립이고 균형일까. 비판의 무게와 강도는 권력과 책임의 크기에 비례해야 공정한 게 아닐까. 수구언론이야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이른바 팩트체크와 ‘중립’을 앞세우는 매체들의 문제는 더욱 고질이며 소위 진보언론들조차 이러한 혐의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백주에 야당대표가 살해 시도를 당해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여야·좌우 공방론에 묻어버리기 일쑤인 그들의 중립은 이미 편향이기 때문이다.”10 지난 총선에서도 같은 문제가 나타났다. 당시에 진보언론들은 다른 레거시 미디어들과 함께 ‘민주당이 팬덤 정치의 늪에 빠져 이재명 사당이 됐고 비명횡사의 공천 학살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양비론적 기사나 칼럼들을 계속 실었다. 예컨대 한겨레 ‘이진순 칼럼’은 “이번 선거는 ‘누가 더 구리고 더러운가’를 가지고 경쟁하는 ‘비호감의 각축전’”이라고 했다.11

이처럼 진영을 떠나서 족벌언론과 진보언론을 포함한 대부분의 레거시 미디어들은 지난 총선의 핵심이 ‘윤석열 정권심판’에 있음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고, 촛불정신의 부활로서 총선의 성격을 이해하거나 결과를 예측하지도 못했다. 그러면서 결국 시민들로부터 외면받았으며, 그 공백을 야당 지지 혹은 진보적 성향의 유튜브 방송들이 차지했다. 예컨대 총선 기간에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실시간 동시접속자 수가 20~30만명, 하루 시청자가 150~200만명에 달했고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유튜브 방송 10위 안에 항상 올랐다. 윤석열정부를 지지하는 보수 유튜브 방송은 여기에 비교하기도 어려운 수준이다.

 

 

2기 촛불정부 탄생의 과제와 미디어의 역할

 

지금까지 촛불혁명이 어떻게 시작하여 전개되고, 승리 이후 다시 반동에 직면했는지를 돌아보면서 그 과정에 미디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봤다. 여기에서 몇가지 사실들을 확인하며 교훈과 과제를 끌어낼 수 있다. 먼저 족벌언론을 중심으로 한 대부분의 레거시 미디어들이 2기 촛불정부를 탄생시키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의 영향력과 힘을 차단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이다.

특히 현재 족벌언론들은 정치검찰과 협력해 제1야당 대표에게 ‘사법처리를 눈앞에 둔 파렴치한 중범죄자’라는 낙인을 찍고 있다. 이것은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이 자신감을 안고 폭넓게 힘을 합쳐 싸우지 못하도록 하는 방해 요소로 작용한다. 촛불광장에서 함께했던 시민, 정당, 단체들이 서로를 불신하며 다시 손을 잡지 못하도록 끝없이 갈라치는 것과도 연결된다. 윤석열정부가 최악의 무능과 실정, 밑바닥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버틸 수 있는 비밀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이 여론재판과 갈라치기, ‘이재명 방탄, 일극체제, 개딸이 문제’라는 프레임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진보언론들이 이러한 여론몰이에 휩쓸려 저들의 프레임을 반복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진보언론들은 레거시 미디어의 일부이면서 기득권 카르텔의 일부는 아닌 모순적 위치에 있다. 2016년 촛불혁명의 우군이었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보언론들이 ‘기계적 중립’을 벗어나 진보적 뉴미디어들과 함께 더 분명하게 반윤석열 전선에 함께 설 것을 압박하고 견인해야 한다.

당장 ‘대북송금’ 사건에서 이재명을 옭아매기 위한 검찰의 진술 조작과 형량 거래, 증인 매수까지 밝혀낸 탐사보도 매체 뉴스타파의 놀라운 특종보도들을 진보언론들이 ‘이어받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은 진실을 알리며 윤석열정권의 집중적 탄압을 받는 이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함께 ‘이어달리기’를 해야 할 때다. 뉴스타파 심인보 기자는 이를 코끼리 사냥에 비유했다. “코끼리 사냥을 한다고 생각해보자고요. 누군가 먼저 창을 던졌습니다. 코끼리가 엄청 화를 내면서 창 던진 놈에게 달려들겠죠. 그때 옆에서 창을 든 사람들이 구경만 하고 있으면 처음 창을 던진 사람은 밟혀 죽을 겁니다. 하지만 누군가 두 번째 창을 던지고, 또 다른 이가 창을 던지면 결국 코끼리는 쓰러집니다.”12 누군가 코끼리에 밟혀죽지 않도록, 진보언론의 한계를 넘어서겠다는 시민언론 민들레 같은 시도, 뉴스타파 같은 탐사보도 매체들과 ‘기계적 중립’을 거부하는 뉴미디어들을 응원하고 키워나가야 한다. 이들 매체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윤석열 시대에 보기 드문 소중한 기사와 보도들은 2기 촛불정부 탄생으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촛불의 바닷속에서 함께한 꿈과 희망

 

한편 뉴미디어에 대한 지나친 신뢰와 지지가 또다른 역편향을 낳을 가능성 역시 경계해야 한다. 진보적 뉴미디어 유튜브 방송들의 보도와 주장들도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과 기술이 낳는 함정들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편향적 정보 전달과 습득, 같은 주장의 반복과 강화, 다른 견해의 차단과 침묵, 더 극단적인 입장들의 득세로 연결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극우 유튜브 방송들이지만, 진보적이거나 야당을 지지하는 뉴미디어들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 예컨대 지난 총선 직전에 진보적 뉴미디어들 사이에서는 ‘병립형 선거제로 회귀해야 국민의힘을 패배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급속히 번져갔다. 민주당의 득표에 무엇이 유리할지만 실용적으로 고려한 단기적이고 협소한 시각에서 비롯된 태도였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다행히 연동형 선거제를 유지하며 반윤석열 선거연합을 구성하는 선택을 했고, 총선 결과 그것이 옳은 전략이었음을 입증했다. 단지 특정 정파의 이익이 아니라 2기 촛불정부 건설을 위한 더 넓은 세력의 연대라는 관점, 그리고 선거와 투표의 비례성을 높이는 민주주의 원칙에서 봐도 연동형 선거제가 맞았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독자적이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며 무엇이 진실에 가깝고 더 정의로운 판단인지 숙고해야 한다. 또한 총선에서 승리한 야당들이 언론개혁을 위한 법과 제도를 정비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족벌 사주와 건설자본과 금융자본이 사사로운 이해관계와 기득권 카르텔의 이익을 위해 언론 시장을 좌우하고, 가짜뉴스까지 쏟아내며 클릭 장사를 하지 못하도록 막아내며, 언론의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구제하는 내용이어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방송 4법’, 언론 피해자들을 위한 ‘언론중재법’, 정부와 공기업 광고비가 양심적이고 건강한 언론사 육성에 쓰이도록 돕는 ‘미디어바우처법’ 등이 있을 수 있다. 이런 모든 노력과 활동들이 거대한 아래로부터 압력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낸다면 이미 시작된 기득권 카르텔 내부의 갈등과 분열은 더욱 격화할 것이다. 그러면 다시 2016년 촛불혁명 전야와 같은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당시 족벌언론들까지 앞다퉈서 ‘특종’ ‘단독’ 경쟁을 하며 국정농단의 실체들을 보도하고 박근혜 탄핵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총선 이후에 이미 그런 조짐이 보인다. 최근 채상병 사건과 김건희 주가조작 및 뇌물사건에 대한 취재와 보도에 보수적 레거시 미디어들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경계할 지점도 있다. 2016년 당시에 족벌언론들은 성형, 무속, 불륜 등에 대한 선정적이고 말초적인 보도를 하면서 클릭 경쟁을 하고 문제를 주로 박근혜, 최순실, 정유라의 개인적 비리와 인격적 결함으로 몰아갔다. 거기에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혐오도 묻어 있었다. 그 덕분에 기득권 카르텔의 일부였던 정치검사들은 ‘적폐 청산의 주역’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피의사실 공표, 여론몰이와 여론재판, 신상 털기, 별건 수사, 피의자 인권유린 등은 ‘적폐 청산’ 과정에서도 이들이 사용한 수법이었다. 그래서 당시 수사를 받았던 보수우파 인사 일부는 지금도 억울함을 말하며 ‘문재인정부도 검찰을 이용해 정적을 잔인하게 짓밟았다’고 공격하는 근거로 삼고 있다.

족벌언론과 정치검사들이 촛불혁명에 대한 ‘연성 쿠데타’를 시작할 때 그 모든 수법은 더욱 악랄한 형태로 등장했다. 조국, 윤미향 등은 가족들까지 함께 ‘파렴치한 위선자’와 ‘가족 사기단’으로 몰려갔다. 지금 윤석열과 김건희에 대한 무속, 성형 논란과 개인적 비리에 대한 처벌 요구가 계속되는 것은 그 부메랑이기도 하다. 물론 윤석열 부부와 주변 인물들의 권력형 비리 의혹과 부도덕한 ‘내로남불’의 행태는 기막힐 정도이다. 이 모든 진상이 분명히 밝혀지고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2기 촛불정부 탄생은 몇몇 지배자들 개인을 도덕적으로 비난하고 단죄하고 도려내는 과정에 그쳐서는 안 된다. 기득권 카르텔이 기반을 둔 비민주적이고 불평등한 사회경제 구조를 넘어서는 과정이어야만 한다. 1기 촛불정부의 성과를 계승하고 한계를 넘어서며 촛불혁명을 한단계 도약시키는 결과로 이어져야 한다. 기득권 카르텔은 언제나 사람들의 시선과 분노를 본질이 아닌 곳으로 돌리려 한다. 4·19혁명 이후에 김수영 시인이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라고 말했던 것 역시 어쩌면 비슷한 원인 때문이리라. 하지만 2016년 촛불혁명의 바탕에는 단지 박근혜의 국정농단 비리에 대한 분노만이 아니라, 반세기가 훨씬 넘게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기득권 카르텔의 이익을 위한 사회경제적 구조에 대한 변화의 열망과 맹아가 숨어 있었다. 거대한 촛불의 바닷속에서 우리가 함께 꾸었던 꿈과 벅찬 희망을 잊지 말아야 한다.

 

 

  1. 리 매킨타이어 『포스트 트루스』, 김재경 옮김, 두리반 2019, 139면.
  2. 「옥스퍼드 연구 “한국 언론 믿는 한국인 10명 중 3명에 불과”」, 중앙일보 2024.6.18.
  3. 문재인정부는 ‘1기 촛불정부’였고, 윤석열정부는 촛불혁명에 대한 반동이었다. 윤석열정부를 끝내고 새롭게 등장할 ‘2기 촛불정부’는 문재인정부의 한계와 실패를 넘어서 촛불혁명을 완수할 과제가 있다. 그 정부의 대통령과 집권당이 어디일지는 정해져 있지 않지만, 현재로서는 이재명과 민주당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4. 한국에서 뉴미디어와 구분되는 레거시 미디어에는 공중파 방송과 신문이 있는데, 신문에서는 족벌언론들이 중심이고 주도적이다. 하지만 한겨레와 경향신문 같은 진보연론 역시 비록 비중은 작고 비주류이지만 레거시 미디어의 일부로 봐야 한다.
  5. 「선데이저널, 尹 육성파일 전격공개 “朴은 버리는 카드”」, 고발뉴스 2022.3.3.
  6. 임은정 검사 「조국 수사는 사냥처럼 시작된 것」, KBS 뉴스, 2019.9.20.
  7. 유시민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생각의길 2024, 93면.
  8. 문재인 『문재인의 운명』, 북팔 2017, 400~401면.
  9. 유시민, 앞의 책 99~101면.
  10. 강경석 「지금 여기의 ‘중립’은 가짜다」, 『창작과비평』 2024년 봄호, 4면.
  11. 이진순 「사표(死票)는 없다」, 한겨레 2024.4.2.
  12. 「“김건희 녹취록이 날조? 법적 조치 빨리 해달라”」, 오마이뉴스 2022.9.22.

전지윤

저자의 다른 계간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