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특집│2기 촛불정부, 어떻게 만들 것인가

 

2기 촛불정부로 가는 길

 

 

민병덕 閔炳德

제22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

anyangmin@gmail.com

 

 

‘2기 촛불정부’라는 말을 천천히 곱씹어본다. 여기에는 현 정권에 대한 우리 국민의 실망과 국가적 위기, 그리고 ‘깨어 있는 시민’의 적극적인 정치와 사회참여가 전제되어 있을 터이다. 지난 제22대 총선은 이런 국민의 의지를 충분히 보여줬다. 하지만 ‘2기 촛불정부’라는 말에는 윤석열정권으로는 더이상 안 된다는 시민의 판단만 들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촛불혁명으로 세운 지난 정권이 왜 재집권을 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국민의 준엄한 비판과 명령이 담겨 있으리라.

 

 

1. 지속 불가능한 윤석열정부

 

윤석열 대통령과 정권에 대한 시민의 평가는 냉정하다. 임기가 절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지지도는 역대 대통령 최저인 20% 남짓이다.1 해병대원 특검 문제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이태원참사, 방송장악과 언론통제 등 윤석열 대통령과 그의 가족, 정권에 대한 국민적 의혹과 실망은 일일이 말하기도 숨차다. 그 결과 제22대 총선은 정권심판이 주요한 쟁점이었음에도 대통령은 총선 직후 기자회견에서 소통이 다소 부족했던 것을 제외하면 잘못한 것이 없단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정말 ‘노답’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권의 ‘노답’은 민주당과 민주당을 지지하는 시민만의 진단이 아니다. 보수세력 역시 대통령과 정권을 우려하며 ‘제2의 탄핵’ 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분위기는 조선일보의 사설과 칼럼만 보더라도 잘 드러나는데, 특이한 것은 비판의 칼날이 윤석열 대통령이 아니라 김건희 여사를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배성규 논설위원은 7월 10일자 조선일보에 ‘文에겐 있었고 尹에겐 없는 것’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발표하면서 “김건희 여사 문제는 사실상 성역이나 금기어”임을 꼬집는다. “김 여사와 통화하거나 문자를 주고받았다고 자랑하고, 줄 대려고 접근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제어 장치는 작동하지 않”으며 “입바른 소리 하는 참모는 회의에서 배제되거나 자리에서 밀려”나고 “대선 공약이었던 가족 감시 특별감찰관도 2년 넘게 공석”임을 지적한다. 이어 그는 “김 여사 문제를 해결할 의지조차 없어 보인다. 지금 누군가는 ‘노’라고 외쳐야 한다. 경고등을 켜고 제동을 걸지 않으면 결국 사고가 터질 것”이라며 김건희 여사 문제로 탄핵이 일어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이어 7월 11일 조선일보 사설 「정치 평론가와 1시간 통화했다는 김 여사」에서는 “지금 정치권에선 김 여사가 대통령실, 장·차관, 정치권·문화계 인사, 언론인, 유튜버 등과 수시로 전화하거나 문자를 주고받았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어떤 내용인지에 따라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인이지만 공직자는 아닌 대통령 부인은 “공인으로서 책임만 있고 공적 권한은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사소한 말실수, 경솔한 행동 하나가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조심하고 자중해 국정 운영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면 한다”고 강한 우려를 표했다. 조선일보의 주장을 모아보면 “대통령 부인이 정치 게임의 플레이어가 되어 논란의 한복판에 선 모양새”2가 그 자체로 정권을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으니 정권유지를 위해서는 김건희 여사를 버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앞선 칼럼에서 이미 밝히고 있듯이 ‘김건희 여사’는 성역이자 금기어이며, 이로 인해 현 정권의 위기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정부와 여당이 김 여사를 버리면 현 정권의 위기가 해결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윤석열 대통령, 용산과 정부, 국민의힘 등이 보인 온갖 논란의 중심에 김 여사가 있었다며 김 여사를 제물 삼아 문제를 털어내면 이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실망을 극복할 수 있을까? 필자가 보기엔 아니다. 언론과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가족 비리가 터져나오고 측근과의 갈등이 불거지는 등, 연이은 실패를 보여주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우리의 생존을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현 정권의 실정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여기서는 우리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 자체가 심각하게 어려워졌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2. 위기의 한국사회, 무엇이 문제인가?

 

최근 뉴스를 보면 부동산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 듯 보인다. 이것은 경기가 회복되어서가 아니라 정부의 부양정책 때문이다. 정부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집값 상승을 부추겼고, 그 결과 최근 수도권 집값이 16개월째 상승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1/4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가구당 월평균 근로소득은 감소한 반면 재산소득은 증가했다.3 한국은 가계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80% 수준에 달하기 때문에4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부동산 자산을 많이 가졌거나 가질 수 있는 사람의 부가 늘어난다. 그 결과 양극화는 더 심화된다.5 윤석열정부의 부자감세정책과 맞물려 세수는 크게 구멍 나고 그 부담은 국민에게 고스란히 밀려오고 있으며 소득격차는 커지고 있다. 지난 7월 31일 기획재정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국세수입은 168.6조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조원이나 줄었다. 남은 기간 작년만큼 세수가 걷혀도 33조원가량의 결손이 불가피하다.6 이미 지난해 56조원이라는 역대 최대 결손이 발생했는데 올해 역시 전망이 어두운 것이다. 이 때문에 행안부 특별교부세가 예년보다 줄었다. 행안부 특별교부세는 지역에서 예상치 못하게 발생하는 현안, 특히 재난·안전 등 특별한 재정수요에 대비하고자 정부가 편성하는 예산이다. 기후변화로 폭염과 국지성 집중호우, 태풍 등 피해가 이어지는 상황에 관련 예산이 줄어든다면 국민안전을 지킬 재난대비 대응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세수 부족으로 지방교부세까지 줄면서 지자체는 예정된 사업을 대폭 축소해야 하는 상황이며, 17개 시도교육청 역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줄면서 하반기 사업을 추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가발전을 위한 R&D 연구, 복지확대, 민생회복에 관련한 정부 정책이 없는 것도 예산 부족 탓이 크다.

여기에 2027년이면 국민연금 보험료 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전망이다. 현재 한국에서 2차 베이비붐 세대(1964~74년생)의 인구는 약 1천만명에 달하는데, 2029년이면 이들의 은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 세대 이후 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해왔다. 연금개혁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이 여당 안을 전격적으로 수용했음에도 연금개혁을 무력화했다. 이들의 속셈이 연금을 없애고 우리 국민의 노후를 사보험시장에 던지려는 것은 아닌지, 노령인구의 양극화를 더 심화시키려는 의도는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당장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회복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상 성장은 멈추고 후퇴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인구마저 줄고 있다. 2023년 전국 합계출생률이 0.72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가운데 서울의 출생률은 0.55명으로 가장 낮았다.7 인구밀도가 높아지면 경쟁격화로 출생률이 떨어진다는 것은 상식이 된 지 이미 오래다. 대기업 계열사의 75%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 있는데,8 이는 대기업뿐 아니라 대기업을 중심으로 연결된 산업생태계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는 뜻이다. 결국 청년층은 직장을 찾아 수도권으로 모일 수밖에 없고, 이것이 1인가구의 확대로 이어지며 일자리에서 부동산까지 수도권의 경쟁은 전방위로 치열해졌다. 경쟁이 심화되면서 교육비를 포함한 육아와 양육 부담이 또다시 저출생의 원인이 되는 악순환이 구조화되고 있다.

혁신적인 성장동력을 일으키기 위해 정부와 시장, 노동자와 국민이 마음을 모아야 할 때인데, 윤석열정부의 시계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한국의 혁신생태계는 뒤처지고 있으며, 수입을 떠받치던 글로벌 첨단기업은 미국과 유럽의 공급망 자국화와 산업보호주의 장벽에 부딪혀 국내의 생산기지를 철수하고 해외로 이전해야 할 판이다. 지금은 정부가 쌓인 외환보유고로 원화를 방어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럴 힘이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 기업의 무게중심이 미국으로 옮겨간다면 국내로 달러가 들어올 공간이 심하게 수축될 것이다. 내일의 한국경제는 오늘보다 더 우울할 것 같다.

고환율·고물가·고금리의 삼고현상으로 안 그래도 어려운 국민들의 일상이 부동산마저 뒤흔드는 정부의 정책 탓에 더더욱 나빠지고 있다. 소비는 침체되었고 소상공인은 절규한다. 결과적으로 내수가 침체되는 것은 자명하다. 코로나19 팬데믹, 내수 부진 장기화와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임대료 부담이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한계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런데 현 정부는 ‘역동경제 로드맵’이라는 이름 아래 초부자감세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누구를 위한 정권인지 더 확인할 필요도 없다. 한국은 GDP 3만 달러 이상 인구 5천만명 이상인, 세계에 몇 없는 3050클럽에 속하게 됐지만 중산층과 서민, 청년과 노인의 일상은 참담하다.

 

 

3. 대전환기 한복판, 심화하는 위기

 

현재 우리가 서 있는 세계의 지정학과 시간은 한마디로 거대한 대전환기 한복판이다. 자유무역과 세계화를 외치던 미국과 유럽은 블록화와 자국보호주의로 선회했다. 달리 말하면 기술과 산업의 세계대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세계사적 변화의 구조적 출발은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가 중국과 러시아의 도전에 강력하게 맞부딪히면서 다극체제로 이동하고 있는 데 있다. 여기에 디지털전환과 에너지전환이 더해지면서 문명사적 대전환도 함께 일어나고 있다. 세계가 전방위로 충돌하며 다중위기가 몰아치는 이러한 전환기 속에서 윤석열정부의 대응은 적절한가? 대응할 전략은 있는가? 아니 대응전략의 필요성 자체를 인지하고는 있는가?

현재 세계시장에서 기술과 산업의 승패를 가르는 힘은 인공지능과 정보통신기술 등 디지털전환, 그리고 신재생에너지전환 및 이와 연관된 에너지 인프라 산업에 있다. 우리나라는 반도체와 IT 강국으로 성장했지만 윤석열정부가 들어서면서 위기에 몰리고 있다. 내적으로는 탄소중립과 에너지전환 준비 부족으로 어려움에 직면했고, 외적으로는 글로벌 공급망 재구축과 산업보호주의 압력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는 안보재이자 정치재이기 때문에 국가와 공공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공가치 창조에 국가의 역할이 긴요하다는 영국의 경제학자 마추카토(M. Mazzucato)의 주장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9 에너지전환을 위해서는 국가가 전략적이고 과감하며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위험부담자 역할은 물론 시장개척자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국가의 공적 역할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한국의 글로벌기업이나 수출기업이 한국에서 생산을 하려 해도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런데 지금은 정부 차원의 공적 역할이 아예 실종된 상황이다.

외부적 위기에도 전혀 대응하지 못한다. 미국은 자국 기업의 성장과 보호를 꾀하고 커져가는 중국을 견제, 나아가 한국과 대만 등의 첨단산업 기반을 미국으로 흡수할 요량으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제정했다. 미국의 이러한 제조업 본국회귀(reshoring) 전략에 대해 정부가 제대로 된 그 어떤 대처도 하지 못하는 사이 국내 배터리 3사는 미국에 대규모 생산설비투자를 하게 되었다. 한국 대통령 부부는 이런 상황에는 아랑곳없이 명품백 수수, 양평고속도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채상병 사건 등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분노에 마이동풍으로 일관하며 국가비상금을 대통령실 이전과 해외순방에 쏟아붓고 있다.

한마디로 윤석열 대통령의 2년 남짓한 임기는 실패의 연속이며, 그는 가히 ‘절망 유발자’라 할 만하다. 대통령은 해병대원 특검법이나 김건희 여사 특검법뿐 아니라 야당이 올리는 거의 모든 민생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야당이 합법적이고 정당하게 진행하는 상임위 활동을 방해하고 있으며, 대통령은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사람들을 국세청장과 방송통신위원장 등 고위공직자 후보로 추천한다. 시민사회와 야당의 반대에도 대통령은 강민수 국세청장을 임명했다. 이진숙 방통위원장은 대통령의 임명 강행에 반발한 국회가 탄핵안을 가결시켜 직무정지 상태에 놓여 있다.

정부는 야당이 압도적 다수인 국회를 무시하고 독주하며 파행과 파국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 그리고 국민의힘은 이를 관리할 능력이 없다. 촛불은 국민의 명령이다. ‘절대권력’ 같아 보이던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한번 해봤으니 또 할 수 있는 게 경험칙이다. 정치검찰의 무도함과 방탄 국정운영을 우리 국민이 지켜보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4. 2기 촛불정부의 과제

 

2기 촛불정부라는 과제 앞에, 민주당은 다른 야당 및 시민사회와 힘을 모아 윤석열정권의 폭주를 저지해야 한다. 해병대원 특검법이나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관철시키고, 언론개혁 과제를 완수해야 하며, 과도한 검찰권력을 견제하는 등 무너진 국가의 기강과 민주주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민주당이 책임정치를 다했다고 할 수 없다. 국민의 명령에는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요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재명 당대표 후보가 언급한 “먹사니즘”10은 이런 국민의 요구와 명령을 잘 반영한 민주당의 지향점이라 하겠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장과 분배가 균형을 이뤄야 함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분배의 차원에서 보면 민주당은 이미 준비가 많이 되어 있다. 경제적 약자인 ‘을’들의 협상권을 높여주어 이를 통해 사업의 이익을 정의롭게 분배하도록 하자는 상생전략이다. 반면 성장전략은 다소 부족하다. ‘먹사니즘’을 구조적으로 구축하기 위한 성장전략과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민주당은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한국의 핵심적인 성장전략은 기술과 수출산업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나라 대외관계전략의 지렛대가 되어 한반도의 평화와 자율성 강화에도 기여할 것이다. 디지털전환과 에너지전환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시장이 함께 협력하여 빠르고 선도적인 ‘에너지믹스’를 체계적으로 구축해야 하며, 첨단기술과 수출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주목해야 할 분야는 재생에너지 관련 산업이다. 특히 세계적으로 탄소국경세가 도입되는 추세에서는 미래의 경제적 성패를 좌우하는 분야가 될 것이다. 엄청난 규모의 투자가 과감히 이루어져야 한다. 국내 사례를 살펴보면 전남 해남군 간척지의 대규모 태양광발전소는 보성기업이라는 사기업의 것이다. 전남 신안군의 경우 태양열 발전의 일부 수익금을 주민들에게 배분하면서 섬 지역의 인구가 늘고 있다. 이처럼 광역지자체 단위로 에너지 공기업을 마련하고, 금융이 적극적으로 역할을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한가지 예로, 전북 익산의 성당포구마을에는 만 70세 이상 거주 주민에게 매달 10만원의 ‘마을자치연금’을 지급한다.11 태양광발전시설 수익금으로 마련한 재원을 공적 연금 외 별도의 연금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공동체 소득 명목으로 수익금의 일부를 지역에 배분한 좋은 정책이다. 여기에 공기업이 적극적으로 투자하면 그 소득을 더 나눌 수 있지 않을까? 마을의 협동조합이 은행의 투자를 받아 출연기관으로 참여하면 더 많은 재원이 마련되지 않을까? 지방소멸을 막고 지역을 살리며,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기본소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에너지 고속도로의 건설도 시급하다. 한전의 적자만을 탓하며 전력계통에 대한 투자를 실기하면 안 된다.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과감한 투자는 미래를 준비한다는 심정으로 사활을 걸고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이다. 아울러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지역에 전기를 대량으로 필요로 하는 산업을 유치하면 지역균형발전을 통한 지방소멸 방지라는 목표를 자연스레 이룰 수도 있다.

그러나 성장이 곧 국민 모두의 윤택한 삶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다면 성장의 의미가 퇴색될 것이다. 성장과 일자리 균형은 소득격차와 양극화 완화의 출발점이다. 정부와 기업은 노동을 존중하고 상생하기 위한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특히 새로운 기술 개발에 따른 노동의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민주당이 ‘을기본권’ 강화를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을기본권이 해당 사업에서의 이익을 공정하게 나누는 핵심적인 기능을 하며 노동의 정의로운 전환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용자와 노동자의 지위가 현격하게 불균등하면 수익은 대부분 사용자의 몫이 된다. 을과 을의 싸움은 이 모순을 은폐할 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근본 모순의 해결을 위해 을들이 단결해야 한다.

기술이 고도화되고 생산성이 높아지면 인간은 행복해져야 한다. 적게 일하고 긴 여가시간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더 불행해지고 있다. 초저출생과 세계 최악의 자살률을 기록 중이다. 높아진 생산력에 따른 공정한 배분이 이루어지지 않아 양극화가 심해지고 서민들은 더 불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란 ‘한 사회에서 희소한 가치의 권위적 배분’으로 정의된다. 제 기능을 잃어버린 정치를 바로세우는 일, 그것이 2기 촛불정부의 주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적게 일하고 긴 여가시간을 누릴 수 있으려면 기본적인 삶을 보장해주는 시스템이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 논쟁의 핵심은 재원일 것이다. 사실 재원을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큰 정치적 부담으로 인해 실현 가능성이 낮다. 그보다 모두의 것인 햇빛과 바람을 이용하여 재생에너지에서 나오는 수익을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적극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모두가 원료의 주인인 데이터를 가공하여 창출되는 수익을 데이터세나 빅데이터세 등으로 고려하는 방안도 상상해볼 수 있다.

선진 대한민국의 새로운 사회관계와 성장 및 분배전략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국민과 함께 토론하며 더 나은 길을 찾는 일이야말로 윤석열정부에 대한 심판과 더불어 민주당이 준비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이에 민주당은 지난 제22대 총선의 공약으로 ‘민생회복, 미래희망, 민주수호, 평화복원’의 4대 비전을 바탕으로 한 10대 핵심과제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12 민생회복과 미래성장 동력 확보, 민주주의 수호, 한반도평화와 외교적 협력 강화를 목표로 새로운 촛불정부를 준비하고자 한다.

 

 

5. 어떻게 2기 촛불정부를 만들 것인가

 

2기 촛불정부로 가는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도 필요하다. 시대에 역행하고 국가운영을 방기하는 윤석열정부의 행태를 하루라도 빨리 끝내야 한다는 국민의 요구는 언제든 들불처럼 번질 수 있다. 어떤 경로로 이를 실현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특검 등의 조사에 의해 대통령직을 계속 수행할 수 없을 만한 잘못이 확인되거나 심각한 국가위기를 초래하는 국정운영에 대한 우려가 그 트리거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이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를 의식해 민주당이 해야 할 일을 중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특검을 계속 추진하고, 잘못된 인사를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막고, 그 모든 문제점을 드러내는 의정활동을 강화할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판단과 객관적 사실에 따라 정치적 변화가 진행될 수 있는 것이 곧 민주국가이며 우리 민주주의의 저력이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과 유럽 등에서 극우, 인종주의 등 심각한 위협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민주주의가 건재함을 보여주는 것은 세계에 한국의 위치를 높이 세우고, 앞서 언급한 민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더 나은 환경을 조성하는 일일 수 있다.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전개되든 마지막 단계에서는 대선을 거쳐야 한다. 다음 대선의 상대방은 윤석열이 아니다. 따뜻함, 유능함으로 포장된 후보가 나올 수 있다. 여기서 제1야당이자 유력한 수권정당으로서 민주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민주당이 지닌 수권정당으로서의 잠재력은, 인구 대비 세계 최고인 당원 수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당원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유권자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대중정당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정당민주주의부터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 직접민주제로서 전당원총회가 있어야 하고, 대의원 선출과정은 투명하고 공정해야 한다. 공천 과정에서 후보자들의 공개토론제도를 정착시키고 당원들의 영향력이 커지게끔 해야 한다.

지역위원회의 전국대의원 추천 기간은 2일 또는 3일 정도인 것이 관행이다. 그런데 대다수 당원은 누가 권리당원인지 알기 힘들고, 생업에 종사하면서 이삼일 만에 직접 추천 서명을 받아 지역위원회에 제출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구조가 반복되지 않도록 필자의 지역구인 안양시 동안구갑에서는 8일 동안의 공모기간을 거쳐 전국대의원을 선출했고, 국회의원이 SNS 및 당원 채팅방 등을 통해 직접 홍보했으며, 댓글이나 문자로 지지 의사를 밝힌 권리당원의 서명을 받을 수 있도록 행정적인 지원을 했다. 공천 과정에서도 공개토론을 통해 전문가 배심원과 권리당원 배심원의 평가를 받았고, 그 의사가 그대로 반영되어 시도의원을 선출하기도 했다. 당원 주권은 당원이 결정하는 것이 핵심으로, 민주당에서 확대 시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민주당이 집권하면 내 삶이 어떻게 변하는지,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면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는지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한다. 계획을 제시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례로써 증명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법률안을 만들어도 집행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면, 민주당이 효능감있는 성공 사례를 보여줄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경기도다. 집행권력과 의회권력을 모두 차지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확보한 입법권력은 직접 정책을 집행하지 못하고, 행정부의 협력을 받지 못하면 효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민주당이 제시하는 정책들을 경기도에서 시, 의회, 민주당이 협력해 하나둘씩 실현해간다면 수권정당으로서의 민주당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다. 민주당의 정책을 국민 모두가 원한다면 윤석열정권도 국민의 뜻을 따라야 할 것이다. 이러한 모델로 경기도를 중심으로 광주 전남 등 다른 민주당 지방정부와 협력하여 지방행정권력에서 민주당의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정책을 구현할 수 있다. 민주당은 민주주의의 역사와 함께해온 정당이다. 민주주의의 발전과정에서 언론도 성장하고 경제발전도 함께 이뤄냈다. 그러나 이제 언론은 개혁이 당면 과제가 되었고 정치검찰도 개혁이 필요하다. 민주주의 위기가 외교안보 위기를 불러오고 있으며, 윤석열정부는 민생파탄을 방치하고 있다. 국민의 목소리가 담기지 않은 국정운영이 대한민국을 결딴내고 있다.

분노를 조직하는 것으로 단기적 목표를 이룰 수는 있다. 그러나 삶 전체를 책임지는 집권까지 이뤄내기는 힘들다. 국민들이 각자 느끼는 삶의 불안을 해소해주어야 한다.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이는 것이 현재의 정치위기를 조기에 극복하고 정치적 전환을 촉진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길이다.

 

 

  1. 「尹 지지율 24%, 역대 대통령 취임 2주년 지지도 ‘꼴찌’」, 프레시안 2024.5.10.
  2. 박정훈 칼럼 「김 여사의 그림자」, 조선일보 2024.7.13.
  3. 「2024년 1/4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 통계청 2024.5.23.
  4. 「2023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 통계청 2023.12.7 ; 「자산 80% 부동산 묶여… 증시로 돌려야 국가도, 노후도 ‘윈윈’」, 서울경제 2024.5.2.
  5. 사실 이런 위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이미 박근혜정부 때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의 급속한 기술 성장으로 한국 중간재-중국 완성재의 가치사슬에서 한국과 중국의 경쟁구도가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이에 대한 박근혜정부의 해법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처럼 기술과 산업의 비전을 내놓고 정부의 과감한 투자와 위험부담자(risk taker) 전략을 세우기보다 ‘내수 진작’을 외치며 레버리지를 통한 부동산 급등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었다. 이런 구조적 위기는 양극화 심화로 이어지고 중산층과 청년층의 위기 및 저출생의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6. 「’24.6월 국세수입 현황」, 기획재정부 2024.7. 31; 「2년 연속 ‘세수펑크’에 재추계 불가피… 정부, 9월 발표 전망」, 뉴스1 2024.8.1.
  7. 「2023년 인구동향조사 출생·사망통계」, 통계청 2024.2.28.
  8. 「대기업집단 계열사 75% 수도권 집중… 지역경제 쇠락 부추긴다」, 중소기업뉴스 2022.3.28.
  9. 「마추카토 교수 “국가, 문제 해결사 넘어 공공가치 창조할 수 있다”」, 한겨레 2020.12.2.
  10. 「이재명 “‘먹사니즘’이 유일한 이데올로기”」, 경향신문 2024.7.10.
  11. 「“고기도 사고, 손주들 용돈도 주고”… 마을자치연금 ‘기쁨 두배’」, 경향신문 2024.5.21.
  12. 10대 핵심과제는 △민생 안정 △저출생 문제 해결 △기후위기 대처와 재생에너지전환 △혁신성장과 균형발전 △건강하고 행복한 국민 삶 △국민 안전 △소상공인·자영업자·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한반도 평화 △민주주의 회복 △정치개혁·헌법 개정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