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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신경숙 申京淑

전북 정읍 출생. 1985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소설집 『풍금이 있던 자리』 『오래전 집을 떠날 때』 『종소리』 『모르는 여인들』, 장편소설 『깊은 슬픔』 『외딴방』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바이올렛』 『리진』 『엄마를 부탁해』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아버지에게 갔었어』, 연작소설 『작별 곁에서』 등이 있음.

 

 

 

밤의 다섯번째 모서리

 

 

*

 

여름이 오기 바로 전, 내가 십대 때 떠나온 집에서 보낸 그 하룻밤에 대해 말하고 싶어졌다. 여름 내내 자주 그 밤이 떠올라 한번은 얘기를 해야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헤어지게 될 친구가 들어주었으면 싶은 그 밤의 이야기. 그날 그 집에 도착한 시간이 거의 자정 무렵이었으니 좁혀 말하자면 자정쯤에서 새벽 네시 혹은 다섯시 사이의 이야기. 하룻밤이라고 했으나 하룻밤도 채 못 되는 밤 이야기. 문득 그 밤의 일들을 이야기라고 해도 될지 묻고 싶어진다. 이야기가 못 되면 집을 떠나지 못한 존재들의 기척이라고 해두자.

애초에 내가 마흔이 될 때까지 ‘우리 집’이라고 불렀던 그 집에서 혼자 하룻밤을 보낼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으나 지난 십여년 동안 만나는 일이 없이 지냈던 제이가 몇달 전에 내게 꽤나 간절하게 자신이 대학을 나온 도시를 방문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곳에 제이의 은퇴한 은사가 이끄는 음악을 듣는 모임이 있는데 그 모임이 십년이 된 기념으로 이번 모임 진행을 내가 맡아주었으면 한다는 게 요지였다. 제이의 은사는 내가 잠시 맡아 진행했던 라디오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의 애청자였다고도 했다. 내가 그 일을 그만둔 지는 벌써 삼년 째다. 프리랜서 진행자인 나는 들어오는 일거리는 마다 않고 대부분 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음악과 관련된 것은 어떤 일도 하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함께 모여 음악을 듣는데 진행이 왜 필요할까 싶어 망설였다. 제이는 기차만 타고 오면,이라고 문자를 보냈다. 기차역으로 자신이 마중 나와 있다가 내가 다시 돌아갈 때까지 함께하겠다고 했다. 어떤 관계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채 작별을 앞두게 될 때가 있다. 제이가 그렇다는 게 아니다. 이 이야기를 아직 들려주지 못한 친구와 나의 관계가 지금 그런 듯하다. 친구는 제이처럼 멀리 살지도 않고 제이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초등학교를 같이 다닌 것도 아니고 제이와 나처럼 가족사의 어느 부분을 서로 공유하고 있지도 않다. 오래전 비 내리는 날 지하철 옆자리에서 우리가 같은 음악을 듣고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되어 말을 섞게 된 친구는 이후 나의 방에 와서 깻잎절임 중심인 비슷비슷한 반찬을 놓고 갓 지은 밥을 함께 먹었고, 길치인 나는 친구가 이사하는 날 이른 아침에 버스를 타고 처음 가보는 동네에 내려 친구의 새로운 보금자리에 부려진 오래된 레코드판과 CD와 LD들을 계단을 오르내리며 옮기고 정리해주었다. 친구는 점점 더 작은 공간으로 거처를 옮겨가면서도 이제는 개인적으로 쉽게 접근하기엔 번거로운 LD를 작동시키는 기기와 프로젝터를 포기하지 않았다. 십대에 ‘우리 집’을 떠난 후, 그것도 서른 지나 만난 사람과 서로의 거처까지 내왕하는 관계로 발전한 일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우리의 관계에 각별함을 느끼곤 했다. 뿌연 은하수 속에서 솟아오른 별똥별 같았다고나 할까. 그동안 친구가 내게 전해주는 에너지에 의지해 참기 어려웠던 순간들을 견뎌낸 일이 여러번이었다. 어떤 순간엔 확 내뱉고 싶은 거친 말을 친구 덕분에 누르고 침묵을 택할 수 있었고, 글렌 굴드의 피아노 연주를 함께 듣는 어떤 밤엔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껴져 마음이 충만해진 나머지 눈가에 설핏 눈물이 맺힌 적도 있었다. 그렇다. 나는 친구와 나를 ‘우리’라고 말하곤 했다. “우리 언제 만나?” “우리 만나서 얘기해.” “우리 함께 가.” “우리가 그걸 어떻게 할 수 있겠어.” 어느 돌봄센터의 후원자 명단 끝에 나란히 우리 이름을 써넣은 적이 있는 우리는 기쁨도 낙담도 같이 나누었고 뭐든 같이 보고 싶어하고 어디든 같이 가려고 했다. 그랬던 우리가 두어해 전부터 여럿이는 같이 만나도 단둘이 만나는 일이 없어졌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나는 그리된 이유를 알고 있는 것도 같다. 우리가, 정확히 말하면 내가 더이상 친구에게 위로도 기쁨도 에너지도 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자각. 관계에도 자격이 있다면 음악에서부터 멀어지기 시작한 내 삶이 그 자격을 상실한 느낌이랄까. 그걸 깨달았을 때 마음이 아팠지만 그렇다고 이런 말들을 친구와 나눈 것은 아니다. 더이상 우리가 같은 음악을 듣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것도 서글픈데 입 밖으로 내서 확인할 용기까지는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도 그 친구가 그리우니까. 그리워만 한다. 이따금 그리움은 사무쳐서 우리가 나눈 대화들이 어떤 모서리에 부딪힌 후 되돌아와 내 가슴에 박히는 것 같은 통증을 경험하기도 했다. 자주 어디론가 뛰어갈 자세를 취하는 야릇한 버릇이 내게 생긴 게 그 무렵부터인 듯하다. 친구와 만날 약속을 하고 멀리서 친구가 보이면 먼저 달려가 반갑게 팔짱을 끼고 친구의 목덜미에서 나는 익숙한 샴푸 냄새를 맡으며 우리가 아는 서점이나 음반가게가 있는 거리를 함께 걷고 싶은데 그러지는 않고 생각만 하고 있기 시작한 때부터. 언젠가 캘리포니아에 가게 되었을 때 낯선 골목 지하 레코드가게에서 마리아 칼라스가 청중 앞에서 마지막으로 노래한 일본 삿뽀로 공연이 담긴 LD를 꽤 많은 돈을 지불하고 구했다. 여행에서 돌아가면 친구에게 주려고 포장까지 해 와서는 아직도 지니고만 있다. 유튜브 뮤직을 통해 어디에서나 음악을 듣는 세상에 이제 와 LD라니 싶은 마음이 좀처럼 뒤로 물러나질 않았다.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나는 발이 작아서 제법 굽이 있는 구두를 신어도 아장아장 걷는 느낌이 되는 친구의 보폭에 내 걸음을 맞추고 친구의 체온을 가까이서 느끼며 같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거리를 걷고 싶어 눈이 감긴다. 다시 그런 날이 올까? 생각하면 자신이 없어지며 입술이 꾹 다물어지고 곧 공허함에 휩싸이게 되거나 예기치 못한 쓰라림으로 가슴이 미어지려 한다.

거기에 비하면 제이는 십여년을 만나지 않아도 멀어졌다는 느낌이 없었다. 일년 만에 한번씩 문자를 보내도 거리감 없이 잘 지냈냐,고 물을 수 있었던 건 제이와 내가 같은 태생지에서 자라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만이라면 제이와 같은 존재가 여럿이어야 하나 어린 시절 동무들과는 어느덧 모르는 사람이 되었고 지금 내 곁엔 제이만 남아 있다. 제이의 요청이 꽤 간절했고 처음 말이 나왔을 때는 두 계절 뒤의 일이기도 해 “알았어” 해둔 약속이 바로 앞으로 다가온 게 여름 직전의 일이다. 나는 날짜가 닥쳐서야 서둘러 기차표를 예약했는데 기차를 타고 보니 내 좌석에 물빛 중절모를 쓴 중키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 내가 스마트폰에 저장된 승차권을 보여주니 노인은 슬그머니 일어나 앞자리로 옮겨 앉았다. 무임승객인 듯했지만 내가 나설 일은 아니어서 내 좌석에 앉아 기차의 진동에 몸을 맡겼다. 이상한 것은 승무원이 승차권을 확인하느라 객실 안을 두어번 오갔는데도 노인의 좌석은 그냥 지나쳤다. 무슨 상관이람, 괜히 계속 노인을 주시하는 내가 짜증이 나서 눈을 감아버리고는 제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기차역에 당도했음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올 때까지 눈을 뜨지 않았다. 내가 내릴 채비를 하는데 공교롭게 노인도 일어섰다. 생각보다 키가 더 작은 노인은 뜻밖에도 음악을 듣는지 귀에 무선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 기차에서 내려 대합실까지 나오는 동안 나는 줄곧 노인을 따라가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노인을 살피느라 넘어질 뻔하기도 했다. 제이는 여전하지 않았다. 반듯했던 등이 얼마간 굽은 듯했고 염색할 날짜가 다가오는지 양쪽 귀밑머리가 희끗했으며, 스타벅스 로고가 보이는 냉커피가 담긴 컵은 남의 것을 잠깐 들고 있는 것처럼 어울리지 않았다. 제이의 눈에 밟힌 나 또한 여전하지 않을 것이어서 제이의 눈은 바라보지도 않고 “오래 기다렸어” 하고 말았다. 십여년 만에 만난 사람들치고는 싱거운 인사였다. 게다가 내 눈은 계속 노인의 뒤를 좇는 중이었는데 제이와 인사를 나누는 사이 노인은 홀연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그날 음악을 함께 들으려고 모인 사람들에게 전직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이자 현재 음악 에세이를 쓰는 작가로 소개되었다. 음악 에세이?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지만 아니라고 할 수도 없었다. 가끔 문화 관련 잡지에 음악에 관계된 에세이를 쓰기도 하니까. 사람들과 함께 감상한 음악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스끄랴빈의 피아노곡 「불꽃을 향하여」였다. 바깥은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였지만 실내는 후기낭만주의를 대표하는 두 작곡가의 상승과 하강을 거듭하는 선율로 가득 찼다. 나는 그날 중으로 다시 돌아올 기차표까지 예매해둔 상태였는데 생각과는 달리 음악모임의 분위기가 세련되고 진지해 시간이 어찌 흘러가는지도 잊은 채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에 몰두했다. 그곳에서 만난 앳된 용모의 고등학생이 19세기와 20세기 초반을 연결하는 독일과 러시아 출신의 두 작곡가의 음악을 모더니즘과 원시주의의 만남이라는 관점에서 얘기해줄 수 있느냐는 예상밖의 질문을 하는 바람에 잠시 흔들리기도 했다. 물 불 공기 흙이라는 우주를 이루는 네 원소와 동서남북이라는 우주의 네 방위에 대한 상상이 두 작곡가의 음악에서 어떤 예언적이고 신비한 효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해 얘기하다가 나도 모를 소리를 하고 있다는 자각에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제이의 은사가 손수 구운 피칸파이까지 천천히 먹고 보니 결국 돌아가는 밤기차를 탈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담담할 수 있었던 것은 믿는 데가 있어서였다. 십대에 집을 떠난 뒤 마흔 무렵까지 조금만 시간이 주어지면 막차를 타고서라도 기필코 내가 가고자 했던 그 ‘우리 집’이 겨우 산 하나만 넘으면 되는 거리에 있었다. 그 집에 들르지도 않고 돌아온다는 것이 어째 마음에 걸렸다. 결국 나는 혹시 싶어 돌아올 기차표를 예매하던 중에 막내 건에게 전화를 걸어 이제 빈집인 ‘우리 집’ 사용법을 미리 알아둔 것이다. 기차표를 바꾸려고 코레일 앱에 다시 들어가 예약승차권을 들여다보다가 나는 아, 하고 탄식했다. 무슨 착각이었을까. 예매해둔 기차표는 당일 게 아닌 다음 날 밤기차표였다. 그러니까 나는 그날 밤 돌아갈 수 없는 기차표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

 

그날 밤 ‘우리 집’의 샛문이 열리지 않아 나는 제자리에서 괜히 몇발짝 뛰어보았다. 나도 모르게 두 팔을 겨드랑이에 붙이기까지 해서 내 손에서 갑자기 놓여난 캐리어가 어둠 속으로 쭈르르 굴러가다가 우물이 메워진 자리의 시멘트 돌출 부위에 걸려 멈췄다. 긴장하거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일단 뛰는 자세를 취하는 습관이 친구와 둘만의 시간을 갖지 않게 된 뒤부터 생긴 것은 맞지만, 이전에도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것이겠지, 싶으면 매번 서글퍼진다. 누가 먼저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단둘의 만남을 회피했다. 여러 사람 속에 섞인 상황에서는 화들짝 반가워하며 “잘 있었어?” 어디 먼 데라도 다녀온 것처럼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친구 옆자리에 앉고 싶은데 멀찍이 앉고, 친구에게 예전처럼 같이 조금 걸을까? 하고 싶은데 얼른 버스에 올라탄 뒤 손을 흔들게 되고 난 뒤부터 생긴 습관. 그게 우리 집으로 들어가는 샛문이 뜻대로 열리지 않는 상황에서까지 출현하자 나 자신에게 어처구니가 없는 마음이 되었다. 겨드랑이에 붙인 팔을 내리고 굴러간 캐리어를 다시 끌어오다가 나는 예전의 우물 자리에 잠시 서보았다. 누가 기억할까? 시멘트로 덮인 이 자리에 깊디깊은 우물이 있었다는 것을. 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 발을 씻고, 등목을 하고, 배추를 씻었다는 것을. 이 우물이 언제 메워졌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이 집을 떠난 후 어느 해인가 와서 보니 집의 흙 마당이 시멘트로 덮이고 또랑에서 샛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있던 우물도 메워지고 없었다. 사라진 흙 마당과 메워진 우물을 보면서 이 집을 떠난 후 처음으로 나는 큰 목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이게 뭐예요? 마당이 왜 이리 되었어요? 저기 우물은 어디 갔어요? 아니 이게 뭐야.” 나는 거의 울듯이 아버지에게 대들었다. 아버지는 물끄러미 나를 보더니 “니가 여기서 살아봐라” 했다. “살아보면 그런 소리 못한다”고. 살아보면…… 그런 소리 못한다,는 말을 내가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흙 마당은 봄비에도 질컥거렸으니까. 여름비에는 아예 마당에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았지. 처마 아래 마루에서 대문으로 이어지는 마당에 넓적한 돌을 디딤돌로 깔아놓아야 했다. 비 내리는 날 그 돌을 딛지 않고 누군가 급히 마당을 질러 들어오면 토방은 순식간에 질컥거리는 흙바닥으로 변했다. 겨울 마당은 또 어땠는가. 사나흘씩 장설이 내리는 고장이라 마당에 한가득 눈 오는 날이 자주 있었다. 담처럼 쌓여 있던 눈이 서서히 녹아 봄이 올 때까지 흙과 눈이 뒤섞여 마당은 마냥 질컥거려 신발이며 바지 끝이 흙범벅이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마당을 좋아했다. 바람 부는 가을날 밤이면 옆 마당의 감나무 잎들이 수수수 떨어져 마루 앞까지 쓸려와 사그락거리는 소리를 잠결에 듣는 것도 좋았고, 이따금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마당의 흙이 돌돌 말릴 때 코끝에 맡아지는 흙냄새는 싱그러웠다. 장마 때면 마당을 가득 채운 빗물이 집을 빠져나가도록 처마 밑부터 대문 앞까지 물고랑을 내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다. 밤새 눈이 마루까지 들이친 다음 날 새벽에 방문을 열면 눈 마당에 지도처럼 펼쳐진 아버지가 쓸어놓은 화장실 가는 길, 대문 가는 길, 우물 가는 길을 보는 일도 좋았다. 그 눈길 지도 사이를 깡충거리는 일도. 눈이 쓸린 자리 밑으로 드러난 얼어붙은 흙이 녹기를 기다리는 일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이 집을 지키며 살고 있는 사람에겐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버지에게 한마디도 지지 않고 대들었다. 나중엔 할 말이 없어서 “뭐 시골집이 이래요?” 시무룩해질 때까지. 샛문으로 들어오는 고샅의 우물이 메워지니 또랑가에 차를 주차하지 않아도 되었다. 자동차를 운전해 이 마을에 닿아 또랑으로 들어섰다가 우물이 있던 자리를 질러 샛문을 통해 옆 마당까지 운전해 들어올 때면 매번 나는 메워진 우물자리를 흘깃 바라보며 여기에 우물이 있었는데…… 중얼거렸다. 그 밤에도 여기에 우물이 있었다,라는 것을 잊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우물이 메워진 자리에 한 손으로 캐리어를 잡고 한밤중에 우뚝 서 있자니 갑자기 나와 캐리어가 깊은 우물 속으로 풍덩 빠지는 것이 상상되어 무릎이 접히는 기분이 되었다. 순간 또 뛰려고 반사적으로 두 팔을 겨드랑이에 붙이는 통에 캐리어가 저만큼 더 멀리 굴러갔다.

건은 분명 바깥의 철삿줄을 잡아당기면 대문이 딸칵, 소리를 내며 열린다고 했었다. 어떻게 문이 그리 쉽게 열리느냐고 물으니 샛문 안쪽 잠금쇠를 철삿줄로 묶어놓아 샛문 바깥에서 잡아당기면 빗장이 풀리도록 해두었다는 것. 누구나 철삿줄을 잡아당기기만 해도 열릴 문이라면 뭐 하러 잠가놓느냐고 했더니 건은 “그래도 잠가는 놔야지, 빈집이라” 하다가 “누나! 우리가 문을 이런 식으로 잠가놓은 걸 아버지가 아시면 우리 크게 혼나겄다” 하며 허탈한 듯 웃었다. 우리를 혼낼 아버지는 이제 이 집에 없다. 큰고모가 살아 계실 때는 문단속이라는 걸 하지 않았던 아버지는 큰고모가 돌아가신 그 밤부터 손수 문단속을 했다. 그동안 어떻게 문을 열어놓고 살았나, 싶게 이미 다 닫힌 문을 밀어서 잘 닫혔는지 다시 확인하는 일이 빈번했다. 나는 뛰는 시늉을 멈추고 스마트폰의 플래시를 켜서 비춰가며 다시 한번 철삿줄을 잡아당겼다. 이번엔 딸칵 소리가 나는 것도 같고 뭔가 헐거워진 느낌이 들었다. “어? 열린 거야?” 내 혼잣말이 어둠 속을 떠돌다가 내 귀로 돌아왔다. 슬쩍 대문을 밀어보았다. 샛문이 안쪽으로 밀렸다. 건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좀 전보다 조금 힘을 주어 당겼을 뿐인데 비현실적이게도 샛문이 안쪽으로 밀린 것이다. 바라던 대로 문이 열렸는데도 나는 또 뛸 생각으로 팔을 겨드랑이에 붙이려는 걸 의식하고는 그걸 제지하기 위해 일부러 흠, 소리를 내며 샛문 턱 너머로 캐리어를 들어 옮기고 나도 턱을 넘어 안으로 들어와서 문을 손으로 밀었다. 샛문은 다시 딸칵, 소리를 내며 잠겼다. 이제 옆 마당 헛간 창문을 밀고 건이 말한 오목한 데를 찾아야 했다. 그곳에 두었다는 현관문 열쇠를. 건은 바구니 안이라든가 하다못해 화분 밑에 넣어놓은 것도 아니고 오목한 데에 뒀다고 했다. “오목한 데에?” 내가 의아해 묻자 건은 그렇다고 했다. 그냥 손을 뻗어 더듬어보면 오목한 데서 집 안으로 들어가는 현관을 열 수 있는 열쇠가 손에 잡힐 거라고, 했다. 나는 한 손으로는 캐리어를 끌고 한 손으로는 스마트폰의 플래시를 비춰가며 헛간 쪽으로 걸어갔다. 샛문 옆 담장 곁의 개집도 그대로고 그 옆에 뒤집어 엎어놓은 큰 물통도 여전하다. 이 집의 헛간은 문이 달린 헛간과 평상이 놓여 있는 열린 헛간으로 나눠져 있는데 평상이 놓인 헛간 쪽으로 불빛을 비춰보니 아버지가 타던 자전거가 어둠 속에 놓여 있고 평상 위의 허공엔 시래기들이 한줌씩 얼기설기 묶인 채 줄에 널려 있었다. 시래기 그림자가 너울거리는 것을 잠시 지켜보다가 어서 밝은 곳으로 가고 싶어 잠긴 헛간의 창문 쪽으로 걸어가 창문을 밀고 손을 뻗어보았다. 별로 노력하지도 않았는데 건의 말대로 오목한 데서 현관문 열쇠가 손에 잡혔다. 빈집의 문단속으로 보기엔 이래저래 참 허술했다. 그 덕분에 그 밤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현관문 열쇠가 내 손에 쥐여졌던 것이다. 이 집으로 들어오는 문은 두개였다. 신작로에서 골목으로 들어와 곧바로 마당으로 통하는 대문과 마을 또랑 쪽으로 들어와 메워진 우물을 지나 들어올 수 있는 샛문. 어머니까지 이 집을 떠난 이후 집 관리자는 자연스럽게 막내 건이 되었다. 건은 대문은 굳게 잠가놨으나 샛문은 철삿줄을 당기면 열리게 해놓고 헛간으로 들어가는 큰 문은 열쇠를 굳게 채워놓았으면서 그 헛간에 달린 창문은 그저 밀면 열리게 해둔 것이다. 이 집에 오는 사람 누구라도 그저 손만 뻗으며 닿는 오목한 데에 집 안으로 들어가는 현관문 열쇠를 놔두기 위해.

마당에서 여덟개의 계단을 올라와서 현관문을 열고 있을 때 제이에게서 괜찮아? 하고 문자가 왔다. 복개된 또랑가 팽나무 아래에 방금 전 나를 내려주면서 제이는 오래 비워둔 집에 내가 혼자 들어가는 게 마음에 걸렸는지 헤어지는 걸 망설였다. 옛집을 구해 새로 꾸며 펜션을 하는 친구가 가까이 있는데 혹시 몰라 그 집에 말을 해두었으니 거기로 가서 하룻밤 자는 건 어떠냐고도 물었다. “너는 기억나지 않겠지만 그 친구는 널 알아”라고도. 제이는 전화해볼까? 다시 물었다. 나는 꽤 단호하게 “우리 집이 여기 있는데 내가 왜 다른 데 가서 자?” 했다. 내 목소리가 퉁명스럽게 들리기조차 했다. 내 단호한 대꾸가 제이로 하여금 더 말을 잇지 못하게 했는지 제이는 “다른 뜻이 있어 그런 건 아니야” 했다. 다른 뜻? 그렇네, 우리는 십여년 만에 만났어. 십여년 만에 만나서 제이와 가진 개인적인 시간이란 겨우 이 집으로 오는 자동차 안에서 보낸 잠깐이 고작이었다. 그것도 피곤해진 내가 자동차 시트에 기대 졸았던 삼십여분. 나는 좀 고즈넉해져서 “내일 아침에 아버지 산소도 다녀와야 해” 변명처럼 덧붙였다. 제이가 이래도 되나 싶은 태도로 미적거리는 걸 나는 “어서 가” 떠밀었다. 그래놓고는 처음 샛문이 열리지 않았을 때 집 안으로 들어가는 거나 보고 가겠다는 제이에게 너는 너 갈 길이나 가라,며 거절했던 것을 잠깐 후회하기까지 했다. 나는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신발장 앞에 붙어 있는 스위치들을 다 눌렀다. 샛문과 대문과 현관문까지 이어지는 회랑과 헛간이 있는 쪽이 밝아지는 게 느껴졌다. 안은 여전히 괴괴한 어둠뿐이었으나 바깥쪽 불이 밝혀지자 목 밑까지 들어차 있던 긴장이 좀 가라앉는 듯했다. 자꾸 닫히려는 현관문을 캐리어로 받쳐놓고 거실로 통하는 문을 드르륵 밀고 안으로 들어가 벽에 붙어 있는 스위치들을 또 죄다 눌러보았다.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어둠 속의 집은 갑자기 밝혀진 불빛에 깨어나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듯했다. 나는 집 안을 휘휘 둘러보았다. 거실 중앙 천장에 달려 있는 조명등에만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곁에 누가 있기라도 하는 듯 “저 등 스위치는 어떤 거야?” 물었다. “이거야?” 또 묻고는 다른 스위치를 눌러보았다. 거실 등을 켜려고 벽에 붙은 스위치들이 보일 때마다 눌러보면 거실 등은 잠잠하고 앞마당이 환해지거나 대문 쪽 외등이 밝혀지는 기척이 소파 뒤 마당을 내다보게 되어 있는 창을 통해 느껴졌다. “대문, 현관 이렇게 써두면 좀 좋아” 투덜대다가 나는 뒷골이 싸아,해져 얼른 뒤를 돌아다봤다. 누가 내 혼잣말을 옆에서 듣고는 “그러게 말이야,” 대답하고 있는 것 같았다. 비어 있는 아버지 침상 위에 이불이 개인 채 가만히 놓여 있고 그 위에 베개가 올려져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침상 바로 아래 아버지의 북과 북채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금세 애잔한 느낌이 들면서 이명처럼 귓가에 친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산천은 험준허고 수목은 총잡헌디, 만학에 눈 쌓이고오오, 천봉에 바람이 칠 제…… 아버지는 이 집에서 흥이 나거나 적막해지면 북을 무릎 사이에 두고 북채를 두드리며 소리를 했다. 칠순이 지난 후부터는 아버지가 북을 찾는 일이 더 잦아졌다. 아직 내 귀에 아련한 아버지 목소리의 「적벽가」를 듣다가 만학천봉의 뜻을 찾아 사전을 펼쳐본 적도 있다. 이런 글자도 있구나, 싶어 골짜기 학(壑)의 한자를 오래 들여다본 적도. 천개의 봉우리와 만개의 골짜기에 눈이 쌓이거나 바람이 부는 형상을 상상하는 일은 큰 파동과 함께 묘한 안도감을 가져다줘서 찡그리고 있던 이마가 펴지기도 했다. 가끔 소리하는 사람들의 고수가 되어주었던 아버지는 겨울로 넘어가는 깊은 가을밤에 「사철가」를 완창하기도 했는데 그때 듣게 된 몇음절들이 참 용케도 내 안에 남아 있다가 도시생활의 어느 틈에 불쑥 튀어나온다. 내가 진행했던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의 녹음을 위해 방송국 스튜디오로 가는 중빌딩 모서리를 돌아설 때나, 어쩌다 모두들 하차한 밤버스에 버스기사와 단둘이 남아서 셔터가 내려지는 도시의 밤거리를 내다보고 있을 때 무심코 내 입에서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가 나직이 새어나오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흠칫했다. 내 귀로 듣는 내 목소리가 낯설어서. 방 안의 눅눅한 공기 속에 잊어버린 소리들의 추임새들이 떠돌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버지는 뻐뻐꾹 뻐꾹 새소리를 내기도 했고, 차르르르 콰앙쾅 폭포소리를 내기도 했으며 어흐흐으 어흐…… 애를 끊어놓는 소리를 내기도 했다. 북을 보는 순간 되살아난 기억들이 스멀거려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돌려 벽을 보다가 나는 아, 쓴웃음을 지었다. 아버지 침상의 벽 맨 위에 걸려 있는 학사모를 쓴 형제들의 사진들. 그들이 내 등을 바라보고 있었던 모양이라고 생각해도 야릇한 정적이 휘돌았다. 정적을 깨고 싶은 마음에 텔레비전 리모컨을 찾아 전원 버튼을 누른 뒤에 채널을 이리저리 돌렸다. 전쟁 중인 나라의 소녀가 폭격 맞은 집 앞에 서 있는 화면이 지나갔다. 소녀는 집 안에 동생이 있다며 울먹였다. 비쩍 마른 노인의 손에 이끌려 경계선이 무너진 길을 건너 저편으로 가는 중에도 소녀는 자꾸 집 쪽을 돌아보고 손을 내저으며 울었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화면 속엔 온통 폭격으로 쓰러진 집과 건물들의 잔해가 사납게 쌓여 있을 뿐이라 도대체 소녀와 노인이 어디로 피신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울적해진 채 플래시가 켜져 있는 스마트폰을 움직여 건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제 집에 들어왔는데 거실에 불이 안 들어와. 시계를 보니 자정이었다. 건은 새벽일이 많은 택배회사를 관리하고 있어서 저녁일을 마치면 9시 뉴스도 겨우 보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 새벽에 깨는 사람이다. 아마도 건은 이 문자를 새벽에나 볼 것이다. 알면서도 답변을 잠깐 기다려보다가 나는 재빠르게 몸을 움츠리며 양쪽 앞발을 들었다. 오래 비어 있다가 갑자기 환해진 거실 여기저기 죽은 벌레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우리 집’에서 다리가 여러개이거나 털이 많거나 등이 까만 벌레들의 사체들과 마주치게 될 줄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문을 건너가려다가 숨을 다한 것인가. 크기는 다르지만 등이 까만 같은 벌레 두마리는 부엌으로 통하는 미닫이 문 틈에 끼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세운 앞발을 내려놓질 못하고 이미 죽은 벌레를 밟아버린 건 아닌가 싶어 발바닥 밑을 살폈다. 먼지에 때가 낀 양말에 벌레 날갯죽지 같은 게 들러붙어 있어서 손을 뻗어 양말을 벗어 돌돌 말아 소파 위에 내려놓았다. 죽은 벌레들 때문에 쳐든 발을 내려놓지도 못하면서도 나는 부엌으로 통하는 미닫이문에 기대서서 나, 괜찮아, 제이에게 답 문자를 보냈다.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 벽과 천장과 바닥이 축축한 해면처럼 습기를 빨아들이는 느낌이었다. 집 여기저기에 짐승이 밟고 지나가며 남긴 것 같은 곰팡이가 슬어 있었다. 집은 물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진흙 속으로 한없이 가라앉고 있는 듯 여겨졌다. 스마트폰 액정에 표시된 시간은 자정을 지나 낯선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정신을 차리려고 제이 생각을 했다. 제이는 아직 집에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곳에서 제이의 집이 있는 담양까지는 빨라도 사십분은 걸릴 텐데 제이와 헤어진 지 겨우 이십여분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나는 빈집 부엌 뒤 다용도실 벽에 걸린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찾아 양손에 들고 먼저 거실 바닥에 죽어 있는 벌레들을 쓸어 담다가 멈추고는 어머니가 쓰던 방, 이 집에 올 때면 내가 자던 싱글 침대가 놓인 방, 이불장과 옷걸이와 잡동사니들이 쌓인 방들의 문을 하나하나 다 열고 벽에 붙어 있는 스위치를 눌러 불을 전부 켰다. 오래 비워둔 집이라서였을까. 셀 수도 없이 드나들던 문들인데 닫힌 문을 열 때마다 은근 긴장이 되었다. 죽은 벌레들을 봐서일지도 몰랐다. 문을 열고 벽의 스위치를 누르고 방 안을 이리저리 살펴본 후 안으로 들어가 닫힌 창문들을 열 뿐인데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환기를 시키자는 목적이었으나 바람이 없어서인지 실내 공기가 달라지는 느낌은 없었다. 거실 창을 열 때는 앞마당의 돌로 울타리를 세워 만든 정원이, 안방이었던 어머니 방 창문을 열 때는 장독대 뒤로 아직은 메워지지 않고 수명을 연장하고 있는 오래된 우물이, 허드레 살림을 쌓아놓은 방 창문을 열 때는 새로 심은 나무를 받치고 있는 지렛대가 창으로 새어나간 불빛에 어렴풋이 실루엣을 드러냈다. 지난겨울에 이 집에서 감나무가 얼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한 형제는 누구였더라? 겨우내 눈이 내리고 또 내려 마당 한가득 눈으로 가득 차 있어서 안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바깥에서만 마당 안을 들여다보고 왔다고 했었는데. 그 말을 새겨놓고 있다가 봄에 이 집에 들러 새로 나무를 심고 지렛대를 받쳐놓은 이는 건이었다. 겨우내 빈집 마당에 쌓이고 쌓였던 그 눈은 언제 다 녹았을는지. 빈집에 홀로 첩첩이 쌓였다가 홀로 또 조금씩, 그러다가 어느날 다 녹았겠지. 그렇게 봄이 왔을 테지. 형제들 중 이 집에 가장 애착이 많은 건 막내 건이었다. 그러고 보니 형제들 중 가장 늦게 이 집을 떠난 이도 건이다. 막내니까. 건은 이 집에 올 때마다 뭔가 한가지씩을 했다. 아무도 살지 않는 집에 인터넷을 신청해 설치하고, 블루투스 스피커를 아버지 침상 옆 사이드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아버지가 자주 듣던 판소리 CD들을 스피커 옆에 나란나란 세워두기도 했다. 심야에 보일러실 수리를 하고는 사진을 찍어 가족 메신저방에 올리는 것도 건이었다. 이 집 우물곁의 장독대엔 아직도 어머니가 담가둔 오래 묵은 장항아리가 있다. 한번은 건이 그 장항아리 뚜껑을 열어보다가 입구를 덮어놓은 망사포의 고무줄이 삭아서 바닥에 그대로 떨어지는 걸 본 모양이다. 건은 모든 항아리 뚜껑을 다 열어보게 되었고 묵은 된장이나 고추장 단지, 소금 단지들에 먼지나 벌레 방지용으로 씌워놓은 망사포들이 다 삭아서 부서지기 직전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읍내에 나가 크고 작은 망사포를 사다가 일일이 갈아준 뒤 사진을 찍어 올린 적이 있었다. 망사포는 고무줄이 들어간 가장자리만 붉은 테로 둘러져 항아리 둘레를 조여주는 역할을 했는데 항아리마다 나란나란 드러난 붉은 테가 묘하게 질서를 느끼게 하며 안정감을 주었다. 붉은 테로 둘러진 새 망사포를 쓰고 나란나란 햇볕을 받고 있는 사진 속의 장항아리들이 얼마나 정답고 근사하던지 그날 나는 건이 올린 사진을 한참을 응시했다. 어째 마음이 불안하고 울적해지면 스마트폰 앨범에 들어가 그 사진을 클릭해서 가만 들여다보게도 되었다. 아마 열린 헛간의 허공에 시래기를 매달아놓은 것도 건이겠지.

나는 마른기침 소리를 내며 부엌 쪽으로 갔다.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냉기가 얼굴로 확 끼쳐왔다. 형제들 중 누가 마지막으로 이 집에 다녀갔는지는 알 수 없다. 냉장고 안엔 호두맛이라고 쓰인 뉴케어가 두개, 열다섯개들이 판에 여섯개 남아 있는 계란, 된장통과 고추장통들이 얼른 보였다. 좀 길게 썰어놓은 대파가 든 락앤락 통도 보였다. 매실액도 유리병에 들어 있었다. 나는 냉장고를 닫고 부엌 뒤편 다용도실의 불을 켜고 기다란 미닫이창을 밀어보았다. 좁은 뒷마당 바로 뒤로 낮은 담이 눈에 들어오고 그 너머로 밭이 보였다. 부순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이름만 떠오르고 얼굴은 기억날 듯 말 듯하다가 사라졌다. 얼굴 없는 이름. 나보다 나이가 한살 많았던 부순은 내가 언니라고 불러주기를 바랐으나 나는 이 집을 떠날 때까지 고집스럽게 부순이라고 불러 그녀를 서운하게 했다. 부순은 여동생이 없어서 내게 언니라고 불리고 싶었던 모양이나 나는 언니가 없어서 부순을 언니라고 부르는 게 당최 입에 붙지를 않았다. 내가 먼저 이 집을 떠나고 부순도 몇해 후에 소사에서 문방구를 한다는 사람한테 시집을 갔다고 들었다. 한번 떠난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 마을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 떠나는 일은 거의 없으니까. 어린 시절 담장 너머로 보이던 부순네 집은 사라지고 그 터까지 밭이 되어 있었다. 밭 가득 무슨 작물이 자라고 있는 듯했는데 어두워서 그것이 들깨인지, 감자인지, 마늘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다 쓸어냈다고 생각했는데도 죽은 벌레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한숨을 쉬며 연이어 쓸어내고 있는데 대문 흔드는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나도 모르게 또 앞으로 내딛는 자세를 취하느라 들고 있던 쓰레받기가 바닥에 떨어졌고 쓸어 담았던 죽은 거미와 나방들이 작은방 바닥으로 떨구어졌다. 이 시간에 누구? 대문이 자꾸 흔들거려서 나는 작은방 창으로 얼굴을 내밀고 마당을 지나 대문 쪽을 향해 “누구세요?” 물었다. 매운 목소리가 바로 반문을 했다.

 

—니는 누구냐아?

—예?

—누구냥게?

—아, 나 이 집 큰딸인데요?

—큰딸?

—예.

—영은이여?

—예.

—그 눈썹이 유난히 꺼먼 큰애 영은이?

—예.

—어째 딴사람처럼 보이네.

—큰딸 맞어요.

—언지 왔어?

—아까 참에.

—자정 전에도 암 기척 없었는디 불이 켜지고 소리가 나서 와봤다.

—누구신데……요?

—큰딸이믄 되었다아.

—누구신데요?

—근디 영은아 너는 어찌 그리 몇 계절을 헤매고 울고 댕기냐?

—예?

—어디로 가야될지를 모르겄으믄 처음을 생각허믄 돼야. 거기 찾아 찬찬히 가믄 돼야. 그것을 잊은게로 서글프고 외로운 것여.

—누구신데요?

—내 목소리도 잊었는갑다잉. 나, 니 큰고모여. 근디 왜 문을 이리 꾹 닫아놓냐. 문 좀 열어볼라냐?

 

처음엔 앞집 하만 아짐인가 싶어서 고개를 들어 앞집을 바라봤는데 그쪽은 아무 기척 없이 캄캄해서 그럼 누구지? 다시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큰고모라니. 어마, 고모! 반가운 마음에 고모가 어떻게 이 밤에 여길 오셨…… 하다가 나는 멈칫했다. 큰고모? 나도 모르게 또 얼른 어디로든지 뛰어갈 태세를 취했다.

—누구시라고요?

내가 정색을 하고 묻자 대문 쪽이 조용했다. 아무 기척이 없었다. 내가 소리를 잘못 들었나? 그럼 나는 방금 누구랑 얘기를 주고받은 거지?

—누구시라고요?

나는 창에 얼굴을 내밀고 다시 물었다. 대문 쪽은 어둠뿐으로 괴괴했다.

마을로 들어오는 신작로 입구에 살던 큰고모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새벽에 잠을 깨면 맨 먼저 ‘우리 집’을 살펴보러 왔다. 고모는 봄의 새순처럼 여름의 장맛비처럼 가을의 지는 나뭇잎처럼 겨울 새벽 흩날리는 눈처럼 와서 이 집에 첫 발자국을 남기곤 돌아갔다. 고모의 이 오랜 새벽 걸음을 우리 가족은 모두 알았다. 잠자리에 누워서 고모의 발소리를 들었다. 고모가 뒷짐을 지고 크흠, 소리를 내며 마당을 한바퀴 휘 돌아보면서 우물가에 엎어져 있는 세숫대야를 바로 세우거나 전날 저녁때 미처 못 걷은 빨래들을 걷어서 마루에 내려놓거나 담을 타고 넘어간 호박 줄기를 잡아당겨 담장 바깥에서 혼자 늙은 누런 호박을 따서 장독 위에 올려두거나 여름이면 열린 헛간 평상 위에 고구마순을 한푸대 내려놓고 천천히 돌아가는 기척을 느꼈다. 아버지는 그런 고모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대문을 열어놓고 살았다. 일생 친정인 이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우리 집’을 근심했던 고모는 무엇에 저항이라도 하는 듯이 방문을 등지고 꼿꼿이 누운 자세로 세상을 떠났다.

—누구시냐고요?

나는 신발을 신고 현관으로 나왔다. 대문 바깥에 누가 있든지, 아니면 아무도 없든지 뭐라도 확인하지 않고는 불안해서 남은 밤을 제대로 보낼 수 없을 것 같았기에. 현관문을 밀고 회랑을 지나 여덟개의 계단을 내려서서 대문 앞까지 겨드랑이에 팔을 붙이고 뛰어갔다. 망설이면 두려움이 커질 것 같아서 바로 대문의 잠금쇠를 풀고 대문을 활짝 열었다. 저쪽 골목으로 이어지는 길이 어둠에 쌓여 있을 뿐 아무도 없고 내 기척에 놀랐는지 앞집 담장 위를 타고 오르는 강낭콩 줄기 속에서 밤 고양이가 야옹, 소리를 내며 나를 쳐다봤다. 고양이의 두 눈에서 푸른 광채가 났다. “아, 너였어? 놀랐잖아.” 분명 고양이는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으나 거기에 고양이라도 있어줘서 다행으로 여겨졌다. 나는 여차하면 그대로 골목길로 뛰어나갈 사람처럼 양 겨드랑이 밑에 팔을 붙이고 섰던 자세를 풀고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작약이네.

대문을 다시 잠그고 돌아서서 현관문으로 이어지는 여덟개의 계단 쪽으로 걸어오다가 나는 계단 양쪽으로 펼쳐진 회랑 밑으로 길게 터를 잡고 어머니가 쓰던 안방 창 아래까지 쭉 이어서 피어 있는 작약과 마주쳤다. “혼자 피었어?” 나도 모르게 작약에게 속삭였다. 오래전에 아버지는 여기에 작약을 심고는 그 앞에 붉은 벽돌 한장씩을 비스듬히 울타리처럼 세워주는 것으로 이 집에 작약의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꽃이 피는 시기는 그저 며칠이었다. 존재하는 시기가 짧아서 더 아름다웠을까. 이 집 앞쪽 회랑 아래서 작약이 피어 바람에 흔들리기라도 하면 누구라도 그 앞에 멈춰 서게 되었다. 어머니마저 이 집을 떠난 후 형제들 중 이즈음에 이 집에 들렀다가 빈집에 홀로 피어 있는 작약을 보게 되면 사진이나 동영상에 담아 가족 메신저방에 올려놓곤 했다. 어머니 식사를 챙기는 주말 당번을 정하거나 친척들 중 누군가의 부고가 올라오는 단조로운 가족 메신저방에 작약은 가끔 화려하게 등장해 이 집의 존재를 알리곤 했다. 쓸모없어졌으나 그래도 남아 있는 집. 동영상 속에서 빈집에 핀 작약꽃잎들이 서로 닿을 듯 닿을 듯 하다 멀어질 땐 야릇한 슬픔마저 밀려들곤 했다. 작약은 그렇게 말할 수 없이 아름답게 홀연히 솟아오르듯 피어났다가 마치 어서 가, 어서 가, 서로 등을 떠밀듯 후루루 져버리곤 했다. 올해는 내가 작약을 동영상으로 담을 차례인가. 어머니는 꽃밭보다는 마늘밭을 가꾸는 사람이었다. 회랑 밑의 작약을 두고는 쓸모도 없는 것이 곱기만 하다고 탓하기도 했다. 부모가 이 집에서 살고 있을 때에 작약이 잠깐 꽃을 피워서 색색으로 화려한 자태를 드러낸 뒤 지고 나면 어머니는 꽃 지고 나니 잎새만 뻗어나와 여름내 발에 채고 벌레가 끓는다며 낫으로 작약 밑동까지 베어내었다. 그래도 쓸모없이 곱기만 한 작약은 모두가 떠난 후에도 다시 새순을 돋우고 잎새를 키워내서 매해 푸른빛, 연보랏빛, 상아빛 꽃들을 토해내듯 피워냈다.

나는 작약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마당은 내가 켜놓은 불빛에 환하디환했다. 그 불빛 아래 작약도 마냥 환하게 자태를 드러내놓고 있었다. 손을 뻗어 작약을 만져보려는데 끈적한 것이 꽃보다 먼저 손에 닿았다. 거미줄이다. 거미 한마리가 갑작스러운 침입에 줄을 타고 옆으로 빠르게 옮겨가는 게 보였다. 눈여겨보니 작약들이 거미줄에 에워싸여 있었다. 바람이 없어 흔들리지 않는다고만 생각했는데 쓸모없이 곱기만 한 꽃들은 거미줄에 옭아매여 있기도 했던 모양이다. 작약만 그런 건 아니겠지, 싶어 얼른 뒤를 돌아보니 앞마당에 심어진 향나무, 동백나무, 배롱나무 사이사이도 온통 거미줄이 뒤덮고 있었다. 거미줄 위에 또 거미줄을 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벌레가 남긴 흔적들이 화석화된 것인지 유적지의 횟가루 같은 하얗거나 회색빛을 띤 줄들이 수목들의 목을 조이듯이 포위하고 있었다. 나는 헛간으로 뛰어가서 대빗자루를 들고 나와 먼저 작약 위의 거미줄부터 걷어내기 시작했다. 거미줄을 걷어내려는 것인데 애먼 작약꽃잎이 빗자루에 닿아 후루룩 바닥에 떨어져내렸다. 처음에는 조심조심 거미줄을 쳐내다가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어 나는 작약을 떠나 마당의 다른 수목들 위에 하얗게 뒤덮여 있는 것들을 걷어내는 데 몰두했다.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이 꽃이 작약 맞기는 해?” 나는 오래 참아왔던 말을 성난 사람처럼 내뱉으며 대빗자루를 휘둘렀다. 이 꽃을 심은 아버지가 작약이라고 했으나 꽃이 피고 보니 홑잎이었다. 나는 이 꽃이 여기에 심어졌을 때부터 늘 이 꽃이 정말 작약일까? 의심했던 것 같다. 이 꽃을 심은 아버지가 작약이라고 했으니 작약이겠거니 여겼으나 내 속내엔 늘 작약은 아닌 거 같은데……라는 의혹이 옅게 떠돌았다. 내가 아는 작약은 장미 속잎처럼 꽃잎이 겹겹이 부드럽고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모여 있어 떼어내도 떼어내도 잎이 남아 있을 것처럼 탐스럽게 봉오리 진 모습인데 이 집의 작약은 두세잎 겹쳐 있을 뿐으로 거의 홑잎에 가까웠다. 내가 쳐든 대빗자루가 허공을 휘저었다. 향나무를 치고, 동백나무를 치고, 배롱나무를 쳐서 어떤 가지들은 꺾이기까지 했다. 큰 나무들 밑에 서식하고 있던 작은 풀 사이들까지 흰 줄들이 내려앉아 있었다. “이게 뭐냐고요!” 소리를 내지르다가 나는 싸아해져 대빗자루를 쳐든 채로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놀란 무엇인가가 풀숲에서 기어나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무엇인가가 내가 움직이면 밟힐 만한 곳에서 몸을 틀어 스르륵 우물 쪽으로 기어갔다. 나무들 사이에 쳐진 흰 줄들을 걷어내려고 대빗자루를 휘두르다 말고 정지된 화면처럼 서 있던 나는 한밤에 풀숲을 나와 움직이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려고 눈을 부릅떴다. 뱀? 하는 생각에 순간 나는 얼어붙어버렸다. 등에 황토색 줄이 새겨진 누룩뱀이 스르륵 장독 사이로 들더니 다시 나와 우물 쪽으로 사라졌다.

 

—야야…… 거기 누구냐?

대문 쪽에서 또 사람 목소리가 나서 나는 대빗자루를 든 채로 그 쪽을 쳐다보았다. 등에 황토색 줄이 새겨진 뱀의 출현에 놀라서 걸핏하면 뛰어나가는 자세를 취하던 습관도 잊고 그 자리에 붙박인 채로. 계절은 여름 직전인데 내 발밑은 빙판이고 나는 그 빙판 위에 대빗자루를 든 채로 발이 얼어붙어 떨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거기 누구냥게?

불이 켜진 앞집 담장 위로 하만 아짐의 얼굴이 보였다. 내가 대답을 않자 하만 아짐이 얼굴을 담 위로 쑥 내민다.

—큰딸이냐?

—예.

—뭔 소리가 나길래…… 근디 뭣 하냐? 이 밤중에?

—집에 뱀이 있어요, 아짐.

—여름 다가온게로.

—집에 뱀이 있다고요.

—원래 집 비워놓으믄 온갖 것들이 와서 살어야.

—예?

—갸들이 집 지킨다 생각히라.

—예?

—니가 어려서는 물속도 첨벙 뛰어들고 철목도 휙휙 잘 넘어 댕기고 뭔 소리인가를 듣는다고 귀때기에 뭣을 꽂고는 겁도 없이 지붕 위로 올라가서 죙일 햇볕 아래 책에 코 박고 있던 꽤나 담이 큰 아그였는디 인자 와서 뭔 비암을 보고 그리 놀라고 근다냐?

—……

—비암이 도망가디?

—도망은 아니고요, 우물 쪽으로 달아났어요.

—그믄 독사는 아닝게 괜찮여. 독사는 도망 안 가야. 똬리 틀고 목을 쳐들고 눈을 댕그랗게 치뜨고 쳐다보제 도망 안 가야.

—그래도 뱀인데 또 있을지도 모르고.

—아이구 니가 겁을 단단히 먹었고나. 그게 비암인 거는 맞고? 눈에 보이는 것이 뭐시 무섭다냐. 이 세상엔 별것들이 얼마나 많은디 그냐? 동서남북만 있는 종 아냐? 암도 모르는 곳도 숱헌디 눈에 안 비는 것들이 거그도 한가득 모여 있지야. 그케 다 같이 사는 것여. 뭣인지도 잘 모름서 뵈기 싫다고 대빗자루로 쳐내고 그믄 쓴다냐?

하만 아짐은 늘 그랬다. 참 용케도 하만 아짐의 큰딸부터 나와 나이가 같았고, 그 아래의 동생 둘도 내 동생들과 같은 터울이었다. 그러니 서로 싸우고 도망치고 약 올리는 일이 숱해서 쥐어터지거나 쥐어패는 일이 잦았는데도 하만 아짐은 아그덜 자라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어쩌겄나…… 하는 쪽이었다.

정말 좀 전에 봤던 누룩뱀 말고 눈에 안 보이는 다른 뱀이 저 풀숲에 또 있을까. 하만 아짐의 말을 듣는 중에도 내 시선은 계속 뱀이 사라진 우물 근처를 맴돌았다. 공연히 내가 이 밤중에 이 집에 들이닥쳐서 조용히 자기 영역을 지키며 살고 있는 이들을 들쑤셔놓은 것인가.

—어메랑 함께 왔냐아?

—아니요.

—혼자 왔냐?

—예.

—어메는 잘 있고오?

—예.

—어쩌 너그 어메는 여그는 잊어버맀는갑다잉, 가드만 한번을 안 온다잉.

—……

—소리가 나길래 너그 어메 왔능가 반가워 나와봤구마는.

—왜 안 주무시고요?

—인자 깼지야. 늙으먼 잠이 없어져. 초저녁에 다 잤어야.

—죄송해요. 제가 수선을 피워서는.

—아니다. 너라도 봐서 좋고나. 어서 들어가 자그라. 비암 고까짓 것은 냅두라. 엊그제 비 왔으니 몸 말릴라고 자주 나올 것이니 놀랄 것도 없어야.

 

내가 이 집에서 가장 아늑해했던 장소는 우물이었다. 샛문 바깥쪽의 메워진 우물은 동네 사람들이 같이 쓰는 우물이었으나 누룩뱀이 기어간 우물은 ‘우리 집’ 안에 있는 우물이다. 이 집을 생각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장소가 우물이었던 것은 어린 시절 내내 이 집의 우물이 내 놀이터이기도 해서였다. 나는 집 안에 우물이 있고, 그 우물에 항상 깊고 맑은 물이 고여 있는 게 좋았다. 학교 갔다가 돌아와 배가 고프면 맨 먼저 우물로 달려가 물을 길어 두레박에 입을 대고 꿀꺽꿀꺽 삼키기도 했다. 이유 없이 서러워지면 우물 가장자리에 턱을 괴고 그 안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하늘을 곧바로 올려다보는 것보다 이 집의 우물 속에 비치는 하늘을 응시하는 쪽이 더 안심이 되고 든든했다. 우물은 언제나 물을 품은 채 그 자리에 있었으므로. 어떤 날은 슬픈 마음으로 우물을 들여다볼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우물 저 아래에서 웅웅거리는 어떤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나는 우물 속을 하염없이 들여다보았다. 한숨 같기도 하고 신음 같기도 한 그 웅웅거림은 나를 달래는 것 같기도 하고 무슨 비밀을 알려주는 은밀한 속삭임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 속삭임이 내 귀에 닿았을 때에는 이미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의 부스러기로 떠돌 뿐이었다. 이 우물에서 제사 때마다 홍어 껍질을 벗기는 어머니 앞에 마주 앉아서 홍어 등을 붙잡아주었고, 새벽부터 재래식 부엌에서 아침을 짓는 어머니에게 물을 길어다주었다. 내가 길은 맑은 물이 찰랑거리며 솥 안으로 들어가 밥물이 되는 것을 보면 뭔가 중요한 일을 한 것같이 뿌듯하기도 했다. 이 집에 상수도가 놓인 뒤로는 우물의 물은 쓸모없는 것이 되었다. 아버지는 우물 속에 모터를 설치해서 우물 바깥에 수도꼭지를 달았고 그 수도꼭지에 호스를 이은 후에 나무 뚜껑을 만들어 우물 입구를 닫아두었다. 우물 가장자리에 턱을 괴고 우물 속의 하늘을 들여다보던 일은 그렇게 옛일이 되었으나 우물 바깥의 수도꼭지만 돌리면 우물 속의 모터가 작동되고 호스를 따라 물이 올라와서 작약과 마당의 나무들에게 물을 줄 수 있었다. 등에 황토색 줄무늬가 있던 뱀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담을 타고 다른 장소로 이동해서 이제 이 집에 뱀은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내가 마당 풀숲에서 기어나온 누룩뱀이 우물 쪽으로 기어가는 것을 봐버렸다는 것. 이미 마당의 풀숲에 다른 뱀들이 우글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버린 것. 게다가 지난해 언제인가 이 집에 왔다가 무심히 우물 뚜껑을 열었을 때 놀랍게도 우물 속까지 잡초가 우거져 있었으니…… 내가 사랑했던 우물은 어둠과 습기를 좋아하는 뱀들이 모여 살기 좋은 곳이 되었을 수도. 나는 우물 쪽으로는 가지도 못하고 빙판에 딱 얼어붙은 것 같은 발을 하나씩 무겁게 떼어 대빗자루를 지팡이 삼아 현관으로 통하는 여덟개의 계단을 오르고 회랑을 지나 벽에 대빗자루를 세워두고 겨우 안으로 들어와 현관문을 잠갔다. 거실로 들어가려다가 현관문 밑에 틈이 있나 살펴보기까지 했다. 혹시 뱀이 나를 따라 들어오는 건 아닐까 두려워서.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나는 다시 신발장 앞에 놓여 있던 검은 장화를 엎어놓았다. 내친김에 내 운동화도 뒤엎어놓았다. 갑자기 시골 어느 마을에서 집 안으로 들어온 뱀이 장화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을 모르고 장화를 신었다가 곤욕을 치렀다는 얘기가 생각나서.

 

뱀을 본 다음이어서인지 혼자 있다는 두려움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친친 감아버렸다. 잊으려면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청소를 하자,고 생각했다. 일단 방방의 문을 다 열어놓고 빗자루를 이용해 쌓여 있는 먼지를 전부 쓸어냈다. 청소기가 어디 있을 것이나 기계의 윙 소리를 듣고 싶지가 않아 등을 구부리고 비질을 하다가 아직도 쓸려나오는 벌레들을 외면하고 싶을 때면 텔레비전 화면을 쳐다봤다. 나는 솔로. 짝짓기를 하는 방송인 모양으로 정숙인지 옥순인지 하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 첫인상이 좋은 사람으로 몰표를 받고 있었다. 무슨 파도에 밀려나오는 것처럼 구석구석에서 쓸려나오는 먼지와 죽은 벌레들을 쓸어내고 마대에 물걸레를 달아서 화장실 바닥까지 샅샅이 닦고 마른걸레로 거실의 아버지 침상을 깨끗이 닦아낸 후에도 잠에 들 수가 없어서 냉장고 문을 열고 냉장고 안의 모든 식료품들을 다 꺼내놓고 냉장실을 닦고 다시 식료품들을 집어넣다가 손에 잡힌 호두맛 뉴케어를 들고 가만히 쳐다보았다. 아버지의 마지막 식사도 뉴케어였다.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죽음을 한번도 가까이서 지켜본 적이 없이 지내왔다. 막상 닥쳐온 근친의 죽음 앞에서 나는 나이만 많은 어린애였다. 아픈 아버지를 보러 월요일에 이 집에 왔다가 어째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아 토요일까지 머물렀다. 간병인이 따로 있어 내가 해야 할 일도 없었는데 밤이 되면 아버지 곁에 홀로 있는 어머니를 두고 돌아서지지가 않았다. 그 주의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가 내가 ‘우리 집’을 떠난 후 가장 오래 이 집에 머문 날들이다. 어째 인생이 그렇게 흘러갔다. 그해 음력으로 6월 29일, 양력으로는 입추이던 토요일에 둘째 오빠가 이 집에 왔고 아버지가 식사를 하지 않는다는 내 말을 듣고 오빠는 뉴케어를 컵에 따라서 침상에 누운 아버지에게 갔다. “아버지, 아, 해보세요, 아버지, 한숟갈만 드시면 제가 면도해드릴게요.” 그때 아버지가 입을 벌리신 것인가? 둘째 오빠는 “아이구, 우리 아버지 잘 드시네, 자 한숟갈만 더……” 나는 침상 옆에 서서 둘째 오빠가 무려 47분 동안 200밀리리터짜리 뉴케어의 삼분의 일을 아버지 입에 떠넣는 것을 지켜봤다. 저 오빠가 저런 사람이었는가. 오빠가 간신히 떠넣은 뉴케어를 드시고 아버지는 다시 잠에 빠졌다. 그런 아버지를 가끔씩 바라보며 어머니와 나와 오빠는 거실과 연결되어 있는 부엌 식탁에서 점심을 먹었다. 생오이를 된장에 찍어 입에 넣으려다 말고 오빠가 내게 이제 그만 돌아가라고 했다. 오빠는 뒤늦게 생오이의 풋내가 싫어졌는지 그냥 식탁에 내려놓고는 아버지가 저렇게 기운이 없으신 것은 여름이라서 그런다, 했다. “여름만 지나면……” 오빠는 어머니가 전자레인지에 구워서 내놓은 조기에 젓가락을 대려다가 다시 내려놓으며 여름만 지나면,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왠지 확신은 못하겠는지 자꾸 여름만 지나면……을 반복했지만 오빠가 하고 싶은 말은 여름만 지나면 아버지는 괜찮아진다,였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아버지는 여름 나기를 힘들어했고 여름이면 몇번씩 까부라졌다가 회복되곤 했다. 오빠는 “오늘이 입추이니 이제 여름 다 갔다”고 했다. 그렇잖아도 아버지 얼굴만 한번 보고 가려던 것이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머물게 되어 도시에 내가 해결해야 할 일들이 대기하고 있었던 터라 나는 오빠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구운 조기의 비린 맛이 떠도는 점심 식탁을 치운 후에 아버지 침상으로 다가가 아버지에게 귓속말을 했다. “아빠, 나 서울 갔다가 금방 또 올게.” 깻잎김치통을 분홍 보자기에 싸서 가져가라고 한사코 내미는 어머니와 실랑이를 하다가 내가 캐리어를 끌고 막 샛문을 나서려고 할 때 오빠가 현관문 앞 회랑에 서서 “영은아! 영은아!” 다급히 나를 불렀다.

 

이 집에 마지막으로 왔다 간 사람이 마지막으로 손을 닦고 세면대 수건걸이에 걸어둔 수건을 걷어서 세탁기에 넣었다. 옷걸이에 걸린 셔츠들과 누군가 나무 손질을 하고 제대로 흙을 털지 않은 채 걸어놓은 작업복 바지와 내가 낮에 벗어둔 양말도 함께 넣었다. 나는 세탁기를 돌리는 김에 아버지 침대의 이불과 베개도 빨까 하다가 서로 뒤섞여 더러워질 수 있겠다 싶어 그만두고 말라붙은 세제를 부스러뜨려 세제 통에 넣고 유연제도 찾아 통에 따랐다. 빈집을 지키고 있었을 오래된 세탁기의 전원 버튼을 누르고 세탁 방법을 표준에 맞추고 시작 버튼을 눌렀다. 세탁기 안으로 물이 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세탁기 앞 수도꼭지를 틀었을 때다. 물이 올라오는 소리가 거칠게 나서 물을 너무 세게 틀었나? 싶어 조절하려고 수도꼭지에 손을 대려는 순간 물의 기세에 수도꼭지에 연결해둔 호스가 튕겨져나가더니 흙탕물이 콸콸 쏟아져나왔다. 깜짝 놀란 나는 뒤로 물러서며 얼른 수도꼭지를 잠갔다. 수압에 밀려 잘 잠기지가 않았다. 어쩌면 흙탕에 걸려서인지도. 물소리는 끅끅끄으윽, 소리를 내며 안으로 안으로 잦아들었다. 나는 부엌으로 들어가 개수대의 수도꼭지를 틀어보았다. 처음에는 맑은 물이 나오는 듯하더니 곧 흙탕물이 나올 기세여서 얼른 틀어막았다. 화장실로 가 변기 물도 내려보았다. 곧바로 흙탕물로 변기 안이 뻘게졌다. 나는 얼른 변기통 아래를 더듬어 밸브를 잠갔다.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틀어보려다가 멈췄다. 여기서도 분명 흙탕물이 나올 텐데 틀어본들 세면대만 더럽힐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뒤늦게 세탁기는, 싶어서 후다닥 세탁실로 달려가 세탁기를 정지시키고 뚜껑을 열어보았다. 세탁통 안에 빨래들이 제 빛을 알아볼 수 없게 흙탕물에 잠겨 있었다. 모래까지 뒤섞여 있었다. 온 집 안의 수도꼭지에서 붉은 흙탕물이 범람했다. 온 신경이 굳어져서 멍한 눈으로 내 곁에서 소용돌이치는 들리지 않는 소리에 귀 기울이듯 서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건에게 다시 문자를 보냈다. 집 안의 모든 수도꼭지에서 흙탕물이 나와. 이 괴이한 사태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도시에서 낮의 노동으로 깊은 잠에 빠져 있을 건에게 문자를 보내는 일뿐이었다.

나는 집 안의 모든 물길을 막아놓고 작은방에 들어가 캐리어를 열고 파우치에서 고무줄을 꺼내 머리를 질끈 묶어 뒤로 넘기고 클렌징 티슈로 얼굴을 닦아냈다. 물을 쓸 수 없으니 세수는커녕 손도 씻을 수 없게 되었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날이 밝아야 무엇을 해도 할 것이라 우선 조금이라도 잠을 자야 한다고 생각했다. 클렌징 티슈로 닦을 수 있는 곳은 다 닦아내고 이 집에 오면 내가 자곤 했던 작은방 침대에 몸을 눕혔다. 어쩌든 조금이라도 자두자,는 것은 생각뿐으로 정신은 점점 더 또렷해졌다. 불을 켜놓고 방문을 열어두어 그러나 싶어서 불을 끄고 방문을 닫아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열어둔 방문 때문이 아니라 거미줄을 걷어내다가 마주친 누룩뱀과 수도꼭지에서 쏟아져나온 흙탕물 때문에 잠은 이미 달아났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이라도 자야 해” 웅얼거리며 돌아누웠다. 청소를 하다가 뭔가 조금 기다란 것만 눈에 띄면 지레 놀라 움츠러들던 내가 떠올랐다. 등에 노란 줄무늬가 있던 뱀의 길이는 40센티도 채 안 되어 보였다. 그 작은 것의 꿈틀거림에 정신이 혼미해지다니. 스스로 비웃어봐야 두려움만 점점 강해졌다. 천장을 보고 누워 있으면 천장의 무늬가 또 뱀으로 둔갑해서는 스르륵 기어 벽을 타고 내려오는 것만 같았다. 급기야는 창밖 바깥벽을 타고 뱀이 기어들어오는 것 같았다. 벌떡 일어나 벽으로부터 멀찌감치 물러나 보았다. 창문을 잠깐 노려보고는 슬금슬금 벽에 다가가 주먹으로 벽을 쿵쿵 두드렸다. 한번 마음에서 뻗어나간 종잡을 수 없는 상상력을 물리칠 수가 없어 나는 바짝 오그라들었다. 나는 결국 이 집에 오면 내가 자던 방에서 나와 거실의 아버지 침대 위에 올라가 가만 누워보았다. 벽에 걸린 형제들의 사진이 그윽이 나를 내려다봤다. 계절은 여름에 접어들고 있어도 침대에 깔린 매트는 차가웠다. 밤색 바탕에 박힌 검은 옥들에 등이 배기기도 했다. 나는 한쪽에 개켜진 이불을 잡아당겨 펼쳐서 몸에 덮었다. 아버지가 이 침대에서 주무실 때 온기를 넣고 그 온도를 조절도 할 수 있는 장치가 발치쯤에 놓여 있었던 기억이 났다. 반듯이 누인 몸을 반쯤 일으켜서 침대 위를 살펴봤으나 그럴 만한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혹시 이 밑에 있나? 나는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내려가 곁에 놓인 안락의자를 밀치고 침대 밑을 들여다보았다. 안락의자 밑과 침대 밑 사이에 온도조절기가 코드가 빠진 채로 놓여 있었다. 콘센트에 코드를 꽂았으나 전기가 연결되는 느낌이 없이 차갑기만 했다. 나는 온도조절기를 거의 부둥켜안고서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았으나 기계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온도조절기를 다시 바닥에 내려놓으려다가 나는 한껏 고개를 숙여 침대 밑 깊은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바깥쪽 거실 바닥에 벌레들이 죽어 있었으니 침대 밑은 더할 게 분명한데 저 안쪽은 심연과도 같은 어둠에 가려져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나는 침대 아래 바닥 가운데쯤에 우묵하게 들어간 곳을 응시했다. 평평하지 않고 안으로 파인 곳이 자꾸 신경이 쓰였다. 누룩뱀이 들어와 저기에 똬리를 틀고 있는 건 아니겠지, 무심코 생각이 거기에 닿아버렸다. 머리가 쭈뼛해졌다. 나는 벌떡 일어나 다시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챙겨와 침대 밑을 쓸어내기 시작했다. 눈에는 보이지 않던 벌레들이 무수히 쓸려나왔다. 무슨 벌레들이 이리 많아, 저기는 닿지도 않네. 나는 침대 아래 우묵한 곳을 노려보았다. 내가 이미 우묵한 곳을 보고야 말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저 방 구들이 꺼져서 우묵하게 되었을 뿐으로 그 안에는 먼지나 혹은 죽은 벌레 몇마리가 들어 있을 따름이더라도 확인하지 못하면 내내 신경이 쓰일 것이다. 빗자루로는 닿지 않은 우묵한 곳을 난감하게 바라보다가 나는 벽에 붙어 있는 침대를 끌어당기고 밀고 하면서 벽과 침대 사이에 공간을 만들고는 벽 쪽으로 건너가 거기 엎드려서 우묵한 곳을 향해 비질을 했다. 이마에서 목에서 등에서 땀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벽에 걸린 사진 속 형제들의 눈동자들이 대체 뭐 하냐? 어리둥절해서 액자에서 빠져나오고 싶어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빗자루는 간신히 침대 밑 우묵한 곳에 닿았고, 나는 온 힘을 다해 그 우묵한 곳을 쓸어내었다. 뱀이 똬리를 틀기에는 우묵함이 깊지 않다는 것을 바로 짐작했는데도, 나는 거기 담긴 것을 비워내느라 안간힘을 썼다. 파인 곳에 간신히 닿고 닿아서 그 안에 담긴 것을 침대 바깥쪽으로 힘껏 밀어내었다. 쓸려나온 것은 뱀도 벌레도 아닌 낡은 수첩 같은 것이었다. 수첩이었다,가 아니라 수첩 같은 것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수첩으로 보기에는 속지가 서너장밖에 되지 않아서이다. 땀에 흥건히 젖은 채 밀쳐진 침대 모서리에 기대앉아 우묵한 데서 쓸려나온 수첩을 집어 먼지를 털어낸 뒤 커버를 넘겨보았다. 한 페이지가 안쪽으로 접혀 있었을 뿐 아무 말도 쓰여 있지 않았다. 나는 속지에 내려앉은 먼지를 쓸어내며 접힌 부분을 펼쳐보았다. 오영은이. 아버지 글씨였다. 그냥 오영은이,라고 내 이름이 적혀 있을 뿐이었다. 몇장 안 되는 수첩의 속지를 넘겨보았으나 거기에 글씨라고는 오영은이뿐이었다. 아버지는 이 수첩에 언제 무슨 일로 내 이름을 이렇게 적었을까. 오영은도 아니고 오영은이,라고. 나는 아무나 부르는 흔한 내 이름이 갑자기 낯설어져서 방방마다 환하게 불을 켜놓은 빈집 거실에서 아버지가 쓴 내 이름 오영은이를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이러다가 날 새겠어, 잠을 좀 자야 해……” 혼잣말을 하며 다시 침대를 원상복귀시키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침대를 다시 벽 쪽으로 붙여놓고 수첩을 손에 쥔 채 침대 위로 올라왔다. 자꾸만 추위가 느껴져서 나는 몸을 모로 세우고 이불을 목까지 당겨 덮고 수첩을 품에 안았다. 코끝에 닿은 이불에서 오래 개놓았을 때나 나는 눅눅한 냄새가 났다. 노인에게서 맡아지는 시큼한 냄새 같기도 하고 오래 닫혀 있던 소금 항아리를 열었을 때 맡아지는 소금의 짠 냄새 같기도 했다. 내 이름이 적힌 수첩을 품은 채 이불 속에서 모로 누워 있던 나는 곧 그 냄새가 아버지 냄새라는 것을 알아챘다. 괜히 눈시울이 더워져서 목까지 당긴 이불을 더 당겨 덮고 그 안에서 또 건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버지 침대에 불도 안 들어와. 그 밤에 건에게 어쩌라고 문자를 보낸 것인지는 나도 모른다. 답장을 받고자 한 짓도 아니다. 그 밤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를 모르겠는 안절부절 속에서 나는 그러고 있었다. 문자를 전송하고 이불을 더 당겨 덮었다. 이불이 발을 덮고 종아리를 덮고 허리를 덮고 몸통을 덮고 눈을 덮고 코를 덮고 입을 덮고 머리카락을 덮었다. 나는 이불에 덮인 채 눈에서 코에서 입에서 맡아지는 아버지 냄새를 맡다가 그만 훅, 울음을 터뜨렸다. 이미 숨이 이 세상을 떠나 있었을지도 모를 아버지의 귓속에 대고 내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은 “아빠, 나 서울 갔다가 금방 다시 올게”였다. 아무리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게 인간이라지만 다름 아닌 아버지의 죽음에 그리 둔할 수가 있는 것인가. 그 많은 비옥하고 아름다운 말들을 다 놓아두고 곧 숨이 떨어지는 아버지에게 떠날 태세를 취하며 곧 다시 오겠다는 쓸모없는 약속을 속삭였다니. 아버지는 내 말을 들었을까? 아버지가 언젠가 써놓은 내 이름 오영은이를 껴안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돌아누웠다. 다시 바로 누웠다. 또 돌아눕는 사이 내 몸은 이불에 친친 동여맨 꼴이 되었다. 그 밤, 처음엔 조용히 울던 나는 내 귀에 울음소리가 웅웅 들리도록 소리 내 울던 나는 한없이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지난 하루 기차를 탄 이후 내가 만난 사람들이 빠르게 눈앞으로 스쳐지나갔다. 그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었는데, 결국은 다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까무룩하게 어둠 속으로 잠겨들어가는 내 귀에 누군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북을 치며 내던 창(唱) 소리 같기도 했고 그 옛날 슬픈 마음으로 우물 속을 들여다볼 때 낮게 울려 퍼지던 수수께끼의 웅웅거림 같기도 했다. 동쪽으로 열두걸음 걸어야 하느니라, 거기 보이지 않은 문을 세번 두드리고, 다시 서쪽으로 열두걸음 걸어야 하느니라, 거기 보이지 않은 문을 세번 두드리고, 다시 남쪽으로 열두걸음 걸어야 하느니라, 거기 보이지 않는 문을 세번 두드리고, 북쪽으로 다시 열두걸음 걸어야 하느니라, 거기 보이지 않는 문을 세번 두드리고…… 이제 네가 두드려야 할 다섯번째 문은 어디에 있……

 

깨어보니 나는 이불 속에서 애벌레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또 뛰려는 자세를 취해보려는데 몸이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이불에 겹겹으로 휘말려 있어 어느 방향으로 몸을 틀어야 할지 몰라 잠깐 숨을 몰아쉬다가 손을 겨우 이불 밖으로 내놓았다. 누가 보면 보쌈이라도 당해 침대 위에 내팽개쳐진 형상이었을 것이다. 손으로 이불을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풀어낸 뒤 침대 위에 앉아서 깊은 숨을 몰아쉬었다. 온 집 안의 불이 환하게 다 켜져 있었다. 어느 결에 볼륨을 높여놓은 텔레비전 화면 속의 기상캐스터는 오늘 이 지역에 새벽부터 밤까지 큰비가 내릴 것을 전하며 예상 강수량을 말하고 있었다. 나는 방방의 죄다 열린 문을 휘 둘러보다가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직 장대비는 아니다. 가는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속의 마당 빛깔이 어슴푸레했다. 곧 동이 트려는지 마당의 초록들도 어렴풋이 자태를 드러내려는 중이었다. 우물 쪽엔 이슬비 속의 새벽 정적이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저 초록 속에서 등에 황토색 줄무늬가 새겨진 누룩뱀이 우물 쪽으로 기어갔는데, 싶으니 또 뛰려는 자세가 취해졌다. 어디로 뛸 건데? 나는 내가 어이없어, 뛰어서 갈 곳은 있고? 되물으며 팔을 내렸다. 비가 거세지기 전에 아버지 산소를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헛간 쪽으로 나왔다. 자전거로 가면 십분 정도면 산소 입구까지 도착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섰다. 그러다가 바로 산소 입구까지는 자전거를 타고 간다고 해도 그다음부터는? 싶어 곤혹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산으로 들어가는 길은 갈수록 좁아질 뿐 아니라 오르막 내리막이 이어지는 비탈길이다. 그 길은 여름을 지척에 둔 초록 풀숲이 뒤덮고 있을 것이다. 비까지 내려 땅은 질컥거릴 것이다. 튼튼한 작대기를 챙겨 가서 풀숲을 헤치면 되지 싶어 얼른 일어나 헛간을 비롯 온 집 안을 뒤져보았으나 잡초를 헤쳐주고 뱀을 쫓아줄 작대기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자전거 페달을 밟아보니 바퀴에 바람이 빠져 있기까지 했다. 나는 헛간에 서서 담장 너머 하만 아짐네 집을 건너다보았다. 간밤에 하만 아짐은 초저녁에 잠을 다 자고 그때 깼다고 했었다. 그러니 지금도 깨어 있을 것이다. 에어펌프와 작대기를 빌리자,고 생각했다. 나는 바람 빠진 자전거를 끌고 대문을 건너 하만 아짐네 대문 앞에 섰다. 이상하게 대문 바깥에 큼지막한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까치발을 들고 고개를 담장 안으로 밀어 “아짐! 아짐!” 하고 불러보았다. 담장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누구요?

내가 계속 대문을 두드리고 아짐! 아짐!을 불러대자 하만 아짐네 쪽에서가 아니라 아짐네 앞집 방문이 열리고 노인이 방 안에 앉은 채로 얼굴을 내밀며 낮은 담 너머의 내게 누구냐 물었다. 그 집에 건넛마을 사람이 이사해 왔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었다. 벌써 오래전 일이지만 나와는 인사를 나눈 적이 없으니 노인은 나를 모를 것이다. 나는 이슬비 속에 선 채로 나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저 집 큰딸이라고 말하며 손으로 ‘우리 집’을 가리켰다. 지난밤부터 나 자신을 두고 저 집 큰딸이라고 세번째 말하는 중이었다. 비가 세지기 전에 자전거를 타고 아버지 산소에 좀 다녀오려고 하는데 바퀴에 바람이 빠져 있어서 하만 아짐한테 자전거에 바람 넣는 것이랑 풀숲을 헤치고 갈 작대기를 빌리고 싶어 부르고 있다고 했다. 노인은 귀가 잘 안 들리는지 뭐시? 뭐시? 되물었다. 나는 그때마다 인내심을 가지고 내 상황을 설명했다. 내가 필요한 것은 에어펌프와 작대기였다. 혹시 하만 아짐에게서가 아니라 노인에게서 빌릴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노인은 한참 후에야 내 말을 겨우 알아들은 것 같았다. 한데 노인의 반응은 내 기대와는 영 달랐다. 괜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노인은 혀를 끌끌 찼다.

—그 집에 암도 안 살어. 하만댁 죽은 지가 언진디, 이 새벽에 그리 불러대.

그러고는 노인은 방문을 닫아버렸다. 갑자기 이슬비마저 그친 듯 사방이 조용해졌다. 나는 멍하니 서서 노인이 닫아버린 방문을, 토방을, 마당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 있었다. 목구멍이 죄어오고 저절로 두 주먹이 쥐어졌다. 불가사의한 상황에 직면한 나는 마냥 무력하기만 했다.

 

*

 

일기예보와는 달리 새벽에 내리던 이슬비는 곧 그쳤다. 오전 여덟시에서 열한시 사이엔 해가 비치기도 했다. 이슬비 내린 후의 여름 직전 오전 햇빛이 들어온 집은 지난밤의 소란은 잊은 듯 밝고 온화했다. 여름을 품은 바람에 작약이 살랑였고 장독대와 우물은 신비함을 품은 채 은근했으며 마당의 수목들은 거미줄을 뒤집어쓰고도 투명한 빛이 비치는 쪽으로 잎사귀들을 찬란히 내뻗었다. 어디서 새들이 날아와 나뭇가지 사이를 옮겨 다니며 지저귀기도 했다. 사방으로 스며드는 반짝이는 빛과 소리들 때문에 ‘우리 집’의 닫아놓은 대문과 샛문이 환히 열린 문으로 느껴졌다. 이슬비가 그치기 전에 야릇한 일도 있었다. 내가 하만 아짐네 대문 앞에 얼이 빠진 채 서 있을 때까지도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고 무력한 기분으로 헛간에 자전거를 다시 세워놓고 집 안으로 들어와 무심코 개수대의 수도꼭지를 돌려보던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수도꼭지에서 맑은 물이 콸콸 쏟아져나왔던 것이다. 물이 돌아왔네, 맑은 물을 보자 나는 정신이 들었다. 빠른 걸음으로 세면대로 가서 수도꼭지도 돌려보니 거기서도 맑은 물이 쏴아 올라왔다. 세탁실로 가서 세탁기 뚜껑을 열어보니 통 속의 빨래들도 맑은 물속에 서로 엉켜 있었다. 지난밤 끅끅, 소리를 내며 수도관을 타고 올라오던 붉은 흙탕물들은 어디로 간 것인가. 나는 화장실로 가서 허리를 숙여 물길을 잠가둔 변기의 잠금쇠를 풀어주었다. 금방 물이 쉬이익 소리를 내며 올라와 물통을 채웠다. 덮개를 열어보니 그곳에도 맑은 물이 들어차 있었다. 혼란스럽고 배도 고프고 자꾸 멍한 상태가 되어 무얼 하려고 했는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잊어버리고 허둥대다가 결국 아버지 산소에 가지 못했다. 아버지 산소는 자전거를 타지 않아도 ‘우리 집’에서부터 왕복 6,457걸음이면 되는 거리다. 아버지를 매장한 그해 여름 홀로 남은 어머니 곁을 떠나지 못하고 ‘우리 집’에 머물 때 새벽마다 새 잔디가 푸릇한 산소에 갔다가 해가 뜨면 돌아오곤 했다. 그때 스마트폰 앱에서 확인해본 걸음 수가 6,457이었다. 매일 몇걸음씩 차이가 났지만 열흘치를 더해 평균을 내본 숫자를 보며 가까운 곳에 계시네, 생각했다. 멀리도 못 가셨네,라고. 나는 맑은 물을 보자 지난밤에 나를 친친 동여맸던 이불을 세탁하고 싶어져서 베갯잇까지 벗겨서 세탁통 안에 넣고 애벌로 돌렸다. 이미 열려 있는 방방의 창문들을 더 활짝 열었다. 이미 닦아낸 창틀의 먼지를 한번 더 털고 닦았다. 마대 대신 걸레를 챙겨 방바닥과 거실, 부엌 바닥을 무릎을 꿇은 채 옮겨 다니며 닦았다. 부엌을 닦을 때 개수대 아래 칸을 열어보니 거기에 어머니가 쓰던 그릇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텔레비전이 놓인 서랍장 안에는 아버지가 사용하시던 전화번호부며 약상자들, 편지봉투 같은 것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기도 했다. 침상 아래 북채와 함께 놓여 있는 북의 둘레의 은빛 나는 둥근 장식과 오래된 낡은 가죽에 낀 먼지도 닦아냈다. 빈집 여기저기에 스며 있는 잔영들 때문에 자주 손길이 멈춰졌다. 해가 비칠 때 헛간 앞에 널어둔 빨래들이 쉽게 마르질 않아서 빨랫줄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는데 제이가 ‘우리 집’ 쪽으로 오고 있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십여년 만인데 시내에 나가 점심이라도 먹고 헤어지자,고 쓰여 있었다. 또 십년 후에나 만날지도 모르잖아,라고도. 십년 후, 그때에 우리는 어떻게 되어 있을는지. 그리고 이 집은? 나는 회랑에 세워둔 빨래 건조대를 거실 한가운데 들여다놓고 빨랫줄에서 걷어온 이불과 베갯잇을 꼼꼼히 펴서 다시 널었다. 분주히 움직이느라 발가락 사이며 머리카락까지 전부 땀에 젖었다. 화장실 욕조에 들어가 샤워기를 틀어놓고 샴푸를 손바닥에 덜어내 땀에 젖은 머리를 먼저 감고 시간을 들여 꼼꼼히 샤워를 했다. 어딘가가 헐거워져 자꾸만 고개가 숙여지는 드라이어로 젖은 머리를 말리는데 지난밤 침대 밑 우묵한 데서 꺼낸 낡은 수첩이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오영은이. 드라이어의 윙 소리 때문이었을까. 축축한 곳에 있던 내 이름 오영은이가 머리카락처럼 따뜻하게 말려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드라이어를 내려놓고 그대로 방바닥에 엎드려서 수첩 다음 장을 펴고는 잘 있어,라고 꾹꾹 눌러 적은 후 죽은 벌레를 쓸었던 빗자루로 침대 밑 우묵한 곳에 낡은 수첩을 기어코 다시 밀어넣었다. 나는 작약 사진을 찍는 대신에 빨래가 덜 말라 거실에 널어놓고 가니 다음에 이 집에 오는 사람이 걷어서 원래대로 해놓으라는 문자를 가족 메신저방에 올렸다. 그리고 이불과 베갯잇이 널려 거실 가운데를 차지한 건조대 사진을 한장 찍어서 이어 올렸다.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한 것은 나, 어제 그 자리에 도착했어,라는 제이의 문자가 스마트폰 알림창에 뜨자마자였다. 내가 ‘우리 집’을 떠날 무렵엔 비가 거세져 있었다. 열어두었던 모든 창문을 다시 다 닫는데 빗방울이 얼굴에 튀었다. 현관문 열쇠를 헛간의 오목한 곳에 다시 두고 샛문 바깥으로 나와 문 아귀를 맞추고 샛문을 잠그려는데 또 캐리어가 메워진 우물자리까지 쭈르르 굴러가버렸다. 나는 빗속에서 샛문에 달린 젖은 철삿줄을 처음대로 해놓으려 애쓰다가 고개를 들어 저편 노인네 집을 흘깃 쳐다봤다. 문득 새벽에 내가 바람 빠진 자전거를 잡고 서서 하만 아짐네 대문을 두드리는 소란을 떨 때 방문을 열고 나에게 누구냐?고 묻던 노인과 어제 기차에서 만났던 노인의 실루엣이 겹쳐져서다. 어쩌면 그 노인도 죽은 지 오래되었으나 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존재일까. 이상한 일은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렀는데도 내가 겨드랑이에 팔을 붙이고 금방 어디로든 뛸 태세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 나는 침착한데다 담담해져 있었다. 어젯밤 나를 혼란스럽게 했던 누룩뱀을 다시 본대도 그처럼 소스라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내가 떠나면 누룩뱀은 우물 속으로 기어들어가 깊은 휴식에 잠길지도 모른다. 뱀은 우물 속 캄캄한 어둠을 휘감고 나무뿌리처럼 ‘우리 집’ 아래 땅속을 타고 저 멀리 뻗어나갈지도. 이제 아무도 살지 않는 ‘우리 집’은 우물이 진동하며 내는 웅웅 소리로 가득할지도. 그것은 빈집이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이며, 이 터에서 살다 먼저 떠나간 이들이 은밀히 타전하는 소식들일 것이다. 비를 맞고 서 있는 캐리어를 챙기다가 우산을 메워진 우물 앞에 그대로 내려놓았다. 잘 있어, 나의 인사가 빗속에 흩어졌다. 제이가 기다리고 있는 또랑 쪽으로 캐리어를 끌고 가는데 빗물이 자꾸만 눈 속으로 들어왔다. 또랑가에 차를 세워놓고 있던 제이가 빗속의 나를 발견하고는 커다란 검은 우산을 펴들고 달려왔다. 제이가 자동차 뒷자리에 내 캐리어를 싣는 동안에 비는 더 거세져서 큰 우산을 썼어도 제이와 나는 순식간에 물에 빠진 사람처럼 되어버렸다. 운전석에 털썩 주저앉으며 제이가 “비가 와서 산소에 못 갔겠네?” 했다. 나는 아버지 산소에 가지 못한 게 비 때문이었다는 듯 “응” 짧게 대답했다. 자동차가 마을을 빠져나갈 때 제이가 내 쪽을 흘깃 건너다봤다. 나는 빗물을 닦지도 않고 우두커니 앉아서 뒤로 멀어지는 ‘우리 집’ 쪽을 바라봤다. 집은 곧 시야에서 사라지고 차창에 투둑거리는 빗물이 얼룩져 마을의 논과 둑과 비닐하우스들의 경계도 흐릿해졌다. 제이가 자꾸 나를 쳐다봤다. 내가 “왜?” 물으니 제이는 “걱정했는데 잠을 잘 잤나봐” 했다. “어제 역에서 만났을 때랑 지금 모습이 사뭇 다른데?”라고도. “좋은 냄새도 나는걸” 하며 제이는 비 묻은 얼굴로 소리 내 웃기까지 했다. 제이의 좋은 냄새라는 말에 나는 “응? 아, 비 냄새……”라고 대꾸하다가 말을 흐렸다. 샴푸 냄새일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조우한 시골 오전 공기가 내 몸에 입혀진 것일지도. 차 안에는 빗물을 닦을 만한 타월도 휴지도 없어 제이와 나는 비에 젖은 채 마을을 빠져나갔다. 자꾸 뒤가 켕겼지만 더는 돌아보지 않았다. 등을 바로 세우고 앞을 또렷이 보려고 눈을 부릅떴다. 장대비의 세찬 빗줄기 때문에 기차역이 있는 시내로 들어가는 길은 물보라가 일어 시야가 희뿌예졌고 먼 산의 산봉우리에도 그새 물안개가 서렸다.

나는 양 손바닥으로 뺨을 문지르고 넌지시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꾸 그리되었다. 이대로 무사히 도시로 돌아가기만 하면 친구에게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듣던 음악을 다시 들어보자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는지 물으면 나는 하룻밤도 채 못 되는 지난밤 이야기를 해줄 수밖에 없다. 어서 친구와 단둘이 만나 인기척과 두려움과 허무에 에워싸여 있던 지난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욕망으로 내 얼굴은 상기되고 가슴이 자꾸 두근거렸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