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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나는 얼마짜리입니까』, 창비 2024

모든 정치인에게 이 책을 권함

 

 

천현우 千鉉宇

용접공, 칼럼니스트 serinblad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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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정신이란 뭘까. 안 돌아가는 머리로 생각하다 설익은 결론에 도달했다. 아마도 ‘어차피 다 같이 일해서 먹고사는 팔자에 함께 인간답게 좀 살자’라는 뜻 아닐까. 고 노회찬 의원은 대학생 때부터 이 생각이 몸에 배어 있었지 싶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대학 출신으로 직접 고단한 노동현장에 뛰어들었던 정치인은 제법 있다. 다만 그토록 결기 어렸던 초심을 지킨 정치인은 거의 없다. 그 시절의 좋은 학벌은 주류로서의 삶을 보장하는 보증서. 학생운동을 젊었던 시절 방황으로 결론 낸 전직 운동가들은 재빨리 주류의 삶에 정착해 강자로 거듭났다. 강자의 세계는 안락하다. 구구절절 자신을 설명하고 증명할 필요가 없다. 자신의 부당한 상황을 알리려 처절하게 몸부림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노회찬은 편안함을 거부하고 고통스러운 약자의 세계에 남았다. 이토록 굳건했던 초심이야말로 우리가 아직 그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나는 얼마짜리입니까』(노회찬재단 기획)는 노회찬 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시도다. “이주민과 청소노동자, 돌봄노동자 등 ‘존재하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는 투명인간’”(책날개) 당사자 75명이 직접 ‘다 같이 일해서 먹고사는 팔자’를 소개하며 ‘함께 인간답게 좀 살자’고 호소한다. 노회찬 의원이 탔던 새벽버스 6411번에 함께 몸을 싣고 노동하러 가던 사람들이 그간 제대로 들리지 않았던 ‘6411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내가 겪어왔던 지방의 공장노동은 월 200만원대가 통곡의 벽이었다. 법 테두리 안에서는 온갖 수당을 다 받더라도 월 300만원에 도달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일하는 모두가 고되고 미래가 없다고 말하는 일자리일지언정 엄연히 제도 안의 표준노동이다. 4대보험이 적용되고 온갖 공제며 청년적금 등 정부 정책의 혜택을 누리며 내가 일하고 있음을 금융권에 입증할 수도 있다. 반면 이 책에 사례로 나오는 대부분의 노동인 ‘월 100만원대’ 세계는 다르다. 많은 사람이 ‘월 100만원대’의 노동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르고, 은행도 국가도 이들이 하는 일을 노동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노회찬이 말했듯 투명인간 그 자체다. 자기 실체를 입증할 수 없으니 보호 또한 못 받는 이들은 자주 서러운 경험을 한다. 일하다 다치면 내 돈 내서 병원 가고, 생활고에 쪼들려도 대출 한푼 못 받는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자기가 겪은 부당함을 설명하면 세상은 그저 개인의 예민함으로 받아들인다. 사정을 아는 사람들이야 마음 아파하겠지만 딱 거기까지다. 바꿀 수 없는 문제와 부딪친 감정은 금방 휘발하고 만다. 『나는 얼마짜리입니까』는 그토록 묻히기 십상이었던 투명인간들의 애환을 모은 책이다.

이 책에 실린 노동자 개개인의 수기를 읽어나가다보면 사회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인다. 한명도 예외 없이 제각각 더럽고 치사한 꼴을 본다. 굴욕으로 끝나면 차라리 다행이고, 크게 다치거나 이미 목숨을 잃어 유가족이 쓴 글도 있다. 투명인간들은 대체 왜 이런 수모를 당할까. 사람들이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왜 그리 생각하게 됐을까. 약자로 살기 버거울 만큼 나라가 불평등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 불평등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은 엘리뜨들이나 ‘사’ 자 들어가는 상위 1% 직업 종사자들이 너무 많은 편의를 본다고 성토한다. 일부 사실이지만 완벽한 정답은 아니다. 한국사회는 표준으로 정해놓은 형태 이외의 모든 삶에 무자비하고 잔혹하다. 그 결과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 마땅히 해결해야 할 문제의 우선순위마저 왜곡되곤 한다. 교육문제만 봐도 그렇다. 네명 중 한명이 대학을 가지 않는데도 대다수의 중등교육정책이 진학을 표준으로 전제하며 입시와 수능으로 빨려들어간다. 그 결과 인재를 키워내기보다는 자꾸 골라내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고졸자를 위한 직업교육이 탄탄히 갖춰진 사회가 훨씬 살기 좋은 나라지만 실상은 정반대로 간다. ‘사회가 정한 표준에 속하는 다수 시민의 독재’가 너무도 강고하기 때문이다. 『나는 얼마짜리입니까』는 ‘월 100만원대’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체감하는 불평등의 실체를 드러낸다. 장애인, 이주노동자, 탈북민과 재일동포, 4대보험 바깥의 모든 노동자. 이들이 느끼는 부당함은 관료나 재벌들의 권력보다는, 주로 평범한 사람들의 배척과 차별에서 나옴을 알 수 있다.

나는 모든 정치인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월 100만원대’의 세계에 갇힌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일이야말로 정치의 역할이다. 이들이 온당한 대우를 받도록 제도를 만들고, 실제로 기능하는지 정비하려면 시민들의 각성과 지지는 물론 그 바탕이 될 정치적·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그간의 한국정치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외면했다. 당장 여당 당수였던 정치인은 장애인을 비문명인으로 몰아세웠다. 몇몇 정치인들도 ‘약자의 목소리를 듣겠다’고는 했지만 실제 유의미한 개선을 이루지는 못했다. 물론 ‘약자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태도는 늘 옳다. 문제는 옳음만으로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점이다. 예컨대 2017년에는 제주도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고3 고 이민호군이 기계 오작동으로 사망했다. 기업이 현장실습생을 ‘6개월 동안 도망 못 가는 값싼 노동력’으로 취급해서 벌어진 기업 살인이었다. 이에 공분하는 시민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은 옳다. 정치의 역할이기도 하다. 단지 거기서 끝나면 안 될 뿐. 고 이민호군의 사망에 현장실습을 향한 여론이 나빠지자 정부는 무작정 현장실습부터 전면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정작 특성화고 졸업생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현장실습 폐지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75%였다(정의당 예비당원협의체 ‘허들’ 및 정의당 경남도당 청소년소위 설문조사, 2017). 옳은 행위가 제도 당사자들을 소외시킨 셈이다.

정치에서 옳음은 어디까지나 계기와 명분이어야지, 정치인 개인의 성품을 치장하는 도구로 쓰여서는 안 된다. 말과 공감은 정치인이 아니라도 할 수 있다. 『나는 얼마짜리입니까』를 단지 약자들의 이야기로만 소비하지 않기를 바란다. 닫는 글을 대신하는 노회찬 의원의 「6411번 버스를 아십니까?」 연설에 담긴 결의는 ‘투명인간의 목소리를 들어줍시다’가 아니라, ‘투명인간도 살 만한 나라를 만듭시다’였다.

천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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