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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조돈문 『불평등 이데올로기』, 한겨레출판 2024

한국의 불평등 이데올로기의 보편성과 특수성

 

 

권김현영 權金炫伶

여성학자 gokkh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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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돈문은 노동문제를 연구하는 정규직 교수이지만 현실의 투쟁을 외면하는 연구자는 “포주 같은 존재”(「실천하는 학자 조돈문, 정년퇴임식에서 ‘막춤’ 춘 사연」, 오마이뉴스 2019.9.14)라고 일갈하며 투쟁현장에서 함께 밤을 새우는 활동가이기도 하다. 과연 지난 2019년 그의 교수 퇴임식 자리에는 비정규직 운동단체 및 삼성 반올림 투쟁현장의 활동가들이 자리했다고 한다. 『불평등 이데올로기: 수저 계급 사회에 던지는 20가지 질문』에는 그러한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저자의 면모가 잘 드러난다. 저자의 첫 책 『구조조정의 정치』(문화과학사 1999) 이후 25년이 지난 지금, 두 책의 제목을 이으면 그대로 지난 25년간 한국사회의 모습이 나타난다. 1997년 찾아온 구제금융위기는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이어졌고,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라는 IMF 측 요구는 한국의 노동시장을 정규직 대 비정규직의 쟁투장으로 만들었다. 청소노동자 김순자는 관리직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이 자기 임금의 4배에 달하는 현실에 분노하여 노동조합을 결성했다가 해고된 후 2012년 제18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한다. 그리고 10년 후 2022년에는 연세대 학생 3명이 당시 집회를 하던 청소노동자 노동조합을 상대로 수업권 침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다. 구조조정 이후 불평등이 지배 이데올로기가 된 사회의 풍경이다.

그동안 많은 학자들은 청년세대에 널리 퍼진 불평등의 고착화 현상에 주목하며 이들을 능력주의에 물든 괴물로 취급하거나 문제의 원인을 사다리를 걷어찬 86세대에 돌렸다. 반면 조돈문은 세대가 아니라 여전히 계급이 문제(‘수저계급사회’)라고 진단한다. 이 분석을 설득력있게 제시하기 위해 저자는 프랑스 경제학자 또마 삐께띠(Thomas Piketty)를 주요하게 인용한다. 수요와 공급 법칙에 따라 자원이 합리적으로 배분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굳은 믿음은 삐께띠가 100년간의 통계를 들여다보며 증명한 명제 ‘불평등은 자본주의의 구조적 특징이다’ 앞에서 허물어졌다. 자본주의는 일한 사람들의 정당한 몫을 빼앗아 일부에게 몰아주는 형태로 구조화되었고, 이러한 불평등 구조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자산수익률이 소득증가율을 웃돌고, 소득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자본주의는 세습자본주의 단계에 진입했다. 그중에서도 한국의 소득불평등 악화 속도는 OECD 국가 중 두번째로 빠르다(「한국 소득 불평등, OECD 2번째로 빠르다」, 한겨레 2023.4.10). 그렇다면 이러한 흐름을 타개할 수 있는 변화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조돈문은 자본주의의 다양성에 주목한다. 즉 시장경제의 합리성에 대한 믿음과는 달리 시장을 왜곡해가면서 일부가 부를 독점해도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상황을 ‘불평등 이데올로기’로 규정한다. 지배계급은 불평등 이데올로기를 지배 이데올로기화하기 위해 하위 명제들(불평등은 없다, 불평등은 정당하다, 불평등은 어쩔 수 없다)을 중층적으로 쌓아올린다. 하지만 저자는 불평등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했던 하위 명제는 모두 깨졌다고 주장한다. 삐께띠가 증명한 바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하기는커녕 불평등의 구조화를 통해 발전해왔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사람들은 불평등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첫번째 하위 명제인 ‘불평등은 없다’는 오래전에 깨진 셈이다.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미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감각이다. 두번째 하위 명제인 ‘불평등은 정당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저자는 불평등을 정당화해온 능력주의와 ‘공정’담론 그 자체보다는 이러한 담론이 부상하게 된 배경으로 ‘수저계급사회’를 지목하며, 한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출신 배경이 본인 노력보다 압도적으로 중요한 사회라는 점을 통계와 국제 비교를 통해 증명한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반증되어야 할 명제는 ‘불평등은 어쩔 수 없다’ 하나뿐이다. 미국의 문학평론가이자 정치이론가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은 자본주의에 대안이 없다는 것을 진리처럼 믿는 순간이 우리가 진정으로 실패한 순간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자본주의에 대안은 없다는 인식이 바로 ‘불평등은 어쩔 수 없다’는 하위 명제가 자본주의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렸다는 증거일 것이다. 저자는 이 세번째 하위 명제를 깨기 위해 자본주의의 외부가 아니라 ‘내부’로 시선을 돌린다. 저자가 대안으로서 주목하는 나라는 스웨덴이다. 스웨덴이 채택한 모델은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라는 조정시장경제 모델의 하나로, 현재까지 존재하는 자본주의체제 중에서 불평등 문제에 가장 잘 대처해온 바 있다.

반면 한국이 채택하고 있는 미국식 모델은 불평등 문제에 관한 한 최악의 대처이다. 불평등이 부당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한국인들이 불평등 문제에 가장 취약한 미국식 모델에서 벗어날 수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 저자는 그 이유를 지배계급 불평등 이데올로기의 (잘못된) 승리라고 보고 대항 이데올로기 주체 형성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즉 스웨덴처럼 노동조합의 조직된 힘을 바탕으로 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 한국사회의 구조화된 불평등 문제를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고 본다. 저자의 제안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가능하지 않다고 여겼던 해법일 수 있다. 혹은 이러한 진단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수저계급사회, 즉 사회 양극화의 근본 조건으로 평균 자산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웃도는 경향을 지적한 바 있다. 그렇다면 소득 양극화를 초래한 비정규직화 문제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 문제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쩌면 지대수익 등 자산수익률에 대한 재분배 기획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수저계급사회를 극복하기 위해 제안하는 대안은 강력한 노동조합의 힘과 문재인정부가 끝내 완수하지 못한 소득주도성장, 비정규직 차별문제 해결 등이다. 그러나 불평등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저자가 제안하는 대안으로 과연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다시 두가지 하위 명제로 돌아가서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 한국인들은 정말 불평등이 존재한다고 믿고, 불평등이 부당하다고 생각할까? 이 명제들에 차별의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되어도 그럴까? 예컨대 이주민에 대한 차별, 장애인에 대한 차별, 지역에 대한 차별 등에 대해서는 어떨까? 적어도 성차별에 관한 한 그렇지 않다. 성차별은 이미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설령 성차별이 남아 있다고 해도 그것은 능력이나 노력에 따른 정당한 차별이라고 믿어진다. 성차별에 대한 세대와 성별간 인식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이소연 「[2022 젠더인식조사] 젠더갈등과 성차별 인식」, 한국리서치 2022.4.5; 이태 「노동시장 내 성별갈등의 주요 쟁점 분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22). 여러모로 논쟁을 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특히 사례부터 분석에 이르기까지 놀라울 정도로 부재한 젠더 관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전개되는 논지에 대한 이견보다 이 책이 지닌 ‘장점’을 강조하고 싶은 이유는 논쟁을 위한 조건인 명확한 주장과 주장에 대한 근거가 제시되어 있는 ‘드문’ 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