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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탁장한 『서울의 심연』, 필요한책 2024

개입은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소준철 蘇焌哲

충남대 사회학과 강사 junchol.kim.s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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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연구는 전통적으로 빈곤의 실태를 제시한다. 특히 사회과학의 입장에서 빈곤연구는 총량 자료(aggregate data)를 재생산하고, 거시적 차원에서 빈곤계층의 전반적인 규모와 그 추이를 검토하는 데 익숙하다. 예컨대 소득과 자산을 기초로 한국사회 내 상대적 빈곤율을 측정하고 앞으로의 변화를 예측하는 일이 그렇다. 전체 소득에서 중간값인 중위소득을 상정하고 그 값의 50% 아래인 소득을 내는 사람을 상대적 빈곤선에 포함된다고 말하는 것, 중위소득의 32% 아래인 소득과 일정 정도 이하의 재산을 가진 이들은 기초생활보장비를 수급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하는 것 역시 그렇다. 이런 접근은 빈곤문제를 경제적이고 정책적인 문제로 국한하며, 빈자를 통상적으로 국가가 결정한 크기에 비해 소득과 자산이 적어 지원받을 자격을 갖춘 자로 상정하는데 이는 그들을 수동적인 인간상으로 주조할 뿐이다.

이러한 ‘정책화’를 비판하는 이들은 빈자를 인간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새로운 흐름이 등장했다. 빈곤을 다차원적으로 이해하고, 빈곤의 형성과 그 사회적·경제적 요인이 무엇인지 검토하며, 그 결합 과정을 살피는 연구가 대표적이다. 빈민연구라고 부를 수 있는 흐름도 존재한다. 개인 혹은 가족이 빈곤상황에 처하게 되는 과정과 그 이후 극복 혹은 좌절을 통해 빈곤의 형성 및 재생산을 파악하는 연구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런 연구는 빈민의 능동적인 입체화를 시도한다. 빈곤화 과정뿐 아니라 그들의 욕망과 좌절을 구조화된 현실에서의 잇따른 시도로 다루는 방식이다. 빈민은 구조와 이질적인 층위에서, 욕망을 품고 나름대로 삶을 살아간다.

여기서 탁장한의 『서울의 심연: 어느 청년 연구자의 빈곤의 도시 표류기』는 빈민연구의 한 줄기를 차지한다. 더구나 근현대 빈민연구에서 약 40여년이라는 긴 시간을 투여한 사당동 현장연구에 거의 유일하게 견줄 수 있는, 짧지만 두터운 동자동 현장연구 중에서도 독특한 지위를 가진다. 우선 동자동 연구의 흐름을 짧게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탐사저널 뉴스타파의 「사람이 산다」(2015) 취재기록, 이문영의 『노랑의 미로』(오월의봄 2020), 이혜미의 『착취도시, 서울』(글항아리 2020)과 같은 기자들의 르뽀르따주, 정택진의 『동자동 사람들』(빨간소금 2021)이나 빈곤의 인류학 연구팀이 쓴 『동자동, 당신이 살 권리』(조문영 엮음, 글항아리 2023)와 같은 인류학자의 에스노그래피,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의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후마니타스 2021)와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후마니타스 2023) 등 구술사 연구자들의 구술생애사 작업으로 이어진다. 여기서의 발견은 이렇다. 쪽방 건물이 갑작스레 폐쇄되면 주민들의 불안정성이 증가한다. 무엇보다 쪽방촌의 유지가 건물주의 현금줄이 되는 “빈곤 비즈니스”(『착취도시, 서울』)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또한 약자 보호의 주축이라 여겨왔던 사회복지라는 “공적 개입”에 실은 “자기 파괴성”이 새겨져 있다는 모순(『동자동 사람들』)은 동자동이 한국사회에 알려준 빈자의 생생한 삶이다. 특히 동자동 주민 각각의 주체적이고 입체적이며 분열적인, 그러면서도 한국사회의 변동을 반영하는 삶의 모습을 드러낸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의 결과물은 한국의 사회과학 연구에 중요한 발자국을 남겼다.

다시 돌아와 탁장한은 전과 다른 새로운 시야를 보여준다. 그는 마치 무거운 돌을 평생 올려야 하는 시지프스와 같이 긴 세월 빈곤문제를 연구해왔다. 그중에서 이번 책은 2022년 여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다섯 계절 동안 저자가 직접 동자동 쪽방촌에서 거주하며 쓴 르뽀르따주다. 저자는 계급화된 사회의 가장 낮은 자리 주민들 옆에서 연구와 실제 사이의 괴리를 토로한다. 쪽방에 거주하며 저자가 목격한 건물주와 관리인의 존재며 그들에 의한 스크리닝 과정, 기초생활 수급자 주거급여에 연동된 월세 비용 등은 쪽방촌의 민낯이다. 또한 주민들의 자격을 이용해 난방비 혜택을 받아 투자를 최소화하는 방식의 ‘빈곤 비즈니스’의 실체는 적나라하다. 건물주와 관리인은 교묘하게 세입자 간의 갈등을 유도하는데, 쪽방의 참담한 주거환경에 대한 분노가 세입자 간의 상호 감시와 분쟁으로 드러나는 지점은 잔인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건물주는 벽보를 붙이는 것으로 일방적인 계약 해지 통보를 하는데, 이로 인해 계약을 해지당하거나 월세를 올리는 대신 난방비를 관리비에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건물주에게 역제안을 해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는 세입자의 존재는 복잡한 쪽방촌 내 권력을 잘 드러낸다.

이 책의 장점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쪽방촌에는 거주자, 건물주, 관리인뿐 아니라 정부와 거주자 사이를 연계하는 쪽방상담소, 거주자와 활동가의 사랑방, 목사와 거주자가 직접 연결되는 개신교 교회도 있다. 쪽방상담소와 사랑방, 개신교 교회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쪽방촌 주민의 생활에 개입한다. 쪽방상담소는 공공시설로서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공적 자원을 주민들에게 분배한다. 사랑방은 비영리 주민자치단체로서 주민활동가를 중심으로 지역공동체를 구성해 공동의 사적 자원을 나눈다. 또한 개신교 교회는 신앙을 통한 종교공동체를 구성한다. 달리 보면 거주자와 건물주, 관리인 등은 이들 세 주체의 개입을 이용하고 관계를 맺는다. 쪽방촌에서 이뤄지는 서로 다른 개입은 저자의 말처럼 “빈곤 거버넌스”(265면)로도 보인다. 거주자를 유인하여 떨어져나가지 않게 한다는 주장은 현실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발견이다. 게다가 거주자와 ‘빈곤 거버넌스’는 절차성(쪽방상담소), 당사자성(사회운동단체), 진정성(종교기관)에 따라 서로를 매개하거나 단절한다. 저자는 고착화된 ‘빈곤 거버넌스’를 해소해야 한다고 말하며, 다가오는 재개발 과정에서 빈자를 위한 공공임대주택 공급과 탈쪽방을 통한 거주자의 분산을 제시한다.

아쉬운 점도 있다. 조심스럽게 적지만, 이 책의 초반부는 썩 불친절하다. 1장 「쪽방촌에 살다」에는 쪽방촌 소개와 쪽방 건물, 주요 행위자 등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가 있었다면 좋았겠다. 게다가 쪽방촌 거주자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과 그에 비추어지는 거주자들의 평면성에 관한 질문이 자꾸 든다. 5장 「수난의 공간」에서 제시한 ‘10월의 살인미수 사건’을 비롯한 몇 사건과 이를 둘러싼 쪽방상담소와 사랑방, 교회의 대응을 종합하여 살펴보는 일은 무척 흥미롭다. 반면에 거주자들이 가해자와 피해자로만 국한되며, “고통이 축적된”(261면) 밋밋한 존재들로 읽히는 점이 아쉬웠다. 홈리스 생애사 기록팀의 작업과 교차하여 읽는다면 더욱 풍성한 독서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탈쪽방을 통해 거주자들을 분산하자는 주장은 의미있지만 논지가 압축적이라 설득되지는 않으며, 빈곤 거버넌스의 역할을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연구자가 경험한 절대빈곤의 현장 쪽방촌을 생생하게 드러냈다는 점을 높이 사줄 만하다. 자신의 관찰에 기댄 ‘빈곤 거버넌스’라는 주장은 쪽방촌이 작동하는 방식과 질서를 설명하는 중요한 축이 될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공적 혹은 사적 개입의 역할과 방법에 대한 풍부한 논의로 나아가는 자양분이 되리라 믿으며, 앞으로 이어질 연구들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