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심사경위

 

 

 

2024년 6월 신동엽창작기금 운영위원회에서는 공선옥 김수이 안현미 한기욱을 제42회 신동엽문학상 심사위원으로 위촉했다. 신동엽문학상은 등단 10년 이하 또는 그에 준하는 경력을 가진 이의 최근 2년간(2024년 5월 31일까지)의 한국어로 된 문학적 업적을 대상으로 하며, 시·소설·평론 각 부문에서 선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시와 소설은 단행본, 평론은 발표 원고 기준). 추천위원(창비의 시·소설 기획위와 『창작과비평』 상임위)들과 심사위원이 선정한 총 7편이 최종 심사대상이 되었다.

박세미 『오늘 사회 발코니』, 한여진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이상 시), 김기태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병운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 성혜령 『버섯 농장』(이상 소설), 송현지 「수행하는 시인과 행위하는 시」 한영인 「깊이와 넓이」(이상 평론).

심사위원들은 7월 18일 모임에서 장시간 토론을 펼친 끝에 시와 현실의 공동공간인 ‘발코니’를 내세워 치열한 자기성찰을 수행한 박세미 시집(문학과지성사 2023), 평범한 개인들에 대한 특별하고 애정 어린 시선과 치밀한 구성으로 동시대성을 다시 감각하게 만든 김기태 소설집(문학동네 2024)을 제42회 신동엽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하는 데 흔쾌히 합의했다.

 

 

 

심사평

 

 

 

공선옥 소설가

나는 최종심에 올라온 작품들 중 주로 소설을 흥미롭게 읽었다. 소설을 쓰는 나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소설가로서 세상에 나온 지 10년 안쪽인 사람들은 어떻게 소설을 쓰나, 궁금했다. 젊음의 기준을 나이로만 따지자면 그들은 우선 나보다는 젊은 것 같았고, 그래서 그런지 혹은 내가 좀 과문해서인지, 언어들이 대체적으로 생경한 바가 없지 않았다는 점을 고백한다. 단어라든가 음악이라든가, 하여간 소설 속에 나오는 것들을 찾아 인터넷을 뒤져가며 읽었다. 하여 몰랐던 것을 아는 재미는 심사 중에 덤. 인터넷을 뒤지는 횟수가 가장 많았던 건 김기태의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었다. 이런 소설이 요즘 유행한다는 것인가? 궁금해하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다 읽고 난 후에는 뭔가 ‘사랑스러움’의 기미를 느꼈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것 앞의 긴장보다 오히려 안심이 드는 연유를 곰곰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성혜령의 『버섯 농장』은 일단 잘 읽힌다. 재미있다. 어쩌면 성혜령이야말로 소설에 가장 맞춤한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작가인 듯도 하다. 그러나 소설집 전체를 다 읽고 나서 내가 방금 재미있게 읽은 단편들의 경로 혹은 결말이 다들 비슷했음을 알고 맥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너무 소설 한편 한편에 심하게 몰입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리라.

김병운의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은 막막한 세상에 막막함으로 대항하는 사람을 볼 때의 막막한 슬픔이 독자를 사로잡는 소설집이었다. 조용하지만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을 언어가 김병운의 특장으로 보였다. 이 작가는 좋은 소설 언어를 지닌 작가임이 분명하다.

모두 기량과 특장을 갖추었지만, 내가 김기태의 소설을 수상작으로 꼽은 몇가지 이유 중 하나는 문학평론가 이희우의 해설처럼 이 책이 이 시대의 “평범한 자”들에 대한 사랑 어린 기록이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들을 다 읽고 난 며칠 뒤, 아이돌 그룹 뉴진스의 소속사 대표가 기자회견장에서 했던 “맞다이로 들어오라”는 말이 생각났다. 최근의 한국문학이 좀 연성화 혹은 미세화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세상을 향해 저돌적으로 대결하려는 자세나 태도가 아쉽다는 말을 하는 건 좀 구태스러운가? 그럴지라도, 이 간고한 세상과 맞짱 뜨는 통쾌한 소설을 젊은 작가들이 좀더 많이 보여주기를 바란다는 말을 심사 기회를 빌려 밝혀두고 싶다.

 

김수이 문학평론가

시 부문에서는 한여진과 박세미의 시집을 놓고 마지막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여진의 첫 시집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는 ‘소설로 쓸 수 없는 소설’을 표방하며 ‘미선 언니’를 등장시킨다. ‘미선 언니’는 실존 인물일 수도 있고 허구의 인물일 수도 있다. 시인의 부캐로 볼 수도, 삶의 현장에 가까스로 존재하는 이 시대 여성들의 집합체로 볼 수도 있다. 한여진은 무한한 가능성과 분명한 결말 사이에서 번민한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미선의 반죽”(「미선의 반죽」)처럼 우리가 무엇이든 될 가능성과, 끊임없이 총성이 울리는 폭력적인 세계에서 ‘무엇’이었다가 곧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면서 모두가 같은 최후를 맞는 결말. 한여진에게 지금 여기는 여성, 생계, 노동, 일상의 폭력, 전쟁, 난민, 기후위기 등의 문제가 개인의 삶을 속속들이 뒤흔드는 “세상의 끝”(「목적지를 입력하세요」)이며, 각자 홀로 살아남은 종착역이다. 이곳에서는 지금 “안전하고 무해한 것들만 믿으며/좋아하는 것들에 둘러싸인 채”(「초기화」) 살아가고 싶은 열망이 번성한다. 한여진은 이 욕망이 ‘나’와 ‘너’를 서서히 망치고 있다고 비판하는데, 이 비판은 한여진의 시에도 조금은 되돌려져야 할 듯싶다. 문제의 본질과 현실의 균열을 끝까지 파고들기보다는 안전하고 무해한 성찰의 수준에서 좋아하는 접근방식과 언어미학으로 전유하는 것. 이는 한여진뿐만 아니라 최근 젊은 시인들의 시에서도 자주 발견되는데, 한여진의 시가 독자에게 부드럽고 진하게 스며들면서도 실천적 각성을 촉발하기는 힘든 요인으로 작용한다.

박세미는 한여진과 대비되는 전략을 채택한다. 박세미의 시집은 안과 밖, 밀실과 광장, 개인과 사회, 시와 현실 등의 공동공간인 ‘발코니’를 내세워 사회학적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양쪽 영역이 더 긴밀히 만날 것을 요청한다. 박세미는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무너”(「벽 없는 집」)진 세계에서 각자의 발코니들이 서로 마주 보는 사회를 재건하기를 소망하며, 이 작업을 우선 ‘시’라는 공동체의 공간에서 시도한다. 그런데 박세미가 짓는 시의 건축물은 실제 기능보다는 독특한 구조와 장치에 중점을 둔 탓에 독자의 진입을 어렵게 하는 약점이 있다. 시의 감동과 매혹에서 한여진에게 마음이 기울었으나, 박세미의 『오늘 사회 발코니』가 신동엽문학상의 취지에 좀더 부합한다고 판단해 최종 선정에 동의하였다.

소설 부문에서는 김기태의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 압도적이었다. 재미있고, 현란할 만큼 다채로우며, 후련할 만큼 통렬하다. 지적 통찰과 감각적 세련미, 현실의 넓이와 문화적 디테일, 철학적 깊이 등을 두루 갖추고 있다. 김기태는 어떤 소재와 사건도 능란하게 다루는데, 만능열쇠 하나로 모든 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을 열 때마다 그에 꼭 맞는 소설-열쇠를 만들어낸다. 김병운의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은 섬세한 서술을 통해 퀴어서사를 인간사회의 보편적 갈등의 서사로도 확장해 읽게 한다. 다만, 김기태와 비교할 때 소설의 제재와 장르가 명확한 점이 한계 아닌 한계로 다가왔다. 성혜령의 『버섯 농장』은 우리 사회의 폭력과 범죄를 스릴 넘치게 형상화하는데, 단편들의 서사 패턴이 비슷하게 반복되면서 후반으로 갈수록 긴장감이 떨어졌다.

평론 부문에서 송현지의 글은 명쾌한 논리, 구조적 안정감, 깔끔한 문장 등이 장점이었다. ‘비인간’ ‘바깥’ ‘수행과 행위’ 등에 대한 해석도 신선했으나, 이 글이 혁파하려는 이분법에 휘말리는 부분이 있었다. 가령 ‘윤리’를 관념으로 규정하고 시의 물질성을 그 대립항으로 설정하기보다 윤리에 관한 시의 관념과 물질성의 두 차원을 논했다면 글이 더 정교해졌을 것이다. 한영인의 평론은 작품을 장악하는 유려한 해석력과 탄탄한 내공이 돋보이지만, 한영인 자신이 그간 써온 글들에 비해 뛰어난 글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평론은 단행본이 아닌 작품 1편을 대상으로 하기에 심사 기준이 더 까다로운 면이 있다. 평론 부문에서 수상자를 내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며, 박세미 시인과 김기태 소설가께 진심으로 축하를 드린다.

 

안현미 시인

글쟁이란 가면서 해결하는 거지 해결하고 가는 게 아니라는 김정환 시인의 말을, 글이란 살면서 쓰는 거지 쓰고 난 후 살기 시작하는 게 아니라는 말로 바꿔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지점에서 박세미의 『오늘 사회 발코니』는 ‘생활 전선’인 오늘을 차곡차곡 살면서 쓰는 글쟁이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건물의 정면에 정박해 있는 작은 배”(「Balkon」)인 발코니를 통해 생활 전선 너머까지의 삶을 꿈꾸는 자의 건축 설계도처럼 읽힌다. ‘현실의 앞뒤’에서 용기와 포기가 반복되지만 그 반복들로 세운 기둥들은 튼튼한 시적 건축물을 만든다. 그 속에 들인 ‘오늘’과 ‘사회’와 ‘발코니’는 일하고 돌아오는 사람에게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응원을 전한다. ‘기어코 쓰려는 사람’에게는 그 너머를 상상할 시간을 선물해주는 ‘보이드’와 ‘파사드’까지 세심하게 설계한 근사한 건축물로 보이기도 한다. 반면 한여진의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는 “모든 것이 끝나도/어떤 마음은 계속 깊어”(「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지는 세계를 응시해본 적이 있는 화자가, 물려받은 “검은 솥”(「솥」)을 안고 기지와 미지로 가득 찬 시간과 공간을 여행한 여행기로도 읽힌다. 마법의 세계처럼 중첩되는 시공간 속에서 「솥」 「조사」 「초기화」 같은 작품들이 뿜어내는 매력은 오래도록 한여진의 시를 들여다보게 했다. 아쉽지만 “아마도 환대”와 “아마도 환희”(「미선 언니」)가 가득한 다른 곳에서 미선 언니와 함께 웃는 일이 곧 생기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소설 부문에서는 김기태의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병운의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 성혜령의 『버섯 농장』이 본심에서 논의되었다. 성혜령의 『버섯 농장』에 수록된 작품들은 낯선 자들의 출현이 가져오는 서스펜스와 흡인력있는 문체, 충격적인 결말 등 이야기의 구조와 주제가 흥미로웠으나 수록작 여덟편이 비슷한 이야기 구조와 주제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김병운의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은 퀴어서사의 대중적 확산과 함께 우리가 읽어온 기존의 퀴어서사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퀴어소설을 소비하는 대중적 방식에 대한 의문 제기까지를 소설 안에서 톺아보고 있다. 그런 지점에서 김병운의 퀴어소설은 앞선 퀴어소설들과의 차이를 보여주고 그 차이가 오래된 차별을 어떻게 헤쳐갈지 기대하게 된다. 수상작 김기태의 소설집은 수록작 아홉편이 모두 흥미롭다. 한 작가가 쓴 것이 맞나 싶을 만큼 스펙트럼이 넓다. 치밀한 구성과 안정적인 문장, 동시대성을 다시 감각하게 만드는 현장성 등이 돋보였다. 무엇보다 평범한 개인들에 대한 특별하고 애정 어린 시선이 그의 소설을 신뢰하게 만들었다. 수상을 축하드린다.

평론 부문은 아쉽게도 수상작을 내지 못했지만 문학작품을 이토록 꼼꼼하게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시인과 소설가들에게는 언제나 고마운 일이다.

 

한기욱 문학평론가

올해 최종심 대상작들을 검토하면서, 2020년대 한국사람들은 서로 고립된 채 저마다 유의미한 삶의 단서를 잡아보고자 분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통적인 가족제도를 비롯하여 기존의 생활방식과 사유방식이 더는 유효하지 않고 오히려 삶을 억누르는 기제로 작용하는 듯하다. 기성체제의 삶의 방식과 경계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대전환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삶을 일궈내기 위해 어떤 모색과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지 눈여겨보았다.

시 부문 최종심에 오른 한여진과 박세미의 시집에서 상상과 사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거나 모호해지는 경우가 많은 것은 두 시인의 반사실주의적 스타일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주어진 현실을 기술하기보다 현실이란 무엇인가를 탐문하는 두 시인의 물음에는 이 시대의 발본적인 고민이 담겨 있다. 한여진의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는 얼핏 모호한 영역의 불투명한 시적 비유가 적잖지만, 「솥」 「어떤 공동체」 「조사」 등에서 보듯 시인은 지금의 현실을 이루는 여러겹의 층위를 들여다보고 자신이 연루된 지점을 깊이 응시하는데, 그 예리하고 깊숙한 시선이 놀랍다. 박세미의 『오늘 사회 발코니』에서도 미지의 영역이 많고 독해를 거부하는 제한 구역도 있지만, 「현실의 앞뒤」에서처럼 두 다리를 붙드는 늪 같은 노동현실과 그런 ‘생활 전선’의 늪에 매몰되지 않고 비상하려는 몸부림이 공존한다. 무작정한 비상은 아니다. 시인은 “새로운 눈으로서 튀어/오르기” 전에 먼저 표면으로 “낙하하며 보기/빠짐없이 보기”를 수행해야 한다(「표면으로 낙하하기」). 시인은 마침내 “현실에 정박해 있는 작은 배”인 발코니에 올라 “아름답고 무섭고 아득한 사회의 바다”를 응시하며(‘인터뷰’) 미지의 삶 앞에서 실존주의적 결의를 다지는 듯하다. 심사위원들은 두 시집을 비교하며 열띤 토론을 벌인 끝에 박세미의 시집을 수상작으로 정했다.

소설 부문 최종심에 오른 세 소설집은 2020년대 소설문학의 주된 흐름을 고루 조명한다. 성혜령의 『버섯 농장』에 두드러지는 것은 성적·계급적 분할선을 따라 곳곳에 부비트랩처럼 깔려 있는 강렬한 원한과 혐오의 정동이다. 표제작에서 보듯, 그의 소설은 트라우마 입은 마음의 풍경이 미니멀하게 암시되는 가운데 종종 원한 정동이 섬뜩하게 표출되기에 때론 부조리극처럼 느껴진다. 그의 서사는 구원 없이 강렬하고 아프다. 김병운의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은 무성애자를 포함한 여러갈래의 성적 정체성이 교차하는 선들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분별하며 각이한 관계들의 이야기를 곡진하게 들려준다. 퀴어서사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그의 사려 깊고 촘촘한 서사는 성소수자들에 대한 상투적인 인식과 재현을 훌쩍 넘어선다. 다만 이런 섬세한 마음의 이야기가 성소수자 문제로 수렴되고 있어 다른 영역들과의 관계는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뤄지는 것이 아쉽다. 김기태의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오늘날 한국사회의 주요 갈등영역인 성·계급·지역·민족·세대의 문제를 활달한 필치와 다양한 기법으로 다뤄 서사가 풍성하고 활짝 개방된 느낌이다. 그의 소설은 가상현실의 비중이 높아지고 글로벌화된 한국의 문화적 현실을 핍진하게 제시하면서도 교육, 노동, 결혼 등 삶의 밑바닥에서 일어나는 문제적 지점들에 뼈있는 논평을 가하는 비평적 감각이 돋보인다. 특히 「세상 모든 바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보편 교양」 등은 오늘날 한국의 문화적 풍경을 실감나게 포착하면서도 세태소설의 소재주의를 넘어 문화비평을 수행하는 수작이다. 작가는 자기 나름의 서사적 혁신을 꾀하면서도 한 시대의 사회현실과 개별자를 동시에 조명하는 소설 장르 본래의 가능성을 훌륭하게 살렸다. 심사위원들은 흔쾌히 김기태의 소설집을 수상작으로 정했다.

평론 부문에는 두편이 최종심에 올랐다. 한영인의 「깊이와 넓이」는 평자 특유의 명민한 비평감각과 맛깔스러운 문장력이 돋보인다. 특히 안윤과 성해나의 소설 성향을 각각 ‘수직운동’과 ‘수평운동’의 이름으로 가늠하는 눈썰미는 부러움을 살 만하다. 하지만 작가·작품론에 앞서 시대와 담론을 아우르는 총론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 송현지의 「수행하는 시인과 행위하는 시」는 작금의 신유물론적인 비평의 허실을 들여다보며 성다영, 신이인, 조시현의 시에 대한 논평을 시도한다. “인간의 흔적을 제거하는 데 공을 들여”온 최근의 신유물론적 비평들에 대한 비판이 날카로운데, 다만 그런 비판이 자신의 주장과 시 논의에서도 충실히 반영되었으면 하는 대목이 있다. 두 평론 모두 사줄 점이 많지만 심사위원 모두의 확고한 지지를 얻지는 못해 아쉽지만 올해도 당선작을 뽑지 못했다.

 

 

 

수상소감

 

그 자리에서

 

박세미 朴世美

201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내가 나일 확률』 『오늘 사회 발코니』가 있다.

 

 

『오늘 사회 발코니』가 나왔을 때, 예기치 못한 위로와 격려를 꽤 받았습니다. 시집을 읽으면서 저라는 인간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져 가슴이 아팠다고요. 제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아마 이번 시집에 제 현실과 생활이 깊게 들어와 있다보니 저를 잘 아는 주변 사람들이 특히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 듯했고, 그들이 전해준 마음에 저는 깊이 위로받았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의아함이나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고통을 향하기보다 그 너머의 시를 향하고자 시를 쓰는 내내 간절했고 부단히 애썼으나, 결국 고통이 시에 덕지덕지 붙어 있구나 싶어서요. 늪에 다리가 붙들린 제 입장에서는 새의 다리를 붙잡는 것이 최선이었지만, 막 날아오르려는 새, 그러니까 시의 입장에서는 좀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오늘 사회 발코니’라는 제목은 세 단어에 대한 직관적 필연만으로 그렇게 지었습니다. 나에게 중요하고 상징적인 단어라는 정도의 짐작만으로요. 돌이켜보니 ‘오늘’ ‘사회’ ‘발코니’는 제가 시를 쓰던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출근하기 위해 무거운 몸을 일으키던 오늘, 업무를 보다가도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던 오늘, 하루에도 수많은 메일과 메시지를 주고받는 사회, 어제는 동료애를 느끼게 하다가도 오늘은 배신감을 주는 사회, 생계로 형성되는 사회, 안도 밖도 아닌 발코니, 겨우 큰 숨을 내뱉게 되는 발코니, 문득 맞은편에도 누군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발코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 있는 생활 전선에 서서 어떤 메시지의 귀결이나 언어의 구사보다는 시의 언어를 발화하는 자리의 설정이 제게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 자리에서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꼭 그 자리에서 쓰고 싶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오늘 사회 발코니』에 신동엽문학상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시집에 매몰시켰던 오늘과 사회와 발코니가 시집 밖으로 둥실 떠오른 느낌이 듭니다. ‘시인의 말’에 “무수한 오늘마다/사회의 바다에 맨몸으로 던져졌다//유일한 발코니에 올라서면/오늘은 항해이기를”이라고 적었습니다. 당분간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사회 발코니』가 정박된 끈을 풀고 저에게서 벗어나 자유롭게 항해하기를 바랍니다.

 

 

 

수상소감

 

안경테와 조개

 

김기태 金起台

202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 있다.

 

 

떠나고 싶은 시절이다. 여행이 아니라 이사를 하고 싶다. 산과 들, 강과 바다 가까이 몸을 맡길 만한 처소를 여기저기 검색했다. 눈치 빠른 유튜브는 나에게 ‘한국기행’이나 ‘건축탐구 집’, 심지어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콘텐츠를 잔뜩 추천했다. 늦은 퇴근 후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배달 음식을 익숙한 죄책감과 함께 먹으며 이것저것 봤다. 나 같은 도시 사람의 결핍과 환상을 자극하려는 연출이 있겠지만, 단지 그것뿐이라고 냉소하고 싶지 않다. 출연자들은 행복하다고 말하고, 그들의 표정은 정말 그렇게 보인다. 나는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라는 말을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만원 전철에서 시작하는 하루와 바다를 보며 시작하는 하루는 다르지 않나.

나의 바다 선호를 인지했는지 유튜브는 ‘극한 직업’ 시리즈 중 어부들이 등장하는 에피소드를 권했다. 삼치, 갈치, 방어, 민어, 오징어, 대게…… 세차게 흔들리는 선상에서 그물을 끌어올리는 어부들은 프로듀서의 질문에 답할 여유도 없었다. 열몇시간 만에 쭈그려 앉아 끼니를 때우는데, 식사라기보다는 노동의 일부처럼 보였다. 남의 생업을 함부로 낭만화하고 싶지 않지만 선상에는 행복 같은 단어를 초월한, 어떤 정직성이라 할 만한 감각이 있다. 직접 낚은 물고기로 차린 밥상, 부지런한 저작 운동, 주름진 얼굴에 깃든 웃음, 자신과 가족과 뱃일에 대해 굳이 설명하려는 의지가 없는 짧고 투박한 문장들. 그에 비하면 내 삶은 가짜 같다. 지난밤, 우유나 한잔 마시면 될 텐데 베이컨포테이토 피자를 시켜서 먹어치웠다. 지난 한주 직장에서 생산한 문서 중 절반은 아무 기능도 없고 누가 읽지도 않는다. 지난 한달 동안 사들인 물건 중 십중팔구는 불필요하다. 안경테를 다섯개나 가져야 할 이유는 아무래도 없다. 이런 짓들을 왜 멈출 수 없을까. 지난 평생의 관성이다.

몇해 전 나는 껍데기 같은 삶에 문학이 알맹이가 되어주기를 기대했다. 소설을 쓰며 내 안에서 작고 단단한 무엇이 만들어진 듯한 계절도 있었다. 그러다 운이 좋게 발표 기회를 얻었고, 공개적으로 활동한 지 삼년째다. 어쨌든 가시적인 차원에서는 작가가 된 것이다. 온라인 서점을 드나들며 생각한다. 판매지수가 떨어지고 있잖아. 서면 인터뷰에 답을 하며 생각한다. 이 질문은 거짓말로 둘러대자. 거울을 보며 생각한다. 이 안경테가 더 소설가처럼 보이는걸…… 이런! 내게 문학은 신상품 껍데기가 되는 중이다. 지금까지 둘렀던 모든 껍데기 중에서 가장 그럴듯하긴 하다. 문학도 뭐 그렇고 그런 것일까. 어차피 세상에 알맹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문학도 더 유려한 껍데기짓을 뽐내는 유희일 뿐일까. 그런 관점은 매혹적이지만 아직 수용하고 싶지 않다. 문학의 원죄를 따지기 전에 내가 정신을 차릴 일이다.

지금 나는 신동엽문학상을 받는다. 문학상도 다분히 껍데기라지만, 받는 사람 하기 나름이겠다. 이 정도로 근사하고 단단한 껍데기라면 도리어 없던 알맹이도 만들어낼 힘을 준다. 문학 함을 다시 성찰하고 부끄러운 빈틈을 메워보라는, 질책 혹은 격려로 여기겠다. ‘역사와 전통’ 같은 개념은 요즘 인기가 별로 없는 듯하나 나는 여전히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신동엽 시인이 지금 내 나이에 하늘로 떠났다는 사실을 돌아보니, 남은 삶 앞에서 새삼 차분해진다. 조급해지는 입을 잠시 다물고 더 깊은 곳으로…… 문득 조개는 껍데기와 알맹이가 함께 성장하는지 궁금하다. 역시 바다로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