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심사평

 

 

 

올해 창비신인시인상 공모에는 1,118명의 작품이 응모되었다. 우리가 함께 딛고 서 있는 현실의 토양에서 개성적인 언어로 지어진 또다른 현실들이 다종다양하게 피어나는 장면을 한자리에서 목격하는 것은 심사위원들의 특별한 기쁨이었다. 그러나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첫 독자로서 대면하는 무게감에 원고를 넘기는 손길은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심사위원들은 더 많은 독자와 만나 시대의 기쁨이 될 작품을 고대하며 응모작들을 검토하였고, 최종적으로 응모자 4명의 작품을 두고 긴 대화를 나누었다.

「멀리건」 외 4편(김호애)은 일상의 장면에서 대사나 구어체 발화를 통해 정서를 솔직하게 노출하는 방식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표제작에서 ‘골프’라는 소재로 죽음을 이야기하는 솜씨나 「영태와 먹태」에서 힘을 빼고 마지막까지 밀고 나가는 전개가 억지스럽지 않고 안정적이었다. 전반적으로 현실에서 낙오된 오늘날 청년의 불안한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읽혔는데, 이것이 개인의 불안감이나 무기력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어쩌면 대사나 발화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시작법이 일상의 표면을 뚫고 좀더 깊은 사유로 나아가는 데 장벽이 된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일상의 구체성에 기반한 필력이 미더운 데가 있으므로 현실에 대한 통찰을 더한다면 새로운 시적 도약이 이루어지리라 기대한다.

「다이빙」 외 5편(유승연)은 무엇보다 매력적인 소재를 포착하는 역량이 돋보였다. 최근의 시적 경향성을 반영한 말맛과 언어감각으로 속도감있게 읽힌다는 장점 또한 있었다. 그중에서도 「버섯 되기」는 재미있는 소재와 유쾌한 대사로 기후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간접적으로 드러내 눈길을 끌었지만 소재에 많은 부분을 기대고 있어 아쉬웠다. 시대나 세대 관련 이야기가 없지 않음에도 시에서 그리고 있는 ‘나’와 ‘여기’의 구체적인 실재감이 느껴지지 않아 피상적이라는 한계가 뚜렷했다. 또한 끝맺음이 갑작스럽거나 모호하여 시의 흐름이 탄력을 잃고 흐지부지되는 경향이 있었다. 시적으로 보이는 소재나 기성시인들의 언어에 이끌리기 전에 시로 닿고자 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당선작과 함께 마지막까지 뜨겁게 논의된 작품은 「명동성당」 외 4편(김보미)이었다. 말을 경제적으로 운용하는 안정적인 문장들이 시의 목소리를 잘 들리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전반적으로 막연한 ‘빛’이나 ‘미래’가 아니라 구체적인 장소와 사람에 기대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진솔한 태도에 믿음이 갔다. 다른 시편들과 결이 다른 유일한 산문시 「데굴데굴」에 대해서는 리드미컬한 말맛에 담긴 사유가 흥미롭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그러나 시편마다 ‘울음’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그러한 울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삶의 맥락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아 공허하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울고 있는 사람을 응시하며 자신의 울음을 꺼내 곁에 두는 시선의 미덕은 넉넉히 인정되었으나 그 울음이 좁은 세계에 갇혀 있다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려웠다. 넓은 세계로의 확장성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충실함에서 시작될 것이므로 응모작이 보여준 내적 충실함이 머지않아 크고 단단한 그림을 그려낼 것이라는 믿음을 품고 다음을 응원하기로 하였다.

「때맞춰」 외 4편(김진선)은 최근의 시적 경향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채롭고 유려하게 펼쳐내는 점이 눈에 띄었다. 긴 호흡의 시에서는 긴 문장과 짧은 문장을 변주하는 구성력이 뛰어났고 짧은 호흡의 시에서는 리듬감있게 언어를 밀고 가는 힘이 느껴졌다. 응모작들의 편차가 적고 이미 완성도있는 시세계를 갖추었다는 점에서 자신만의 화법과 감각을 단련해온 시간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표제작에서는 “어디라도 들어가서 기다리라”는 말을 붙들고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정서적 흐름을 만들어가는 가운데 밀도있는 사유를 담아내는 균형감이 돋보였다. 사람의 연약한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선이 섬세하고 신중하다는 점, 아픈 것들이 손잡고 만들어가는 시간의 힘을 믿는다는 점, 역사와 공동체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질문한다는 점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오래 사로잡았다. 지금 여기에 누적된 시간의 겹, 다른 이들과 연결된 삶의 곁을 놓지 않는 진중하고 포용력있는 태도가 우리 시대 시의 역할과 영역을 깊고 넓게 확장해주리라 기대하게 만들었다.

이에 심사위원들은 김진선의 「때맞춰」 외 4편을 제24회 창비신인시인상 수상작으로 결정하였다. 당선을 축하드리며 “이제는 내가 이야기를 지어낼 차례인 것 같”(「이야기의 신」)다는 당선자의 다짐이 때맞춰 도착한 우리 미래의 이야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옥고를 보내주신 모든 응모자분들께도 각자의 자리에서 분투해온 시간과 열정에 깊은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김현 박소란 오연경 주민현

 

 

 

수상소감

 

 

김진선

김진선 金珍先

1991년 부산 출생.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수료.

 

시를 생각하면 작은 불을 오래 지키고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이 말을 어딘가에 쓰고 난 뒤 정말 그런 사람으로 지내왔던 걸까요. 몇년이 지나 사뭇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불이라니. 언제 꺼져도 이상하지 않았을 마음을 잠잠하게 바라봐준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조선대 문예창작학과에 다니면서 내내 든든하기만 했습니다. 이승우 교수님, 김희정 교수님, 양경언 교수님께 소식 전할 수 있어 기쁘고 감사합니다. 첫 문장에 대한 믿음과 꾸준히 쓸 용기를 주신 이장욱 교수님, 신용목 교수님, 신형철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어디서든 헤맬 때마다 교수님을 생각하면 차근차근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나희덕 교수님 감사하고 깊이 존경합니다. 조선대 미학미술사학과 김승환 교수님과 윤청 선생님께는 각별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슬픔을 꺼내어두는 방법, 함께였기에 알게 되었습니다.

 

절반이라는 단어와 가장 가깝지만 먼 외국에 있는 미지와 어진에게 그리움을 보냅니다. 다혜와 서영의 존재 덕분에 쓰는 나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동료이지요. 내가 늪에 빠졌을 때 선뜻 발 내디뎌 건져준 다혜 언니, 한경, 석영, 민재, 하은의 다정함을 잊을 수 없습니다. 친구들이 건네준 힘이 분명한데 스스로 이룬 것이라고 하니, 겸손마저 우정의 증거라 여겨도 되지 않을까요.

 

이윤정, 임영옥, 김진기. 세 이름을 나란히 적어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우리가 가족인 게 종종 기적처럼 느껴집니다. 기적인 게 틀림없을 끝없는 헌신은 삶을 망가뜨리는 것 같아 죄스러웠습니다. 앞으로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많길 바랍니다. 계속 사랑합니다.

 

누군가의 기도에는 내 이름이 불린다는데, 그래서인지 정성스레 살고 싶어졌습니다. 기도 안에서 따뜻해지는 중입니다. 이제 내가 더 많이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기꺼이 첫번째 독자가 되어주는 지호. 미처 시에 이르지 못한 순간도 지호의 세상에서는 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겹겹이 포갠 마음과 다음의 시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쓰게 될 문장 앞에서 도망치지 않겠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작은 불을 오래 지키고 있는 사람이 되어 쓰겠습니다. 시이기도 사람이기도 사랑이기도 어쩌면 모든 것이기도 한 불 옆에 모여 서로 나눌 수 있는 게 하나라도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그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