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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조형근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한겨레출판 2024
연루된 역사를 응시하다
서은주 徐銀珠
용인대 용오름대학 부교수 ejuseo@naver.com
청소년 시기에 흑백 TV로 「명화극장」이나 「주말의 명화」를 시청하면서, 영화 속 서구인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데 익숙했던 때가 있었음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야만인으로 재현된 인디언들을 사냥하듯 죽이는 키 큰 백인 배우를 ‘우리’라고 여겨 환호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미군의 활약상을 다룬 영화에 등장하는 아시아인을 타자로 인식했다. 일본 남방군에 붙잡힌 영국군 포로들이 태국과 버마 간 철도를 건설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콰이강의 다리」(데이비드 린 감독, 1957)도 그 시절에 접했다. 영국군 포로들이 ‘적군’의 다리를 주도적으로 건설한다는 설정이 아이러니하지만, 역시 영국 포로들 편에 감정이입을 했으리라. 게다가 상대가 제국 일본이니 어쩌면 ‘아(我)/비아(非我)’의 배타적 구도는 당연해 보였을 수도 있다. 문제는 수용소에서 포로들을 가혹하게 대했던 ‘적군’ 일본의 포로감시원 상당수가 조선인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군에 소속된 민간인 포로감시원이었고, 콰이강 건설현장에만 1,000여명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일제는 ‘군속(軍屬)’을 미끼 삼아 조선인 청년 3,223명을 동원해 남방 곳곳의 포로감시원 임무를 맡겼다. 종전 후 포로들에 의해 조선인 포로감시원의 잔인성이 증언되었고, 조선인 군속은 전범이 되어 사형되거나 감옥에 갇혔다.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 동원이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가해자이자 피해자”라는 이중의 실존을 부여했고, 이는 그들 개인뿐만 아니라 현재의 우리도 함께 응시해야 하는 “윤리적 고민”(60면)이 되고 말았다.
콰이강 다리 위의 조선인 포로감시원 이야기를 표제로 삼은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역사에 연루된 나와 당신의 이야기』는 박학하고 성찰적인 역사사회학자 조형근이 거미줄을 던져 서로 다른 시공간의 사람들을 다양한 역사적 상황과 키워드로 ‘연루(連累)’시키는 책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 한반도와 아시아 및 서구를 배경으로, 한국인이 세계사에 연루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국가(민족)의 경계로 완전히 귀속되지 않는 경계 안팎의 다양한 사람들을 다룬다. 제국과 식민지의 착종된 관계, 인종(민족)·젠더의 교차성 문제, 근대 과학의 양면성, 식민지 대중문화의 팽창주의, 디아스포라, 재난과 공감, 역사 기억의 문제 등의 주제를 18개 에피소드로 묶었다. 무엇보다 가요와 TV 연속극, 영화와 오페라, 소설처럼 대중에게 비교적 널리 알려진 소재에서 실마리를 이끌어내는 현란한 스토리텔링이 더해졌다. 호기심을 자극하며 펼쳐진 이야기가 어느새 역사의 아이러니한 사태로 독자를 끌어들여 헤어나올 수 없는 무거움을 안긴다.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식민-피식민의 착종관계와 더불어 여성이라는 젠더성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만주국을 대표하는 영화배우이자 가수였던 리 샹란(李香蘭)은 중국인으로 알려졌지만 실은 일본인이었으며 대동아공영권의 기획된 스타였다. 그녀는 “아름다운 중국 여성과 신사답고 용감한 일본 남성”(20면)의 사랑을 그린, 만주협회가 제작한 선전영화에 출연했고, 조선군 보도부가 만든 내선일체 선전영화에도 등장해 숱한 조선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이끌었다. 종전 후 중국에서 매국노로 체포되자 야마구찌 요시꼬(山口淑子)라는 자신의 본명을 밝히고 살아남아 일본으로 귀환한다. 이후가 더 놀랍다. 할리우드 영화 출연, 18년간의 자민당 참의원 활동에 이어 정치를 그만둔 후에는 침략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과거를 반성하며 ‘위안부’ 피해보상을 위해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1995)을 발기하고 부이사장이 된다. 굵직한 역사적 사건과 ‘연루’된 그녀의 삶은 놀랍다 못해 그로테스크하게 다가온다. 그런가 하면 베를린올림픽 기록영화를 만들고 나치의 뉘른베르크 전당대회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한 레니 리펜슈탈(Leni Riefenstahl)도 리 샹란과 어딘가 닮은 인물이다. 독일의 패전 후 나치에 부역한 엘리뜨 남성들이 별다른 타격 없이 자기 자리를 지킨 것과 달리 리펜슈탈은 10여년 넘게 나치 조력자라는 질타에 시달렸다. 그러나 곧 문명비판적 시각을 담은 ‘고귀한 야만인’ 사진작업으로 다시 명성을 되찾고 101세까지 장수한다. 조형근은 두 여성 모두 자신의 재능과 욕망, 섹슈얼리티를 도구로 대중과 권력의 환심을 샀고, 그것이 예술 혹은 ‘아름다움’ 추구라는 절대 가치로 포장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는 리 샹란의 과거사 반성에 진정성이 있는지 의문을 표하기도 하고, 리펜슈탈의 작품세계를 ‘파시즘 미학’의 연속선상에서 해석한 수전 손택(Susan Sontag)의 비판을 소개하면서도 최종 판단은 질문으로 대신한다. “고의로 획득한 무지 위에 서 있는 아름다움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이토록 황홀하고 끔찍한 인간 앞에서 묻고 또 묻는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255면)
상층부 여성과는 달리 20세기 제국주의 침략, 세계대전, 냉전 등이 하층 여성들의 삶을 어디로 몰아갔는지를 예증하는 에피소드들은 그야말로 참담하다. 20세기 전반의 코스모폴리턴 시티인 상하이는 동양 여성에 대한 서구인의 환상을 주조해낸 상징적 공간이었고, 이 환상은 일본에서는 ‘팡팡걸’로, 남한에서는 ‘에레나’로, 베트남에서는 ‘미스 사이공’으로 재현된다. “일본-미국-한국으로 이어지는 성착취 제도의 삼각고리”(121면)는 희한하게도 애수에 찬 대중가요 속으로 스며들어 자신의 기원을 지운다. 제국의 노스탤지어를 담은 일본 가요 「상하이에서 돌아온 리투」를 본떠 만든 한국 가요 「에레나가 된 순이」는 맥락도 없이 한국 대중의 감성을 파고든다. 일본의 ‘위안부’를 성노예 제도라고 비판하는 한국인들은 제 나라의 ‘양공주’는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 조형근은 ‘양공주’가 2022년 한국 대법원의 판결대로 위법적으로 운영된 기지촌에서 인권침해를 당한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임을 상기시킨다. 그는 대중이 즐기는 가요나 드라마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사연’들이, 사실은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 세계사적 기원과 유래 속에서 자행된 폭력의 산물임을 강조한다. 이밖에도 독립운동을 하다 독일로 망명한 의사이자 작가 이미륵의 삶을 비롯해 디아스포라적 삶을 강요받았던 망명 운동가들, 사할린 동포들의 사연은 참으로 기구하다.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의 문제의식은 우리의 익숙한 통념들을 헤집어 재사유하게 만든다. 무지해서이든 의도된 것이든 단순화가 갖는 윤리적 죄를 아프게 꼬집는다. 이 책의 스토리텔링 방식이 초래한 결과이기도 한데, 서로 얽히고설키다보니 동일한 인물이 반복적으로 다른 이야기에 재등장하는 사소한 티끌이 아쉽다. 성숙하고 복잡한 사고를 감당할 만한 사람들에게 충분히 권하고픈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