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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양미 『너무나 정치적인 시골살이』, 동녘 2024
낭만을 부수고 시골 민주주의를 꿈꾸다
유수정 柳水晶
지역 문화예술 기획사 스튜디오유크리 운영, 전북청년정책조정위원 gkflgkfk@naver.com
도시를 떠나 시골에 ‘살기 위해’ 온 양미의 『너무나 정치적인 시골살이: 망해가는 세계에서 더 나은 삶을 지어내기 위하여』를 만났을 때, 거침없고 명징한 제목에 감탄하며 지인들에게 표지를 보여주었다. 다들 공감 어린 한탄을 하면서도 쓴웃음을 지었는데, 그 모습에서 모두들 지역살이의 불편한 정치성을 조금씩은 눈치채고 있음을 읽었다. 나는 전북 부안에서 나고 자라, 동경했던 서울에서 살다 번아웃과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돌아왔다. 도시생활에 지쳐 돌아온 고향에서 다양한 청년활동을 하며 미래를 그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나도 낭만에 눈이 멀어 있었음을 깨달았다. 부당한 현실을 알아챌 때마다 그것을 바꾸기보다 체념하고 순응하지 않았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본다.
저자 양미는 사회운동가이자 자본주의사회에서 몸과 마음을 갈아가며 살아낸 도시노동자였다. 생계형 아르바이트나 저임금 계약직을 경험한 이들은 양미의 가난과 고난에 공감할 것이다. 든든한 뒷배경 없는 평범한 시민의 삶 말이다. 그는 10년간 끊임없이 노동하다 어느날, 더이상 이대로 살 수 없음을 깨닫는다. 몸과 마음이 무너져 텅 빈 삶을 마주한 것이다.
태어나 평생 도시에서 살아온 사람이 처음부터 무작정 대안적 삶으로 귀촌을 떠올린 것은 아니었다. ‘귀농(歸農)’ ‘귀촌(歸村)’이라는 단어가 내포한 ‘돌아간다’는 뜻부터가 도시 태생에게는 장벽이다. 그럼에도 양미는 고민 끝에 시골에서의 삶을 꿈꾸게 된다. 소박하고 느긋하며 지인들과의 안전한 네트워크 안에서 살아가는 삶. 그는 마침내 전북 진안에서 일년치 월세 50만원짜리 방 한칸을 구한다. 마당에 유기농 텃밭을 가꾸고 자기 몸에서 나오는 똥오줌조차 버리지 않고 퇴비로 사용하는, 환경 친화적인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부지런히 전국을 다니며 여성·노동·인권교육을, 플리마켓에 나가 만들기 수업을, 단기 계약직 활동가로 일을 했다. 임금노동은 최소화하고 자기 시간을 확보하며 살아가는 방식과 순환하는 계절의 아름다움을 시골에서 배웠다.
하지만 이렇게 시작한 이야기는 시골을 유토피아로 그리는 예찬론이 아니다. 불평등한 현대사회에서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을지에 대한 실험과 질문으로 진짜 시골살이가 시작된다. 저자에게 “시골살이란 치열한 저항이다”(20면). 그는 흔히 미디어가 낭만으로 포장하는 시골의 문제를 하나하나 꼽는다. 가장 오래 천착한 문제는 이동권이다. 저자의 첫 시골집은 하루에 버스가 서너대 지나는 작은 면에 위치했다. 녹음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시골길은 사실 자가용 없이 다니기 힘든 대중교통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자연인도 자동차는 필요한 것이 시골살이다”(57면). 그럼에도 양미는 차를 사지 않는다.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만으로는 이동권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지자체를 상대로 정보공개 청구를 하고, 버스 노동자를 취재하며 목소리를 내고 “‘문제를 일으키며’ 살아간다”(9면, 추천의 글). 버스 공영제를 넘어 대중교통 공유제를 제안하고, 모두가 포기하여 고개 젓는 문제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빈집이 넘치는 시골에서도 마땅히 살 집을 구하기가 힘들다는 문제도 있다. 정보가 없거나 생각보다 비싼 월세 때문이다. 도시나 시골이나 똑같이 자산규모에 따라 어딘가에 살 자격이 부여된다면, 인프라마저 부족한 시골은 영영 사람 살 곳이 못 된다. 그 와중에 정책은 집을 소유한 임대인 위주로 마련된다. 요즘 시골은 사람이 없어 큰일인데, 적어도 주거정책은 ‘돈 없고 정보는커녕 인맥도 없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저자는 시골에 맞는 경제권 재정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자급농이나 시골 여성들의 가족돌봄은 현금화되지 않으므로 비가시화된다. 텃밭노동은 탄소발자국과 각 가정의 지출을 줄이고, 돌봄노동은 가족 구성원들의 경제활동을 보장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다. 그러니 시골 상황에 맞게 이들의 노동가치를 인정하고 이에 맞는 제도를 논의하는 것부터가 과제다. 물론 나를 포함한 모든 시골 사람이 텃밭을 가꾸지는 않으니 이 문제는 시골의 경제적 특수성을 고려한 기본소득 논의로 이어질 수 있겠다.
이어서 양미는 지역 행정의 현실을 살핀다. 인구절벽 시대에 지역소멸위기 당사자인 시골은 여러 청년정책을 내놓지만, 저자는 진안군의 청년정책 보고회에 참석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숨을 쉰다. 좋은 정책을 발굴하고 제안해도 군수의 의지가 없으면 실행되지 않는 현실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행정은 주민의 삶을 숫자로 판단하는 데 그치고, 지역민의 삶과 정책은 자주 어긋난다.
마지막 장에서는 이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고든다. 시골에는 강력하고 때로는 수상한 권력이 작동한다. 일제강점기 때 제정된 채 여전히 변치 않은 이장 제도가 그렇고, 주민 개인이 군수나 군의원을 따로 만나 자기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는, 일부에게만 편리한 정치구도가 그렇다. 감시자는 적고 권력이 미치는 영향은 크다보니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다.
해결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이미 제도가 마련된 주민자치회를 이용할 수 있다. 표준조례안을 참고해 조례를 만들고, 선거를 통해 주민자치회를 구성하면 된다. 물론 실무를 처리하고 공론장을 운영하기 위한 주민교육도 필요하다. 소수 엘리뜨나 정치권력자들의 입맛대로가 아닌, 평범한 주민도 공동체의 자치에 참여할 수 있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이렇듯 저자는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해결하도록 종용하기를 반복한다. 누군가는 이러한 방식이 시골에서는 아직 너무 이르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시골살이 동지로서 나는 이런 시골 민주주의는 충분히 실현 가능하고, 정의로운 방식으로 작용하리라 믿는다. 그의 거침없는 행보를 읽어내려가며 걱정하기보다는 문제를 똑바로 바라보고 지지와 연대의 마음을 품기를 반복했다. 양미는 “가난해도 죽거나 다치거나 비참해지지 않고, 높은 삶의 질을 누리며 살 방법을 찾고 싶다”(13면). 여기서 말하는 질 높은 삶은 참으로 소박하다. 비용은 낮추고 누군가를 착취하지 않으며, 지속 가능한 삶이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해 시스템이 개인의 삶의 빈틈을 섬세하게 메꿔준다면 충분히 가능한 미래다. 사회적 자원을 적절한 곳에 분배하여 꿈꾸고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하자. 사람이 살기 힘든 시대에, 사람이 적어 고민인 시골 정치의 방향이 자본주의의 논리를 거슬러 낮은 곳으로 흘러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