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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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경위

 

 

백석문학기념사업 운영위원회는 제26회 백석문학상 예심위원으로 신미나 이근화 2인을, 본심위원으로 김해자 진은영 한기욱 3인을 위촉하고 심사를 진행하였다. 심사규정에 따라 최근 2년간 출간된 시집들을 예심에서 검토한 결과와 본심위원의 추천을 통해 아래 총 9종의 시집이 본심에 올랐다.

권선희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 박소란 『수옥』, 신해욱 『자연의 가장자리와 자연사』, 안미옥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 안희연 『당근밭 걷기』, 이대흠 『코끼리가 쏟아진다』, 이덕규 『오직 사람 아닌 것』, 이영광 『살 것만 같던 마음』, 허연 『밤에 생긴 상처』(가나다순).

본심은 11월 1일에 진행되었는데, 모든 후보작이 저마다의 개성과 어법으로 뛰어난 시적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심사진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숙고와 토론이 있었으나 수상작을 꼽는 데에는 이견 없이 한목소리를 모아 이영광 시집 『살 것만 같던 마음』(창비 2024)으로 결정했다.

『살 것만 같던 마음』에서 시인은 삶과 죽음, 강자와 약자, 빈자와 부자가 마주하는 세상에 무시로 변하는 마음의 정동을 반어법과 역설법을 활용하여 과감하게 서술한다. 생을 향한 사랑을 포함해 모든 사랑에 내재한 아이러니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시적 역량이 ‘모던하게 돌아온 듯한 백석’을 연상시키는바, 이 시집을 올해의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심사평


김해자(金海慈) 시인

시를 쓰는 동업자로서, 본심에 올라온 시집들을 반복해 읽으면서 행복하고 때로는 기가 죽었다. 위축감을 동반한 비관의 정조로 문학의 사멸과 시의 도태를 우려하던 마음속 목소리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공동체와 생태계가 급격히 파괴되면서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 지탱할 수 없을 만큼 나날이 늘어가는 고독하고 불안한 시대에 한국 시단은 여전히 나와 너 사이에 존재하는 사물화된 시선을 뒤집으면서, 대상화를 뛰어넘는 타자적 감수성을 발굴 혹은 재창조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권선희의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은 ‘나’라는 밀실 혹은 내장이 ‘타자’ 혹은 ‘공동체’라는 광장과 하나의 물줄기로 이어져, 한 몸으로 율동하는 바다의 교향곡이 되는 기이한 체험을 선사했다. 나는 이렇다, 나는 저렇다 할 자의식과 검열조차 거둔 야생언어와 입말의 물줄기에는 어부와 해녀와 무당과 장삼이사의 목소리가 펄펄 뛰는 고기처럼 살아 있다. 이쪽과 저쪽, 나와 타자라는 경계를 넘어 들리지 않고 들을 수 없는 목소리들을 배달하는 택배기사나 샤먼과 같은 기능을 시가 수행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게 하는 시적 성취 이면에는, 시인이 몸소 경험했으리라 믿어지는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위계 없이 감수하는 대칭적 사유와 타고난 감각이 수평의 바다처럼 펼쳐져 있으리라 짐작된다. “정처 없는 귀신들 다 불러제끼며” “징에 기대”(「징」) 펑펑 울고 웃는 샤먼적 발성법 혹은 발화방식은 수천년 시를 써온 인류에게 시를 쓰는 주체가 과연 누구이고 누구여야 하는가라는 묵직한 질문도 던진다.

웃음과 울음의 동거 혹은 호환을 통해 고독과 불안을 넘어서는 박소란의 『수옥』은 “어쩔 줄 몰라하”거나 “기도하는 불행의 뒷모습을” 지켜보게 함으로써 ‘신실한 불행’에 깃든 빛을 찾는 고단한 여정과 물의 감옥을 흘러서 넘어가는 따스한 그리움을 보여준다(「불행한 일」). “아무도 진짜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그 누구도 되지 못하는 슬픔/혹은 기쁨”(「××」)들이 이 시대 젊은이들의 초상으로 오버랩되면서 울다가 웃고 웃다가 우는 물잔에 어린 얼굴이 내내 마음을 젖게 하였다. 안미옥의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는 나와 타자, 내부와 외부로 상징되는 ‘집’과 ‘벽’과 ‘문’이라는 구획된 공간을 탐색함으로써, ‘나’라는 홈 파인 회로에 갇히지 않고 공존과 공생의 감각을 회복해보려는 시인의 집요한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집과 몸과 생활이 수리하고 돌보고 발견하면서 성장하는 것처럼, 속수무책의 절망과 무능 속에서도 ‘너’라는 무지의 지평을 발견하는 반복이 곧 삶임을 변주해주는 시집이었다.

안희연의 『당근밭 걷기』는 식물적 혹은 광물적 상상력을 통해 말해지지 않는 배후를 탐색하고 이입함으로써, “거듭해서 말해져야 하는 이야기”(「발광체」)가 곧 시가 마음과 침묵의 또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한편, 어쩌면 시는 말이 되지 못하는 말들이 아닐까 골똘히 생각하게 하는 시집이었다. 시와 돌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대상과의 깊고도 내밀한 마주침을 통해 “어떻게 슬퍼했는지” “어떻게 참아냈는지”(「간섭」) 가늠하고 마주 보게 한다. 이렇듯 일방적 시선의 한계와 오만이 사라진 자리에 돋을새김되는 ‘곁’의 감각과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뛰어넘어 존재를 새롭게 경험하게 하는 너와 나 대칭성이야말로 시의 존재이유이자 인류의 본모습이 아닌가 되돌아보게 하는 역작이었으며, 사유와 감성이 합체된 듯 유연하지만 강단있고도 내밀한 언어와 시적 태도 또한 귀하게 느껴졌다. 이대흠의 『코끼리가 쏟아진다』는 연애시의 외양을 띠지만, 타자를 수신하는 명랑한 탐험 보고서로 읽혔다. “감정의 국경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충분히 방목 중”(「마음의 호랑에서 코끼리떼가 쏟아질 때」)인 배려와 연민을 발굴함으로써, 역으로 폭력성과 문명의 폐허를 싱싱하게 되살리는 타자의 윤리학을 보여주는 명랑하고도 곡진한 시집이다. 당신을 숱하게 호명하면서도 그늘진 ‘당신’의 속내를 실감하지 못한다는 깨달음은, “이미 온 감기처럼 내 안의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당신을 찾아내”(「그러나를 수신하는 방식」)어 스며들겠다는 의지는 주체를 내버리지 않고도 공생의 지대인 생명의 노랑으로 창조하려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투쟁으로 읽힌다.

이영광의 『살 것만 같던 마음』은 ‘백척간두진일보’라는 옛 선인들의 구도행을 떠올리게 한다. 더이상 후퇴할 수 없는 막다른 지점에서 혼돈과 양가감정을 허용하는 언어도단과 “어둡던 기쁜 마음”(「어두운 마음」)이라거나 “미워하는 마음을/미워하지 않는 마음”(「미워하는 마음을」)이나 “기운이라곤 없는/평화의 바람이/불어오려”(「평화의 바람」) 하는 패러독스와 아이러니와 능청의 최대치가 솟구쳐 오른다. 나아가 ‘있다’와 ‘없다’와 ‘-이다’ ‘-이 아니다’라는 세상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자유자재한 공(空)의 열림에서 공(共)의 세계로 진입하는 묘안의 경지가 펼쳐지기도 한다. “아프다고 생각하며/아픈 줄”(「아프다고 생각하며」) 모르는 어두운 마음을 지나, “죄의 못에 등판이 찔려 채집된 채로” 받는 “싱싱한 고통”(「죄와 벌」)을 넘어, “희망 없이 사는 일의 두근거림”(「희망 없이」)에 이르는 피 흐르는 농담으로 버무린 점입가경이자 천의무봉을 지나면, 어느새 시와 더불어 노는 놀이터에 이르러 있다. “펄쩍펄쩍 뛰며 놀자고 보채는 아이”(「펄쩍펄쩍 뛰며 놀자고 보채는」)처럼 시는 대체 불가능한 “아픈 엄마를 얼마로/계산”(「계산」)하고, “파괴적으로 숨진” 노동자의 죽음 앞에서 “돈 계산을 못해서/죽음 계산을/못해서/생명 계산을/도대체 못”하는 노동자의 엄마가 된 시가 “웃으며” 운다(「별 세개」).

나라고도 너라고도 할 것 없이 우리 시대 혹은 지구가 공유하고 겪고 목도하는 비극적 진실이 희극적으로 보이게 하는 박진감있는 언어와, 시인이 치르고 있는 마음의 투쟁이 섬세하고도 묵직하게 다가온다. 진흙인간이나 유리인형처럼 살아내면서 “명상하고 깨달았던/시간이 왜 없었겠나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과 싸우지 않고/무엇과 싸운단 말인가 아무것도 아닌 것과/사랑하지 않고, 대체 무엇과 사랑한단 말인가”(「나의 인간 나의 인형」) 되뇌며 “우리, 이름 없기를”(「무명지」) 기원하는 무명지를 생각한다. “코로나 걸린 사람처럼 웅크”려 있다가, 더 모던하게 돌아온 듯한 백석에게, “털목도리에 털장갑까지 끼고는/어디 가까운 국밥집이라도 찾아볼까”(「그해 세밑에는」) 나서는 이영광 시인에게, 올 세밑에는 백석문학상 수상을 핑계 삼아 맑은 술이라도 몇잔 부어주어야겠다.

 

진은영(陳恩英) 시인

리베카 솔닛의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창비 2022)에서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창조설화가 유대-기독교의 창세기와 많이 다르다는 문장을 읽었다. 원주민들은 태초부터 세계는 결코 완벽하게 생겨나지 않았고 타락한 적도 없고 창조가 완료된 것도 아니라고 본단다. 이런 관점이 “세상의 완벽함과 순수함과 타락에 집착하는 창세기와 유대-기독교의 문제점을 밝혀”준다는 솔닛의 언급에 인디언들과 멕시코 원주민의 옛이야기 책을 사서 읽고 힘을 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이영광의 『살 것만 같던 마음』을 읽고 나니 당분간은 안 사봐도 될 것 같다.

어머니 아들 노릇도 못하고 선생 노릇도 별로 안 되어서 “안 맞아 이 별은 나하고 너무 안 맞아”(「지구살이」)를 염불처럼 중얼거리는 사람. 그러나 또 이 별 말고는 받아주는 데도 없고 갈 데도 없어 어쨌든 여기 머물러야만 하는 사람. 그런 그가 동물 이하의 동물과 인간 이하의 인간과 하느님 이하의 하느님이 주룩주룩 비 내리며 함께, 맹렬히 하수구로 흘러가는 동네에서도 “살 것만 같던 마음”(「어두운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나는 건강하고 깨끗한 마음을 모르고”(「죄와 벌」)라는 그의 고백으로부터 추측해보건대 그는 이렇게 믿는 것 같다. 좀 오염되고 죄있고 낡고 늙고 보잘것없고 쓸쓸한 것들도 괜찮다고 말이다.

시집의 도처에서 이런 중얼거림을 듣고 나니, 세상이 끝없이 타락만 하고 있다는 절망의 제스처가 참 손쉽고 간편한 것이었다는 각성의 기쁨과 위로가 몰려든다. 따지고 보면 망가지고 실성한 듯 보이는 것, 또는 영 못쓰게 된 사람을 꼭 붙든 채 놓치지 않는 일이 사랑 아니겠는가. 물론 시집에 담긴 이 사랑의 손짓이 꼭 부드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언뜻 보면 멱살잡이를 한 채 탄식하고 원망하는 것 같은데, 다시 보면 아니다. 하데스의 명계로부터 에우리디케를 끌어올리려는 오르페우스의 악에 받친 움켜쥠이 느껴진다. 이처럼 생을 향한 사랑을 포함해 모든 사랑에 내재한 아이러니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시인의 시적 역량에 감탄하면서 이영광의 시집을 수상작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더불어 심사과정에서 안희연의 『당근밭 걷기』와 안미옥의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에도 주목했음을 밝히고 싶다. 안희연의 시집에는 온갖 소음에도 잘만 자라는 식물들의 힘이 담겨 있다. 암담하고 습습한 수다들 사이에서 “단춧구멍만한 믿음이면 돼요”(「미결」)라고 말하는 시인의 식물적 상상력이 매력적이다. 안미옥이 생활이자 관계라고 생각하는 집에 관한 시들도 즐겁게 읽었다. 생활 속에서 직접 “보고 배워야 가능합니다//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사운드북」)라고 말하는 시인이 지닌 구체성의 시학에 믿음이 간다. 일일이 언급하지 못하지만 본심에 오른 시집 모두 손색없는 아름다움과 믿음직함을 보여줬다. 시인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한기욱(韓基煜) 문학평론가

본심에서 검토한 시집들은 자본주의체제 막바지의 삶의 풍경을, 코로나19와 고령화사회의 고립과 죽음의 모습을, 욕망과 차별로 상처받은 마음들을 제각각의 목소리와 발상으로 탐색하는 듯하다. 공통된 기조를 찾는다면, 헛된 희망을 버리고자 마음을 다잡는 시적 주체가 자기를 둘러싼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의 소중함을 새롭게 재발견하는 것인 듯싶다. 박소란 안미옥 안희연의 찬찬한 시선과 섬세하되 때론 역동적인 정동의 언어, 마음의 무늬를 따라가는 듯한 시작 방식도 놀랍지만, 더 눈길이 간 것은 이대흠 권선희 이영광의 한층 무르익고 활달하고 과감해진 시들이었다.

이대흠은 『코끼리가 쏟아진다』에서 곡진한 마음의 언어가 도달하는 더없이 애틋한 지점까지 보여준다. 가령 “슬픔은 진즉 나를 버리려 했을 것이지만 나는 슬픔이 없는 게 두렵습니다 이미 있는 슬픔도 다하지 않았는데 새 슬픔을 장만합니다”(「슬픔의 뒤축」)라는 구절이 그렇다. 때론 곡진함이 과도해서 너무 곰살맞다는 느낌이 드는 대목도 없지 않지만, 팬데믹 시절 구순의 할머니 두분이 다정한 사투리로 잠깐 대화하는 장면을 그린 「어떤 예방」은 언어와 마음의 곡진함이 순정하게 빛나는 명편이다. 권선희의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은 어촌에서 자랐고 지금은 병고에 시달리는 시적 화자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세상살이 이야기를 활달하게 펼친다. 현실과의 접점이 폭넓고 확실해서 마치 창을 열어둔 방에서 바람과 햇빛을 통째로 맞는 기분이다. 가령 「깔때기국수」에서 해녀들이 물질하다 바닷가에서 끓여 먹는 깔때기국수는 노동하는 여성과 아이, 바다와 음식이 어우러진 ‘성찬’의 풍경이다. 또한 화자 자신을 포함한 세 여성이 입원한 암 전문 요양병원의 풍경을 그린 「크리스마스이브들」에서 보듯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대신 내는 데도 스스럼이 없어, 자신과 타자를 분별하는 쩨쩨한 자의식일랑 훌쩍 넘어선 것 같다.

이영광의 『살 것만 같던 마음』은 신자유주의 코로나19 시대에 삶과 죽음, 강자와 약자, 빈자와 부자가 마주하는 세상에서 무시로 변하는 마음의 정동을 반어법과 역설법을 활용하여 과감하게 서술한다. 가령 「어두운 마음」에서 “뭐 이런 날벼락이 다 있나, 무너지는 마음 밑에/희미하게 피어나던/어두운 마음/다 무너지지는/않던 마음”이라는 구절에서 “어두운 마음”은 다 무너지지는 않고 “어둡던 기쁜 마음”으로 화하고 나중에는 결국 “살 것만 같던 마음”이 된다. 이 시편 외에도 「희망 없이」 「봄, 고개」 「등꽃 아래서」 등 다수의 수작에서 시인은 마치 더이상 내려갈 수도 후퇴할 수도 없는 막다른 지점에 처한 듯 절박하고 과감한 목소리로 발화하되 역설과 반어와 중의를 통해 우리 시대 삶의 여러 층위와 미묘한 지점을 놓치지 않는다. 섬세함을 향해서 나아가는 최근 서정시의 결을 살짝 비껴나 마음 깊은 곳에서 터져나오는 힘찬 소리를 듣는 기분이다.

심사위원들은 논의 끝에 흔쾌히 이영광 시집을 백석문학상 수상작으로 정했다. 이영광 시인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수상소감

 

계속 학교 나오라는 뜻

 

이영광

 

동무들과 노는 게 좋아 매일 학교에 나갔다는 공으로, 학기 말에 별안간 개근상을 받고 말았던 초등학생 때처럼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묻게 됩니다. 시의 학교에서 열심히 놀기는 놀았는가……

 

시를 읽고 쓰고 배우던 세월의 여러 장면 중에서, 저 팬데믹 시절의 마지막 수업들이 문득 떠오릅니다. 저는 그 비대면의 시간에 사적 공간을 보여주길 꺼리는 학생들을 배려해 수업에서 카메라를 끄게 했습니다. 이따금 마이크를 켜서 의견을 주고받고, 채팅창에 적히는 질문들, 대답들과 소통하며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상식의 저지선과 싸우는 것이 시인의 일일 텐데, 그때 저는 문득 학생들의 바쁘고 서툰 말과 글이 어느 미지의 곳에서 저에게 타전되는 시의 목소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어 하는 이가 몸의 언어를 눈에 들려주듯이 그 말과 글이 제 귀에 시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요. 눈이 감기고 나니까 다른 감각이 생겨난 듯했고 그때 비로소 제가 시인의 본모습을 경험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시는 그렇게 시인의 어둠을 밝혀주며 오는 빛과도 같다는 것을 학생들과 함께 배우며 놀았습니다.

 

그 학교에서 백석 선생님의 시를 읽기도 했습니다. 이분이 ‘좋은 옛것’들을 불러 모아 세상 눈물 모르던 행복한 생의 테두리를, 현실과 꿈을 분간하지 않아도 좋은 무구한 시간을 노래하던 갈피들을 기억합니다.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한’ 지친 나날을 “높고”라는 짧은 말로 버티어내던 숙연한 갈피를 기억합니다. 그중에서도, 이 세상을 “수라”라 여기면서도 거미 가족의 어린 막내를 쓸어 내다버리며, “울고불고 할 이 작은 것”이라 정확히 말하던 순간이 생각납니다. 눈에 보이되 다 보이지는 않는 대상이라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옳겠구나, 존재에 대한 연민은 무질서한 감정이 아니구나 싶었지요. 이 또한 상투적인 세계의 지척이자 너머에서, 시인의 똑똑한 눈을 감겨주며 오던 시의 손길들 중 하나였습니다. 어떤 질료를 다루든 어떤 문제와 씨름하든, 미지를 향한 귀 기울임과 발돋움이 시를 시로 성립시키는 힘이라는 사실을 배우면서 놀던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요즘 건물 없는 시의 학교들에 다니고 있습니다. 힘을 다해 놀지 못했던 때를 돌아보며, 아는 체하지 않아도 되고 모르는 체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찾고 있는 모양입니다. 떠돌던 저를 여기 불러준 백석문학기념사업 운영위원회와 심사위원 제위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늘 그러했듯, 제 허술한 원고를 삼엄하고 따뜻하게 매만져준 창비 편집부에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계속 학교 나오라는 뜻으로 알고, 떨면서 상을 받겠습니다. 고맙습니다.

 

 

李永光 1965년 경북 의성 출생. 1998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 『직선 위에서 떨다』 『그늘과 사귀다』 『아픈 천국』 『나무는 간다』 『끝없는 사람』 『해를 오래 바라보았다』 『깨끗하게 더러워지지 않는다』, 산문집 『나는 지구에 돈 벌러 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시가 우리를 죽여주니까』 등이 있음. 노작문학상, 지훈문학상, 미당문학상, 형평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