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목소리
또다시 민주주의를 열망하기 위해
▶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사람이 거의 없이 그럭저럭 민주주의가 운영되는 사회와, 민주주의가 마구 훼손되는 한편 대다수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사회가 있다면 나는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어쩌면 지금 한국사회는 민주주의가 마구 훼손되기도 하고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사람도 비교적 적은 사회가 아닌가, 씁쓸한 고민을 해보게 된다. 한 촌평(황정아 「민주주의를 말할 때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에서 시작된 이런 고민과 맞물려 ‘2기 촛불정부,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주제로 열어젖힌 가을호는 특집, 대화, 현장 모두 뜨거운 이슈를 다루고 있어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8월 기준으로 벌써 거부권을 24차례나 행사한 대통령, 영부인의 의정개입 의혹을 해명할 이유도 민생을 돌볼 여유도 없다는 이 정부는 그야말로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이 정권이 “‘통치’를 포기”했다는 ‘책머리에’(이남주 「권력이 ‘통치’를 포기할 때 해야 할 일」)의 진단은 현 상태를 뼈아프게, 그러나 정확하게 찌르는 것이었다. 이어지는 전지윤의 특집글 「미디어, 촛불에 찬물을 끼얹는가」는 논지가 명쾌하고 시의적절하여 읽기 좋았다. 글에서 다루는 레거시 언론들의 입장뿐 아니라 최근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에 관해서도 생각해봄직하다. 제1야당이자 수권정당으로서 민주당의 문제의식과 포부가 궁금했는데, 민병덕의 「2기 촛불정부로 가는 길」을 통해 어느정도 상을 잡을 수 있었다. 특히 글 말미에 경기도의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단지 정권교체에 그치지 않고 그 이후의 정부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관한 민주당의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나는 한명의 시민으로서 이들이 제시하는 정치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 결국 민주주의의 진정한 힘은 시민들의 의지와 참여에서 나온다. 투표라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 일상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존중받고 반영되는 참여형 민주주의, 특히 다수의 힘에 의해 소수가 억압당하지 않고 모두가 공평하게 권리와 의무를 나누는 포용적 민주주의가 정착한 사회를 꿈꾼다. 권력은 분산되고, 투명하게 운영되며, 모든 계층이 동등하게 그 혜택을 누리는 사회 말이다.
김효진 khjwork@naver.com
새로운 국면에 걸맞은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 지난호 논단 「한반도정세의 새 국면과 분단체제」(백낙청)는 복잡하다고 생각했던 북한과의 관계를 신선하게 환기하는 글이었다. 그동안 언론에서는 북한의 “국가 대 국가” 발언의 적대성에 초점을 맞추느라 남북한의 화해 무드가 물 건너갔다는 식으로 보도가 이뤄졌는데, 오히려 남북관계가 ‘국가연합’이라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발판으로 마련할 수 있지 않느냐 하는 인식전환이 중요하게 느껴졌다. 또한 현재 남북한이 더이상 현상적인 의미로서의 분단현실에 놓여 있다기보다, 사회 곳곳에 복잡하게 얽혀 하나의 ‘체제’로 지속 중이라는 지적 역시 묵직하게 다가왔다. 현정부가 전 정권 비판과 위기감 조성에 최근 북한의 행보를 끌어들이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있는데, 상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해낼 필요를 나날이 느끼게 된다.
그동안 의료공공성에 관한 논의가 의대 정원에 초점을 두고 있어 어떤 다른 문제가 얽혀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 의대 증원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그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어디서부터 의정갈등이 촉발되었고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었다. 대화(김용진·박건희·백영경·백재중 「의료공공성 확대는 1차 의료 강화에서부터」)에서는 시의적절하면서도 피로도 높은 주제를 현장 종사자의 관점에서 되새길 수 있어 유익했다. 공공의료에 복무하는 대담자들이 저마다 의료인으로서의 문제의식과 현 상황의 전개과정을 설득력있게 설명해주었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서로 다른 곳에 소속된 이들이라 도식적이지 않고 건설적인 논의를 엿볼 수 있어 공부가 되었다. 특히나 대담자들이 시민참여를 독려하는 모습에 희망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꼈는데, 백영경이 말미에 제기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의사는 어떤 의사들인가” 하는 질문은 의료의 본질을 꿰뚫는 듯하다. 한편 언론에서 주로 다뤄지는 민간의료 분야는 의대 증원에 반대하고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기조가 강한데, 이 분야의 목소리도 궁금해졌다.
이성은
참사를 기억하고 끌어안는 방법
▶ 10월 말, 이태원의 주요 골목마다 경찰과 봉사자들이 서 있었다. 올해 언론에는 서울시가 이태원에 얼마나 많은 안전요원을 배치했는지가 홍보하듯 보도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10·29 이태원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의 목소리를 담은 현장글(이미현 「이태원참사 특별법 통과 이후, 무엇을 해야 하는가」)을 펼쳤다. 흔히들 안전사고 매뉴얼은 피로 쓰인다고 말하지만, 그 말이 나오기까지 희생자와 유가족, 그리고 참사를 지켜본 시민사회의 절실함이 있었을 것이다. 단순히 희생자 숫자나 늘어난 안전요원이 아닌, 참담함을 기억하는 당사자와 목격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가 중요하다. 더이상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사회적인 인식 변화를 도모해야 하며, 유관 부처의 행보를 시민사회가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전성태의 소설집 『여기는 괜찮아요』(창비 2024)를 다룬 작가조명(전기화 「끝내지 못한 시간을 껴안는 법」)은 대상 작품이 궁금해지는 흥미로운 글이었다. 이 소설집이 팬데믹, 세월호참사, 이산가족 상봉, 이주노동자 등 다양한 현실적 주제들을 다루면서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더 많이 이해하고, 그들과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고자 한다는 필자의 해석이 깊이 와닿았다. 한편으로는 글의 도입부에서 언급한 전성태 작가의 “언어는 쓰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다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 과연 가능한 일일지, 또 내가 문학을 읽으면서 추구하는 바와 맞닿는 일인지 질문을 던져보기도 했다.
김가연 hotticket86@naver.com
친절과 응원이 당연한 세상이 오기를
▶ 서로가 서로의 속사정을 알고 있으면서도 더 이해해보려 노력하고, 나아가 응원의 마음을 주고받는 작품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러한 마음이 희박해진 현실이라 더욱 간절해지는 건 아닐지 지난 가을호 시란과 소설란을 읽으며 생각해보았다.
시란의 작품들은 고루 마음에 들어왔다. 젊은 시인들의 신선한 감각이 눈에 띄는 한편, 중진 시인들이 중심을 잡아주어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배시은의 「건강하지 않아도 친절한 사람들」은 건강, 장애, 이동권 등의 주제를 돌아보게 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건강하지 않아도 친절하다는 것을 이 시는 알고 있다”며 “쉽지 않”음을 알면서도 친절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을 다지고 있어 감동적이었다. 이외에도 권선희의 향토성 짙은 「복」, ‘기미’를 예감하는 듯한 마윤지의 감각적인 시편들이 좋았다.
창비신인시인상 수상자인 김진선의 시들은 신인의 작품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고루 좋았다. 이미지가 천천히 확장되는 가운데 공동체의식을 다루고 있어 깊이 와닿았다. 서사와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가운데 감정 또한 선명하게 다가와서, 다음이 더욱 기대되는 시인이다.
소설란에서는 김병운의 「만나고 나서 하는 생각」과 윤성희의 「여름엔 참외」를 산뜻하고 따뜻하게 읽었다. 특히 윤성희의 소설은 물 흐르듯이 장면을 이어주는 솜씨가 탁월하다고 느꼈다. 창비신인소설상 수상작인 문소이의 「마이 리틀 그리니」는 2030 여성들에게 낯설지 않은, 그러나 자칫 노골적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을 법한 주제를 먼 곳의 존재와 연결 짓는 솜씨가 출중해 보였다.
문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