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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 특별기획│한강의 문학세계
삶의 본모습을 찾는 ‘목소리’의 여정
『내 여자의 열매』 『채식주의자』 『노랑무늬영원』 읽기
백지연 白智延
문학평론가. 평론집 『사소한 이야기의 자유』 『미로 속을 질주하는 문학』 등이 있음.
cyndi89@naver.com
1. 문명비판의 상상력과 젠더적 성찰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우리에게 안겨준 놀라움과 기쁨의 순간이 생생하다. 아시아 여성작가의 첫 수상이라는 의미부여와 더불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이래 두번째로 맞게 되는 노벨상 수상이라는 감회도 새겨보게 된다. 심사위원 안나카린 팔름(Anna-Karin Palm)의 “인간의 삶과 죽음이 어떻게 얽혀 있으며, 그 트라우마가 어떻게 여러 세대에 걸쳐 인구 집단에 남아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1는 심사평은 한국문학이 품고 있는 민주화의 오랜 역사를 세계문학의 지평에서 호명하였다. 그 어느 때보다 무겁고 답답한 정치적 굴곡을 통과하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의 역사적 시간대를 새롭게 조명하는 평으로 생생하게 다가왔다.
대중예술을 기반으로 한 K문화의 약진과 더불어 최근의 한국문학 역시 꾸준한 번역과 해석을 통해 여러 해외 문학상에 호명되면서 독창적인 개성을 알려왔다. 이번 수상 소식은 ‘한국어로 된 문학작품을 읽고 쓴다’는 자부심 속에서 우리 문학사가 쌓아온 자산과 전통을 새삼스레 돌아보게 만든다. 한강의 수상은 그동안 축적된 한국문학의 성취 위에 새로운 서사적 실험을 거듭해온 동시대 작가들의 집합적인 움직임을 일으킨다는 점에서도 고무적이다. 일상에서도 문학을 주제로 새로운 대화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독서모임을 만들고, 서점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일은 반갑고 설레는 일이다. 개별 작가를 조명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의 문학적 공동영역을 넓히고 가꾸는 계기가 된 보람되고 뿌듯한 향유적 사건이라 할 만하다.
역사적 상상력과 구체적으로 공명하며 깊어지는 한강 문학의 변모는 개인에서 사회로, 혹은 내면에서 외부로 나아가는 식의 단순한 문학적 평가를 거부한다. 그의 문학은 30여년에 이르는 활동기간 동안 시, 노래, 소설, 희곡, 에세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개성적 발화법을 토대로 통상적인 사실주의의 문법을 거스르는 서사적 실험을 진행해왔다. 이미지와 사건들을 결합하고 시점을 자유롭게 바꾸며 독백과 묘사를 섞는 한강 소설의 서술방식은 ‘시적 산문’이라는 명명을 얻기도 하였다. 번역가이자 시인인 사이또오 마리꼬(齋藤眞理子)가 이야기했듯이 그의 소설이 지닌 시적 특성은 “단지 어휘나 표현이 시와 같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삶과 죽음의 경계, 꿈과 현실의 경계를 돌파하는 섬세하고 강인한 문체”라는 점이 중요하다.2 서사적 구성과 관련하여 특히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한강 문학의 중요한 기반이 되는 젠더적 상상력이다. 그의 문학이 깊이 응시하는 가부장적 삶의 왜곡은 근대 자본주의 문명의 위기를 비판적으로 진단하는 페미니즘 정동의 현재적 흐름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한강의 초기작 세계에서 출발하여 이러한 젠더적 경험과 상상이 일상과 역사의 만남을 주조하는 과정들을 차례로 짚어보고자 한다.3
2. 일상과 역사가 만나는 방식
단편 「붉은 닻」(1994)으로 등단한 이래 한강의 소설은 비극적인 세계에서 고투하며 살아가는 개별 인간들의 운명을 주시해왔다. 그의 작품은 삶과 죽음, 동물과 식물, 어둠과 빛, 문명과 자연, 고통과 회복이라는 대비 구도를 서사화하며 인간 존엄의 문제를 탐구해왔다. 서정적이고 고전적인 소설 문체는 1990년대에 작품활동을 시작한 작가들의 대중문화적 글쓰기와 거리가 있는 듯 보이지만, 첫 작품집 『여수의 사랑』을 뒷받침하는 예술적 자의식과 낭만적 정서는 당대 청년문화의 분위기와 깊이 맞닿아 있다. “명치 끝이 찢기듯이 아파왔다. 적요한 햇빛 속으로 무수한 먼지 입자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아름답구나, 하고 나는 문득 생각했다”(「여수의 사랑」, 13면)라는 인물의 독백에서 감지되듯이 비극적 세계인식을 통해 고통과 아름다움을 연결 짓는 감수성의 세계는 당대의 젊은 작가들과 공유되는 것이기도 하다.
『여수의 사랑』에 새겨진 비극적 세계인식과 예술가의 자의식이 분명한 방향성을 지니고 구축되기 시작한 것은 두번째 작품집인 『내 여자의 열매』부터이다. 『내 여자의 열매』는 여성 자아가 감지하는 일상의 균열과 폭력을 예민하게 묘파함으로써 한강 소설의 본격적인 변모를 암시한다. 부조리한 일상에 대한 환멸과 소통불능이라는 절망은 가족과 결혼제도의 균열을 그림으로써 구체화된다. 속세와 이상, 삶과 죽음, 몸과 영혼의 세계를 대비시키는 구도도 두드러지면서 예술적인 가치에 대한 초월적 지향이 더욱 간절한 열망으로 나타난다.4
표제작인 「내 여자의 열매」는 지상의 세계를 박차고 솟아오르려는 ‘식물’의 이미지가 개성적 서사와 결합한 사례다. 이 소설은 『채식주의자』와의 연계성으로 잘 알려졌지만, 신화적 모티프의 적절한 활용이나 작품의 독창적 만듦새는 그 자체로 돌올하다. 작품은 남편과 아내의 목소리를 교차시키며 탈주하고픈 아내의 열망과 그녀가 식물로 변신하는 환상을 그려낸다. 가난한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난 아내는 좁은 세계를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고향을 떠나왔다. 한때 그녀에게는 모아둔 돈을 모두 가지고 세상 끝까지 떠나보겠다는 열망이 있었으나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면서 도시의 삶에 적응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권태로운 부부관계가 반복되고 갑갑한 도시의 삶이 이어지자 아내는 지금의 삶에서 탈주하기를 꿈꾸게 된다.5
여성의 몸이 식물로 변하는 신화적 모티프의 차용은 도시의 황폐한 일상을 견디지 못하는 주체의 결핍과 소외를 반영한다. 남편이 지향하는 안온한 도시 중산층 가족의 일상은 아내가 원하는 “자유롭게 살다가 자유롭게 죽는 것이 어릴 적부터의 꿈”(18면)이었던 여행자의 삶과 대조된다. 아내는 가난하고 답답한 고향을 떠났지만 도시공간에서 안정을 찾지 못한다. 아내의 몸에 번져나가는 푸릇푸릇한 피멍과 식물로의 변신 과정은 그러한 변화를 담아내는 강렬한 육체적 상징이다.
소설은 남편의 시점 뒤에 숨어 있던 아내의 목소리를 전면화하면서 주제차원의 도약을 시도한다. 아내가 느끼던 고통은 사랑이 식어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권태와 환멸, 이기심과 폭력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그녀의 결핍은 고향을 떠나와 서서히 잃어버리게 된 삶의 본모습에 대한 갈증에서 기원한다. 아내는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도시의 일상이 어떻게 그녀를 질식시켜왔는지 호소한다. 그녀는 식물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비로소 “보는 것, 듣는 것, 냄새 맡고 맛보는 것이 없어도 모든 것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32면)지며 “바람과 햇빛과 물만으로 살 수 있게 되”(33면)는 삶을 원해왔음을 호소한다.
고향과 자연을 떠나온 아내는 병리적 증상을 겪으며 억눌렸던 탈일상의 욕망을 깨닫는데, 이러한 변화는 남편에게도 새로운 자각의 계기를 마련해준다. 이 소설을 아내가 식물로 변모하는 과정에만 초점을 맞추면 진정한 주제를 놓치게 된다. 연애시절 자신이 외롭게 살아왔다며 사랑을 호소했던 남편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시들어가는 아내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다. 삶의 감각을 잃어가는 고통을 호소하던 아내가 급기야 식물로 변하자 남편은 충격에 휩싸인다. “춤추듯이 아내의 머리카락이 솟구쳐 올라왔다. 아내의 번득이는 초록빛 몸이 내 물세례 속에서 청신하게 피어나는 것을 보며 나는 체머리를 떨었다”(30면)는 구절에서 드러나듯 아내의 변신은 남편에게도 잃어버린 감각의 본령을 찾아주는 기회가 된다. 식물로 변한 아내가 쏟아낸 열매를 입에 넣고 씹어본 그는 쏘는 듯 신 첫맛과 씁쓸한 뒷맛을 감각한다. “와락 피어나던 싱그러운 풀냄새”(39면)의 기억을 회복한 그는 아내가 남긴 열매들로 화분을 만들며 다가올 봄을 기다린다.
아내가 식물로 변하는 과정은 사랑의 권태와 환멸, 문명의 폭력에 대한 섬세한 고찰을 바탕으로 현실의 절망에서 한걸음 나아간다는 의미를 담는다. 이야기는 상대방을 무심하고 이기적인 타자로만 놓아두지 않고 그의 감각을 일깨움으로써 삶의 참다운 본모습을 찾고자 하는 길을 함께 열어둔다. 이 결말은 자칫 신화적 이미지에 갇힐 수 있는 변신 모티프와 젠더적 상상의 세계를 개성적으로 변주한다.
이 작품집에서는 성취작인 「내 여자의 열매」와 더불어 「흰 꽃」 역시 주목된다. 한강 소설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돌파하는 ‘밝은 세계’에 대한 지향은 ‘햇빛’과 관련한 이미지들로 드러나는데, 단편 「흰 꽃」은 소설집 『흰』(문학동네 2016)과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2021)로 연결되는 단초들을 제공한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일상과 역사를 연결하는 이미지의 서사적 도약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비범하다. 「흰 꽃」은 삶의 무기력과 허무에 시달리던 주인공이 어느날 훌쩍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완도행 페리호에 함께 탑승한 승객들을 바라보며 주인공은 직장을 떠나 두달 동안 제주도에 머물며 경험한 감각의 새로움을 떠올리는데, 여기에 자연스럽게 놓이는 것이 제주4·3의 역사와 ‘생빈눌’에 대한 이야기다. 제주도의 전통적 장례방식인 생빈눌은 장례를 지낼 좋은 날을 받지 못했을 때 임시로 만들어두는 초분(草墳)을 뜻한다. 주인공이 머물던 제주도 숙소의 주인은 4·3 때 남편이 총에 맞아 죽고 혼자 자식들을 키웠던 힘겨운 과거와 “사람들이 줄줄이 서서 총 맞던”(330면) 참상의 흔적이 그대로 남은 마을공동체의 아픈 역사를 털어놓는다. 그녀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는 폐병으로 맏아들마저 잃게 된 후 골목 뒷숲에 생빈눌을 마련하고 “젊은 몸뚱이가 썩어가는 냄새를 맡”(같은 면)으며 택일을 기다려야 했던 기막힌 사연을 고백하는 대목에서 절정에 달한다. 남편과 아들을 잃은 한 여성의 비극적 생애에 담긴 폭력과 죽음의 참상은 50년의 세월을 가로질러 햇빛과 나비, 리본, 꽃의 환한 빛깔들 속에 스며들어 현재적 세계로 저장된다. “어두운 밥집에서 묵묵히 밥을 먹는 동안”(338면) 비쳐드는 햇빛을 통해 서서히 회복의 힘을 충전하는 소설의 결말은 일상과 역사, 삶과 죽음을 함께 사유하려는 한강 소설 특유의 지향성을 보여준다. 이렇듯 이미지를 변주하며 일상과 역사의 접점을 만드는 도약은 이후의 한강 소설들에서 활용되는 고유의 서사적 전개방식이 된다.
3. ‘목소리’의 비밀, 삶의 본모습을 찾아서
한강의 소설에서 여성으로서 자각하는 가부장제의 현실은 개인들이 부조리한 세계를 인식하는 중요한 통로라고 할 수 있다. 몸의 변신을 통해 세계의 구조적 폭력을 일깨우는 문제의식은 연작소설 『채식주의자』로 이어진다. 『채식주의자』는 가부장적 억압과 사회적 금기에 맞서는 개성적인 서사구도를 통해 페미니즘 비평 영역에서도 풍부한 해석의 역사를 쌓아온 텍스트이다. 자본주의 근대문명의 폭력성에 대한 근원적 통찰, 가부장적 억압에 맞서는 젠더적 저항, 예술과 삶의 관계, 몸의 철학적 의미, 트라우마와 애도 등 이 소설이 촉발하는 다채로운 비평적 키워드는 다방면의 논의들을 진척시켜왔다.6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의 3부로 구성된 연작소설 『채식주의자』는 각각의 단편이 독립적인 이야기를 구사하면서도 시점을 달리하는 하나의 서사로 읽힌다. 육식을 거부하는 여성 인물 ‘영혜’를 중심에 두되 직접적인 화자로 등장시키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연작의 ‘숨은 화자’로 놓인 영혜는 세편의 이야기를 관통하면서 현실과 환상,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목소리’를 창조한다. 영혜가 음식을 거부하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보이는 몸의 변화는 인간과 비인간, 동물과 식물의 통상적인 구분을 벗어난다. 이러한 소설 속 영혜의 이야기는 서구적 근대문명 특유의 이분법적 체계를 비판하면서도 그 체계에 매이지 않는 독창적 화법이자 ‘목소리’를 발명하는 과정으로 읽어볼 수 있다.7
각각 영혜의 남편, 형부, 언니의 시점으로 서술된 세편의 연작은 영혜를 향한 사회적 억압과 시선의 폭력성을 선명하게 포착한다. 「채식주의자」의 화자인 남편은 아내 영혜의 기이한 행동과 육식 거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오히려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깊은 트라우마가 있는 영혜를 다시 그 폭력적인 상황에 직면하게끔 방조한다. 아내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로 섹스를 시도하는 남편은 아내가 육식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뺨을 맞고 자해 시도를 벌이는 것도 냉담한 눈길로 바라본다. “이 이상하고 무서운 여자와 내가 단둘이 한집에 살아야 한다는”(65면) 사실을 견디지 못하는 남편은 그녀가 고통에 시달리는 상황을 외면한다.
형부의 시점으로 포착한 영혜의 모습을 그린 「몽고반점」은 예술이 넘어서려는 금기의 열망을 읽어내면서도, 한편으로 그러한 지식인의 허위 욕망에 대한 비판과 희화화를 놓치지 않는 작품이다. 소설은 예술을 빙자하지만 결국 성적 욕망에서 자유롭지 않은 남성 인물이 스스로의 민낯을 확인하는 ‘어두운 풍자’의 방식을 부각한다. 화자가 결코 해독하지 못하는 영혜의 꿈과 욕망은 그녀가 남성 주체의 시선에 쉽게 포획되지 않는 존재임을 알려준다. 형부가 가까스로 알 수 있는 건 영혜가 “어떤 성스러운 것, 사람이라고도, 그렇다고 짐승이라고도 할 수 없는, 식물이며 동물이며 인간, 혹은 그 중간쯤의 낯선 존재”(128면)라는 사실뿐이다.8
연작의 다른 화자들과 비교할 때 「나무 불꽃」의 ‘인혜’는 이러한 영혜의 존재를 가장 깊이 자각하는 인물이다. 남편과 동생이 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본 그녀는 그들을 신고하여 폐쇄병동과 유치장에 각각 가둔다. 인혜는 정신병원에 있는 동생 영혜가 음식을 거부하고 육체적으로 소진되어가는 과정을 바라보며 자기 안에 잠재한 분노와 욕망을 발견한다. 폭력적 세계를 거부하는 영혜의 마음을 뒤늦게 이해하고 스스로의 허위적 삶을 깨닫는 인혜의 고통스러운 자각은 영혜라는 존재가 동반되었기에 이룰 수 있는 각성이다.9 마지막 장면에서 “활활 타오르는 도로변의 나무들을, 무수한 짐승들처럼 몸을 일으켜 일렁이는 초록빛의 불꽃들을 쏘아”(268면)보는 인혜의 모습은 영혜로 인해 변화된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과정으로 읽힌다. 남편, 형부, 언니 세 인물의 목소리를 통과해 영혜라는 존재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곳은 어디일까. 사실 이 소설은 독자들이 영혜를 가족폭력에 희생된 대상으로 단순화하거나 반대로 환원 불가능한 고립된 인물로 판단하도록 순순히 놓아두지 않는 데서 재현의 리얼리티를 획득한다. 「내 여자의 열매」의 주인공과 달리 영혜에게는 식물적 변신이라는 길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녀는 모든 음식과 치료를 거부한 채 자신을 가두는 시스템에 끝까지 저항한다.
무엇보다 영혜의 목소리가 지니는 절박함은 세 인물들이 각자 안고 있는 불안과 결핍을 파고들며 그들 자신이 망각한 삶의 ‘본모습’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데서 그 의미를 드러낸다. 여기에는 몸과 마음, 인간과 비인간, 예술과 삶, 현실과 이상이라는 관념적 대립구도를 해체하고 넘어서려는 분투가 실려 있다. 현실의 부조리에 쉽게 타협할 수 없는 존재들의 치열한 항거를 보여주는 과정은 가부장적 현실에 저항하고 근대 자본주의 문명에 대해 치열한 비판적 사유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깊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채식주의자』에서 드러난 소설적 목소리의 입체성은 이후 장편 『소년이 온다』의 서사적 실험과 연계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가부장적 억압과 근대문명의 폭력에 저항하는 존재의 분투는 『소년이 온다』에서 ‘동호’의 목소리를 통해 국가폭력의 참상을 조명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하는 『소년이 온다』는 학살과 고문 피해자들이 토로한 증언의 세계를 소설의 중심부에 놓으면서 ‘소년’ 동호의 목소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시킨다.10 소설은 시위대에 휩쓸렸다가 총을 맞고 쓰러진 친구를 찾는 동호의 이야기로 시작되어 정대의 혼, 김은숙, 나, 임선주, 동호 어머니 등의 목소리를 교차해나간다. 동호는 각 장의 서사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가 되는 동시에 여러 인물들의 기억과 상상 속에 조립되는 인물이다. 점점 현재로 다가올수록 동호라는 존재는 완결된 기억 속 인물이 아니라 복잡한 질문을 떠안는 개방된 의미로 다가오면서 에필로그 화자인 ‘나’의 해석을 통해 작품의 주제로 이동해간다.
역사적 기억을 문학적으로 증언하려는 강렬한 욕구와 더불어 그것을 새기고 재해석할 공동체를 끊임없이 호명하는 목소리의 확장은 『채식주의자』를 발판으로 한다는 점에서 의미있다. 이러한 ‘목소리’의 발견은 소설 장르를 쇄신하는 ‘시의 경지’와 연결해 생각해볼 수 있다. 백낙청이 “소설 또한 ‘시의 경지’에 달할 때 비로소 언어예술의 한 장르로서 그 고유한 몫을 다할 수 있다”11고 강조한 대목을 환기한다면 소설의 성취 역시 현실의 정교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최선의 예술형식을 찾아내는 데서 이루어진다. 궁극적으로 소설예술이 확보하는 재현의 핍진성은 현실에 대한 창조적 사유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을 확인하게 되는 대목이다.
4. 삶 속의 예술, 예술 속의 삶
『채식주의자』에서 『소년이 온다』로 가는 길목과 연결되는 인상적인 소설집은 『노랑무늬영원』이다. 작가는 이 사이 출간한 장편 『바람이 분다, 가라』(문학과지성사 2010)와 『희랍어 시간』(문학동네 2011)을 두고 “‘세계에서, 결국 인간으로서 살아가야 하지 않나’ 하는 질문”이 “세계를 인간으로서 살아낼 수 있다면, 그건 무엇으로써 가능한가”에 대한 탐구로 이어지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12 인간의 존엄성을 탐색하는 주제와 연결되는 『노랑무늬영원』은 『채식주의자』의 강렬한 정동을 간직하면서도 그것을 일상 속 현실적인 모색으로 이끄는 시도를 보여준다. 특히 이 소설집은 다양한 젠더 정체성을 탐구하며 제도적 관계의 억압과 사랑의 상실이 주는 고통에 천착한다. 소설 속 인물들을 결핍과 고립에 시달리게 하는 삶의 장벽은 평범한 일상의 습속과 부딪치는 예술적 열망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노랑무늬영원」의 그림, 「밝아지기 전에」의 소설, 「에우로파」의 음악은 인물들이 겪는 고통과 치유의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는 예술행위로 놓여 있다. 이 작품들은 쓰라린 상처를 투시하면서 그것을 넘어서려는 ‘적응과 극복’의 치열한 정신적 분투를 보여준다.
「노랑무늬영원」은 예술과 삶의 관계를 통해 인간 존재의 취약성을 들여다보는 묵직한 감동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한강 소설의 페미니즘이 지닌 풍부함과 복합성이 잘 구현되어 있다. 주인공 ‘나’는 교통사고를 겪고 후유증으로 손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그림을 향한 열망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왔던 나에게 손을 쓸 수 없다는 것만큼 끔찍한 고통은 없다. 투병 과정에서 남편과의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황폐해진다. “환자. 한 남자의 골칫덩어리. 때로 오른손이 악화되면 자신이 쓴 물컵 하나 선반에 뒤집어놓을 수 없는, 철저히 쓸모없는 존재”(222면)로 전락하는 고통 속에 아낌과 보살핌의 마음은 적대와 체념으로 변해간다. “서로에 대한 배려, 이타적 관계, 우정, 동료의식 들은 강 저편에 남았다. 애초에 완전한 타인이었다는 것—그 한 가지 명료한 사실만이 이편의 강가에 남았다”(234면)는 ‘나’의 조용한 고백은 황막한 일상을 잔혹하게 들여다보면서도 “뚜렷한 희망을 보장받을 수 없는 희생”(243면)에 지쳐버린 상대방의 모습을 놓치지 않는다. “저 사람은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심성이 여리고 다정했었다. 그러나 닳아간다. 타이어가 닳는 것처럼, 이런저런 일들을 몸으로 겪으면서. 그와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244~45면)라는 아픈 자각은 예술적 세계에 몰입하여 자신의 삶이 놓쳐버린 지점을 환기한다.
그러나 체념과 자책만으로 삶의 새로운 출구가 모색되지는 않는다. 마음의 전환과 도약은 강렬한 생의 의지를 촉발하는 ‘다른’ 세계와의 만남에서 온다. 그림 그리는 일을 접고 평범한 엄마의 일상을 살고 있는 친구 ‘소진’이 전해온 소식을 통해 나는 젊은 시절 만난 한 남자와의 설레던 순간들을 떠올린다. “나무와 하늘, 빛을 받은 잎사귀들. 내가 찍은 그의 프로필, 내 사진 석 장. 얼음 덮인 바위틈의 연둣빛 싹”(284면)의 기억은 화가 ‘Q’의 그림이 주는 예술적 감응과 더불어 주인공에게 삶의 의지를 서서히 불어넣는다.
소설에서 중심 상징으로 놓인 ‘노랑무늬영원’(Fire Salamande)이라는 이름을 가진 도마뱀의 일화는 이러한 마음의 전환을 일으키는 매개가 된다. 소진의 다정한 전화에서 “따뜻함, 반가움, 기쁨—그 일련의 감정들을 낳는 미세한 씨앗 같은 것”(239면)을 느낀 나는 그녀의 집에서 ‘노랑무늬영원’을 만나게 된다. 한때 앞발이 잘렸던 도마뱀의 몸에 새로 돋아난 “원래 있어야 할 발보다 조그맣고 연약한, 투명한 흰빛의 두 발”(274면)은 삶을 회복하려는 ‘나’의 의지를 끌어내는 상징이다.
나는 입술을 물고, 선잠에 새겨졌던 낯선 꿈을 되짚어본다. 내 두 손목에서 돋아난 투명하고 작은 새 손, 열 개의 투명한 손가락들을 나는 똑똑히 보았다. 내 팔뚝에 새겨진 선명한 노랑무늬가 신비해 팔을 들어 올렸다. 해를 등진 잎사귀들처럼, 내 팔뚝이 투명한 레몬빛이 되었다.(295면)
도마뱀의 노랑무늬가 몸에 옮겨지는 환영은 ‘나’가 추구했던 예술의 아름다움이 삶 한가운데서도 추구될 수 있음을 명징하게 알려준다. 소설은 예술과 삶이 공존할 수 없다는 절망과 회의에서 시작하여, 예술을 대하는 참다운 질문 찾기가 삶의 본모습을 찾는 길이 될 수 있음을 조용히 웅변한다. 결혼과 교직생활로 붓을 놓았던 소진의 가슴에 간직된 예술적 열망 역시 아쉬움의 감정만은 아닐 터이다. 소진이 사랑과 환대로 충일한 일상을 살 수 있는 것도 예술이 삶에 스며든 결과일 수 있다. ‘나’는 예술을 향한 근원적 열정을 확인하는 동시에 다양한 방식의 수많은 삶의 가능성 역시 겸허하게 들여다본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자기 자신의 마음을 닦고 돌보는 긴 분투 속에서 타인과의 유대 역시 가능함을 실감하게 만든다.
한강의 문학은 인간 존재의 연약함을 담담하게 투시하면서도 고통의 취약성에 매몰되기를 거부하고 세상과의 유대를 찾는 간절한 마음의 동력을 제시한다. 황막한 일상을 가로지르는 고통의 기억을 딛고 ‘다른’ 세상으로 도약하려는 분투는 유령적 존재와의 만남을 통해 구원과 평화라는 주제를 탐색하는 수작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으로 연결된다. 이 아름다운 단편은 성차별적인 고용현실에 상처받고 고립된 인물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뛰어넘어 도모하는 유대를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내면에 깊이 머무르던 각자의 고통이 기억의 소통 속에 풀려나오는 과정은 ‘찰나’이면서 ‘영원’으로 포착된다. 『소년이 온다』가 더하는 역사적 시공간의 세계와 더불어 시적 산문의 실험적인 정점을 보여주는 『흰』, 그리고 제주4·3의 역사적 상상력을 잇는 『작별하지 않는다』 역시 앞으로 한강 문학에서 풍부한 해석을 더해갈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들의 변모와 확장은 젠더적 목소리가 바탕이 된 한강의 문학세계가 앞으로 펼쳐갈 또다른 가능성들을 헤아려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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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혹에 맞선 부드러움,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한겨레21』 2024.10.11. ↩
- 「日번역가 “한강, 최대위기에도 인간존엄 존재할 수 있음 보여줘”」, 연합뉴스 2024.10.17. ↩
- 이 글에서 다루는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여수의 사랑』(문학과지성사 1995), 『내 여자의 열매』(초판 창작과비평사 2000, 개정판 문학과지성사 2018), 『채식주의자』(창비 초판 2007, 개정판 2022), 『노랑무늬영원』(문학과지성사 2012), 『소년이 온다』(창비 2014),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창작과비평』 2015년 여름호). 단행본 인용은 개정판을 기준으로 본문에 면수만 표기한다. ↩
- 불교 모티프를 품은 「붉은 꽃 속에서」와 「아기 부처」(이상 『내 여자의 열매』)에서 종교적 세계는 비루한 일상을 견디는 예술가적 구도의 세계와 얽혀 있다. ↩
- 「내 여자의 열매」와 『채식주의자』 관련 논의는 졸고 「포스트휴먼 시대의 젠더정치와 괴물-비체의 재현방식」(『비교문화연구』 50호, 2018)의 논지를 바탕으로 ‘목소리’의 서사적 구성이 소설의 주제에 기여하는 방식에 초점을 두고자 한다. ↩
- 작품에 드러나는 젠더적 주체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읽어내는 학술 성과로 다음을 참고할 수 있다. 신수정 「한강 소설에 나타나는 ‘채식’의 의미」, 『문학과 환경』 9권 2호, 2010; 김미현 『젠더 프리즘』, 민음사 2008; 우미영 「주체화의 역설과 우울증적 주체」, 『여성문학연구』 30호, 2013; 정미숙 외 『한강, 채식주의자 깊게 읽기』, 더스토리 2016. ↩
- 시점, 인칭의 개념과 관계되는 ‘목소리’(voice)는 우리가 서사를 ‘듣는’다고 생각하는 감수성을 뜻한다. H. 포터 애벗은 ‘목소리’의 감수성을 스토리 속 사건과 인물을 본다고 생각하는 ‘초점화’의 감수성과 매우 가까운 개념으로 정의한다. 더 나아가 ‘목소리’는 “인물의 성격에 대한 독자들의 감각”을 우리에게 알려주며, 서술되는 스토리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H. 포터 애벗 『서사학 강의』, 우찬제 외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0, 144~45면. ↩
- 「몽고반점」에서 푸른빛 몽고반점의 이미지를 매개로 영혜와 형부가 벌이는 정사는 다층적 해석의 장을 열고 있다. 신수정은 「몽고반점」에서 이 장면이 여성의 식물적 이미지가 섹슈얼리티로 발현되는 과정을 주목하며, 이는 에코페미니즘에서 이야기하는 ‘영성’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신수정, 앞의 글 203~204면). 한기욱은 “영혜의 존재적 추구가 이 세상으로부터 탈출을 꿈꾸는 형부의 예술작업과 친화적”인 지점을 짚는다(한기욱 「촛불민주주의 시대의 문학」, 『문학의 열린 길』, 창비 2021, 65면). ↩
- 최원식이 이 연작의 주제와 인혜의 “견인주의자”적 특성을 연결하는 지점도 흥미롭다. 그런데 「나무 불꽃」에서 영혜를 대상화된 인물로 한정하거나 그녀의 자기폭력을 수동성으로만 규정하면 이 소설이 지니는 여성 주체의 입체성을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최원식 「우리 시대 한국문학의 두 촉」, 『문학과 진보』, 창비 2018, 220면. ↩
- 『소년이 온다』에서 시점의 교차를 통해 진행되는 증언의 형식과 그것이 놓인 역사적 시간대의 의미에 대해서는 졸저 「역사를 호명하는 장편소설」, 『사소한 이야기의 자유』, 창비 2018 참조. ↩
- 백낙청 「외계인 만나기와 지금 이곳의 삶」,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 창비 2011, 27면. ↩
- 김연수·한강 「사랑이 아닌 다른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창작과비평』 2014년 가을호, 318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