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독자의 목소리

 

 

과거의 소년, 지금 오는 소년

▶ 지난호 노벨문학상 수상 특별기획은 한강 소설을 더 깊이 알기에 유익한 글들이었다. 인간이 무엇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던질 수 있는지를 질문해본다.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 답을 생각해볼 수 있어 지난호를 읽으며 필자들과 편집위원들에게 감사했다. 오랜 애독자로서 기억하건대 『창작과비평』 2017년 겨울호에 실린 한강 「그 말을 심장에 받아 적듯이」에는 『소년이 온다』의 창작배경이 담겨 있다. 광주와 용산참사를 떠올리며 “인간은 대체 어떤 존재인가? 어떻게 그토록 폭력적이며, 또한 그토록 존엄한가?”(440면)를 물었던 한강 작가의 이 산문을 지난호 특별기획과 함께 한번 더 게재했다면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소년이 온다』는 단순히 사건을 재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인물들이 살아가면서 마주해야 하는 치유되지 않은 고통을 그린다. 그리고 지금 한국의 상황을 보면 소년 ‘동호’는 여전히 이곳저곳에 있다. 세월호참사와 이태원참사로 희생된 이들을 비롯해 수많은 노동자와 농민들 그리고 우끄라이나전쟁의 피해자들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집단학살의 희생자들. 아직도 ‘소년이 있다.’ 그런 와중에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 왔다. 계엄군이 왔다. 그러나 과거가 현재를 도왔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했다. 나는 1980년 광주를 경험했다. 국가폭력으로 인한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 기억은 다음 세대와 연결되어 ‘소년은 오고 또 온다.’ 지난호를 읽으며 한국문학의 위대한 성취와 함께 또다른 ‘한강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장헌권 suhjungchk@hanmail.net

 

슬픔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 지난호 현장(이동화 「팔레스타인, 존재 자체로 저항하며 세상에 외치다」)을 인상 깊게 읽었다. 미국정부와 주류언론은 이스라엘에 묻지 않는다, 어떤 목적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향한 공습을 지속하는지. ‘하마스’ ‘헤즈볼라’ 같은 단어를 앞에 세워 그들이 무슨 단체며 왜 나쁜지를 말할 뿐이다. 어쩌면 이스라엘을 지원하며 이스라엘과 자신들을 동일시하는지도 모른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전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만 같다. 지도에서 팔레스타인을 완전히 지우고 나면, 이스라엘은 또 무슨 일을 벌일까. 군수산업은 또다른 전쟁터를 찾아나설 것이다. 그 총 끝이 한반도와 우리 주변국으로 향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올리브나무가 존재하는 한 우리는 계속 싸우며 이 땅을 지”(372면)키겠다는 말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팔레스타인에 하루빨리 평화가 찾아오길 간절히 바란다.

새해에 처음 읽는 소설로 지난호 김유담의 「같은 아이」를 만났다. 주인공 ‘수민’의 아이는 교통사고로 뇌사 판정 직전에 놓이는데, 그 심란한 시기 수민은 우연히 자기 아이의 킥보드를 탄 ‘세아’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와 세아가 겹쳐 보이는 순간에 머무는데, 이 장면에서 어렴풋한 공감의 가능성이 느껴졌다. 갑자기 맞닥뜨리는 슬픔 앞에 인간은 모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따라잡을 수 없고 예측할 수 없어 ‘종내는 놓쳐버린 것만 같은 아이’(185면)처럼. 슬픔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해준 작품이다. 지난해를 돌아보면 『창작과비평』을 함께 읽는 ‘클럽 창비’에 가입하고 책 읽는 습관을 들인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튼튼한 양장노트에 필사를 하며 매호 따라 읽는 일도 즐겁다. 노트가 꽤 두꺼워 아직 채울 빈칸이 많은 게 참 좋다.

전현선 junerose81@naver.com

 

K문학부터 K담론까지 한눈에 조망

▶ 지난 겨울호는 어느 때보다 읽을거리가 많았다. 무엇보다도 총 60면 가까이에 걸쳐 노벨문학상 수상 특별기획 ‘한강의 문학세계’를 꾸린 것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작가 개인의 문학적 여정뿐 아니라 굴곡진 한국문학의 행로에도 뚜렷한 이정표가 될 것”(「한강 소설이 우리에게 오는 방식」 17면)이라는 한기욱 평론가의 말처럼, 이번 수상소식이 독자로서도 무척 기뻤다. 한국인과 한국문학이 걸어온 길 위에서 거둔 빛나는 성과이며 눈부신 쾌거임에 틀림없다. 이번 특별기획 글들을 읽으며 전에 읽었던 한강의 소설들을 다시 꺼내 읽고 곱씹어보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 무척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정도전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조명하는 ‘창비 한국사상선’ 기획에 대해 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마침 대화 「한국사상이란 무엇인가」(백민정·임형택·허석·황정아)가 실려 흥미롭게 읽었다. 네 전문가의 대담은 한국사상이 무엇이며 동양사상 혹은 중국사상과는 어떻게 다른가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시야를 얻을 수 있도록 단서들을 전해준다. 본격적인 창비 한국사상선 독파를 통해 한국사상을 톺아보기에 앞서 독서의 입구로 삼으면 맞춤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호는 K문학부터 K담론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귀한 지면이었다.

박일호 ik15@naver.com

 

문학을 통해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경험

▶ 백온유 소설 「내가 있어야 할 곳」을 통해 인생은 평탄할 수 없고, 험난한 길을 만나면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생각했다. 주인공 ‘하나’ 역시 인생의 여러 굴곡을 경험하며 성장한다. 하나와 이모가 각자 상처를 지닌 채, 함께하는 시간 동안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모습이 좋았다. 그 모습은 결국 상처를 직시하고 인정함으로써 치유로 이어졌기에 가능했는지 모른다.

특집에서는 양경언 「노래가 들리는 곳」을 의미있게 읽었다. 특히 “시가 품은 현실과 그것을 전달받는 독자의 현실 사이에 자본주의가 형성해온 시간만큼의 거리가 놓여 있”고 이는 “우리가 딛고 있는 삶의 토대가 어떤 시간을 통과해왔는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언어의 보고가 된다”(82면)는 부분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문학작품이 그린 상황과 지금의 우리 사이에 놓인 거리에 대해 생각하며 어릴 적 살았던 집을 떠올렸다. 지금 와서는 식구들과 한참 기억을 더듬어야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을 만큼 특이한 구조의 집이었다. 그때는 사는 일이 쉽지 않게 느껴졌던 것 같은데, 지금 돌아보면 추억이 되어 있다. 화장실은 어땠는지 수도는 어땠는지 서로의 기억을 맞추다보면 집 한채가 완성되곤 한다. 우리 식구 중에 누구 하나 빠지거나 나 혼자라면 완성할 수 없는 집. 이렇듯 그 집은 이야기로써 완성되는 것이었는데, 박완서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제법 비슷한 환경의 집이 묘사되어 있어 반가웠던 기억도 있다. 양경언 평론에서 말하듯, 과거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 않고 나는 분명히 문학을 통해서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경험을 하는 것 같다. 정말이지 ‘우리에겐 문학이 있다’고 느낀다.

송수경 bona027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