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특집│K민주주의의 약진

 

연대로 확장된 광장과 민주주의

 

 

김소라 金昭摞

젠더 연구자, 제주대 사회학과 강사. 공저서 『모두를 위한 성평등 공부』 등이 있음.

stellatis@gmail.com

 

 

지난 12월 3일 밤 있었던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재난처럼 우리의 일상을 삼켰고, 이후 두달여간 많은 이들이 절망과 희망, 분노와 연대의식이 교차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비상계엄이 선언되자마자 국회 앞으로 달려가 무장한 계엄군과 장갑차를 막아선 시민들의 적극적인 행동 속에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를 결의하며 상황이 빠르게 안정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계엄을 정당화하고 사태의 해결을 방해하는 여권과 고위 관료들의 궤변과 도를 넘은 행태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기도 하다.

이 사태를 책임져야 할 여당 국민의힘은 비상계엄 선포는 야당의 계속된 탄핵이 원인이다, 내란은 과도한 표현이다, 비상계엄은 헌정 수호를 위한 것이었다 등의 주장을 하며 윤석열을 비호하고 당의 존립만을 염려하는 한편, 자칭 ‘백골단’이라며 윤석열을 수호하겠다는 이들을 국회로 불러들여 소개하는 등 수십년 전의 독재세력과 다를 바 없는 행태를 보여주었다. 윤석열은 내란의 정황이 속속 드러나는 중에도 긴 시간 체포와 구속, 수사를 거부하고 사과는커녕 대국민담화를 여러차례 발표했다. 담화의 내용은 자신과 대립하는 이들을 ‘반국가세력’ ‘빨갱이’ ‘국헌문란세력’으로 매도하고, ‘야당의 폭거’와 ‘부정선거’를 계엄선포의 원인으로 지목하며, 수사를 무시하고 이에 불응하는 이유를 적법성 여부에서 찾는 등 황당한 자기합리화로 가득한 것이었다. 이같은 윤석열과 국민의힘, 그리고 극우세력의 선동에 호응한 이들은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울서부지방법원을 습격해 폭력으로 법치주의를 부정했다. 극우세력이 강하게 집결하면서 민주주의체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신뢰는 하락하고 있다.

이처럼 절망과 분노를 자아내는 상황에서도 희망과 다른 미래를 꿈꾸게 하는 힘은 비상계엄 선포와 동시에 즉시 국회 앞으로 달려온 시민들의 용기, 형형색색의 응원봉과 기발한 문구의 깃발을 들고 광장에서 탄핵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연대의식이다. 이들은 비상계엄이 해제된 뒤에도 한동안 국회 앞을 지키며 혹시 모를 제2의 비상계엄을 경계했고, 분노를 자아내는 계속된 행태들 속에서도 집회를 유쾌하고 즐거운 축제처럼 만들었으며, 더 많은 이들을 광장으로 불러모으며 장기화한 사태 속에서도 지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순간 국회 앞에 모인 수많은 이들이 케이팝과 민중가요를 함께 부르고 춤췄던 모습, ‘개방농정 철폐’ ‘윤석열 체포·구속’ 등을 외치는 농민들의 트랙터가 경찰 차벽에 막혀버린 남태령 현장에 직접참여와 물품후원 등으로 연대해 32시간 만에 차벽을 뚫고 트랙터와 시민들이 함께 행진했던 모습, 피의자 윤석열이 수사기관의 체포영장 집행을 거부하며 관저에 숨은 가운데 윤석열 체포를 요구하며 은박담요를 두르고 눈 속에도 자리를 지킨 이른바 ‘키세스 시위대’의 모습은 희망과 연대의식을 발견할 수 있었던 중요한 장면들이다.

 

 

광장에 싹튼 희망과 ‘2030 여성’

 

이 장면들, 달라진 광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들이 20~30대 젊은 여성들이다. 이들 2030 여성과 함께 비폭력시위와 사회변화에 대한 대중적 염원의 상징이던 촛불이 여러 빛깔의 응원봉으로 거듭났고, 선결제한 음식과 음료, 방한용품과 의료용품, 난방버스와 키즈버스 등이 새로운 집회 풍경으로 자리했다. 2016~17년 박근혜 퇴진 집회 당시 참여자들의 배후를 찾는 구시대적 발상에 재치로 응수했던 시민들의 깃발은, ‘강아지 발냄새 연구회’ ‘전국 집에 누워있기 연합’ ‘전국 얼죽아 연합’ ‘책 읽다가 뛰쳐나온 활자중독자모임’ ‘푸바오의 행복을 바라는 모임’ 등 유머와 풍자, 웃음과 해학으로 무장한 새로운 세대의 깃발로 한층 강력해졌다. 광장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 「바위처럼」 같은 민중가요와 함께 케이팝이 울려퍼졌다. 특히 탄핵소추안 가결 순간을 비롯해 집회의 주요한 장면마다 함께한 노래는, 훗날 박근혜 대통령 탄핵 흐름으로 이어지게 되는 2016년 이화여대 본관 농성에서 경찰에 맞서 스크럼을 짠 학생들 사이로 불린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Into the New World)였다.

이처럼 2030 여성들은 탄핵촉구 집회에 대거 참여하며 집회의 풍경을 변화시켰다.1 무엇보다 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들이 광장과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여성들의 역할과 기여를 더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끔 하기 때문이다. 사실 여성들은 언제나 광장에 있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 논란과 이명박정부의 불통 행보 속에 이어진 촛불집회에서도, 그리고 2016~17년 박근혜의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에서도 젊은 여성들의 존재는 두드러졌다. 당시에도 이들은 새로운 집회문화, 생활정치 실현, 온라인을 경유한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 등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주목받은 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온라인 커뮤니티 내의 배후세력 여부를 의심받거나 집단행동의 지속가능성, 정치적 비전의 여부, 신자유주의적 소비주체의 등장 등을 이유로 과소평가되었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 페미니즘 대중화와 함께 여성들은 계속해서 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2018년 미투운동과 불법촬영 편파수사, 2019년 낙태죄 폐지, 2020년 텔레그램 성착취, 2024년 딥페이크 성착취 등의 의제로 집회를 열고 여러 사회적 변화를 추동하며, 여성들은 무시할 수 없는 정치적 집단이 되어갔다. 광장에 참여하고 제도정치에 개입하면서 문제해결을 위해 연대하고 행동한 이때의 경험은 논의와 토론, 결집과 행동을 위한 토대이자 네트워크가 되었다. 이같은 정치적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경험이 없거나 적은 여성들도 아이돌 팬덤 활동과 같은 일상의 경험 속에서 직간접적으로 의제 형성과 집단행동에 참여해본 경우가 많았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는 ‘덕질’부터 페미니즘 의제에 이르기까지 각종 정보를 접하고 논의하는 공간으로, 정보를 가공하고 전파하는 매체로, 생각을 함께하는 이들과 모이고 연대하는 장으로 자리잡았다. 비상계엄 선포는 이처럼 경험을 축적해온 여성들이 폭발할 수밖에 없는 국면이었다.

지난 대선 전후로 정치에 대한 여성들의 관심이 한층 커졌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2022년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는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했고 반(反)페미니즘 행보를 지지층 결집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당선 이후에도 윤석열정부의 이러한 행보는 계속되었는데 성폭력, 스토킹, 데이트폭력, 디지털 성폭력 등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 발생할 때마다 그것이 젠더폭력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성차별 구조가 젠더폭력의 원인이라는 주장 역시 사회분열을 촉발하는 불필요한 목소리로 치부했다.2 여성을 비롯해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 약자에 대한 혐오 역시 묵과하고 선동했다.

이는 정책과 예산에도 반영되어 윤석열정부는 젠더폭력 피해지원과 고용평등상담실 운영 등 성평등 관련 예산 및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는 예산을 계속해서 삭감해왔다. 여성의 정치활동에 대한 비난과 공격도 커졌다. 학교의 비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는 외면한 채 남녀공학 전환에 반대하는 동덕여대 학생들의 저항을 폭동으로 매도하고, 래커가 칠해진 바닥을 복구하는 비용 및 책임 소재에만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것도 그 예다. 정치활동 및 집단행동에 참여해본 경험과 차별에 대한 예리한 인식, 높아진 정치에 관한 관심 속에서 차곡차곡 쌓인 여성들의 분노는 비상계엄 선포를 기점으로 폭발했다. 이는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사회의 변화를 향한 열망이 폭발하는 지점이기도 했다.

이 가운데 광장의 민주주의는 그 모습과 내용을 바꾸고, 확장하고 있다. 노래하고 춤추고 구호를 외치며 재미와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는 집회의 모습은, 가벼워진 형식을 통해 광장을 누구든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다. 분노를 지치지 않는 에너지로 전환하는 장이 된 것이다. 동시에 광장에 참여하는 다양한 이들의 차이를 존중하며 소수자에 대한 차별·혐오 발언을 하지 말자는 약속도 집회 주최측과 발언자들에게 공유되어 확장되는 중이다. 이 문제의식은 2016~17년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에서 벼려진 것이기도 하다. 당시 광장에서는 ‘앞으로 100년간 여자 대통령은 꿈도 꾸지 말라’거나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 등 대통령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데에 대한 비판에 여성혐오가 거칠게 뒤섞였고, 광장에서 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이나 성폭력이 있었다는 고발도 터져나왔다. 여성계는 이를 비판하며 광장 내에서 ‘페미존’을 운영하기도 했다.3

그간의 경험, 그리고 2016~17년의 촛불 이후 기대한 만큼의 사회변화가 이어지지 못했다는 반성이 광장에서 최대한 많은 목소리를 포용하려는 실천으로 이어졌다. 특히 지난 10여년간 여성을 비롯해 다양한 집단에 대한 혐오가 거세졌기에 서로 연대해야 한다는 인식이 컸고, 광장에서 함께하면서 실시간으로 쌓이는 신뢰가 다시 그같은 연대의 토대가 되었다. 2030 여성들은 그 중심에 서서 함께하는 이들의 목소리와 삶에 귀 기울이고 있다. 다른 삶에 대한 관심과 존중은 특히 농민과의 연대, 장기투쟁 중인 노동자 농성현장과의 연대, 장애인이동권 투쟁과의 연대 등 탄핵촉구를 넘어서는 광범위한 연대로 나타나고 있다. 새로운 세대가 아니라, 새로운 정치가 광장에 등장한 것이다. 2030 여성이 주축이 된 가운데 우리 민주주의에서 광장이 어떻게 변모하고 있으며, 그것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진전시키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다.

 

 

역사적 시야의 확장과 온·오프라인의 연결

 

많은 이들을 광장으로 불러낸 것은 단순히 비상계엄 선포의 위법성만이 아니었다. 교과서와 활자로만 접하리라 생각했던 계엄의 장면이 역사적 현실로 끄집어내진 것에 대한 공포와 분노, 민주주의의 역사가 퇴행하고 있다는 우려가 추운 날씨에도 수많은 이들을 광장으로 불러냈다. 역사교육뿐 아니라 영화와 소설 등 미디어를 통해 민주화운동에 대한 공감과 상상의 가능성이 넓어진 것도 이에 한몫했다. 12·12사태를 다루며 13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서울의 봄」(2023)은 계엄의 현실을 생생하게 재현했고,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국가폭력과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그런 가운데 이루어진 비상계엄 선포는 그 비현실성만큼이나 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기기에 충분했다.

젊은층에 더욱 직접적으로 계엄선포의 심각성을 와닿게 한 앞선 계기는 2014년의 세월호참사와 2022년의 이태원참사였다. 거대한 재난참사에서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국가의 무능함, 그리고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려는 움직임이 정치적인 공세로 매도되고 피해자를 향한 비난과 모욕이 쏟아지는 광경을 목격한 경험은 국가권력의 절대성을 의심케 했다. 젊은층에게 지난 12월 3일의 계엄선포는 계엄이 교과서를 벗어나 실제가 된 첫번째 경험이었지만, 여러 참사를 통해 접속하고 상상할 수 있는 역사이기도 했다.

더불어 1980년의 광주와 앞선 세대의 민주화운동,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 촛불집회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2016~17년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도 소환되었다. 계엄선포가 젊은층에 민주화 전반에 대한 역사적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되어주었다면, 앞서 민주화운동과 집회를 경험한 세대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젊은층의 높은 관심을 확인하고 이들이 확장해가는 정치를 접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젊은층의 탐구는 크게 두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하나는 광장에서 마주치는 다른 이들에 관한 관심이다. 광장을 메운 2030 여성들은 그곳에서 또한 다양한 연령대의 다른 참가자를 만났다. 40~50대 집회 참가자도 상당수였다. 1980년대의 민주화운동부터 그간 있었던 여러 촛불집회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중장년층으로부터 과거의 경험을 듣고자 하는 의지도 늘었다. ‘계엄 폐간 경력직’이라는 『창작과비평』의 깃발과 광장에 뿌려진 호외가 주목받은 일이나 민중가요가 큰 관심을 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두번째로 활발한 온라인 담론과 온·오프라인의 연결 역시 세대간 접촉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2030 여성들은 이번에도 정보를 가공하고 전파하는 데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들은 다양한 세대의 민주화운동과 과거 촛불집회의 경험을 전하고, 전국에서 진행 중인 촛불집회 현장을 빠르게 중계했다. 예컨대 1980~90년대 민주화운동과 국가의 폭력적 대응이 백골단에 대한 정보와 함께 전파되는가 하면, 민중가요 플레이리스트와 가사가 공유되었다. 또한 시민과의 소통을 거부하며 트레일러로 ‘산성’을 쌓고 폭력적으로 시민들을 진압했던 이명박정부 시절과 당시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시민사회단체가 했던 역할들이 알려지기도 했다. 대구 집회에서 현재진행형으로 등장한 ‘TK는 더이상 보수의 텃밭이 아니며, TK의 콘크리트는 TK의 딸들에 의해 부서질 것이다’라는 피켓 소식도 삽시간에 퍼졌다.

이러한 온라인의 움직임은 다양한 상황에서 즉각적인 대응과 빠른 연대를 가능케 한 동력이기도 했다. 온라인 담론이 온라인에만 남지 않고 광장에의 참여로 연결되면서, 확장된 역사적 시야가 물리적 실체를 갖게 되었다. 광장을 가득 메운 이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며 분노를 표출하고, 서로에게 익숙한 노래를 배워 함께 부르고, 춤으로 흥을 내고, 곁에 있는 이들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내면서 일시적이지만 강력한 서로에 대한 신뢰와 연대의식이 만들어졌다. 이를 통해 시민들은 자신의 세계 또한 확장되는 순간을 경험하고 있다.

12·3 계엄 이후 가장 인상적인 현장인 남태령에서도 이러한 모습이 발견된다. 레거시 미디어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남태령의 이야기가 소셜미디어와 개인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퍼졌다. 경찰이 농민과 트랙터를 막고 트랙터의 창문을 깨면서 농민을 진압·연행하려는 장면이 전해지자 현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 그리고 2016년 겨울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며 트랙터를 몰고 온 농민들이 당시에도 서울로 진입하지 못했다는 사실, 경찰이 농민집회를 폭력적으로 진압해온 역사가 알려졌다. 남태령에 함께 모인 이들은 서로에게서 「농민가」와 「다시 만난 세계」를 배우며 긴 동지(冬至) 밤을 함께했고, 이전까지 전혀 가까워 보이지 않았던 농민과 젊은층이 연결되었다. 역사가 단순히 과거를 복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질문함으로써 미래를 도모하는 것이듯이 여러 참사를 거치며 민주주의를 배운 이들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과거에 접속하고, 그 의미를 현재화하고, 다른 미래를 그려내 보이고 있다.

 

 

타인과 공동체에 대한 염려

 

농민들이 트랙터 행진을 시작한 것은 12월 16일이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은 12월 16일 전남과 경남에서 ‘전봉준 투쟁단’이라는 이름 아래 트랙터 행진을 시작해 19일 충남 공주 우금티에서 합류했다. 경찰의 안내 속에 별 탈 없이 상경하던 트랙터는 서울의 길목인 남태령에서 12월 21일 경찰의 차벽에 가로막혔다. 이들이 트랙터 행진을 시작한 것은 양곡관리법 등 농업 4법에 행사된 거부권을 규탄하고 윤석열의 체포·구속과 탄핵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대통령 윤석열이 처음으로 거부권을 행사했던 법안이 양곡관리법이고,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탄핵정국에서 처음으로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도 양곡관리법 등 농업 4법이었다. 하지만 시민들을 남태령으로 이끈 것이 꼭 농민의 삶, 농업 4법, 개방농정의 문제점과 식량주권 확보의 중요성 등에 대한 지식과 이해는 아니었다.4 그보다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공권력에 의해 다치거나 끌려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경찰에 막혀 추위에 떨 사람들에 대한 걱정, 시민의 관심이 사그라지면 더 위험해질지도 모른다는 염려, 함께하는 이와 지켜보는 시선이 많으면 함부로 공권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깨우침과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일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지에 남태령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사회적 약자이자 비가시화되기 쉬운 존재이기에 그간 경찰이 농민들을 폭력적으로 대해왔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 어째서 경찰이 시민을 보호하지 않고 길을 가로막고 폭력을 행사하는가에 대한 질문도 함께였다.

트랙터 위에 즉석으로 차려진 연단에 서서 자유발언을 이어간 이들이 자신이 겪은 차별과 저마다의 삶의 어려움을 풍성하게 나누었음은 이미 여러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그만큼이나 인상적인 발언들은 농민의 삶에 무관심했던 데에 대한 반성과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을 전하는 경우였다. 현장에서는 그 마음에 응답하듯 자신을 ‘농가에서 태어난 농민의 딸’이라고 소개하며 발언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트랙터가 농사일에 얼마나 필요한지, 하지만 얼마나 비싼지 설명했고, 비싸서 마을 단위로 돈을 모아 사서 순서대로 사용한 다음 농한기에는 깨끗이 닦아 소중히 보관한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이 트랙터는 응원봉처럼 농민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라며, 바퀴가 아스팔트에 갈리고 값비싼 기름을 도로에 뿌려가면서도 트랙터를 이끌고 나선 것은 그만큼 농민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라는 발언이 모두의 마음을 울렸다.

농촌과 농민의 삶에 대해 공부하겠다는 다짐을 알리는가 하면, 여성 농민이 기른 먹거리를 판매하는 ‘언니네텃밭’을 소개하는 발언들도 이어졌다. 그리고 ‘농가의 딸’이지만 좀처럼 타기 어려운 트랙터 위에 서보고 싶어서 발언에 나섰다는 얘기에 웃음이 터지고, 농민의 행렬을 차벽으로 가로막은 경찰은 쌀밥도 먹지 말라고 외치는 재치가 추운 겨울밤을 녹였다. 앞서 말했듯 이전에는 서로 닿지 않을 것 같았던 농민과 젊은 여성, 농민과 시민 사이의 연대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다른 이의 구체적 삶에 대한 다정한 관심, 이들과 함께 살아갈 공동체에 대한 염려였다.5 농업과 농민의 삶에 대한 앎과 이해는 그 이후였다. 남태령에 모인 이들, 직접 오지 못해 따뜻한 음식이나 방한용품, 난방버스를 보낸 이들, 그리고 밤새워 라이브방송을 시청하고 경찰서에 항의전화를 하며 소셜미디어와 언론에 이 사실을 알렸던 이들 사이에 연대의식이 싹텄다. 마침내 32시간 만에 차벽이 뚫렸고 시민들의 행진과 트랙터가 한강진에서 만났다.

남태령의 경험은 경남 거제 한화오션조선소 하청지회와 경북 구미의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농성장 등 장기투쟁 중인 노조에 대한 후원으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서울 안국역에서 진행한 ‘다이인 행동’(die-in, 죽은 듯이 누워 항의하는 시위) 동참으로, 동덕여대 중앙동아리연합회가 학교를 벗어나 혜화에서 개최한 ‘민주없는 민주동덕’ 집회로, 산업재해 치료를 위한 전태일의료센터 건립 후원으로 이어졌다. 타인과 공동체에 대한 염려는 서로의 구체적 삶에 대한 관심 속에서 만들어지고, 이렇게 확장된 염려는 시민 사이에 폭넓은 연대의식이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하고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다시 만난 세계」의 가사처럼.

 

 

재편된 일상/정치와 확장된 민주주의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빛’을 들고 나선 이들은 일상과 정치의 경계를 재편하며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2016~17년 촛불집회에 이어 지금의 촛불집회에서도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 중 하나는 다양한 깃발이다. 조직이나 소속이 아닌 취향과 관심을 내세운 깃발은 집회의 배후를 찾는 낡은 질문에 ‘내 배후는 나’라며 응수하는 수단이었다. 나아가 현재 더욱 다양해진 깃발은 집회에 재미와 활력뿐 아니라 공감과 연대의 마음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필자의 시선을 붙잡은 깃발은 ‘새벽형 불안성 새로고침 단체’였는데, 나와 마찬가지로 12·3 계엄 후 깊게 잠들지 못하고 강박적으로 언론보도를 확인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그려져서였다. 내가 아끼고 응원하는 이를 위해 손에 들었던 것이지만, 계엄선포라는 반민주적 행태에 저항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광장으로 들고나온 응원봉 역시 마찬가지다. 광장에서 자신의 취향과 관심 등 일상을 드러낸 깃발과 응원봉은 역으로 정치가 우리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게 하며 일상과 정치의 경계를 재편한다.

그러한 가운데 노동조합과 시민단체에 대한 일부 부정적인 인식이 달라지기도 했다. 1차 탄핵소추안 표결이 실패했던 12월 7일, 경찰이 국회 앞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집회 공간을 통제하는 것을 비판하며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 동지들 전부 다 일어나주십시오. 민주노총이 길을 열겠습니다”라고 외쳤다. 이러한 단상의 외침과 함께 스크럼을 짠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좁은 여의도에서 길을 여는 장면이 펼쳐졌다. 이 모습은 민주노총에 대한 시민들의 부정적 인식을 긍정적인 것으로 전환했고, “아니라고 했다. 민주노총 부른다 진짜로”와 같은 밈(meme)까지 만들어냈다. 원래 “경찰 부른다 진짜로”라고 쓰였던 밈이 달라진 것인데, 시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경찰에 대한 불신과 연대할 수 있는 동료이자 동지로서의 민주노총에 대한 신뢰를 동시에 드러낸다. 귀족노조, 폭력시위, 시민에게 불편함을 유발하는 파업 등과 같이 호도되어온 기존의 인식이 달라졌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노동조합에 대한 시민들의 달라진 인식은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한 장면을 만들었다. 체포영장 집행을 거부하고 한남동 관저에 틀어박힌 피의자 윤석열의 체포를 촉구하며 “곧 응원봉을 들고 달려와줄 우리의 동지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민주노총의 소셜미디어 메시지에 화답한 ‘키세스 시위대’이다. 이들은 한남동 관저 앞에 모여 쏟아지는 눈 속에도 은박담요를 두른 채 밤새워 자리를 지켰다. 탄핵촉구 집회에 참여한 젊은층은 이제 ‘단결투쟁’이라고 적힌 민주노총의 머리띠를 두르고, 노동자에게 노동조합이 어떤 의미이며 그간 시민사회단체들이 해온 역할은 무엇인지 생각하고, 의료민영화, 기후위기, 사회복지 예산삭감 등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 이는 비단 연대의 확장과 실천을 넘어, 이전에는 자기 삶과 관계없는 정치문제로 여기거나 내 일이 아니라고 여겨온 문제들을 더는 그대로 내버려둘 수 없음을 알게 된 주체의 등장을 알리며, 따라서 일상/정치의 재편 속에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법률상 집회·시위는 신고제로 되어 있는데 왜 허가제처럼 운영되는가, 농민들의 트랙터 행렬이 위협적이지도 않은데 어째서 트랙터를 막는가, 경찰의 차벽이 오히려 교통체증과 시민불편을 야기하는 것은 아닌가와 같은 질문. 나아가 비상계엄 선포 전에도 계엄 상황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있지는 않았는지, 비상계엄이 해제되고 윤석열이 탄핵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우리가 일상을 회복할 수 있는지, 이때 회복할 일상이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인지와 같은 질문.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는 광장의 목소리는 의회와 제도정치 내에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일시적이며 예기치 않게 형성되고, ‘일시적’이기 때문에 비판적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6 그렇다면 이렇듯 확장된 광장에서 제기된 질문이 계속해서 힘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확장된 광장의 활력이 계속되기 위해

 

계엄선포라는 초유의 사태로 인한 분노와 사태해결의 시급성이 광장으로 시민들을 불러모은 가운데, 모자와 목도리로 얼굴을 감싸고 롱패딩을 입고 가방에 방한용품과 응원봉, 팻말과 깃발을 챙긴 2030 여성은 광장과 민주주의의 의미를 확장하고, 정치의 의미를 변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경험과 앎을 확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라는 장은 비슷한 의견을 가진 이들만으로 네트워크를 구성해 생각과 의견의 편향을 만들어낸다는 비판을 전부터 받아왔다. 광장에서 폭넓은 연대의 상징이 된 응원봉 역시 팬덤 내 소속감만 아니라 그 이면의 배타성, 팬덤 사이의 견제와 경쟁의 상징에 가까운 것이었다. 한편으로 극우세력 역시 다른 의미의 광장에서 모이고 소리치는 경험을 통해 고취되고 힘을 키우고 있다. 탄핵이라는 공통의 목표 속에서 민주시민의 광장이 확장되었으나, 동시에 광장을 위협하는 이들 또한 세를 불리는 상황이다. 어떻게 해야 지금 우리 광장의 활력을 유지·강화할 수 있을까.

우선 그간 온·오프라인에서 여성을 위협하고 폭력을 행사해온 이들과 서울서부지법을 공격해 법치주의를 훼손한 극우세력 사이의 관련성을 살펴야 한다. 그같은 행위 모두에 단호하게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윤석열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를 이유로 서울서부지법을 공격해 현행범으로 체포된 이들의 절반 이상이 20~30대였고, 그중 다수가 남성이었다.7 이들을 선동한 중심에는 신남성연대가 있는데, 그동안 신남성연대는 여성혐오를 비롯해 노조혐오, 지역혐오 등을 설파하며 2030 남성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들의 폭력은 온라인에만 그치지 않았다. 2021년 2030 여성을 주축으로 설립된 페미니스트 모임 ‘팀 해일’의 여성혐오 규탄시위 현장에 몇년간 지속적으로 찾아가 행패를 부리고 대표를 향해 폭언과 협박을 일삼았으며 이를 중계해 2024년 형사처벌을 받았다. 이들은 딥페이크 성범죄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 건너편에서 맞불집회를 여는가 하면, 동덕여대 앞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집회신고를 해 학생들을 위협하기도 했다.

이처럼 불만과 분노, 증오와 혐오로 가득 찬 이들이 문제의 원인을 사회적 약자와 타자에게서 찾는 음모론을 신봉하고, 폭력과 테러를 마다하지 않는 전조는 이미 있었다. 서울서부지법에 대한 공격은 극우세력의 선동 속에 발생한 것이지만, 동시에 편향된 네트워크와 커뮤니티에서 소통하며 혐오범죄를 저질러온 이들을 심각하게 다루지 않은 댓가이기도 하다. 따라서 여성을 비롯한 특정 집단을 혐오하고 위협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곧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해야 한다. 폭력에 참여해 원하는 대로 상황과 사회를 통제할 수 있으리라는 효능감을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정치 영역에서는 확장된 광장을 채웠던 에너지와 목소리를 법률과 정책으로 제도화하는 한편, 제도정치 바깥에서도 다른 이들과 공동체에 관한 관심이 지속될 수 있는 공간과 조건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자신들의 광장에서의 기여를 인정받고, 정치에서 그 몫이 이루어져 여성들의 삶에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2030 여성에 주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들은 다양한 집단에 연대하는 동시에 정당의 당원으로 가입해 활동하고, 지지하는 정치인을 후원하며, 필요한 정책을 제안해 정치권을 압박하는 등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법안 발의 현황, 본회의 출석과 표결, 국회의원의 상임위 활동과 지역구에서의 행보 등 의정활동 정보를 공유하고 관심있는 의제와 법안에 있어 지역구 의원이나 해당 상임위원회 의원을 압박하는 활동을 이어가는 것은, 사회정의와 민주주의 확대라는 대의를 추구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힘으로 자기 삶에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이다. 정치권이 여기에 적극적으로 부응해 법률과 정책을 마련함으로써 시민들이 정치적 효능감을 경험한다면, 이는 다시 서로의 삶과 공동체에 관한 관심으로, 그리고 광장의 활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순환하며 확장되는 민주주의는 제도정치가 제 역할을 다하도록 감시하고, 개별 법률과 정책 개선만으로 일거에 해소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간과하지 않도록 하며, 정치적 비전과 방향에 관한 논의가 계속되도록 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1. 국회에서 탄핵소추안 가결이 이루어졌던 지난해 12월 14일, 서울시 생활인구 데이터로 집회 참가자를 추정한 결과 20대 여성이 17.9%, 30대 여성이 12%로 2030 여성이 전체 집회 참여자의 3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50대 남성이 11.2%로 그뒤를 이었다. 「탄핵 당일, 국회 앞 한때 41만여 명 모여…2030대 여성이 가장 많았다」, 경향신문 2024.12.19.
  2. 이같은 분위기는 성폭력에 대한 사법적 판단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비상계엄 선포를 전후로 온·오프라인에서 여성들의 분노를 자아내며 공론화된 의제 가운데 하나는 2024년 1월 대법원의 이른바 ‘천대엽 판결’이다. 해당 판결(주심 천대엽 대법관)은 성폭력처벌법 위반(공중밀집장소에서의 추행)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유죄 판결의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는 형사사건에 처음으로 ‘성인지 감수성’을 적용한 2018년 대법원 판결을 오독하고 부인해 성폭력사건에서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 배제를 합리화했을 뿐 아니라, 하급심 법원에서 성폭력사건 무죄판결의 증가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3. 당시의 상세한 상황은 다음의 글을 참고할 수 있다. 이지원 「페미니즘 정치의 장, 페미존(Femi-Zone)을 복기할 때」, 『여/성이론』 36호, 2017.
  4. 이에 관해 정은정은 시민의 연대를 기억하는 만큼 농업 4법에 대해서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윤석열 퇴진을 외치는 트랙터는 길을 넘었을지 몰라도 농업 4법은 고갯마루에서 멈췄다. 시민들의 응원봉과 함께, 농업 4법도 남태령 고개를 넘어갈 수 있을까.” 정은정 「농업 4법은 남태령 고개를 넘을 수 있을까」, 창비주간논평 2025.1.6.
  5. 남태령에서 자유발언에 나선 한 여성은 20~30대 여성은 나라로부터 버림받았지만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나왔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때 ‘나라’는 제도와 장치로 구성된 정치체로서의 국가와 달리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잡은 공동체에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세월호참사 이후 한국사회가 겪은 집단적 우울을 설명하며 ‘국가’와 ‘나라’를 구분하는 논의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고할 수 있다. 김홍중 「마음의 부서짐: 세월호 참사와 주권적 우울」, 『사회와 이론』 26호, 2015.
  6. 주디스 버틀러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 김응산·양효실 옮김, 창비 2020 참조.
  7. 2025년 1월 18~19일 서울서부지법을 습격하고 난동을 부려 현행범으로 체포된 86명 가운데 남성이 77명으로 약 90%였으며, 그중 20~30대가 45명으로 약 52%를 차지했다. 「‘서부지법 난동범’ 86명 중 남성 77명…52%는 2030」, 한겨레 2025.1.22.

김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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