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손택수 孫宅洙

1970년 전남 담양 출생.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호랑이 발자국』 『목련 전차』 『나무의 수사학』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붉은빛이 여전합니까』 『어떤 슬픔은 함께할 수 없다』 등이 있음.

ststo700@hanmail.net

 

 

 

무등산 봄까치풀

 

 

개불알풀이 봄까치풀로

개명을 해도 좋다는 거죠

정해진 등수와 이름이 있는 게

세상의 일이긴 하나

그게 무등이죠

무등의 일이죠

오고 있는 꽃을 찾아

등반을 하는 수고를 기쁨으로

품어본다는 거

꽃 앞에 고개 숙이고

허리를 숙이고 마침내는

무릎 기도를 하는 나를 찾아

아, 참 좋다1

정상에 오른

봄까치풀

무등을 태우고서

 

 

 

리듬의 역사

 

 

동대구역 광장 감시카메라의 삼엄한 불침번 속에

그가 돌아왔다 비상계엄이 돌아오고

태엽인형처럼 눈을 비비고 일어나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노래를 따라하던 아이도 돌아왔다

하굣길엔 동요 대신 병영의 노래들을 불렀지

어김없이 애국가와 함께 오던 저녁은

길을 가도 가도 동작 그만

얼음땡 놀이라도 하듯 얼음왕국 주술이 풀리길 기다렸지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납니다

이불 너머로 훔쳐보던 명화극장과 뉴스와 밤의 쇼들

매혹은 금기 속에서 더 생생해진다는 걸 일찌감치 알게 해준

그가 돌아왔다 비상계엄이 돌아오고

동지 밤에 사발통문이 폭발하는구나

응원봉이 반짝이고

장갑차와 헬기와 탱크 대신 논밭 갈아엎던

트랙터들이 남태령을 넘어오고

우금치에 묶인 전봉준 농민군에 합류하자

오타쿠 축제에 간 여성들과 노숙과 하청노동자와

아무사람아무협회 국적 성별이 묘연한 당신들까지

부르는 노래는 이제 낭만 고양이2 그리고 다시 만난 세계3

낭만 고양이와 다시 만난 세계를 만난 농민가

불로장생의 꿈이라고 해야 할지

진시황 병마용갱의 병사들이 깨어나기라도 한 것인지

동대구역에서 한남동 대통령 관저까지

진을 친 차벽 너머로

 

 

  1. 2007년 5월 19일 무등산에 오른 노무현 대통령이 장불재에서 남긴 말. 산상 연설문 「시민민주주의의 전망」이 그 뒤를 잇는다.
  2. 체리필터의 노래.
  3. 소녀시대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