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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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지

2002년 서울 출생. 2019년 『시인동네』로 등단.

hj4fkdgo@naver.com

 

 

 

농장

 

 

그때 나는

 

그때 (몸의 가장 극단적인 각주였던) 나는

 

식용으로 분류되었다.

그때 나는 농장 축사의 귀퉁이에 놓여 있었는데

어떤 사내 매일같이 밤중에 찾아와 내 뒤통수 쓸어내리며 울먹이곤 했다.

—희지야.

잊어.

아무것도 가두지 말고 다 잊어.

갈가리 내 귀에 속삭여주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눈앞의 사내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눈앞의 사내야.

희지야.

그러니까.

너는 나와 무엇이 다른가?

 

눈앞의 희지에게는 점이 있었다. 눈두덩 밑에 갈색 반점을 두개 반짝 박아두고 있었다.

 

눈앞의 희지는 영영 그 사실을 알아챌 수 없을 것이다.

 

그 사실이 오직 나를 만족스럽게 했다.

 

 

 

농장

 

 

언젠가 주인네가 농장에 시찰을 왔을 때, 나와 같은 식용들은 우리의 첨단에 다닥다닥 달라붙어 등을 굽히고 그들을 내다보았다. 무수한 주인네들의 행렬 속에서 나는 가장 어린 소년을 찾아내었는데 얼굴이 반질반질하고 군데군데 도톰하게 살이 붙은 그애는 낯섦에 대한 공포로 굳어 있었다. 주인네는 컹컹 꽥꽥 울부짖는 식용들 틈을 몇바퀴씩 돌아다녔다. 연민과 고뇌로 저 자신의 얼굴을 장식하였다. 나는 소년이 견디다 못해 행렬을 빠져나가는 것을, 농장의 외진 호숫가로 달려가 저 혼자 숨바꼭질하고 노는 것을 보았다. 소년이 눈치채지 못할 만큼 고요하게 그의 발뒤축에 밟혀 짓이겨지는 들풀들 보았다. 원한다면 나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그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당신을 내가 낳았습니다. 나와 남편이 낳았습니다. 우리 부부는 생물학적으로 남성이나, 지금에 이르러 낳음은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오래된 일입니다. 당신은 평생 배우지 못할 내용입니다.” 그러나 나는 섣불리 다가갈 수 없었는데 나의 말이 소년을 얼마나 무너뜨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소년에게 스스로 건축을 해낼 만큼의 아귀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무 위로 기어올라가는 소년의 낯 환한 것을 본다. 웃음이 활짝 그의 만면 찢는 것을 본다. 그의 두 발 흙과 풀로 범벅인 것을 본다. “깨져요, 도련님.” “모든 것은 틀림없이 깨져요.” 바람이 농장의 생물들을 부드럽게 쓸어내린다. 소년에게서 멀리 떨어진 데 서서 나는 노래할 뿐이다. “되돌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