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조해주 趙海舟

시집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 『가벼운 선물』 등이 있음.

johaeju93@naver.com

 

 

 

눈빛 보내기

 

 

창 너머로 파란 트럭이 보인다

가게를 처음 열기 전부터 거기 있었던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트럭의 앞모습이 사람 얼굴로 보인다

손님이 되는 법을 잊은 가게 주인처럼

 

빈 접시를 빈 접시로 보지 못하고

자꾸 그런 식으로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접시에 비친 얼굴이 아니라 빛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좋아. 깨끗해. 완벽해. 미끄러워.

 

트럭은

기쁨과 슬픔을 거래처에 맡겨놓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사라졌대요.

그 큰 트럭이 어디로 갔을까요?

 

손님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오래전 받았던 질문을 떠올리고 있다

 

얼음이 녹으면 뭐가 되지?

 

물.

그래, 물.

 

그 질문을 했던 사람은 이미 미지근한 커피가 되었다고 한다

아무도 입을 대지 않는다

아니, 딱딱하게 굳은 빵이 되었다고 할까

 

그런 식으로 표현하고 싶지 않은데

가게를 벗어날 수가 없다

작은 가게 한편에 멍하니 앉아 하루를 보내다가

 

어느날 가게를 닫고 운전석에 앉는다

작은 불상이 백미러에 매달려 있다

 

불상이 흔들린다

흔들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느리게

 

그렇지,

물빛은 물의 근육이 만들어내는 것.

 

온갖 손님들로 넘쳐흐르는 강을 가로지르는 동안

트럭이 뒤따라온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후미등을 켠다

 

지금은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다

 

 

 

영원한 친구

 

 

죽을 수도 있다

그래도 할래?

……그런 내용의 종이에 이름을 쓰고

 

하기로 한다

혼자 할 수도 있지만

친구와 나는 마주 선다

 

겨울 산의 능선이

철길처럼

나와 친구를 뚫고 구불구불 지나간다

 

재채기가 나온다

친구의 코끝에서 날아온 새를

내가 실수로 마셔버렸기 때문에

 

안전요원이 한쪽 무릎을 꿇고

나와 친구를 결속시키는 동안

 

나는 한쪽 팔을 긁으며 저 아래를 본다

이미 뛰어내린 사람들

줄에서 풀려나는 사람들

실밥처럼 날아가는 사람들

 

무서워? 친구가 묻는다

아니, 간지러워

 

친구와 함께 있으면 꼭 벌레에 물린다

이상하게 나만 물린다

나만

 

하나, 둘

 

몸에 달라붙어 있던 팔을 잠시 떼어내자

붉게 부푼 자리가 보인다

 

지금 그게 문제야?

친구는 눈을 질끈 감고 외친다

 

벌레에게 물려 죽은 사람도 있을까?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