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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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우 崔賢禹

201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사람은 왜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나요』 등이 있음.

chw0832@daum.net

 

 

 

숲과 숨

 

 

바람 불 때

비자나무들은 서로의 계절을 문지르려고

어린아이 손가락 닮은 잎을 꾸며낸다죠

 

몇백년을 자라서도

손이 어린 나무들

손만 어린 나무들

신음 한번 내지 않는

관망

푸르게 질려

 

아무도 날지 않는 숲에서도

사각사각

햇빛 구겨지는 소리 나죠

 

숲에 들어간 사람들은 제 목소리 낯설어 숨을 낮추고

건조한 삶이 얼마나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게 했는지

처음 코로 쉬어보는 사람처럼

숲 그림자에 잘못 앉아 묘목처럼 담겼다가

여기 아닌가, 여기 아닌가

울기도 하겠죠

 

소매를 내려 감춰도

팔뚝에 어룽거리는 빛

타국의 육지로 떠밀려 죽은

생선 비늘처럼 시들어갈 때

 

아, 그런데 나

무심코

사랑할 수 있는 일들만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 일들만 용서했는데

어떡하죠

 

바람 한줄기 없는데

사르르 사르르

 

누군가의 흉곽 속에

나 아직 있을 때

 

이 숨을 어디에 빌붙어 사라지게 할까

 

 

 

너의 날개

 

 

새는 뼛속에 가느다란 공기를 저장한다

그것으로 뜨고

희박한 호흡을 해결한다

 

텅 빈 공중이 일으킨 수포를 단단하게 간직하는 일

작은 허공을 하늘로 돌려보내는 사람을 보면

두 손으로 말린 과일을 모아 건네고 싶다

 

너는 급히 돌아왔다

 

소식을 듣고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고

그가 떠났구나, 사실적인 현실이구나

하던 일을 잘 마무리하고 아무렇지 않았다던 네가

현관 앞에 마중 나온 나를 보고

울음이 터진다

그를 사랑하지 않았던 거 같다고, 운다

 

깊은 미로 속에서

구름으로 만든 운명 속에서

밤의 살갗을 파서 만든

별을 따라 남겨진 추위 속에서

 

시간의 밑면과 윗면을 뒤집으면

추락했던 사람을 날아갔던 사람이라고 믿게 될까

 

거기서는 서럽고 저린 것들을 뒤집어볼 수 있나

 

너의 옷을 갈아입히고

검은 목도리를 둘러준다

 

추웠던 사람이 갑자기 따뜻한 실내로 들어가면

마음은 너무 한꺼번에 몸을 물로 바꾸며 녹는다

 

왜 너를 보고 울었지?

떠난 건 네가 아닌데

 

나는 알지 못한다

그냥, 네가 울면 나도 울게 돼

 

부서지지 않고

사라지지 않고

내 속에 잘 가두고 견뎌줄게

 

그날 이후,

가만히 앉은 네가 멍한 눈빛으로 세상을 바다처럼 칠할 때마다

나는 잊지 않고 네 뒤로 물러선다

너의 등에 갈매기 같은 비행을 그려놓고

그 위에 두 손을 펼쳐 포갠다